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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8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8 18:30
조회
49
추천
4
글자
13쪽

불행에 대하여

DUMMY

"세간에 알려진 내용과는 반대란 말입니까?"

"세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뭐어, 그렇지. 이제 알겠니?"


이엘은 손을 들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총을 겨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그런 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봐줄 사람에게나 먹히는 방법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이쉐가 총을 쏘기 전에, 더 빠르게 제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 갈기는 것.


"유리오가 신이 되기를 바라셨군요. 그래서 그 총을 두고 가신 겁니다."

"신이 되려면 제 손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니까."

"그리고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 총을 쏘게 되죠."


이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한 기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유리오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총을 가지고 집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그건 그 애가 쏠 수 있는 총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방 서랍에 총이 없었더라면 그 애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총을 들고 집을 뛰쳐나가지는 않았겠지.


"유리오를 신으로 만들겠다는 게 당신의 뜻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쉐는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당신이라. 이엘은 그녀를 그렇게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는 자기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는 하던 소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소년은 자란다. 그리고 여자는 노인이 된다.


"흔한 일이잖니? 부모가 자식을 무언가로 만들려고 하는 건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식의 진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기나 할까. 어떤 부모는 자식이 경찰이 되기를 바라고, 어떤 부모는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오래전에는 자식이 제국 사냥꾼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쉐 알첸브라임은 자식이 신이 되기를 바란다.


"왜 유리오가 신이 되기를 바라시죠?"

"말한다고 네가 이해하겠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알고 싶습니다."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이엘은 죽어도 그 모녀 사이에 끼어들어 갈 수 없을 것이었다. 피가 이어진 가족이란 그런 게 아니던가. 그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혈연에 집착하는지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혈연이랄 게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제국 사냥꾼은 이제 곧 사라질 거야."


말이 또 바뀌었다. 그녀는 분명 처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이제 곧 사라질 거라니.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제국 사냥꾼의 존재는 실시간으로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정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래요, 그렇다고 칩시다. 제국 사냥꾼은 곧 사라질 거예요. 그게 유리오가 신이 되는 것과 무슨 연관성을 가진다는 겁니까?"

"신은 사라지지 않지. 신이 되면 그 애는 안전하게 제국에 남을 수 있어."


이엘은 이쉐의 말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느꼈다. 제국 사냥꾼은 사라진다. 그 명제가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도대체 무엇에 의해 사라진다는 건가? 이대로 놔두면 분명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제국 사냥꾼들이 해일에라도 쓸려 사라질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황제가 제국 사냥꾼을 절멸시키려 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래."


황제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인간이었구나. 이엘은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제국 사냥꾼이 되려면 황제와 함께 계시를 받으러 와야 하죠."

"그렇지."

"당신은 계시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황제를 노리고 있었군요, 여기서."


이쉐가 이엘의 머리를 향하고 있던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황제는 반드시 사냥의 숲에 온다. 한 사람이 제국 사냥꾼이 되는 데는 황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니까. 계시가 내리는 현장에는 제국 사냥꾼이 될 당사자, 아이니의 신관, 그리고 황제가 동석해야만 했다.


"황제는 오지 않는단다, 제국 사냥꾼을 늘릴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누군가가 계시받기를 원한다면 황제는 의무적으로 동석해야 할 텐데요."


"그럴 일이 없을 거야, 이제 제국 사냥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갖은 핑계를 대며 신전에 오는 걸 미루면 그만이지."


황제가 제국 사냥꾼을 절멸시키려 한다. 도달이 주장했던 건 결국 사실이었구나. 그녀가 황제를 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당신은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가 사라져야 한다고 했었죠. 황제도 당신과 생각이 같은데, 왜 황제를 해치려 하는 겁니까?"

"노선의 차이라고 들어는 봤니, 이엘?"


이쉐는 총을 제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글씨를 썼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빛무리가 나타나 허공에 형체를 만들었다. 이엘은 이전에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인형이 이렇게 글씨를 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레몬에게 장착된 기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이 사람이 쓸 줄 아는 마법이었구나.


"황제와 나의 공통점은, 제국 사냥꾼이 더 이상 제국에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 사람이나 나나 같은 목적을 하나 가지고 있기는 하지. 더 이상의 제국 사냥꾼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는 것. 여기까지는 알겠니?"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근대사 공부를 할 때 이런 식으로 배우고는 했었지. 비록 그때는 이쉐가 진짜 칠판과 분필을 사용했지만.


"황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아. 그 사람은 모든 제국 사냥꾼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걸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당신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방금 네 머리를 날렸겠지, 이엘."


그는 제 스승을 죽일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건 제 스승이 이 땅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악당에게도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안 되는 거다. 이엘은 원래 의뢰를 받을 때면 대상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가 그럴듯하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다른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무슨 말?"

"당신은 6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잖아요. 모든 걸 내버려 두고."


감정적인 원망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가 그럴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왜 나를, 우리를 떠났냐고 말할 자격 같은 건 없었다. 사실, 원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뿐이지.


그래도 거기에 대의 같은 게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쉐 알첸브라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런 선택을 한 데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6년이나 지났나. 시간이 정말 빠르구나."


그녀는 6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6년만큼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른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그 속도가 다르다. 이엘은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유리오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제 스승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엘이 알던 그녀였다. 단지 이엘이 알던 그녀 역시 이미 망가진 인간이었을 뿐.


자나는 그녀의 영혼이 파괴되었다고 말했었다. 이엘은 이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상태였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니?"

"있죠."


모를 리가 있을까, 그래서 여기에 왔는데.


"내 스승이었던 마스터 라리안느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어. 지금의 나 같은 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지. 누가 뭐래도 제국 사냥꾼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니까."


이엘은 문가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끝까지 듣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 사람은 아마 스스로 원했다면 황제가 될 수도 있었을 거야. 어쩌면 황제를 끌어내릴 수도 있었겠지. 놀랍지 않니, 그랬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여기는 제국이 아니었을 거라고."


이엘은 문득 마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 사람도 마스터 라리안느는 알고 있었지. 이엘에게는 한없이 옛날 사람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쉐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제 무릎 위에 올려놓은 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사람조차 결국에는 불행해진단다. 제국 사냥꾼이란 그런 거거든."


죽고 싶다고 말했던 암열 남자. 마나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 역시도 살아 있었을 때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자신을 죽여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그의 마지막이었지만.


하지만 그런 게 정말 근거가 되는 걸까? 제국 사냥꾼이 되면 불행해진다. 그러니까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없어야 한다.


"불행해진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불행해진다는 건 말이지. 절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제 안에 생기는 거야. 무슨 일을 해도, 뭘 먹고 어딜 가고 뭘 보더라도, 고개를 슬쩍 돌리면 그 구멍이 항상 자리하고 있지."


그런 기준으로 따지자면 나도 이미 불행해진 사람이군. 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흙바닥에 신발을 툭툭 두드렸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흙이 그의 발밑에서 다져졌다.


"그 구멍이 그냥 거기에 있기만 한 거라면 어떻게든 무시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가만히 놔두면 점점 커진단 말이야. 그게 불행해진다는 거야."

"제국 사냥꾼이 된다는 건 자기 안에 그런 구멍을 만드는 거란 말입니까?"


"뭐어,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는 그리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사람들은 물론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해지지. 제국 사냥꾼이 되지 않아도 마음에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세찬 바람 소리가 들어왔다. 온실의 창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산속에서는 강풍이 창문을 열기도 하는 건가. 이쉐가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이제 더는 눈송이라고 할 수 없을, 눈보라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국 사냥꾼이 된 인간은 반드시 불행해진단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 이런 건 존재해서는 안 돼. 내가 제국 사냥꾼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건 그래서야."

"반드시라니, 부장이 좋아할 것 같은 말이네요."


이쉐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탕, 하고 창문을 닫았다.


"그래, 아슈는 예전부터 그런 말을 좋아했지. 반드시, 마침, 운명적으로, 드디어, 공교롭게도. 아직도 그러니?"

"아직도 그래요."


찬바람과 눈보라는 이내 온실 안 어딘가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이 안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그래, 그걸 부정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유리오가 신이 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왜지?"

"그 애의 어깨에 무언가가 얹히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사람을 죽이면 어깨에 무언가가 얹힌다.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아주 잘 느끼며 살아왔다. 이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황제가 제국 사냥꾼들을 없애려 한다, 잘 알겠습니다. 거기서 유리오 한 명이라도 구하려면 유리오는 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했고요."


이엘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장미 향이 훅 끼쳤다. 출입구 바로 옆에 장미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누군가를 죽여야 신이 될 수 있다면 그 애는 신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건 그 애가 원하는 일도 아닐 거예요."


이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엘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 일에 관해 제 생각을 꺾고 싶다면 저를 죽이셔야 할 겁니다. 저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드시거든, 일주일 뒤에 팔경 지구 끝에 있는 컨테이너 단지에서 만나요."


그는 온실을 나서며, 어쩌면 뒤통수에 총알이 박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쉐가 총을 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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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50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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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에 대하여 22.09.28 50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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