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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26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09 18:30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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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의외의 만남

DUMMY

"왜, 불만이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실비나는 엉망이 된 인형의 집 로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눈이 두 개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많은 걸 볼 수는 없을 텐데도.


그녀의 시선이 이윽고 레몬에게 멎었다. 그 눈은 불쾌하다는 듯 가늘어졌다.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경보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 좋은 신호인데. 보통 실비나가 이런 표정을 짓고 나면 무언가를 때려 부수거나,

갑자기 공중에서 불꽃이 튀었다.


실비나가 레몬에게 쏘아 보낸 불덩이가 방향을 바꿔 오른쪽의 벽에 맞고는 사라졌다.


"불덩이를 쳐낸 건가? 손으로?"

"정확히 말하면 다르지만, 지금은 그걸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슬쩍 실비나의 눈치를 보고 말았다. 그 얼굴은 이제 표정을 잃고 완전히 싸늘해져 있었다.

"너, 대체 뭐야?"


치정극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군. 남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겠어. 물론 이런 장면을 목격한 제삼자를 실비나가 살려 둘 것 같지는 않지만.


"넌 인간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군. 너에게서 굉장히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나는 인형이지, 사람을 유쾌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인형은 아니고."

"한 번 더 해 봐."


실비나가 다시 레몬의 머리 쪽을 향해 불덩이를 쏘았다. 그건 레몬의 머리에 닿기 전에 사라졌다.


아까는 내가 잘못 봤군. 난 그 불덩이가 오른쪽의 벽에 맞은 뒤에 사라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덩이는 사라졌다가 오른쪽의 벽 앞에 나타난 거였어. 단순히 불덩이를 튕겨 내는 것과는 아예 다른 일이었다.


"신경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레몬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어."


그제야 그녀는 손을 거두고, 자나의 부서진 신체를 내려다보았다. 위쪽이 날아가 버린 머리, 복부에 뚫린 커다란 구멍과 군데군데 빠진 관절들. 실비나가 허공을 한 번 둘러보았다.


"비싼 돈을 주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완전히 흩어져 있잖아."


보란 듯이 한숨을 크게 쉬고는 머리칼을 모아 묶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실비나는 비교적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짙은 푸른색의 바지 정장 차림. 이게 보통 일을 할 때 입는 옷일까.


그녀가 나와 레몬을 향해 비키라는 듯 손을 저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이 남자가 부탁한 건 그거야. 자기 육체가 수명을 다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영혼? 기? 에테르? 요즘은 이쪽 학계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 일단 영혼이라고 하자. 그 영혼은 흩어질 거야. 붙잡혀 있을 육체가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인데."


실비나는 내게 눈을 흘겼지만, 불꽃을 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이 되면 죽을 거야. 하지만 이 남자의 영혼은 마법적으로 다소 특별한 상태지. 그러니까 흩어져 있는 걸 모아서 새 몸에 집어넣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어. 내가 그 작업을 하려고 여기 온 거고."


"거기까지도 다 아는 이야기야."

"그럼 꺼져. 그 이상한 게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거슬리니까."


나와 레몬은 순순히 정원으로 빠져나왔다. 기다란 복도 옆으로 난 기다란 정원의 잔디는 아직 쌩쌩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이 정원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었지. 가짜 잔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발밑에 밟히는 이 느낌은 분명 진짜였다.


"실비나가 왜 너를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지?"

"글쎄, 내가 너와 사이가 좋아 보여서?"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오늘 마주친 실비나는 내가 평소에 아는 모습과 좀 달라 보였다. 단순히 옷을 좀 얌전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었다. 원래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독기가 좀 빠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짜증을 부리거나, 레몬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짜고짜 공격하고 보는 건 내가 아는 실비나였지만.


"그보다, 자나와 실비나가 아는 사이였다니. 그건 알고 있었어?"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 너와 저 여자가 아는 사이라는 걸 몰랐을 뿐이야."


알다마다. 너무 많이 알았기에 문제지.


"자나 말고 다른 마법사들을 많이 만나 봤어?"

"몇 번 정도."


"그 마법사들이 실비나와 똑같은, 저런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던가?"

"내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마법사들은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모호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야 좋아한다는 말 자체가 모호한 말이니 어쩔 수 없지만.


연구 자료로서의 레몬은 분명 그들에게 매력적일 터다. 하지만 그들이 레몬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못하겠지. 원래 인간들은 인간을 애매하게 닮은 존재에게 가장 잔인하다. 차라리 레몬이 강아지처럼 생긴 인형이었다면 그들은 레몬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저 작업이 끝나면, 자나가 이상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나도 몰라.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럼 자나의 육체가 저 지경으로 파괴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는 뜻인가. 적어도 레몬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처음이겠군.


"두려울 것 같아."

"뭐가?"


"보통 사람들처럼 죽지 않는다고 해도, 한 번 의식이 완전히 꺼지는 경험을 하는 거잖아. 솔직히 나라면 두려울 것 같아."

"자나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거야."


나는 잠이 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생각. 언제부터인가 잘 잠들 수 없었던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증상이 심각할 때면, 잠들기 직전에 공포에 휩싸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는 했다.


내가 자는 사이에 누군가 살해당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사월에 테러가 일어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한 번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고 나면 두려움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지 궁금하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잖아. 너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이라. 나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떠오르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예전에 무주의 사막에서 어떤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마나 씨. 내가 한때 스승님을 내 어머니처럼 여겼다면, 내가 잠시나마 아버지처럼 여긴 사람은 마나 씨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그를 되살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그를 되살리고 싶다고 해도, 그를 다시 살리는 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야말로 비로소 안식이 될 수도 있겠지. 내가 거기에 공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삶의 방향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잘못 선택한 길로 계속 걸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지.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건가?"

"다시 돌아가려면 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야.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모든 사람은 후회할 일을 저지르면서 살아가니까.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 안고 살아가는 후회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 마나 씨는 아주 커다란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래 살았고 많은 일을 저질렀으니.


"내가 북부인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져. 마나 씨가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은 겪고 싶지 않으니까."

"어떤 고통?"

"자신이 살아온 삶에 짓눌리는 고통. 난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어."


지금도 내 어깨는 무거운데.

어쨌든, 잘 생각해 보니 굳이 되살리고 싶은 사람 같은 건 없었다. 내게는 소중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자나에게 반드시 되살리고 싶은 사람 같은 건 없을지도 몰라."

레몬은 그렇게 말했다.

"단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에 기술적으로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문득 자나가 사고를 겪었을 때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던 그의 친구를 떠올렸다. 그는 친구가 죽는 미래를 봤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친구에게 달려가 네가 죽는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가 이번에야말로 그 일을 바로잡고 싶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지만 레몬은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고개를 갸웃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그 친구를 구하려고 시도할 것 같아?"

"시도라면 할 것 같아.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이엘이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개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그게 개념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몰랐다.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는지도. 그러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그렇게.


"유리구슬 하나를 산산조각 낸다고 생각해 봐. 그 조각을 주워 모아 접착제로 붙인다고 해도 그 구슬은 이미 부서지기 전의 것과 같지 않잖아."

"설마 그 구슬을 인간의 사체에 대한 비유로 갖다 쓴 건 아니지?"


"아니, 몸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비유로 쓸 생각이었는데. 몸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자나의 정신이 이미 산산조각이 난 유리구슬과 같다는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러면 말이지. 그 구슬은 이번에도 한 번 더 박살이 난 건가?"


부서진 건 영혼이 아니라 영혼을 담는 그릇인 육체다. 영혼의 그릇이 부서진 것 역시 영혼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모래가 담겨 있던 그릇이 부서졌다고 가정해 보라고.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서 거기에 모래를 주워 담더라도 모든 모래를 완벽하게 다시 넣을 수는 없겠지.


아니면 모래를 다시 넣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섞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자나는 이전의 자나와 같지 않을 거야. 분명 맨 처음의, 사고를 겪기 전의 자나와도 같지 않겠지.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는 숙원은, 처음의 자나에게는 없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리고?"


"자나를 저렇게 만든 건 이쉐 알첸브라임이야."

레몬은 못을 박듯 그렇게 말했다.


"그 여자가 자나를 공격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고. 어쩌면 자나가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여자가 보는 이득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래, 자나가 어떤 비밀을 알고 있다든가."


믿고 싶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상황이 유력하다. 자나와 스승님은 대체 언제 만났을까. 무슨 일로 만나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자나가 이전의 그와 같지 않다면, 그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문을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스승님이 바라는 바였다면.


"이건 사실 쓸데없는 이야기인데 말이지."

"뭔데?"

"넌 자나라는 인간이 최소 두 번은 크게 망가졌을 거라고 말했어. 사고를 겪었을 때 한 번, 오늘 한 번. 맞지?"


"그렇지."

"사람이 그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 번 산산이 부서졌다가 재건되는 일. 거기에서 다시 붕괴를 겪는 일. 그런 일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분명 세상에는 존재할 텐데.

나로 말하자면, 굳이 그런 일까지 겪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자나의 영혼은 사고 당시에 몸에서 분리됐잖아. 자나가 살아난 건 누군가가 그걸 다시 곰 인형에 꿰맞췄기 때문이야."

"그래서?"


"누가 굳이 그런 일을 한 거지? 보통은···누군가의 몸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걸 보면, 당연히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할 텐데."


탁, 하고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실비나가 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좋은 질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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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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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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