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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76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0.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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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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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DUMMY

화면 너머로 루토 시칼트라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쓴 선글라스에 내 얼굴이 비쳐 보이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괜히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이런저런 변명을 덧붙였다.


"이게 그러니까, 원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치 같은 거라는데요. 통신기랑 다른 점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거고······."

"이런 것도 돼요."


도달이 주머니에서 작은 물체를 꺼내 화면 안으로 던졌다. 시칼트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걸 잡아채더니 내 쪽으로 들어 보여주었다. 초콜릿이었다.


"뭐야, 그런 것도 돼?"

"이게 안 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저도 본 적 있어요, 전에. 꽤 비싼 장비일 텐데요."


시칼트라는 도달이 던져 준 초콜릿 껍질을 까더니 그대로 입에 넣었다. 작은 동전 모양의 초콜릿이었다. 도달이 주머니에서 그걸 한 움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루토 시칼트라 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꽤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겠네요. 뭐죠?"


텐트 구석에 놓여 있던 자루를 가져다 도달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도달은 자루를 풀어 그 내용물을 꺼냈다.

발라딜로.


짙은 녹색의 매끄러운 몸체가 자루 안에서 빠져나왔다. 시칼트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평범한 무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봤겠지.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니까.


도달은 시칼트라가 활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들어 보였다.


"이 활의 이름은 발라딜로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고등 마법 무기죠."

"아직 소유권 이전을 하지 않으셨나 봐요."

"아, 네. 뭐······."


고등 마법 무기의 이름은 그 소유자의 이름에서 따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활의 이름이 여전히 발라딜로라는 건, 도달이 이 활을 제 소유물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발라딜로의 능력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발라딜로.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한동안은 종적을 드러내지 않는 무기였는데."

"이게 유명한 건가요, 시칼트라 씨가 연구원이라서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요?"


시칼트라는 초콜릿 포장지를 구겼다 폈다 하며 잠시 고민했다.

"음. 둘 다겠죠? 일단 연구 대상으로서 큰 가치가 있죠. 제가 알기로는 굉장히 독특한···능력이 있다고요."


선글라스 너머에서 번뜩이는 눈을 보자 왠지 소름이 돋았다. 옆에 있던 도달이 조용히 종이에 글씨를 갈겨 쓰고 있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살짝 옮겼다.


'왜 저렇게 예쁜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확실히 루토 시칼트라는 미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생각이 들 정도는······.

맞나?


도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척 활 끝을 화면 너머로 내밀었다. 불쑥 튀어나오는 활 끝을 시칼트라가 손으로 잡았다.


"네. 발라딜로는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 있어요. 이 활의 원래 주인이었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죠."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라. 과연. 표면에 문양이 새겨져 있죠? 이건 그냥 장식용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사람 피부에 문신을 새겨 색소를 넣는 것과 비슷한 거죠. 무기 표면에 문양을 새겨 마력을 흘려 넣는 거예요."


"이렇게 물리적으로 흔적을 새기면 마력을 주입할 때 유리합니까?"

내 물음에 시칼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좀처럼 발라딜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흥미로워할 줄이야.


"그렇죠. 원리는 놀랍게도 아까 말한 문신과 정확히 똑같답니다. 물리적 흠이 있으면 마력이 침투하기 훨씬 쉬워지는 거죠."


이게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었다니. 처음 봤을 때부터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옛날에 만들어진 무기니까 옛날 장인들의 솜씨가 녹아 있다고 생각했을 뿐.


"발라딜로. 이 무기는 과연 대단하네요. 마법 무기의 위력을 결정하는 기준 몇 가지가 있죠. 오래된 마법이 걸려 있는가,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마법이 걸려 있는가. 이건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겠죠?"


사사야 타테지아가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그리고 그런 무기는 필연적으로 무거워진다고 했다. 마법적으로 추적하기도 쉬운 존재가 된다는 거지.


"그중에서도 시간을 조정하는 마법은 가장 강력한 마법이에요. 당연히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그래서 다루기도 어렵고 리스크를 지게 되죠."

"리스크라."


"실제로 비슷한 능력이 달린 무기들은 이런저런 사고를 일으켰죠. 공격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의 시간이 왜곡되었다거나. 최악의 사고에서는 사용자가 갑자기 관측되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하네요."


관측되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는 건 무슨 소리지? 옆을 돌아보니 도달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칼트라는 우리 둘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만약 어느 날 저 혼자 삼천 년 뒤로 가게 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선에서 저는 관측되지 않겠죠. 그럴 기술이 없을 테니까."


"그거, 아주 위험한 거 아닙니까?"


듣기만 해도 무서운데. 그 정도 규모의 사고라면 수습할 수도 없잖아. 스승에게 살해되는 걸 피하려고 발라딜로를 가져갔다가, 삼천 년 뒤의 세계로 가 버릴 수도 있다니.

도달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활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도달 둘 다 이 활을 쏜 적이 있지. 용케 아무도 사라지지 않고 여기 살아 있군.


"위험하죠. 그래서 아마 이런 무기에는 매뉴얼이 있을 거예요. 사용할 때 지켜야 할 사항이라거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분께 그런 내용은 못 들으셨겠죠."


못 들으셨겠죠, 라니.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고등 마법 무기의 소유자가 바뀌는 건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내가 그랬듯 원래의 소유자로부터 무기를 넘겨받는 것.


그리고 하나는 원래의 소유자를 살해하고 빼앗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도 합법적이라면 무기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데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확실히 그런 내용은 못 들었네요. 제국 사냥꾼이었는데."

"네, 저도 제국 사냥꾼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더 신기하네요. 제국 사냥꾼이라면 이 활을 쏠 일이 아주 많았을 텐데, 그분은 무사하셨나요?"

"무사했었죠, 그때까지는."


도달은 그렇게 대답했고, 나는 방금 지나간 대화 내용에 관해 생각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이 활이 가진 능력의 부작용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이 맥락에서는 무사했다고 봐야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발라딜로를 쓰고 싶어요. 아주 강한 상대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 활이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매뉴얼은 없고, 어떻게 하면 이 활의 능력을 가능한 한 안전하게 쓸 수 있을지. 그걸 알고 싶어서 저를 찾으셨군요."

"네."


도달이 활의 절반 정도를 화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시칼트라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그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건 화살 없이도 쏠 수 있는 활이네요. 정말 좋은 무기예요."

이게 좋은 무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와 도달 역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그 사실을 알아봤으니. 시칼트라는 잠시 장비를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굉장한 미인이네요."

"뭐, 그렇지."

"이엘이 저런 사람과 아무 일도 없었다니, 신기한데요."

"어디부터 지적해야 하는 거야?"


먼저, 왜 무슨 일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단정 짓는지도 궁금한데.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내가 싫다.


"그냥 한 말이에요. 연구소 테러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저런 미인이라니. 용케도 아직 아무런 화제가 되지 않았군요."


연구소 테러 사건은 지금 수면 위에서 가라앉을까 말까 하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사월 중앙 치안관리부는 파탄 상태로, 수사는 완전히 멈춰 있다. 루토 시칼트라에 대한 내용은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레인스터 측에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사람이 진범일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해? 시칼트라 씨에게 그걸 물어보면 도움이 될까?"

"도움이야 되겠지만, 괜히 힘든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온정적이었어?"

"아니, 뭐. 가련하잖아요.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겪고. 그러고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니까."


이거야 원. 유리오의 후견인이 되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기절하겠는데.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그걸 감안해도 도달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의외였다.


"스캐너를 가져왔어요. 이게 있으면 고등 마법 무기에 어떤 마법들이 걸려 있는지 파악할 수 있죠."

"헤어드라이어처럼 생겼네요."


그 스캐너라는 물건을 본 내 첫 감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실카 시칼트라가 가지고 있던 장비도 헤어드라이어처럼 생겼었지. 그걸로 영혼석을 감정해 줬었다. 아레인스터의 장비들은 왜 다 이렇게 생긴 건지.


"그렇죠? 머리카락을 말린다고 생각하죠. 장치의 전원을 켜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면 돼요."


시칼트라가 화면 너머로 스캐너를 넘겨주었다. 스캐너를 받자 제 쪽으로 반쯤 넘어가 있던 발라딜로를 다시 이쪽으로 밀어냈다. 활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달이 단단히 받쳐 잡았다.


장치 옆면에 전원 버튼이 달려 있었다. 나는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이게 드라이어라면 바람이 나오는 입구 부분을 활의 끝부분에 가져다 댔다. 장치가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끝에서는 파란 광선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오, 뭔가 되어 가는 느낌인데요."

"난 무섭거든."

"그런 걸로 겁먹다니, 좀 더 담을 키울 필요가 있겠네요."


스캔을 끝낸 뒤 장비를 시칼트라에게 돌려주었다. 그녀가 버튼 몇 개를 누르자, 아까는 광선이 나왔던 입구에서 이제 종이가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영수증처럼.


"그런 건 얼마나 해요? 좀 비싸겠죠?"

"제 사비로 산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얼핏 보니 종이에 적힌 건 글자와 숫자,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자였다. 내 눈앞에 갖다 대도 해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칼트라는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며 옆의 공책에 무언가를 적었다.


"시간이 조금 걸려요. 한 5분에서 10분 정도?"

"그럼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도달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시칼트라는 도달이 사라져 가는 쪽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알첸브라임 양을 지키지 못해서."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루토 시칼트라는 우리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이 사람이 유리오를 철저히 보호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는데.


물론 그럴 수 있었다면 내게는 좋은 일이었겠지. 하지만 남에게 그런 기대를 품는 건 너무 염치없다.


"시칼트라 씨가 그걸로 미안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아이를 보호하는 게 어른의 의무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건 제 쪽이 아닐까요?"

"여기는 아주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아레인스터가 위험한 곳이라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유리오가 아레인스터를 떠나기를 원했던 거겠지.


아직도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건 안 변했군.


내가 그 애를 구하러 가서 처음으로 마법 총을 난사했을 때. 그 경험은 나에게 꽤 큰 충격이었고 나는 한동안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머지않아 그 애는 내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애가 무슨 일을 했느냐.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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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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