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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2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08 18:30
조회
30
추천
4
글자
12쪽

허물어지는 경계선

DUMMY

"잠깐.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건 누굽니까?"

"이엘 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에요."


자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작을 정지했다. 이엘과 레몬은 마치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처럼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에 두고 가도 되는 건가?"

"매뉴얼이 있었어. 자나의 육체가 파괴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레몬은 자나의 손을 놓았다. 머리가 아픈 듯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건 분명히 이쉐 알첸브라임의 버릇이었다. 영혼의 파편이라. 그렇다면 레몬의 일부는 곧 그의 스승의 일부다. 이엘은 자신이 이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예비용 육체를 만들어 뒀어. 영혼을 그 안에 이식하면 돼."

"굉장히 간단하게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야?"

"당연히 아니지."


레몬은 한동안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사실 자나의 영혼이라는 건, 편의상 영혼이라고 부를 뿐 흔히 생각하는 영혼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그건 오히려 마법적인 에너지에 가까우며, 당연히 마법을 배우지 않은 이엘은 그걸 다룰 수 없다. 그렇게.


"한 마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거잖아."

"인형의 집으로 전문가를 불러야 해. 그건 내가 할 수 있어. 자나가 미리 계약해 둔 마법사가 있으니까."


그래도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는 게 어디야. 레몬은 통신기를 사용하겠다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이엘은 움직임을 멈춘 자나의 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직접 이 남자를 죽이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몰랐다. 이 남자가 요조였다니. 세 번째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건 항상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는 의미다. 과연 어디까지 볼 수 있었을까?


이 남자는 뭘 봤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쉐 알첸브라임을 만났을까.

이엘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어야 했다. 그러려면 자나가 무사히 살아나는 걸 돕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법사를 불렀어.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게 결계를 쳤고. 이제 마법사가 올 때까지 여기를 지키기만 하면 돼."

"누군가가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 그렇게까지 걱정할 건 없어. 너와 내가 있으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무도 없으니까."


이런 말을 하다니. 이엘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어쨌든 인형의 집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안을 좀 둘러봐도 되나?"

"얼마든지. 자나는 너에게 인형의 집을 보여주고 싶어 했어. 그때는 네가 여기를 느긋하게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래, 그럼 좀 둘러볼까."


이엘은 손을 털며 계단을 올랐다. 뒤쪽으로 들어가자, 그가 자나와 주스를 마셨던 전시실이 보였다. 그가 영혼석을 던져 유리 벽을 박살 냈었지. 그 벽은 당연하게도 감쪽같이 고쳐져 있었다.


"여기서 나한테 주스를 가져다줬던 거, 기억나?"

"그 기억은 남아 있어."


"그때 넌 그냥 인형처럼 보였어. 공이 많이 들어간 물건이라는 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간적이지는 않았어."

"인간적이라는 건 뭐야?"


인간을 당황스럽게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 인간적이라는 건 뭐지? 그 기준은 한없이 자의적이었다. 이엘은 기억을 되새겼다. 언제 이 인형이 인간 같다고 생각했는가. 굳이 취할 필요가 없는 동작을 부러 취했을 때? 이상하고 질 떨어지는 농담을 걸었을 때?


"잘 모르겠어."


결국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그걸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니, 명료한 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흔한 이야기잖아, 인간 아닌 존재가 결국에는 인간성을 얻게 된다는 거."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그런 거라면 좋겠는데. 레몬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지만, 너무나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나머지 감정조차 학습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많은 인간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감정을 배워 버린 거지. 인간처럼 행동하는 법도."


"그런 설정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그래, 그런 농담은 인간이나 할 법한 거라고."


그렇다면 레몬은 인간일까, 인형일까. 자연스럽게 거기까지 생각이 가 닿았다.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당연히 인형이다. 하지만 정말 이게 인간보다 인형에 가까운 존재일까?


이 안에 들어 있다는 인간의 영혼은 물질로 환산하자면 어느 정도일까?


"로체 조사관이 그런 말을 했었지. 너한테는 인간의 영혼 비슷한 에너지가 있다고."

"기억해."


"자나는 그게 진짜 인간의 영혼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너는 단순한 인형이 아닌 거야. 네 안에는 정말 인간의 영혼이 들어 있었고, 안타레스에서 그 봉인이 풀린 거지."

"그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어."


"그 인간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야."


레몬과 이엘은 전시실의 유리 전시관 앞에 서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전시품은 아마도 자나가 만들었을 인형들이었다. 천 인형, 나무 인형, 인형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로봇처럼 보이는 물건까지.


다소 조악하고 엉성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척 보기에도 훌륭한 만듦새라는 걸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이엘은 전시관 벽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 중에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안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겠지?"

"팔을 잘못 휘둘렀다가 어깨 관절이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이엘의 시선이 전시관 끝에 있는 한 인형에게 머물렀다. 정확히는 그 인형의 이마에 박힌 세 번째 눈에.


세 번째 눈이 감기지 않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마 그는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는 애초에 세 번째 눈이 존재했던 적조차 없으므로.

하지만 원하지 않는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감각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밤이 되면 말이지. 가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어. 그 소리를 무시하고 베개로 귀를 막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단 말이야. 그건 마치 내 귓구멍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같았어."

"환청이군."


"응. 그나마 그게 제일 나은 편이야. 눈을 감아도 어떤 장면들이 계속 보일 때가 있거든. 내 눈꺼풀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주 커다랗고 무거운 망치로 동물의 사체 같은 걸 계속 내리치는 장면이 무한히 반복돼. 아니면 누군가의 팔이나 다리를 칼로 계속해서 긋는다거나. 그런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잠을 자는 게 어려워졌어."


"불면증이 있는 건 그런 것들 때문인가?"

"그런 것들도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 밤마다 끔찍한 장면을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쾌적하게 잠을 잘까. 가위에 눌리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이 상쾌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괜히 남들을 부러워하고는 했지."


자나의 눈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감을 수 없는 눈으로 미래를 보는 남자. 그는 분명 아주 끔찍한 것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을 터였다. 이엘은 진심으로 그를 동정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했던 행동에 감사했다.


"네 안에 남아 있는 영혼의 파편 말이지. 그건 이쉐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의 것이야."

"알고 있어."


"언제 그걸 알게 됐는데?"

"내 몸이 어떤 소녀를 향해서 움직였을 때. 그 소녀가 유리오 알첸브라임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을 때."


둘은 나란히 서서 서로의 눈을 마주 보지 않은 채 대화하고 있었다. 이엘은 그 눈동자를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너무 익숙한 것이 거기에 있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어. 과거형으로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쉐 알첸브라임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그게 계시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녀가 살해한 사람이 악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녀는 인형의 집에 찾아와서 자나의 육체를 파괴했다. 아마 자나를 살해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역시 마법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었으니, 자나의 육체를 파괴한다고 자나가 죽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거기에도 마땅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심지어, 그녀는 마법 총 알첸브라임과 똑같이 생긴 가짜 총을 제작했다. 자신이 총을 가지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을까. 거대한 대의가 있었을까. 그렇게 이해하려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일까.


이엘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가 더 이상 제 스승을 무턱대고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가 이 세상에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는데.


"너와 그 사람이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어색하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분리해서 빼낼 수도 없는데."


전시실 구석에는 기다란 케이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은 크기. 얼핏 봐서는 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몬이 뚜껑을 잡아당겨 열었다.


안에 든 건 자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이었다.


"완전히 똑같은 몸을 여러 개 만들어 놓은 걸까?"

"여러 개는 아닐 거야. 자나가 만들어 놓은 예비 신체는 말이지.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현대의 인형 제작 기술을 집대성한 결과야. 자나 개인도 유능한 인형사지만, 다른 전문가들이 자나에게 힘을 모아 주고 있었으니까."


"그건 자나가 다른 인형사들과는 다른 입장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자나가 '멀쩡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도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지금의 자나는 연구자이자 연구 대상이다. 자나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 어떻게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지 않고 붙어 있을 수 있는가? 그 사실에 호기심을 가진 연구자들은 한둘이 아닐 터였다.


자나가 죽어버리면 그 모든 연구가 수포가 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자나는 중요한 존재다.


동시에, 인간으로서 결코 완전히 좋아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나가 다시 살아나기 전에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자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너겠지?"

"자나에게 나 몰래 숨겨 둔 자식이나 부인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자나는 정확히 무슨 연구를 하는 거지? 난 그걸 알아야겠어. 뭘 하려고 했기에 영혼석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건지."


자나가 인간의 혼을 인공물에 정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해서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엘은 그걸 알아야 했다. 그걸 알아내기 전에는 자나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정황상 그가 자기 목숨을 한 번 구해준 건 사실일 터였다. 그러나 이엘에게는 그 행동의 결과뿐 아니라 의도도 중요했다.


"뻔한 이야기야. 자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어 해."

"누구를?"

"거기까지는 몰라. 스스로일까?"


이엘은 외벽이 크게 흔들리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거인 같은 존재가 건물을 잡고 흔들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레몬은 자나의 부서진 신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동은 점점 더 강해졌다.


지진인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인형의 집 정문이 활짝 열렸다. 누군가가 정문을 발로 차 연 것이었다. 들어서는 사람의 실루엣에서, 이엘은 불편한 익숙함을 느꼈다.


"자나가 미리 연락한 마법사가 너일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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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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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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