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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8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1.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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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세 번째 만남

DUMMY

"당신이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래, 많은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됐었지. 지금 생각하면 묘한 일이다.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이 떠맡긴, 누가 봐도 수상한 인형과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떠났다. 그 사람이 내 스승을 만났었다는 이야기도, 내 스승으로부터 내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곧이곧대로 믿었지.


자나는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더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하고.


"너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궁금하던데."


인형의 집은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와 달리 흠잡을 데 없는 상태였다. 처음으로 여기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 난간이며 창틀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무엇이 궁금하시죠? 머리에 마법 총알이 박히고 싶지는 않으니, 가능한 한 성실하게 대답해 보도록 하죠."

"총알을 무서워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의외군."


"그냥 총이 아니니까요. 혹시 그걸 맞으면 다른 몸으로 옮겨갈 수 없을지도 모르죠."

"여기서 한 번 쏴 볼까?"


자나는 짐짓 과장된 태도로 몸을 피했다. 그는 내가 총을 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 여기서 저 몸에 총을 갈겨 봐야 내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사기꾼에게 사적 복수를 하러 여기 찾아온 게 아니었다.


"요조라는 건 사실인가? 그러니까, 미래를 볼 줄 안다는 거 말이야."

"그건 사실입니다. 제 태생은 아레인스터의 학적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겠죠. 거기서부터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내가 죽는 미래를 봤다는 건?"

"그건 거짓말이죠. 만약 당신이 정말 거기서 죽을 거였다면 내가 그걸 막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나와 그는 처음 만난 날 마주 앉았던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는 레몬이 주스를 가져다주었지만, 이제 레몬은 여기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는 내가 죽는 미래를 봤다고만 말했지. 네가 본 미래에서 나를 죽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어."


"굳이 이쉐 알첸브라임의 이름을 꺼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당신을 살해할 만한 사람은 이 제국을 샅샅이 뒤져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시잖습니까."

"머리를 잘 썼군."


아니, 내가 멍청했던 거다. 나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내 스승을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 사람이 언젠가 구체적이고 거대한 재앙의 형태로 나를, 사월을, 어쩌면 이 제국을 덮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나는 그 생각에 아주 살짝 날개를 달아주었을 뿐이었다.


"왜 그랬냐, 그렇게 물으시겠죠. 아마 당신이 제일 궁금해하는 건 그걸 겁니다. 제가 왜 당신과 당신 스승을 이간질했는지. 왜 당신에게, 이쉐 알첸브라임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짓된 정보를 심었는지."


자나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저 멀리서부터 바퀴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자, 내 무릎 정도나 될 만한 높이의 작은 인형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신발 밑창에 바퀴가 달린 구조인가? 인형의 손에 들린 큰 쟁반을 보자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드린 것과 똑같은 사과주스입니다만, 어떠시죠?"

"거절하지."

"아쉽네요."


다시 딱, 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인형은 오던 길을 돌아 사라져 갔다.

"당신이 이제 아시는 대로, 저는 아리나딘 교단에 몸을 담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예상하시기 쉽겠지만 사고를 겪고 방황하던 시기에 종교를 접하게 되었죠."


"그래서?"

"당신 스승, 그러니까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난 것도 교단에서였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요. 그도 그럴 게, 이런 곳에 올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리나딘 교단에 갈 만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지?"


말꼬리를 잡을 생각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자나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교단에 몸을 담을 생각을 했는지, 그의 기준으로 아리나딘 교단 같은 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음······. 오랜만에 하는 고민이네요, 이런 고민. 먼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죠."

"세상에 안 그런 사람도 있나?"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걸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증오와 분노를 연료로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적어지지 않을까요?"


나는 자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가 처음에 그에게서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죄다 만들어진 표정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가장해서 의도적으로 지었다는 뜻과는 조금 달랐다.


그의 표정은 설정되어 있었다. 얼굴의 근육이 움직이는 방식이 정해진 것처럼. 그는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미소를 지었고,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히 첫 대면에서는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없었으니까.


"넌 뭘 바꾸기 위해 증오와 분노를 퍼부었지?"

"그게 이엘 씨에게 꼭 필요한 정보인가요?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와는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데요."


하지만 그가 단지 굳어진 표정을 바꿔 끼우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그 가면 아래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다.


"만약 총을 든 사람이 내 맞은편에 앉아 내게 무언가를 묻는다면, 난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걸 털어놓을 것 같은데."


"그걸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럽다면 믿겠습니까? 아직도 내게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면. 무언가를 수치스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면요."

"글쎄,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지."


자나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아까 물러갔던 인형을 불러왔다. 그 인형이 들고 있던 쟁반에서 사과주스가 든 잔을 들고 쭉 마셨다. 인형도 목이 타나?


"말씀드렸던가요, 그 사고가 있었을 때 저는 친구를 구하고 싶었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공간 이동 사고를 당하기 전, 그는 친구가 죽는 미래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미래를 바꾸려다가 더 큰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사실 원래 학회에 가기로 한 건 제 친구가 아니었어요. 다른 학생이었죠. 공간 이동 마법에 이상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던, 차라리 학회에 걸어가겠다고 말하더군요."

공간 이동 마법에 이상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던 학생이라.


"하긴, 마법사 중에 그런 사람들은 흔하죠. 저라고 해서 공간 이동 장치에 들어가는 게 아주 신나고 기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공간 이동 장치가 그렇게 위험한 건가? 그런 것치고는 꽤 보편화된 것 같은데."


"그건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니까요. 제가 그렇게 되고 나서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죠. 어쩌면 이엘 씨가 공간 이동 장치를 안전하게 이용하는 건 제 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의 굳어진 미소. 하지만 그 얼굴 아래로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체로 공간 이동 장치를 무서워했죠. 하지만 무서우니, 타지 않겠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요?"


설마.

나는 머릿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떠밀려고 애썼다.


"레몬은 말이죠,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과 유사한 마력을 운용하는 사람이 회로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설정해 뒀어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죠?"


"시칼트라 학장이라면 그 인형을 만졌을 때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닌가?"

"물론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이유랍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말이죠."


자나가 테이블에 잔을 탕, 하고 내려놓았다. 나는 그 잔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투명하고 기다란 잔에는 금이 가 있었다.


"제가 아실카 시칼트라라는 인간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랍니다."

"원래 학회에 갈 예정이었다는 건, 혹시······."

"아레인스터에 가셨다면 만나보신 적 있겠군요, 아름다운 사람이죠."


실비나는 항상 공간 이동 마법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마법을 쓰는 모습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 공간 이동 마법에 대한 불신이나 혐오감이라기보단······.


"루토 시칼트라군."

루토 시칼트라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었을까?


"시칼트라는 학장의 딸이기 때문에 학회에 가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 있었어요. 혹시 제 육체를 만드는 데 시칼트라 학장이 상당한 공을 쏟았다는 이야기도 들으셨나요?"


분명 바넬드 하이넨이 그런 말을 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였겠죠."

"그래서 시칼트라 학장을 증오했나? 루토 시칼트라와 시칼트라 학장, 아레인스터를 바꾸기 위해 증오와 분노를 퍼부었다고?"


"시칼트라 학장을 증오하죠. 루토 시칼트라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 사고가 순전히 그 개인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건 아닙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잘못된 건 사회의 구조······. 뭐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갈 수는 없을까요?"


이 화제에서 듣고 싶은 건 다 들었다. 자나가 단지 호기심과 열의, 미지의 분야를 향한 학구열 때문에 영혼이라는 분야에 손을 댄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누군가를 향한 강한 분노 역시 그 연료일 줄이야.


"이쉐 알첸브라임이 아리나딘 교단에 들어간 건 황제를 살해하기 위해서였어. 그건 알고 있었나?"


"모를 수가 없었죠.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반적인 이유로 아리나딘 교단에 올 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을 거란 사실은 짐작했고, 그게 황제 시해라는 사실은 얼마 뒤에 알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역시 아리나딘 교단 안에서였어. 그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숨기고 있던 이쉐 알첸브라임을 자나가 어떻게 만났는지, 그 사람의 영혼이 파괴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렇다면 역시 고의로 나를 속였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데."


자나는 나보다 훨씬 더 이쉐 알첸브라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야 같은 교단에 몸을 담았으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죽이려 했다 하더라도 그럴 수도 없는 상태라는 것도.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나?"

"당신을 속이지 않으면 아무도 속일 수 없으니까요. 이쉐 알첸브라임은 언제든 거악(巨惡)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하거든요."


"왜 그래야 하지?"

"조금만 생각해 보셔도 알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아리나딘의 신자입니다. 아리나딘을 믿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죠?"


"혼돈을 원하지."

"이쉐 알첸브라임은 도저히 황제를 죽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교단의 높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걸 아는 건 우리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 사람을 두려워하기를 원했다는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얼마 전까지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자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가 활을 쏴서 그걸 방해하기 전까지는요. 당신이 그 활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부터, 내가 왜 발라딜로를 쏠 수 있었던 거지? 고등 마법 무기는 그 주인밖에 다룰 수 없게 되어 있을 텐데.


"깨달으신 모양이네요. 우리가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제가 한 가지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자나는 천천히 전시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를 붙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등 마법 무기의 주인이 중앙마법부에 무기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할 경우에, 그 무기는 공공재가 됩니다."


마나 씨가 발라딜로의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건가.

그 사람은 그 사막에서 죽지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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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5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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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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