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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4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0.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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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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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복수

DUMMY

"두 분, 굉장히 친밀해 보이시네요."

"대체 어딜 봐서?"


이엘과 도달은 동시에 반박했다. 해일 마리파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내렸다.


그는 여전히 제국 사냥꾼 제복을 빠짐없이 갖춰 입고 있었다. 이엘과 도달 사이에 서 있으니 영락없는 신출내기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에 비하면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는 사이신 줄도 몰랐는데요."

"잘 아는 사이지."


해일은 어쩐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이엘은 그제야 두 사람의 접점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지.


아리나딘 교단에 잠입해 있는 사람이 있다고. 결국 교단에 관해 조사하면서 연결점이 생겼던 건가.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 안 마주치고 산 지가 거의 10년인데, 그걸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나. 떨어져 있는 동안 이엘은 도달이 뭘 하며 지내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건 도달 역시 거의 마찬가지였던 것 같지만.


"10년 전에 책 한 권을 읽었으면 말이죠. 10년 동안 그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지 않았더라도 그 책을 아는 거라구요."

"그동안 그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면? 10년 동안 반복해서 읽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을 모르는 거지."


"그만 투닥거리고 일합시다."

해일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돌멩이처럼 생긴 물건 두 개를 꺼냈다. 도달이 바람 같은 속도로 돌 하나를 낚아챘다.


"이게 그건가?"

"그래, 아리나딘의 사자들은 그게 본체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그래서 인간형의 몸이 파괴되어도 바로 죽지 않죠.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목숨을 부지하려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도달은 돌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인 모양이었다.

"확보하기 그리 쉬운 물건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손에 넣었지?"

"하나는 안타레스에서 얻었어.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유마니스티입니다."

"아, 그래. 유마니스티. 그 녀석은 외부와 분리된 유리 공간에 있었어. 그러니까 안심했겠지. 그걸 그냥 제국 사냥꾼의 검으로 가르고 들어간 거야."


"유마니스티라. 교단에서 입지가 꽤 굳은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네."


그리고 나머지 하나. 그건 좀 치사한 방식으로 얻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이엘과 해일 쪽이 악당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마니스티의 돌을 가지고 쳐들어가서 얻었어. 그걸 돌려받고 싶어 하는 녀석이 있었지. 인질로 잡아서 필요한 정보를 적당히 빼앗은 다음 목을 쳤어."

"악당 같은데?"

"나도 아니까 그렇게 뭐라고 말할 필요 없거든."


어쨌든, 두 사람이 해일을 부른 건 이 돌들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는 부장에게 맡겨 두었던 물건을 찾아오느라 기나긴 추궁을 견뎌내야 했다.


"부장이 뭐라고 하던가?"

"귀찮게 하나하나 캐묻길래, 알체이라 씨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안 물어보고 주더군요."


"귀찮은 일을 그냥 나한테 떠넘긴 거잖아."

"하지만 사실이잖습니까."


원래는 안타레스에서 유마니스티를 취조할 생각이었지. 이엘은 그 일만 떠올리면 이가 갈리는 기분이었다. 아리나딘에서 그것보다 빨리 안타레스를 칠 줄은 몰랐다. 그 바람에 유리오는 제 동료를 데리고 도망쳐 버렸다.


어떻게 겨우 다시 마주쳤는데.


그 즉시 유마니스티의 본체를 부숴 버리지 않은 걸로도 그는 충분히 참은 셈이었다.

"어쨌든 부장은 알고 있다는 거네. 내가 아리나딘에 관한 일에 손을 대고 있다는 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군. 부장은 분명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아군이 되어줄 사람이기도 했다. 혹시 그가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든 막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연히 최악의 상황이란, 이엘과 도달이 둘 다 죽는 것이다.


"모를 수가 없죠. 거기다가 제가 엮여 있으니까요, 뭐."

해일은 그렇게 말하며 이엘에게 남은 돌 하나를 건넸다. 어쨌든 이 돌 두 개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 그래서 이걸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여기서 의식을 추출해서 취조할 거예요. 이게 본체 그 자체니까, 의사소통에는 별문제가 없겠지."


"본체 그 자체라면 당연히 순순히 협조해 주지는 않겠네."

"아마 이엘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한 명은 두 동강을 내 버렸고, 한 명은 가지고 놀다가 목을 날려 버렸다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정말 잔악무도한 사람 같잖아."

"아까도 말했죠. 악당 같다고."


아리나딘 교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겠지. 지금 그들의 주적이 이엘이라고 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악이라는 것도 어디 서서 보는지에 따라 다르니까.


도달이 다시 제 가방에서 수상하게 생긴 장치를 꺼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물건인데."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짐작하겠지만 이건 저 본체와 의사소통하는 데 쓰는 장치야."


장치에는 전선, 그리고 전극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사용 방법은 안 봐도 알겠군. 저걸 돌에 붙여서 작동하는 거겠지. 책상 위에는 돌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도달은 잠시 각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관찰했다.


"이쪽이 조금 더 크기가 크네. 색은 이쪽이 더 밝고. 무슨 차이인 거지?"

"아마 그리 의미 있는 차이는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이엘에게 선택할 기회를 줄게요. 어느 쪽부터 취조할래요?"


선택권이라. 그런데 그런 게 의미가 있나? 이엘이 내릴 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도달의 뒤통수를 쳤던 녀석. 유리오에게 접근해 아이니 신의 그릇이 될 것을 종용하고, 그 동료를 해쳤던 녀석. 곧 아리나딘의 사도가 될 예정이었다는 녀석.


전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유마니스티와 대화하고 싶은데."

"드디어 이름을 외우셨군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어."

"네."


해일은 입을 다물었다. 도달이 그에게 텐트 구석 쪽을 가리켰다. 차나 타 오라는 뜻이었다. 그는 조용히 텐트 구석에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도달. 넌 별 원한이 없는 모양이네."

"무슨 원한?"


"기억 안 나? 컨테이너에서 뒤통수를 그렇게 세게 맞아 놓고."

"아, 그거."


도달은 유마니스티의 본체에 전극을 연결하다 말고, 뒷머리를 긁었다. 확실히 그리 화가 나지 않은 표정이었다. 같이 행동하다 배신당한 당사자면서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게 아리나딘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적어도 지금은."

"그때 그랬었지.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배신당하기 전에 배신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건 헛소리죠."


그랬으면 애초에 손을 잡지 않았으면 됐을 일인데. 손을 잡아 놓고 갑작스레 배신하다니. 거기에는 분명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이엘은 그걸 묻고 싶었다.


아리나딘은 혼돈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체계가 있고, 행동 원리도 있고, 심지어 구태도 있다.


혼돈과 광기를 자처하고 있을 뿐, 분명 구체적인 목적이 있을 터였다.


"이제 준비됐어."

도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치의 전원을 켰다. 마치 고문 도구처럼 생겼군. 이엘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이엘 알체이라."

"오냐."


사자의 목소리는 공기 중에 울리듯이 들렸다. 사람의 육성과는 확실히 조금 달랐다. 그리고, 이엘이 그의 인간형 육체를 부숴 버리기 전에 비하면 꽤 차분했다.


"내가 보이나?"


이엘은 비스듬하게 그 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극이 여기저기 꽂힌 돌은 얼핏 보면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록 머리카락도, 눈도 코도 입도 아무것도 없지만. 그게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


인간의 인식이라는 게 참 묘하다.


"잘 보인다."

"뭐로 보는 거지? 눈구멍도 없어 보이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유마니스티는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말투를 사용했다. 그래, 이게 네 녀석들의 본체지. 이게 진짜 모습이고. 아무리 혼돈이니 광기니 하는 것들을 가장해 봐야 진짜가 아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해일이 차를 끓여 와서 두 사람 앞에 한 잔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조심스레 그쪽을 지켜보았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글쎄. 그게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말투가 상당히 차분하군. 내가 원래 알던 모습과는 아주 다르네."

"상황에 따라 말하는 방식을 바꿀 정도의 상식은 있거든."


이게 가짜 혼돈이라는 증거지. 이엘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이쉐 알첸브라임과 손을 잡은 것 같더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서 실제로 도움이 되었나?"

"모르겠군.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쉐 알첸브라임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손을 잡았다.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도달 아자칸은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렸다는 건가.

도달의 사고 역시 거기까지 도달했는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신으로 만들자고 한 것. 그건 이쉐 알첸브라임의 의견이겠지?"

"굳이 부정할 필요 없을 것 같군."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차피 이미 아는 일을 확인하는 절차였으니까.

"그 의견을 따르기로 한 이유가 뭐냐?"

"무슨 소리지?"


"이쉐 알첸브라임은 외부인이 아닌가? 제국 사냥꾼은 기본적으로 아이니의 사람이지. 그런 존재가 너희 교단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게 둔 이유가 뭐지?"

"그걸 꼭 말해야 하나?"


유마니스티는 오만한 태도를 되찾았다. 순순히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이들이 유리오를 신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걸 위해서 교단 전체를 깨부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녀석들만 죽이면 되는지. 이엘이 알고 싶은 건 그거였다.


"누가 아이니 신의 그릇이 되든 너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텐데. 외부인의 의견에 휘둘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너희가 말하는 혼돈이냐?"

"누가 아이니가 되든 나와는 상관없다. 그건 네 생각이지, 이엘 알체이라."


"그래, 무슨 대단한 관계가 있는지 들어나 보자."


도달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네.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 위해서, 무엇을 엎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무언가를 엎으려면 어떤 손잡이를 잡고 뒤집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또 시작이군."


이엘이 제 손에 들고 있던 돌을 텐트 바닥에 내던졌다. 유마니스티에게 시선이라는 게 있었다면 그는 분명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터였다.


"같잖은 소리로 사람을 우롱하는 짓은 그만둬라. 네가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걸 똑똑히 알려줘야 할 것 같군."

"잠깐. 저건······."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신으로 만드는 게 제국을 흔들어 놓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너뿐 아니라, 아리나딘의 자식들은 말이야."


옆에 조용히 서 있던 해일이 돌을 주워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유마니스티가 그걸 잘 볼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남들 머리 꼭대기에 서서 여유롭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양,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양.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면서, 그 대가를 치르지 않을 줄 알았나?"


"잠깐. 이엘 알체이라. 좀 더 이성적인 대화를······."


이엘은 제 주머니에서 정처럼 생긴 물건을 꺼냈다. 그건 누가 봐도 돌에 구멍을 뚫거나 돌을 부수어 깎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이성 같은 소리 하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리나딘의 사자들이 그나마 서로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제 동료의 머리를 깨부수더라도 동요하지 않는 강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면 재미가 없을 뻔했는데.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찢었고, 이엘은 돌을 향해 정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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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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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추심 +1 22.12.03 66 3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3 2 12쪽
140 결착 22.12.01 26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2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5 1 12쪽
137 실종 22.11.25 30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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