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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7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10.04 18:30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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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DUMMY

"빨리도 말하는군요."

"언제 말할지 계속 재고 있었어."

"잴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냥 텐트 안에 들어서자마자 말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만한 내용이잖아요."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그동안 그 기묘한 온실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 열매나 하나 따서 먹어볼 걸 그랬다. 진짜로 먹을 수 있는 열매였을까. 살구가 발밑에 밟혔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했다.


콰직, 하고 뭉개졌었지. 그건 분명 진짜 같았어.


"하나씩 맡자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내가 황제를 처리하면, 이엘이 이쉐 알첸브라임 쪽을 처리하겠다는 뜻?"

"말하자면 그렇지. 그렇게 정리하니까 굉장히 쉬운 일처럼 들리네."


자. 제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게 누구냐? 하나는 황제, 그리고 하나는 이쉐 알첸브라임이다. 이 둘을 막아서거나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할래, 하나씩 맡으면 될 것 같은데요. 내가 이쉐 알첸브라임을 처리할 테니 네가 황제를 죽여.


"내 인생에서 그보다 어려운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나도 마찬가지거든."

"일단. 만나서 뭘 하기로 했는데요? 사월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세 번째 눈동자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건 아니겠죠."


서로 죽이기로 했지. 정확히는,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만나러 오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남겼을 뿐이다. 유리오를 신으로 만들겠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내 생각을 꺾으려면 나를 죽여야 할 거다.


그러니 나를 죽이려면 팔경 지구의 컨테이너 단지로 와라, 그렇게 말했다. 내 설명을 들은 도달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황제가 제국 사냥꾼을 절멸시키려는 건 사실이다. 이쉐 알첸브라임은 제 딸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 자기 딸을 신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거군요."

"말하자면 그렇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뭐든지."

"왜 이쉐 알첸브라임은 황제를 직접 찾아가서 죽이려 하지 않죠?"


머릿속에서 작은 불꽃이 튀는 느낌이었다. 이건 확실히 이상하잖아. 그 사람은 왜 적극적으로 황제를 죽이려고 하지 않지? 황제를 죽이면 그 모든 게 끝날 텐데.


"어쨌든, 그건 지금 알 수 없는 일이니 넘어가요. 그 사람이 올 거라 생각하나요?"

"반드시 와."


그 사람이 오지 않을 리 없다. 예전부터 이런 종류의 도전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자기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았으니까.


"내가 일부러 좀 건드렸거든. 무조건 올 수밖에 없게."

"호랑이 소굴로 일부러 들어가는 취미가 있나 봐요."

"어쩔 수 없지. 호랑이를 확실히 만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거든."


도달은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 시선이 내가 찬 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도, 내 총은 거의 새것에 가까웠다. 거의 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총 쏘는 법은 기억해요?"

"그런 건 안 잊어버려. 자전거 타는 법이랑 똑같은 거야."

"그래도 만전을 기해야죠. 총 쏘는 법을 잊어버려서 죽는 건 너무 억울한데."


따지고 보면 가장 숙련된 상태는 아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거 하나 때문에 지지는 않겠지. 총을 쏘지 않아서 졌다고 만족하며 죽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도달이 텐트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거, 쏠 수 있겠어요?"


그 끝에는 기다란 자루가 놓여 있었다. 마나 씨의 활, 발라딜로가 그 안에 들어있겠지. 나는 이미 그걸 한 번 쏜 적이 있었다. 그건 화살이 없어도 쏠 수 있는 활이었고, 동시에 시간을 왜곡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엘은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무슨 의미야?"


나도 알고는 있지만, 남의 입으로 듣자니까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은데. 도달은 내 표정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정면으로 싸울 생각이잖아요. 정면으로 싸워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인걸요."

"그거야 나도 알지."

"제국 사냥꾼답게 해야 해요. 하지만 이엘은 그럴 마음이 없을 테니까."


제국 사냥꾼답게, 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어떻게든 목숨만 빼앗으면 된다. 그게 사냥꾼이니까. 상대를 이겨서 쓰러뜨리는 건 전사의 몫이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네."


분명 나도 사냥꾼이었는데.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덫을 놓고, 함정을 깔고 독화살을 쏘고 속임수를 써서 그 사람을 쓰러뜨리는 상상을 하는 게.


"게다가, 솔직히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죽이지 않고 봐주며 쓰러뜨린다는 건 불가능한 상대니까. 내가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텐데.


"이엘이 그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 발라딜로가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뒤로 활을 쏴본 적 있어?"


도달은 저 활을 손에 넣은 뒤로 한 번도 쏘지 않았다고 했었다. 내가 올해 아리나딘의 사자를 향해 한 발을 쏜 게 개시였던 것이다.


"쏜 적 있어요. 웬만하면 안 쏘려고 했는데, 도망 다니는 게 워낙 힘들어서."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지. 실제로 본 적 있나?"


시간을 왜곡한다니. 너무 어려운 개념이잖아. 저 화살을 맞으면 갑자기 어려져서 여섯 살 꼬마가 되어 버린다든지, 뭐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나도 한 방 맞아 보고 싶은데. 죽지만 않는다면.


"기묘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는 했죠. 맞은 녀석이 아주 급격하게 늙어버리더군요. 마치 혼자만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안에 있는 것처럼."


어려지는 게 아니라 반대라니. 그런 거라면 사양이다.


"그래서, 죽었어?"

"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걸 고칠 수 없다면 아마 머지않아 죽었겠죠."


확실히 무서운 힘이긴 하다. 하지만 그걸 쏘는 사람이 제어할 수 없다면 의미 없는 거 아닌가? 내가 그 활을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쐈다고 치자.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 작동해서, 그 사람을 20대의 전성기로 돌려놓으면 어떻게 하지?


상상만 해도 재앙이다. 지금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이 상태로 육체만 젊어진다니.


"확실히 나는 이 무기를 어떻게 마음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도달, 가끔 난 네가 천재가 아닌가 생각하고는 해."

"가끔이라는 사실이 유감스럽네요."


루토 시칼트라. 그 사람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방에는 아직도 그 여자 앞으로 써 둔 유언장 비슷한 게 남아 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기묘하군. 그 많은 사람 중에 그 여자 앞으로 유언장을 남겼다는 게. 그리 안 지 오래된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루토 시칼트라는 안타레스에 있어."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나기로 한 건 언제인데요?"

"이제 엿새 뒤인가."


"그렇다면 안타레스까지 다녀오기에는 다소 빠듯하겠는데요."

"도달. 공간 이동 장치 안 써봤어?"


오랜만에 내가 더 잘 아는 이야기군. 도달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게 티가 난 모양이다.


"마법사 중에서는 공간 이동 마법을 안 믿는 사람이 많다고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마법사가 아니잖아."


도달까지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내 주변에서 가장 무신경한 사람이니까. 미신 같은 것도 믿지 않고, 무슨 일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든가, 그런 말도 어지간하면 무시하고는 했다.


"평소라면 그렇죠. 하지만 마법 장치는 누군가가 손대기 딱 좋은 물건이잖아요."

"그 말은, 누군가가 고의로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 있겠어요?"


확실히, 도망자 입장에서는 그런 일까지 고려해야 하는군. 결국 또 번번이 반복되는 일이었다. 도달이 어떤 말을 하면, 내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가, 설명을 듣고 납득하고 마는 일.


"나도 몇 번 안 써봤어. 안전사냥부 청사에 공간 이동 장치가 있더라고."

"그러고 보니까 그런 말을 듣기는 했네요. 그렇게 보편화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일걸요."


"갈 때마다 항상 비어 있는 걸로 봐서, 사람들이 그리 많이 타는 것 같지도 않아."

"그거 설치하려면 정말 비쌌을 텐데. 나중에 한 번 정도는 타 보고 싶네요."


그 말은, 지금은 안 된다는 뜻이다. 나도 순순히 납득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손대기 딱 좋다는 말에 일리가 있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루토 시칼트라를 이쪽으로 부를 수도 없다. 그쪽 역시 신변이 그리 안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특히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를 테러한 배후가 정말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면. 루토 시칼트라를 이쪽으로 부르는 건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면 만날 방법이 없다는 거야. 차로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다른 준비할 것도 많으니까. 우리가 갈 수도 없고, 그쪽이 올 수도 없고. 포기할 수밖에 없나. 하지만 발라딜로는 확실히 아까운 무기였다.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거야.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죠."

"뭔데?"


도달이 제 가방을 던져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저 안에서 뭐가 나올지 두려운데. 실제로 사람 시체를 집어넣는 걸 본 적도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저건 굉장히 비싼 물건이겠지? 저 정도의 크기에 어마어마한 물건을 넣으려면 꽤 높은 수준의 마법을 걸었을 테니.


도달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안에서 금속성의 물체, 플라스틱, 기타 온갖 잡동사니가 구르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가져왔는데. 여기 어디 있을 것 같거든요. 아니, 이건 라디오잖아."

"요즘도 라디오를 들어?"


"운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라디오 방송은 아직도 수요가 확실한 매체라고요."

"라디오를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다닐 정도야?"

"아, 찾았다. 좀 도와줄래요?"


가방 근처로 다가갔다. 도달이 무언가를 붙잡고 꺼내기 위해 끌어당기고 있었다.

"뭐길래 그렇게 힘들어해?"

"아니, 그냥 안에 물건이 많아서 그런 거거든요. 잘 받치고 있어요."


잠시 후 내 팔 위로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떨어졌다. 얼마 전 아리나딘의 흥신소에서 들고나왔던 금고와 비슷한 크기, 그리고 무게였다.


"이거 TV 아냐?"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이건, 아무리 봐도 브라운관이잖아.

"그렇게 생겼죠."


도달이 가방 지퍼를 닫고는 내게서 TV를 받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정말 TV처럼 생겼는데. 커다란 박스 모양에, 정면에는 브라운관. 채널을 조정하는 다이얼까지 달린 걸 보면 오래된 모델이긴 하지만 TV가 확실하다.


"이엘이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쓰냐고."


있었지. 일을 가리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도달이, 좋은 집은커녕 새 옷이나 신발조차 사지 않는 걸 보자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도달은 다이얼을 조정하며 장치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런 걸 사는 데 쓰죠.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라서요."

"이게 뭔데?"


"여기서도 안타레스에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치."

"호오."


그렇게 들어서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게 가능하다고?

"루토 시칼트라라고 했죠. 그 여자 연락처 알아요?"


"아레인스터 쪽으로 통신을 걸면 연락할 수 있을 거야."

"좋아요, 그럼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지."


도달이 내게 통신기를 넘겼다. 나는 아레인스터 쪽으로 통신을 남겼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 전에 파리스에게 연결되었다.


"파리스 마벨입니다."

"이엘 알체이라인데요. 루토 시칼트라 씨 혹시 계십니까?"

"아, 이엘 씨. 네. 연결해 드릴게요."


시칼트라가 연결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입을 떼려 했을 때, 도달이 내가 가지고 있던 통신기를 낚아챘다.


"안녕하세요, 루토 시칼트라 씨. 저는 도달 아자칸입니다. 제국 사냥꾼 제6호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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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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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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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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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8 4 12쪽
»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50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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