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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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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글자수 :
790,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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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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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이 텐트는 평범한 텐트야?"

"평범한 텐트냐는 건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지. 마법 걸린 물건이 아니라 평범한 텐트냐는 뜻이야."


도달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는 별별 물건이 다 들어갔다. 아마 저 텐트와 텐트 안에 있는 책상이며 의자, 텐트 앞에 펼쳐진 그늘막과 테이블까지 전부 들어가겠지. 괴상한 마법이 걸려 있는 가방이었으니까.


나도 그런 게 하나 갖고 싶네.


"평범한 물건이에요. 백화점에서 샀다고요. 방음 마법 정도는 걸려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공원 출입구 근처에 흡연실이 하나 있었다. 덕분에 도달은 거기서 마음껏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한껏 산뜻해진 얼굴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도달이 펜 끝으로 지도에 꽂혀 있는 핀들을 가리켰다.


"이거, 아리나딘의 근거지예요. 신전이라든지 거기서 지은 학교라든지. 거기서 운영하는 사업장 같은 걸 찍어 놓은 거죠."

"황제에서 이쪽으로 타깃을 바꾼 거야?"

"음.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 상황이 그때와는 좀 달라졌으니까요."


몇 달 전, 도달은 사월로 돌아왔고 그때 내게 황제를 살해하겠다고 말했었다. 아직은 도달과 아리나딘이 일시적으로 협력 관계에 있었던 시절.

그러나 아리나딘은 도달을 배신했고 해치려고 했었지.


"말하는 걸 잊어버렸는데, 그때 컨테이너에서 만났던 아리나딘의 사자 말이야."

"개자식이었죠."

"내가 머리부터 몸을 세로로 갈라버렸어."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얼마 전 사월의 흥신소를 털었을 때 분명히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녀석한테 잘 기억해 두라고 했었는데. 문제는 그 녀석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시 만났었나요?"

"안타레스에서 마주쳤지. 유리오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옆에 있었거든."

"흠."


도달이 펜 끝으로 지도를 툭툭 쳤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말했나.


"그러고 보니까, 사진 줘서 고마웠어. 그 사진이 없었으면 못 알아봤을지도 몰라."

"애들은 빨리 자라니까요."

"아리나딘은 유리오에게 두 번 접근했어. 그 애를 아이니 신의 그릇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더군."


도달이 눈썹을 슬쩍 움직였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그게 이쉐 알첸브라임의 의지야. 나한테 그렇게 말하더군. 유리오를 신으로 만들고 싶다고."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네요."


지도 옆에는 갖가지 색의 핀이 잔뜩 담긴 작은 통이 하나 있었다. 지도에 꽂힌 핀이 전부 빨간색 핀이었기 때문에, 통 안에 남은 건 거의 파란색과 노란색이었다. 도달이 파란 핀을 하나 주워들었다.


"일단 이쉐 알첸브라임은 사냥의 숲에 있다고 했죠. 아이니 신전을 지키고 있다고."

"그래."


사냥의 숲에 파란 핀 하나가 꽂혔다.


"그리고 아리나딘의 사자는 안타레스에서 마주쳤다."

"안타레스에 두 번 찾아왔어. 내가 그중에 한 명을 잡은 거지."


"본체는 찾았어요?"

"그래, 지금은 부장에게 맡겼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안전한 곳에 놔두는 게 더 나았을 테니까. 도달은 안타레스에 노란 핀을 두 개 꽂았다.


"나도 말하는 걸 잊어버렸는데, 그때 아리나딘이 날 배신한 거 있죠."

"그게 왜?"


"그건 아마 이쉐 알첸브라임과 관계가 있었을 거예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는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도달이 난장판으로 쌓여 있는 종이 더미 사이에서 서류철을 하나 찾아냈다. 조금 구겨져 있기는 했지만 읽는 데는 별 지장 없어 보였다.


"교단에 사람을 좀 심어 뒀죠. 아리나딘은 꽤 잠입하기 쉬운 교단이에요. 개방적인 편이거든요."

"최근에 누가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래요? 누가?"


나는 턱 밑으로 불쑥 튀어나온 서류철을 받았다. 집어던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네.


"부장이 나한테 일을 하나 시켰거든. 사월에서 아리나딘이 운영하는 흥신소 하나를 좀 털어 달라고. 그걸 맡으려니까 누가 꼭 자기를 끼워 달라고 사정을 하던데."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성실한 사람이네요."


서류철을 팔랑팔랑 넘겨 보았다. 중간중간 표나 사진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추었다.


레이먼드 디베나가 운영하던 출판사 '데바'가 입주한 건물 정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하라딘을 유통하는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도 알아본 거야?"

"당연하죠. 한 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관련 내용이 거기 나와 있으니까."


"레이먼드 디베나 사건을 내가 처리했다는 건 알고 있었어?"

"알게 됐죠."


데바에 방문했을 때 내게 커피를 끓여 줬던 직원이 떠올랐다. 약물의 영향이었는지 묘하게 맹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어떻게든 목숨은 건졌다지만, 이미 적지 않은 약물을 먹었을 텐데. 건강에 큰 지장이 생겼다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하라딘은 중독성이 강한 약물인가?"

"중독성이 그리 강하지는 않은 걸로 알려져 있어요. 대신 잘못 섭취하면 인체에 치명적이죠."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제국 사냥꾼들을 만났었어. 그중 한 명은 누가 봐도 약에 취한 상태였거든."

"아마, 누가 봐도 취한 상태일 정도면 이미 몸이 다 망가졌을걸요."

"그건 상관없지. 이미 죽었으니까."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 여자 목을 떨어뜨리던 순간을 굳이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때 연구소에서 영혼석 하나가 나왔거든. 분석 결과 그건 이쉐 알첸브라임의 총으로 만든 물건이었어."

"이쉐 알첸브라임이 연구소 테러 사건의 배후라는 거예요?"


"배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연관이 있겠지. 약에 취한 제국 사냥꾼도 있었고. 아리나딘이 약물을 취급한다는 건 사실이잖아."

"그래요, 일단 계속 말해 봐요."


"문제는 그때 거기서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야.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은 시신으로 발견됐어. 치안관리부에서 그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지. 그 조사도 흐지부지 멈춰 버린 모양이지만."


영혼석이 되어 버린 인간은 시신조차 남기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리니까. 나도 몇 번인가 사람을 총으로 쏴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결코 호쾌하거나 시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뒷맛이 찝찝한 일이지.


"하여튼 연구소에서 시신이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수사 초기에 밝혀졌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때 이쉐 알첸브라임이 누구를 죽였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라는 거지."

"직접 만났다면서요. 왜 그때는 묻지 않았나요?"


도달은 내게 따져 묻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양심에 추궁당했다.


"솔직하게 말할까?"

"그럼, 거짓말이라도 할 생각인가요? 나한테."


나는 천천히 온실을 떠올렸다.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이 스케치북에 휘갈겨 놓은 낙서 같은 공간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곳이 있을 수 있지?

어떻게 그런 걸 만들 생각을 하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한시라도 빨리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었거든."

"두려웠다니, 그 사람이요?"

"종자 도서관이라고 알지?"


도달은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내 질문이 다소 뜬금없이 들린 모양이었다. 종자 도서관. 각종 종자나 씨앗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나 기후 변화 등의 이유로 특정 작물이 멸종되지 않도록.


"종자 도서관에 방문하면 아주 많은 씨앗과 한 공간에 있는 셈이지. 그게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압도적인 광경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렇죠."


"그게 모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리 넓지도 않은, 한 공간 안에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장미가 피어 있는데, 바닥에는 호박 덩굴이 뻗어 있고.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를 밟으며 어린귤의 냄새를 맡았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이 그 안에 섞여 있었을 테지.


"이쉐 알첸브라임이 정원사로 진로를 변경했나요?"

"그런 걸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안에 갇혀 있었다. 물을 주고 땅을 파고 열매를 따면서. 이따금 지나가는 사슴이나 토끼 따위를 총으로 쐈겠지.

그런 하루하루를 상상하고 있으면 섬뜩했다.


"일단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식물도 사는 데 필요한 기후나 토양의 조건이 모두 다를 텐데."

"그걸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어서 그러고 있다는 게 무서운 거라고."


화분에 물 주는 것조차 잊던 사람이었다. 어디 남쪽에서 벼농사라도 짓고 있다고 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과수원을 사들여 사과에 드는 빛을 해마다 지켜본다거나. 그런 평범한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


"이미 이상해진 상태였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야."

"이엘이 알던 이쉐 알첸브라임은 어떤 사람인데요?"


그 원론적인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이쉐 알첸브라임은 어떤 사람이었지?


다정한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대답하겠다. 예전부터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딸의 의견을 묻지 않고 진로를 정해 버릴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성취하기 위해서 뭐든지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알던 모습과 똑같네, 거의."


도달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씩 따져 물으며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거의 변하지 않았구나.


"아는 인형사가 있거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어.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의 영혼은 파괴되었다고 말이야."

"영혼이 파괴되었다니. 그래도 사람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요?"


"글쎄, 영혼공학, 그런 게 있다면 말인데. 하여튼 영혼공학적으로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은 파괴됐어. 한참 동안 소모되다가 결국 깨져 버렸다는 거지."

"지금 깨진 상태라는 거죠?"


무슨 유리창 이야기라도 하는 것 같군.


"그래,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나 봐. 이 사람은 이미 부서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하고. 선입견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엘이 알던 시절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그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파괴된 채로 살아온 거야. 나와 알고 지내던 시절에도 이미 그런 상태였던 거지."


"그렇군요. 아리나딘과 손을 잡고 제국 사냥꾼이라는 존재를 없애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던 걸까요?"

"아마도."


세 번째 눈동자에서 그런 대화를 했었지. 제국 사냥꾼 같은 건 그만두고 택시 기사를 하면 좋겠다고.


"제국 사냥꾼을 없애겠다는 목표 자체는 황제와 같은데 말이죠. 결코 같이 갈 수는 없다는 점이 묘하네요."


하긴, 황제는 체제 그 자체다. 그리고 아리나딘의 목적은 체제를 붕괴시키는 거고. 이쉐 알첸브라임과 아리나딘이 손을 잡은 건 사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황제를 살해하면 확실하게 혼돈이 올 테니까.


"황제와 이쉐 알첸브라임이라. 짱짱하네요. 어쩌면 우리는 끼어들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줄이나 잘 서는 게 답일지도 몰라요."

"그냥 하는 소리지?"

"당연하죠."


"넌 진작부터 황제를 살해하겠다고 결론내렸고, 나보다 먼저 아리나딘 교단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둘 다 헛짓거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헛짓거리하고 있다고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고."


"내가 한쪽을 처리하면 네가 한쪽을 맡아줄 수 있겠어?"


의자에 한껏 늘어져 있던 도달은 내 말을 듣더니 몸을 일으켰다. 흔히 나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내가 말을 잇지 않자, 도달이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도달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도달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었군. 그 착각을 바로잡을 시간이 더 많다면 좋을 텐데.


"이쉐 알첸브라임을 다시 만날 거야. 아마도 일주일쯤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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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6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6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5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 정보 교환 22.10.01 28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5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9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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