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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32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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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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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하산

DUMMY

한밤중에 혼자 산에서 내려오는 건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총을 든 사람에게 등을 보이는 것보다 그쪽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눈 내린 산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위험하다. 그 대상이 경찰이든 군인이든 용병이든 제국 사냥꾼이든.


이엘이 산을 다 내려왔을 때는 얼굴이 꽁꽁 얼어 있었다. 초소에서 헤드랜턴을 단 경비원이 뛰쳐나왔다. 그는 황급하게 이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총은 안 맞은 거요?"


이엘은 한숨을 쉬며 빛의 구체를 껐다.


"맞았으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겠습니까."

"역시 그거 총이 맞았지? 오늘도 들었다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는 외투에 달린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 사냥을 하더군요. 우연히 봤습니다."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 거요?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총을 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잖습니까."


총기를 만드는 것, 총기를 수리하는 업종에서 일하는 게 불법이지. 물론 총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총기 수리 업체와 엮여 있지 않을 확률은 낮았다. 총기는 필수적으로 계속해서 손봐야 하는 물건이니까.


음지에는 아직도 총기 수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제작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없지는 않겠지.


"뭐 하는 사람들이던가?"

"제국 사냥꾼입니다."

"어유, 제일 귀찮아. 그 양반들이."


경비원은 그렇게 말했다가, 이엘 역시 제국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엘은 초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 몇 대를 겨우 댈 만한 공터, 초소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차라고는 그가 끌고 온 택시밖에 없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출퇴근을 하는 걸까.


"새벽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아직도 교대를 하지 않으시네요."

"언제나 한 명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요."


"경비 초소 일이 그렇죠."

"경비 초소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지."


그는 돌아서 다시 초소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엘은 그의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터지면, 나 같은 노인네 한 명이 뭘 어떻게 하겠소?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있는 거랑 없는 게 얼마나 다른지 몰라서 하는 생각이오."


그는 키도 작고 허리도 굽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이엘은 그의 등에서 기백 비슷한 걸 느꼈다.


"딱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돼. 그 사실을 잊지 마쇼."


그러고는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헤드랜턴의 불이 꺼졌는지, 그의 얼굴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이엘은 제 차로 돌아왔다.


그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구월로 향했다. 구월은 빈말로도 그리 번화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시간에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군데군데 불이 켜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신히 적당한 호텔 한 군데를 골라 차를 대고 몸을 눕힐 수 있었다.


따뜻한 물로 씻으니 그래도 좀 살겠군.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이엘은 어딘가에 통신을 걸었다.


"네. 안전사냥부의 라브롭스입니다."


대놓고 불만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연결되었다. 그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통신이 연결되었다는 건, 상대방이 아직도 퇴근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웃을 일이 아닌데. 하지만 그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알체이라 씨?"


라브롭스는 제국 사냥꾼 숙소에 딸린 사무실, 거기에서 근무하는 사무원이었다. 항상 격무에 시달렸다. 그런 탓에 그리 살갑거나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친절했다. 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면 입으로는 짜증을 내면서도 항상 완벽한 결과물을 가져오고는 했다.


"네, 접니다."

"지금 대체 어디 계신 건가요?"


아차, 하고 라브롭스는 입을 닫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엘이 어디 있는지 그가 알아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건 그의 직무 범위도, 권한도 넘어서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엘이 한동안 사월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일단, 질문에 먼저 대답하자면 여기는 구월이에요. 사냥의 숲에 들를 일이 좀 있어서."

"그렇게 멀리 가신 건 아니네요."


"이 전에는 잠깐 안타레스에 있었죠."

"거긴 많이 머네요."


"부탁할 게 두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여전히 불만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일이든 아무런 차질 없이 잘 처리해 줄 것이었다. 이번에도.


"팔경 지구 북쪽에 컨테이너 단지가 있었죠. 거기 지금 사람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사람이 있냐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이죠?"


"거기 살거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야겠어요. 예를 들어 거기서 폭탄이 하나 터진다고 가정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만한 사람이 있는 상황인지."


통신기 너머는 조용했다. 보나 마나 라브롭스가 혼자 투덜거리는 시간을 갖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지. 누가 봐도 재수 없는 일에 엮일 조짐이 보이니까.


"그리고 하나는 좀 더 간단한 건데, 위층에 있는 제 숙소의 통신기에 부재중 메시지가 남아 있는지 확인 좀 해 주시겠어요? 마스터키로 열면 그냥 열릴 겁니다."


"보안이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요?"

"다 열라고 만들어 놓은 게 마스터키잖아요."


확실히, 제국 사냥꾼 숙소에는 마스터키가 있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숙소 관리자가 하나를 가지고 다니고는 했는데, 당연히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마스터키가 먹히지 않도록 자물쇠를 개조하거나 문을 바꿔 다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게 법을 어기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안전사냥부에서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관리자만 귀찮아질 뿐이지.


"어쨌든 알겠어요. 그건 지금 바로도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당장 확인해 볼까요?"

"그럼 저야 좋죠."


라브롭스는 이엘의 방에 다녀오겠다며 통신을 끊었다. 이엘은 낯선 천장의 무늬를 세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침대가 생각보다 좋은 물건인지, 몸을 뒤척여도 불편하게 출렁거리지 않았다.


30분 정도 걸렸을까, 라브롭스가 객실의 통신기로 연락했다.


"알체이라 씨. 방에 가 봤습니다. 부재중 메시지는 총 두 통 있더군요. 음성 메시지를 그대로 그쪽으로 보내드리죠."

"고맙습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죠?"

"딱히 없었는데······."


그는 무슨 말을 꺼낼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엘은 왠지 그 내용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냥의 숲에 가기 전에 이런저런 기록을 남겨 두고 왔다. 혹시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책상에는 루토 시칼트라에게 유리오의 처우에 대해 부탁하는 메모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라브롭스는 본의 아니게 그걸 읽어 버린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엘은 산을 오르기 전까지 그 산 위에서 그가 죽거나 그의 스승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어느 쪽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쓴 겁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원래 위험 부담이 높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유서를 써 두고 다닌다고요."


"아니, 그, 유서라고 할 것까지는 아닌 것 같았지만······."

"라브롭스 씨는 자식이 없어서 내 마음을 이해 못 할 겁니다."


사실 자식이 없는 건 이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자식이 없는 건 알체이라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가 예상한 대답이었다. 라브롭스라면 무조건 이렇게 반박할 줄 알았다.


"부재중 메시지는 받았고, 컨테이너 단지에 대한 건 내일쯤 내가 다시 통신을 걸게요."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말고 다른 부탁할 건 없어요?"


"이미 많이 한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죠."


용건이 끝났음에도 라브롭스는 통신을 끊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이래. 이엘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애틋한 사이였다고.


"그럼 이만 끊죠."

"알체이라 씨, 죽으면 안 돼요."

"하나 잊고 계신 게 있는데 제가 죽을 만한 상황 같은 건 거의 없어요."


물론 그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에 해당하는 일이 곧 생기겠지만. 생각할 것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았다. 안타깝지만 다른 사람의 감상에 같이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엘은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죽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다니. 하지만 내심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쉐 알첸브라임이 사라지자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기록을 말소하는 것에 관해 논의했다. 그들의 주장으로는, 이제 제국 사냥꾼 제1호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은 이엘 알체이라라는 것이다.


이엘 본인은 그런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이쉐 알첸브라임이 최강의 제국 사냥꾼이었던 건 단순히 그녀의 무력이나 무기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총을 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쏘고, 상대방의 팔을 잘라야 하면 팔을 잘랐다. 어떤 사정을 대며 호소하든, 집에서 굶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든, 결혼을 앞둔 행복한 예비 신랑이든 그녀 앞에서는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엘은 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른 데가 있었다. 달부르미의 솔리 여자들을 죽이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만한 시간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걸까?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이엘이 아니라 이쉐였다면, 그녀는 찾아오는 모든 솔리들을 다 죽였을 것이다. 그게 진짜 제국 사냥꾼이다. 그리고 지금은 진짜 제국 사냥꾼이 설 자리가 사라져 가는 시대인 것이다.


이엘 자신은 이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가기에 유리할지는 몰라도, 진짜 제국 사냥꾼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의뢰도 제대로 받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 다니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정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오면 그제야 몸을 일으켜서 움직였다.


그러면 안 됐어.


진짜 제국 사냥꾼으로 살아야 했다. 스승이 사라지자마자 제국 전체를 수소문해서 행방을 찾고, 아리나딘이 도달을 해치려 했을 때 바로 뿌리를 뽑아 버려야 했는데.


그는 눈을 뜨고 다시 통신기를 들었다. 라브롭스가 보내 준 음성 메시지 두 개가 남아 있었다. 두 통 다 발신자의 이름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첫 번째 메시지를 재생했다.


"유리오 알첸브라임과 동행인의 행방을 찾았다. 조만간 물리적으로 합류할 예정이고. 또 메시지 남기겠음."


레몬의 목소리였다. 아, 이게 언제 남긴 메시지인지도 물어봤어야 하는데. 어쨌든 레몬이 유리오에게 무사히 합류했다면 당분간은 그쪽에 대한 걱정은 덜어도 될 터였다. 레몬을 어디서 충전할지가 문제겠지만.


그는 두 번째 메시지를 재생했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켰다.

통신기에서는 도달 아자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조만간 사월로 갈 거예요. 월면 지구의 월면 근린공원으로 갈게요. 거기 큰 야영장이 있어요. 검은 깃발을 단 검은 텐트를 찾아요. 무사히 만날 수 있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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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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