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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4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2.0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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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추심

DUMMY

새 선글라스를 사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훨씬 익숙할 테니까. 이렇게 맨얼굴로 돌아다니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가는,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광고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지.


나는 사사야 타테지아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당연하게도, 여기 찾아오는 건 아마도 처음이었다. 그 여자는 내가 어릴 때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었지만, 나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치안관리부의 부장, 사사야 타테지아는 내 스승 이쉐 알첸브라임의 오랜 친구였다. 물론 그 관계는 언젠가부터 틀어져 버린 것 같았지만.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하인이라고 하나? 아니, 하인은 너무 이상한 말 같고. 관리인인가? 아니면 경비원? 입구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내 얼굴을 보더니 경계하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치안관리부 부장을 만나러 왔는데요."

"그러니까, 무슨 용건으로요?"

"여기 사람을 억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처음으로 내 총을 버린 걸 후회했다. 내 스승을 따라 허공에 총을 마구 갈길 거였다면, 치안관리부 부장의 집 대문 앞만큼 좋은 곳은 없었을 텐데. 경비는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적당히 조사하고는, 나를 대문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집 좋네."


스승님 가족이 살던 집과는 대조적이었다. 물론 그 집도 그 집 나름대로 좋았지만. 더구나 지금은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올라 버린 동네긴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리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넓은 잔디밭에, 저 멀리는 잎이 넓은 나무들이 거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나무가 많으면 공기가 좋다는 게 실감이 날까?


넓은 정원에 걸린 그네 하나를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의 집 정원에도 딱 그네 하나가 있었지. 잔디 사이로 널찍하게 난 길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 건물이 보였다. 정원에서 차를 타고 다닌다는 집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이런 집을 다른 데도 아니고 사월의 중앙 지구에 가지고 있으니, 치안관리부 부장이 얼마나 부자인지는 알 만했다.


투덜거리며 정원을 걷다가, 잔디밭 끝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아이니의 젊은 신관이 거기 서 있었다. 문득 이 사람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유리오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동안 뭘 하며 지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위기가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실제로 내가 유리오에게 처음으로 꺼낸 말은 형편없는 내용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군.


하지만 쓰러진 소년과 아리나딘의 사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유리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깨달았다. 유리오에게는 유리오의 모험이 있었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리오에게도 동료 같은 게 생겼구나, 하고.


뭐, 그걸 그런 이상한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건 유감이지만······.


"선글라스. 새로 사지 않으셨네요."

"사야 합니까?"


"아뇨. 눈을 가리고 있어서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거든요."

"별소리를."


"그때 한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계셨죠. 그 상황에서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눈은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안 보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신관은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눈이 어떻게 된 건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왠지 유리오 역시 묻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애가 하지 않은 일을 굳이 내가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야기해 드릴 게 몇 가지 있는데요."

"뭡니까?"

"먼저, 알체이라 씨의 총은 유리오가 가지고 있어요. 그걸 컨테이너에 떨어뜨리셨던데."


분명히 그랬었지. 그 총은 거기에서 아무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총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일단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거기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랬던 것 같군요."

"다음으로, 유리오는 알체이라 씨를 만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내가 제 어머니를 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를 피하려고 치안관리부 부장의 집으로 들어왔단 말인가?


내 스승, 이쉐 알첸브라임이 알면 땅을 칠 일이었다. 그 사람은 옛날 사람이니까. 제 딸이, 아무리 제 친구였다 한들 치안관리부 부장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겠지.


"그건 내가 이쉐 알첸브라임을 쐈기 때문입니까?"

"본인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군요. 저는 그때···어쩌면 알체이라 씨에게 무언가가 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악령에게 조종이라도 당했다 이겁니까?"


악령이라. 그 창고에서 가장 악령에 가까운 건 자나가 만든 인형이었지. 인형의 집을 통째로 불태워 버린 데에 관해서는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거기에서 더 악한 무언가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유리오는 그 인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리오가 그 인형을 보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으리라.


"저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요. 여기로 들어오면 알체이라 씨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사사야 타테지아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도요."


애 같은 생각이군.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보다 유리오가 내 총을 가지고 있었다니. 도대체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간 거지?


그제야 신관이 들고 있는 커다란 물뿌리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남자는 정원에 물을 주러 나온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일꾼이라도 된 건가.


나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정문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 남자는 아이니의 신관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내 스승은 자기 딸에게 총을 남겼다. 그 애가 언젠가 사람을 죽이게 하도록. 아마 내가 안타레스에서 아리나딘의 사자를 두 동강 내지 않았다면 그 애는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 사자를 죽이지 못했더라도, 그렇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 번 누군가를 죽일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그리고, 내 스승이 유리오가 사람을 죽이길 원했던 건, 사람을 죽여야만 아이니 신의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건 사실일까? 내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진실을 알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사람을 죽여야만 아이니 신의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건 사실입니까?"

"누가···그런 이야기를 했죠?"


신관의 녹색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는 점에 놀란 건지.


결과만 말하자면, 당연히 읽어내지 못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들었습니다."

"그런 게 알려져 있을 리 없어요. 아이니 신을 강림시킨 사람들은 살아 있지 않을 테니까. 저희는 백 년도 더 지난 기록물에서 단서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고요."


"그러면, 당신들이 믿는 아이니의 강림 조건이란? 실제로 오래전에 강신 의식을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물에서 나온 겁니까?"


신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건 아닙니다. 그 기록물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지 못했어요. 그걸 해석하는 것 역시 교단의 사업 중 하나였죠."

"어쨌든, 당신은 모른다 이거네요."


이 신관의 일행 중에 후드를 쓴 여자가 있었는데. 정황상 그 여자가 대장이겠지. 나중에 그 여자를 만날 일이 생긴다면 그쪽과 이야기해야겠군.


"치안관리부 부장은 안에 있습니까?"

"아마도요. 저와는 딱히 마주칠 일이 없어서요. 인사밖에 하지 않았거든요."


사사야 타테지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지? 그 여자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치안관리부의 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가. 그때 윌 로체스티아 조사관 역시 사표를 냈다고 했었다.


솔직히, 치안관리부가 그 사건으로 완전히 힘을 잃었을 줄 알았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무려 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조사관들의 살해를 사주했다. 그것도 실종을 가장한 방식으로.


동기는 명확히 적혀 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 동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치안관리부는 언제나 내분을 끌어안고 있었다.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겠지. 그게 정말 그 차장의 단독 범행인가? 거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수척한 얼굴의 사사야 타테지아를 떠올렸다. 그게 지치고 힘든 모습을 가장한 거라면?


"안 들어오고 여기서 뭐 해요? 어머,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 그러고 보니 여기 와 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손수 찾아올 줄 알았으면 차라도 한 대 보낼 걸 그랬네요. 식사는 했어요? 마침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긴 한데."


완전히 원래의 기운을 회복했군. 나는 문간에 서 있던 여자와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 여자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는 걸 느꼈다.


"어머, 얼굴 보는 거 오랜만이네. 이참에 그냥 선글라스는 벗고 다니지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얼굴은 드러내고 다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거 같거든. 앞으로도 계속 택시 몰 생각이면 더 그렇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비슷하게 말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바로 새 걸 사서 쓰죠."

"농담도. 잘 생각해 봐요. 얼굴 드러내고 다니는 쪽이 훨씬 인기가 많을걸? 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생긴 건지······."


"윌 로체스티아 조사관이 복직했던데요."


여자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굳어졌다. 어떤 화제를 꺼내야 단숨에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차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차가워지는 수준이 아니라 얼어붙어 버릴 것 같고, 다른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고.


윌 로체스티아는 제 상사였던 차장이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사표를 냈다. 다만 그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당장 인력이 없기 때문이겠지.


"어지간히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힘겨루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무슨 힘겨루기 말일까?"


"사건 당일에 자백했습니다. 제가 이쉐 알첸브라임을 사살했으니 조사관을 보내 달라고. 통신 기록까지 분명히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나요? 흉기가 마법 총이었다면 범인을 확정 지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흉기는 발라딜로라는 이름의 활이었어. 그건 이론적으로 누구나 다룰 수 있는 무기였잖아요? 그리고 시신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어요. 그 자백 한 마디로 범인을 확신할 수는 없는 거예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지금쯤이면 발라딜로를 제가 사용했다는 사실도 증명되었을 텐데요. 치안관리부의 인력 부족이 그것조차 제대로 알아낼 수 없는 수준이라면 안전사냥부에 권한을 넘기는 게 나을 겁니다."


치안관리부에서 왜 이렇게 나오는지 짐작이 갔다. 아까 신관은 유리오가 내 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발라딜로를 현장에 그대로 버려두고 나왔다. 고등 마법 무기 두 개를 확보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유리오 알첸브라임이 제 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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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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