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190
추천수 :
926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11 18:30
조회
33
추천
3
글자
13쪽

죽어 사라질 권리

DUMMY

"제국 사냥꾼 씨. 세상에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게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그제야 실비나가 머리를 잘랐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어깨를 넘는 길이로 자라 있던 머리카락이, 턱 옆에서 끊겨 있었다. 그녀는 창밖으로 머리만 내민 채 나를 쏘아보았다.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 같은 건 없어."

"그럼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건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스승님의 집에서 꿨던 꿈을 떠올렸다. 꿈속의 진흙더미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죽여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계속해서 구별하면서 살아간다고.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

"중요한 문제지. 자나가 왜 다시 살아났는지와 아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안 그래?"


"스무고개나 하기에는 너무 피곤해."

"간단한 이야기야. 만약 거기서 죽은 게 고양이였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고양이라니.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사고 당시 자나의 몸은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었지. 그렇게 죽은 게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였다면 그냥 청소부가 사체를 치우고 끝이 났을 것이다.


"그건 상상하기 쉽지. 일반적인 사고라도 야생동물이나 산짐승의 사체는 보통 청소부가 치우니까. 장례를 치러 주거나 하지도 않아. 발견한 사람이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이라면 장례 정도는 치르지 않나? 신원을 알 수 없다고 해도."


실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겠지. 살점 조각을 모아서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끝났습니다,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기는 한데 그게 보통 사람이라면, 목격자가 말이야. 살려내야 한다든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을 거야. 왜냐면 누가 봐도 이미 늦은 상태잖아?"


그런 건가. 일반적으로는, 누군가의 확실한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그 대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나 하는 거지.


자나의 경우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터였다. 이 사람은 죽었다는 걸.


"누군가가 자나를 살려낸 이유는 간단해. 자나가 죽기에는 너무 이른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실비나는 자나가 누구인지 알고 있겠지? 실비나는 사고가 두렵다는 이유로 공간 이동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이따금 공간 이동 마법을 쓰고는 했지만, 그건 내 방에서 화장실에 가는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때로 한정되어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이란 이동하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늘어난다나.


자나가 당한 사고에 관한 소문은 아레인스터 학생들에게 널리 퍼졌을 것이다. 실비나 역시 그 학교를 졸업했으니 그 소문을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겠지.


"자나를 살려낸 사람은 말이지. 자나가 우등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것도 단순히 공부를 조금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쩌면 학계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자나가 그 정도의 학생이었어?"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토대로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였을 줄이야. 물론 레몬 같은 인형을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유명했지. 내가 학교에 다닐 때, 근 20년 동안 졸업한 사람 중에 가장 유명했을걸. 당연히 그 엄청난 사고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요조라고 들었는데."


"사실이야. 뭐 다른 요조들이 그렇듯이 앞머리를 길러서 이마를 가리고 다녔겠지만. 졸업 사진을 찍을 때는 이미 원래의 몸을 잃어버린 상태였을 거고."

"어쨌든, 유망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살려내려고 시도했을 거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해. 실제로 같이 사고를 당한 학생은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은 걸로 처리됐잖아."


자나의 친구를 말하는 거군. 실비나는 어쩐지 삐딱한 태도였다. 표정도 불만에 차 있었고. 아무래도 자나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누군가가 자나를 살려낸 현실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자나가 당한 사고는 물리적인 사고이면서 동시에 마법적인 사고였어. 그래서 그 몸은 크게 손상되었지만, 영혼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은 거야. 그 영혼을 다른 몸에 이식하면 자나를 되살릴 수 있었고."


"그러니까, 할 수 있었으니까 한 거다? 다른 학생의 경우에는 할 수 없었던 거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흐으음. 실비나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그런 소리를 내더니, 이내 창문을 닫아버렸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건 이제 안으로 들어와도 좋다는 뜻이다. 나와 레몬은 다시 인형의 집 안으로 돌아왔다.


주변은 아까보다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파란 나비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공중을 떠다녔다. 자나의 망가진 육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실비나는 자나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발끝을 까딱거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 할 수 있다면 무조건 다 해도 되는 걸까?"

"그건 아니지.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

"나는 사람을 죽이는 일뿐 아니라 살리는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하거든?"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레몬은 뒤쪽의 전시실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아까 본 자나의 새 몸을 확인하러 가는 거겠지.


그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살릴 수 있다고 해서 살리면 안 된다는 뜻인가? 그러면 의사는 어떻지? 의사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하지 않나?"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말이지. 이미 온몸이 갈가리 찢긴 사람을 살려내겠다고 나서지는 않아. 그런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아니까. 할 수 있다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고."


"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건데?"

"원래라면 죽었어야 했을 사람이니까."


실비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째, 대화가 계속 돌고 도는 것 같은데. 내가 맥을 못 짚는 건지, 실비나가 무의미한 짜증을 부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아주 많았었지. 보통 이러면 실비나는 끝까지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건 어김없이 내 몫이었다.


"너는 마법사들에 관해 잘 몰라서 그래. 그 사람들이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라는 거. 그리고 그런 경향이 얼마나 심각한지까지도."


"자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억지를 부려서까지 다시 살려 놨다는 거야?"

"대충 말하자면 그렇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 몸을 다친 사람도 다시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재활하려면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야 해. 하물며 육체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은 어떻겠어?"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군. 단지 몸이 그 정도로 손상된 사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만 느꼈을 뿐이다. 실비나는 발을 쾅, 구르며 일어났다.


"어떤 사람도 그런 고통을 겪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그녀는 전시실로 걸어 들어갔다. 전시실 바닥에는 아까 나와 레몬이 봤던, 자나의 새 몸으로 추정되는 인형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작업은 다 끝난 거야?"

"그렇지. 맡은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했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영혼 조각들을 갈무리해서 하나로 합친 다음 새 몸에 집어넣는 거지."


"네가 그런 일도 할 수 있었어?"

"도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건데?"

"아니, 뭐, 네가 대단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 아니고."


모른다는 건 아닌데, 이런 방면으로도 유능하다는 건 상상 못 했지. 실비나의 힘에 관해 떠올리면 일단 무언가를 불태우고, 박살을 내거나,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일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듣자 하니 넌 처음부터 마법사들이 자나를 살려 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러면 왜 이 일을 맡은 거지?"

"아줌마가 하라고 시켜서."


실비나의 말버릇이다. 그녀는 제 어머니 연배의 여성들을 대부분 저렇게 불렀다. 자기 상관이나, 자기 어머니까지. 아레인스터가 엮인 일이니 여기서 말하는 아줌마란 자기 어머니, 그러니까 시칼트라 학장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자나가 다시 의식을 되찾으려면 어느 정도 걸릴까?"

"한참 걸려. 못해도 열흘 정도겠지. 여기서 자리를 지킬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내가 할 테니까."

"그럼 나는 사월로 돌아가야겠는데.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자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열흘이나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차 안에 던져 놓은 서류철을 떠올렸다. 우선 그 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


그 치안관리부가, 제국 사냥꾼까지 써서 조사하려 든 사건이 알고 보니 내부자의 소행이었다니. 그것도 범인이 자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면서 사건이 종결되었다니. 너무 이상하잖아.


"그래, 그럼 그쪽 친구는?"

"친구?"


설마 레몬을 말하는 건가. 아까는 기분 나쁘니까 꺼지라고 하지 않았었나? 실비나의 태도는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 뭐, 이게 실비나지만.


"아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던데. 자나의 숙원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거라고."

"다 듣고 있었네?"

"다 듣고 있었으니까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지. 너희 바보니?"


그것도 그렇군.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나라는 인간은 사고를 겪으면서 이전의 자나와는 같지 않아졌다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는 숙원은 원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게 아닐 거라고, 그렇게 말했지. 내가 이해한 게 맞나?"


레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건 기분이 좋다는 뜻인데.


"그래, 넌 꽤 똑똑한 피조물이야.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 나와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건 상당히 발전된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겠지."

"무슨 자신감이냐?"

"넌 닥쳐."


나는 슬쩍 몸을 틀어 실비나가 휘두르는 팔을 피했다. 저 주먹이 상상 이상으로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로 말하자면, 아주 잘 아는 편이었다. 한두 번 맞아본 게 아니었으니까.


"좀 자세히 이야기해 봐."

"그래, 자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영혼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 나는 그게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목표라고 생각하는 거지."


"뭘 위해서?"

"그건 그 장본인에게 직접 들어야겠지? 중요한 건 자나라는 마법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이성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야. 아주 위태롭고 흔들리기 쉬운 상태라고. 아마 이번에 살아나게 되면 더 심각해지겠지."


"말하자면 아무나 운전할 수 있도록 열쇠가 꽂힌 트럭 같은 거군."

"너답지 않게 꽤 괜찮은 비유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자나는 우수한 마법사이자 인형사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 너무나도 쉬운 상태라는 거지. 그런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아레인스터에 연락하는 건? 거기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그렇기야 하겠지. 그게 맞는 걸까? 본인이 원하는 일은 아닐 텐데 말이야."

"아까 네가 말했잖아? 아주 위태롭고 흔들리기 쉬운 상태라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보호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실비나는 팔짱을 끼고는 몸을 의자에 푹 기댔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특히 악인이 자나를 이용하려 한다면 그리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래, 거기 사람들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지만."

"거기 사람들이라니. 아레인스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네 가족이잖아?"


아차,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 같다. 꽤 평온했던 얼굴이 다시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니.


"그러고 보니까, 안타레스에 갔다면서. 그럼 만났겠네?"

"누구를?"

"시칼트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지각 사과 및 연재 관련 공지 22.12.08 78 0 -
142 추심 +1 22.12.03 65 2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2 2 12쪽
140 결착 22.12.01 25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1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3 1 12쪽
137 실종 22.11.25 26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2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3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2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2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3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9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