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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90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1.24 19:00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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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유일한 목격자

DUMMY

"아레인스터에서 만난 의사도 고치지 못했다고요?"

"안타깝게도요."


안경을 낀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의사라는 이미지에 잘 들어맞는 여자였다. 얼핏 사람 좋아 보이면서도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느낌이 그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의사는 빛나는 청진기로 젠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고는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조수 같은 건가? 남자 쪽이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데.


하긴, 이것도 편견이겠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으시겠어요?"

"윽, 의사 단골 멘트."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의사들이 꼭 이런 말 하던데, 현실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정작 당사자인 젠은 나보다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좋은 쪽부터."

"의외네."


나쁜 쪽부터 들을 줄 알았는데. 나쁜 쪽을 먼저 들어야 일단 상황이 한 번 나빠지고, 좋은 쪽을 들어서 그나마 중화되는 거 아닌가?

아닌가? 다시 잘 생각해 보니 어차피 조삼모사일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차트에 무언가를 사각사각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나을 거예요. 감기 알죠? 약을 먹으면 낫는 데 일주일 걸리고, 약을 안 먹으면 낫는 데 7일이 걸리는 거."


"그럼 나쁜 소식은요?"

"그 기간이 꽤 길다는 거죠. 모르긴 몰라도 최소 한 달 정도. 아레인스터 의사가 고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요. 당장은 고칠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나와 젠의 질문 세례에 의사는 이마를 짚었다. 마법 의학이라니. 마법도 어렵고 의학도 어려운데, 마법 의학이라는 건 얼마나 어려운 걸까.

고개를 돌려 바깥을 내다보자, 진료실 밖에 놓인 벤치에서 레몬과 마리포사 씨가 열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둘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가능한 한 간단하게 설명해 볼게요. 젠 씨의 증상은 독극물에 중독된 것과 거의 비슷해요. 그 독이 마력 신경계를 마비되게 만든 거죠.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대신 해독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거죠."


어디론가 사라졌던 조수 같은 남자가 약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조수가 아니라 약사였던 모양이다. 의사가 그 약을 다시 젠에게 넘겨주었다.


"약을 먹으면, 운이 좋을 경우에는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운이 없으면 한 달 넘게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가만히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군요."


"네, 대부분의 독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독되니까요. 그때까지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죠."


젠은 봉투를 받아들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었다. 나는 젠이 혼자 생각에 빠져 있게 내버려 두고 진료실 바깥으로 나왔다.


레몬과 마리포사 씨는 무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내가 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서, 마치 내가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계셨어요?"

그렇게 묻긴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마리포사 씨와 달리 레몬은 바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이엘 알체이라가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야."

"뭐? 어디 있는데?"


"사월에."

"그거야 그렇겠지. 이엘은 사월에 쭉 살았으니까. 사월 바깥으로 잘 나가질 않는다며?"


나는 거기에 대해 짚이는 게 있었다. 이엘은 분명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언젠가 사월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면서, 그 빈자리를 자기가 지키고 있었던 거겠지.

대체 엄마가 뭐라고.


레몬이 주머니에서 조그만 나침반처럼 생긴 물건을 하나 꺼냈다. 원판 옆면에는 작은 버튼이 몇 개 달려 있었다. 버튼을 몇 번 누르자 나침반의 바늘은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뭔데?"

"마법 무기의 위치를 추적하는 도구야. 사람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는 제약이 있으니까, 이게 있으면 이엘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지."

"마법 무기의 위치를 추적한다고? 기술 참 좋아졌군."


이런 게 진작 있었다면 엄마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뭐어, 찾았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뭐 어쩔 거냐,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그리 찾고 싶었던 것 같지도 않다.


"생각해 보니까, 이엘이 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거 아냐?"

"아니, 가지고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한 건 마리포사 씨였다. 마리포사 씨는 척 보기에도 피곤한 얼굴이었다. 인제 보니,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싶었다. 그제야 나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이엘을 왜 찾아야 하는 건데? 그런 이상한 도구까지 써서. 제국 사냥꾼 숙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도움이 필요한데 자기가 없으면 숙소 사무실의 직원을 찾으라고 했었지. 나는 그 말을 본인이 바쁠 때 일을 도와줄 사람을 대신 소개해 준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쩐지 돌아가는 상황이 영 심상치 않아 보이는군. 아까 차에서 마리포사 씨가 그런 말을 했었지. 이엘이 유서를 남겼다고.


제국 사냥꾼들이 유서를 남기는 건 흔한 일이다. 그게 이엘 정도 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마리포사 씨는 평범한 민간인 아냐? 그래서 이해를 못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물론 설명할 시간이 있다면 말이지만. 아무튼 이엘에게는 지금 당장 전력이 필요해. 그래서 나는 이엘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야."

"그럼 나는?"


"그래, 내가 여기를 이탈하면 유리오를 지키겠다는 목적을 어기는 게 되지. 하지만 다행히 여기 그 일을 도울 만한 사람이 있네."


레몬은 다시 흐늘흐늘 풀어졌다. 말투나, 표정이나. 마치 두 가지 모드가 있는 것 같네. 사람에 가까워 보이는 모드,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동 인형 같은 모드. 지금은 누가 봐도 사람에 가까워 보였다.


"웬만하면 너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긴 하지만······."


저 애매하게 흐려지는 눈. 누가 봐도 이 인형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쯤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것도 만들어진 건가? 고도의 기술을 통해서, 마치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도록?


"마리포사 씨가 있다면 만월정의 경호 인력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잠시 버티는 건 쉽겠지. 물론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중요한 일이니까."


"이엘한테 중요한 일이 있다면, 나도 같이 가면 되잖아? 충분히 전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절대 안 돼."


레몬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 고압적인 말투와 태도가 어쩐지 익숙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친근하단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왜 안 된다는 거야? 네가 안 된다 뭐다 결정할 만한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위험하니까."

"하이고, 누가 보면 엄마라도 되는 줄 알겠네."


레몬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이엘이 있다는 곳으로 출발했다.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나았을 뻔했나? 컨테이너 지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다. 온통 엉망진창이잖아. 찢어진 상자며 종잇조각들, 진흙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오물처럼 보이는 것들······.


청소 업체를 불러도 손을 내저으며 도망갈 것 같은 풍경인데, 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꽃향기였다. 그 점이 오히려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나와 레몬, 그리고 젠은 컨테이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큰 소란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떻게 된 건지 고양이 한 마리 움직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높은 선반, 잔뜩 쌓인 상자, 그리고 또 높은 선반.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냐, 저 안쪽에 있을 거야."


반대쪽에 가까워질수록 향이 점점 짙어졌다. 마치 향수로 샤워한 사람 옆에 서 있는 기분이군.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에 불쾌감을 느끼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젠 역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레몬이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저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반쯤 무너진 선반 아래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젠 역시 레몬을 따라 달렸다.


"괜찮아요?"


아니, 괜찮지 않아 보여. 낡은 코트를 입고 긴 머리칼을 올려 묶은 여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배 부근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레몬은 여자가 숨을 쉬는지, 출혈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여자는 살아 있었다. 누군가가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 위에 자기 외투를 덮어 두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출혈이 많아 보였다.


"당장 의사를 불러야 할 것 같아."


여자의 몸 옆에는 검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제국 사냥꾼의 검이잖아. 나 역시 한 자루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전에는 안전사냥부에서 제국 사냥꾼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주고는 했다고 이엘이 말했었지. 그게 부러웠기 때문에 고모를 졸라 같은 걸 받았다.


"제국 사냥꾼이야."

"통신기 가지고 있어? 의사부터 불러야 해."


젠이 그렇게 말하고 내게서 검을 빼앗아 옆에 다시 떨어뜨렸다. 레몬은 시계처럼 생긴 통신기를 차고 있었다. 그걸로 의사를 부르는 동안 나는 주변을 살펴볼 요량으로 자리를 떴다.


이제야 바닥의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싸움이 있었어. 그것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 만한 싸움이었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전에 서비 일행과 함께 아주 긴 지하의 통로를 걸은 적이 있었지.


그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이 끝에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일이.


문득 내 발에 무언가가 툭, 걸렸다. 하마터면 거기에서 넘어질 뻔했다. 나는 그 묵직하고 차가운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허리를 숙였다.


"이런 미친."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그걸 집어 들었다. 그건 분명히 총이었다.

그걸 떨어뜨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쥐고 달렸다. 여긴 왜 이렇게 넓은 거야? 그냥 안 팔리는 책이나 넣어 놓은 컨테이너 아니었냐고.


얼마나 달렸더라, 나는 드디어 창고의 끝에 도착했다.


"이엘."


이엘은 확실히 거기에 있었다. 그는 외투 없는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아까 쓰러져 있던 여자에게 외투를 덮어준 게 누구인지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는 못 보던 커다란 활을 어딘가로 겨누고 있었다. 거기에 완전히 집중해서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화살이 없는 활이었다. 나는 그의 활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쏘지 마!"

"어서 쏴, 이엘!"


거기에 있는 여자는 내 목소리를 통째로 집어삼킬 만큼 크게 고함쳤다. 6년 정도 지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겠지만 누군가를 잊어버리기에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닌 게 분명해.


특히나 그게 나를 낳은 사람이라면.

왜 이엘이 들고 있는 활이 엄마를 겨누고 있는 거지?


분명히 화살이 없었는데. 빛의 실처럼 생긴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이상하게도 그 화살은 마치 깃털이 날아가듯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화살이 목적지에 날아가 꽂히는 순간, 큰 폭발이 일었다. 귀를 찢는 소리와 자욱한 연기구름이 내가 서 있는 곳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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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5 1 12쪽
137 실종 22.11.25 30 1 12쪽
» 유일한 목격자 22.11.24 35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5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1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7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4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6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2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8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50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1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50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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