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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40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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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왕의 귀환

DUMMY

사월에 얼마 만에 돌아오는 거지? 공기가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네. 공장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가. 아니, 내가 떠나고 나서 많은 게 변해버린 게 맞는 것 같아.


"그리운 고향이구만."

"무슨 그런 할머니 같은 말을 하냐?"


젠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신기하다는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사월에 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건가?


"사월 처음이야?"

"올 일이 있었을 거 같아?"

"와, 같이 구경이라도 다녀줄까?"


그런 농담은 내 뒤에 서 있는 표정 없는 존재에 의해 무참히 삼켜졌다. 레몬이라고 했었지. 어두운색의 정장을 입은 그 인형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합류했다. 마치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 그래. 놀러 온 게 아니라는 건 알지. 하지만 좀 놀아도 되잖아?"

"놀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거다."


하여튼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다니까. 이엘의 동료였다던 이 인형은 나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엘보다도 더 잘 알지도 모르지. 이엘의 머릿속에서 나와 관련된 정보들은 중간중간 텅 비어 있을 테니까.


"그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면 어쩔 건데?"

"약간의 일탈을 원하는 건지, 여기를 아예 떠나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겠지."


우리가 사월로 온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젠은 마력 신경계를 다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월에는 괜찮은 마법 의사가 있다고 들었으니, 어쩌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음으로, 이엘이 여기에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그리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어디서 위험한 일을 겪을지 모르니까. 역시 이엘에게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 혼자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한 군데만 먼저 들러 보면 안 돼?"

"어디 가게?"


결정적으로, 나는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를 먹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는데, 이름을 떠올리고 나니 급격히 그리워지는 건 뭘까.


"카페."

"너 그런 데도 가냐?"


젠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케이크 같은 건 구경도 못 했으니까. 시칼트라 학장의 집에 계속 머물 수 있었더라면 거기서는 케이크를 줬을지도 모르는데.


"뭐어, 어릴 때 거기 케이크를 좋아했거든. 이엘이 자주 사다 주고는 했었지."

"아직도 안 망했어?"

"놀랍게도 아직 건재하답니다. 맛있고 인기 있는 집이라는 뜻이야."


우리는 천천히 카페 나루를 향해 걸었다. 사월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고, 또 놀랄 만큼 그대로였다. 좁은 시장 골목 양쪽으로 천막이 쳐진 전경을 보자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예전에 아빠랑 같이 자주 왔는데. 아빠랑 와야 아이스크림을 사줬거든."

"어린이들은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게 되니까."

"왜 당신이 변명하는 거야?"


레몬은 주변의 몇 군데를 흘끗 바라보고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반면 젠은 완전히 새로운 걸 구경하는 표정이었다.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간식거리며, 생선이나 과일, 채소 같은 것들. 아마 누군가가 직접 짰을 장갑이나 목도리 따위도.


슬슬 날씨가 추워질 때가 됐구나.


"미스트라 고모의 집에 있을 때 바깥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었어. 산책도 정원을 돌아보는 정도였고, 훈련도 지하실에 딸린 훈련장에서 했지. 당연히 쇼핑하거나 밖에서 식재료를 사 와서 요리를 만들거나 하지도 않았어."


돌아보면 식충이 같은 생활을 했군. 나중에 고모한테 사과해야겠다. 그럴 날이 온다면 말이지만.


"그리고 고모 집을 떠나서는 작은 마을이나 산, 황야 같은 데를 돌아다녔으니까. 이런 규모가 크면서도 생활감이 느껴지는 장소에 올 일이 없었던 거지, 한동안은."


"그래서?"


젠은 길가에 걸려 있는 바람개비 모양의 장난감을 손으로 건드리며 그렇게 물었다. 색색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이···유치해 보였다.


"아아, 난 지금까지 뭘 했던 걸까, 사실 소중한 일상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돌아온 탕아 같은 마음이라고. 지금."

"그러면 여기서 살면 되잖아? 넌 사월에 집도 있다면서."


그런가. 그게 그렇게 쉬운 이야기일까?

오랜 시간을 걸어 겨우 도착한 카페 나루는, 놀랍게도 휴일이었다. 나는 닫힌 문을 힘껏 두드릴까 하다가 돌아섰다. 괜히 소란을 피워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왜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왜 하필 내가 가는 날이 휴일이냐고."


이상한 일이지. 그 치즈 케이크에 관해 4년 동안이나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어느 날 문득 그 케이크를 떠올리고 나자, 그 뒤로는 그 케이크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일 다시 오면 되잖아."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거라고, 젠. 아까 그 시장 골목을 걷다가 나를 노리는 암살자가 내 등을 푹. 뭐,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잖아?"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네, 네."


저 인형은 물론 어마무시하게 강하다. 평범한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낸다. 일행에게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쳐 나자빠진 나와 젠을 양팔에 끼고 걷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그러고 보면, 첫 만남에서부터 두꺼운 철문을 마치 커터 칼로 자르듯 슥, 가르고 나타났었지.


"이엘의 동료라고 해서 지금까지 묻지 않았는데 말이야. 대체 정체가 뭐야?"

"마법 인형이라고 말했다. 상품보증서라도 필요하다는 뜻인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해야 되냐? 그래, 쉬운 것부터 물어보자. 이엘이랑은 어떻게 만난 건데?"

"나를 만든 사람이 나를 억지로 이엘에게 떠맡겼다."


설명을 들으니까 더 모르겠군. 이 인형이 이엘의 동료였다는 걸 믿은 이유는, 이엘에 관해 아무도 모를 만한 정보를 아주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거짓말인 거 아냐? 이 정도로 강한 녀석이 다른 꿍꿍이를 품고 여기 붙어 있는 거라면 정말 위험한데.


"예비 좌표가 유리오 알첸브라임에게 설정되어 있다.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보호하는 걸 최우선적인 목표로 움직인다."

"그래, 그건 알겠어. 나를 따라다니고 보호해서 너한테 얻어지는 이득이 뭐야?"


인형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이 껄끄러운 느낌은. 마치 사람 같은 표정을 짓잖아. 그것도 저런 훈계하는 어르신 같은 표정을. 인형의 액면가는 나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사람이라면 내 또래라고 해도 믿겠는데.


말하는 게 노인네 같아서 그렇지.


"아이를 보호하는 건 어른에게 당연한 의무지."

"내가 아이고 네가 어른이라고? 넌 인간이 아니라면서, 그건 어떻게 정해지는 건데? 제조일 같은 걸로?"


인형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쨌든 치즈 케이크는 오늘 틀려먹었고, 이제 의사를 찾아가면 되겠는데.


"이엘이 자기가 없을 때 사월에 올 일이 있으면 누구를 찾으라고 했더라?"

"숙소 사무실에 가서 라브롭스라는 직원을 찾으라고 했잖아."


그래, 듣고 나니 기억난다. 이엘의 친구들은 아직도 많이들 사월에 사는 모양이었다. 자기가 없어도 나를 도와줄 사람 한둘 정도는 남겨 뒀다고 했다던가.


"그렇긴 한데, 숙소 사무실 직원이라고 하면 안전사냥부 사람이잖아. 의사랑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원래 공무원이 네트워크의 중심이야. 넌 애라서 잘 모르겠지만."

"자기는 얼마나 어른이라고."


그렇게 투덕거리며 시장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하려는데, 흰 차 한 대가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시끄러웠다.


척 보기에도 비싼 차네.


"뭐야?"


젠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운전석 쪽을 노려보았다. 나는 젠의 어깨에 척, 하고 손을 얹었다. 마치 개를 달래는 주인처럼.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시비 붙어 봐야 좋은 거 없어,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그때, 뒷좌석 문이 열리고 누군가 그 안에서 내렸다.


"뭐야."


나도 모르게 젠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린 사람은 여자였다. 발목까지 오는 좁은 폭의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비녀를 꽂고 손에는 부채를 든 고전적인 타입이다. 영화배우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자는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어머, 놀랄 정도로 많이 자랐구나. 유리오, 유리오 알첸브라임 맞지?"


레몬이 눈에 띄게 경계하는 기색으로 나와 젠의 앞을 막아섰다. 흐물흐물 풀려 있던 표정은 다시 감정 없어 보이는 인형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당신이 레몬?"

"나를 아나?"

"그럼. 당신이 있어서 내가 그나마 귀찮은 일을 덜 맡게 된 거니까."


나는 여자의 틀어 올린 머리칼, 기다란 속눈썹과 앙다문 입술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확실히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어. 익숙한 얼굴이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지만.

아니, 간신히 떠올렸다.


"마리포사 씨?"

"그래, 역시 어린애들은 기억력이 좋구나. 얼굴 까먹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얼굴은 거의 안 변했는데요. 얼굴보다는···행색?"

"행색이라니."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데 어떻게 해. 차림새? 모습? 꼴, 은 정말 아닌 것 같고. 하지만 마리포사 씨는 그리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반가워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나 역시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에 와서도 사월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니. 어쩐지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랄까.


"사월에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아는 사이인가 보군."


레몬이 한 걸음 물러섰다. 마리포사 씨는 조금 독특한 내 일행, 그러니까 레몬과 젠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난 마리포사 알루나예요. 사월에서 만월정이라는 가게를 하고 있죠. 그쪽은?"

"아, 이쪽은 젠이에요. 아이니 신의 신관이고, 제 친구죠. 그리고 이쪽은······."


뭐라고 설명하지? 마법 인형이고, 이엘과는 잘 아는 사이고, 무지막지하게 세고, 왠지 나를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더니 마리포사 씨가 손을 내저었다.


"그만하면 됐어요. 일단 급한 일부터 해결하자고. 의사를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

"정확히는 마법 의사예요. 신경계를 다쳐서 마법을 쓸 수가 없게 됐거든요."

"네가?"

"아, 아뇨. 젠 쪽이요."


마리포사 씨는 나와 젠, 그리고 레몬을 자기 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내부를 보니 좋은 차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이 사람, 분명 내가 알던 시절에는 이런 거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디로 가는 거예요, 마리포사 씨?"

"친구 중에 마법 의사가 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먼저 갈 생각인데."

"그러고 보니 의사를 찾는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우리는 사월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에 관한 소문이 그리 빨리 퍼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올 때와는 달리 뒷좌석에 앉은 마리포사 씨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나는 룸미러를 통해 그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글을 남겼어, 이엘이. 유리오에게 의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세심하네. 웬일이래요?"


"안 그래도 그 글에 관해 물을 일이 있는데,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뭔데요?"


마리포사 씨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엘이 유서를 썼다는 거, 알고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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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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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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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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