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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28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24 18:30
조회
27
추천
4
글자
13쪽

허용되지 않은 것

DUMMY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남자는 조금 어두운 금발을 어깨 근처까지 기른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길렀다기보다는 자라게 둔 것 같았다. 붉은 시트의 의자가 두 개, 마주 보게 놓여 있는 가운데 원형 테이블 하나.


접견실에 있는 가구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이엘은 목에 걸린 줄을 붙잡은 채 서 있었다. 굵은 밧줄. 당장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목을 조이는 건 아니었다. 이엘은 그게 보기와는 다르게 꽤 예의 바른 행동이라는 걸 알았다.


아레인스터의 인형사, 바넬드 하이넨은 이엘을 속이지 않고 곧이곧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가 이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화의 여지가 있을지, 없을지 정도는 물어봐도 되겠지?"

"대화의 여지는 있다.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를 그렇게 만든 게 네가 아니라면 말이지, 이엘 알체이라."


어젯밤 레몬을 고쳐줬을 때와는 표정과 말투부터 달랐다. 이 남자는 레몬에게서 무언가를 본 모양이군. 이엘은 그 사실을 직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넬드는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줄은 충분히 길었다. 의자에 앉더라도 목에 걸린 줄이 당겨지지는 않을 터였다. 결국 두 사람은 마주 앉게 되었다.


"그건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야."

"레몬을 말하는 건가?"


"그런 흉물에 이름까지 붙이다니 가증스럽군."

"내가 붙인 건 아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 하여튼 그 인형을 말한다는 건 알겠네."


남자의 얼굴은 싸늘했다. 마치 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엘은 자신이 자나에 대해 아는 사실들을 이 남자에게 털어놓는다면 남자의 태도가 바뀔지 궁금했다.


"그렇게까지 타락했을 줄은 몰랐는데."

"그 인형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


그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를 살짝 뒤로 물렀다. 한껏 찌푸려진 미간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분명 살아 있는 인간을 토대로 만든 물건이다. 너도 알겠지만 그건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 일이지."

"우리란 뭐지? 마법사?"

"아니, 인간이지. 인간을 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인간에게 허용되었을 거로 생각하나?"


이엘은 고개를 저었다. 바넬드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리고 레몬이 단순히 잘 만들어졌을 뿐인 인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조 조사관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더군. 저 인형에는 인간의 영혼이나 혹은 그 비슷한 게 들어가 있다고. 세 번째 눈을 통해 봤다고 했지."

"그래, 그리고 너는 영혼석을 만들어낼 수 있지. 왜 너를 여기에 불렀는지 알겠나?"

"이론적으로는. 내가 자나와 한패라고 생각하는 거군."


그러니까, 바넬드 하이넨은 자나가 위험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건 아마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일일 터였다. 그리고 거기에 이엘이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겠지.


이엘은 레몬과 함께 행동하고 있고, 또 고등 마법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니까.


"먼저 한 가지 말할 게 있는데, 나는 근 10년 동안 이 총을 사람에게 쏜 적이 한 번밖에 없어. 그건 마법 무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이엘 알체이라, 네가 있었지."


얼마나 절묘한 우연인가. 그를 의심하는 건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반박하는 수밖에.


"자나는 인형의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던데. 나는 5년 넘게 사월을 떠나지 않았어. 어제 레몬을 만져봤다면 그게 언제 만들어진 물건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겠지. 그건 언제 만들어진 물건이었나?"

"1년 정도 지났던가. 그래,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군."


바넬드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이엘의 목에서 매듭을 풀어 주지는 않았다.


"확실히 말해 두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나는 영혼석이라고 부르는 그 돌에 정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정확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


윌 로체스티아가 세 번째 눈으로 확인해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그게 평범한 돌이 아니라는 걸, 그 안에 정말 인간의 영혼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나는 이렇게 말했으니까.

"자나는 영혼을 다루는 기술과 인형을 만드는 일을 결합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했어. 원래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걸 만드는 일도 가능할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바넬드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이엘은 제 목에 약간의 압박감을 느꼈다. 얌전하게 그저 걸려 있을 뿐이었던 매듭이 꿈틀,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영혼석을 팔라고 말했지. 나는 거절했지만."

"거절했다고?"


"왜 내가 그걸 팔 것 같은데?"

"너는 제국 사냥꾼이니까."

"도대체 제국 사냥꾼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엘은 이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알면서 또 그를 몰랐다. 그 사실이 요즘처럼 넌덜머리가 난 적은 없었다.


"아까 말했지, 이 총을 사람에게 쏜 건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뿐이라고. 그걸 조사할 수 있는 사람이 다 죽었다고? 아니, 루토 시칼트라가 멀쩡하게 눈을 뜨고 살아 있어. 그것도 이 건물 안에."


바넬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엘은 괜히 바닥을 발로 한 번 찼다. 맹세코 남에게 큰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그렇게 살아온 대가가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삶의 방향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여튼 너는 내가 자나와 손을 잡았다고 의심했지. 나는 충분한 해명을 했고. 이제 이 줄은 풀어줘도 될 것 같은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바넬드 하이넨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허공에 손짓하자 이엘의 목에 감긴 줄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군. 자나는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사람이긴 한 건가? 레몬은 어떻게 만들어진 인형이지?"


자나는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가 테러당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가 숨기는 사실이 있다는 건 이미 그걸로 확실해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두운 꿍꿍이가 있는 녀석,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이엘에게 딱 한 번만 자신을 믿어줄 수 없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악인일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자나는 예전부터 위험한 낌새가 있었어.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천재라고는 말하던데."

"그 말도 크게 틀린 건 아니지. 학교에서 자나만큼 제대로 된 인형을 만드는 녀석은 없었으니까."


바넬드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깍지 낀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공간 이동 사고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많아. 마법사 여자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냈거든."


"자나는 졸업 직전에 사고를 당했어. 그 여자는 사고에 대해 어떻게 말했지?"

"육체와 정신이 갈가리 찢겨 그 일부를 잃어버릴 수도 있노라고."


바넬드가 어깨를 떨었다. 그는 진심으로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오래전에 그의 동기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나의 경우에는 전자였지. 현장에서 온전한 형태로 몸을 수습할 수 없었어. 내가 듣기로는···무엇이 어떤 부위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했으니까."


이엘 역시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에 온 건가. 그는 차를 타고 다니는 수많은 마법사를 이해하기로 했다.


"일반적인 사고였다면, 육체가 그 정도로 부서지면 영혼 역시 사라지겠지. 하지만 자나는 그렇지 않았어. 그건 마법으로 인한 사고였으니까. 자나의 영혼은 갈가리 찢긴 육체에서 분리되어 한동안 허공을 맴돌았지."


"그걸···그러니까, 그 영혼을 어떻게 붙잡아 둔 거지?"


"설명하기 어려워.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쉽게 말하자면, 물리적인 수술과 비슷하게 마법적인 수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자나는 하루 정도 곰 인형 안에서 지내야 했어. 한때는 내가 만든 인형이 자나의 육체였던 적도 있었지."

"고통스러운 나날이었겠군."


그는 그제야 자나가 스스로 인형사이자 인형인 남자라고 소개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육체는 말 그대로 인형이었던 것이다.


"자나는 그런 사고를 겪고도 무사히 아레인스터를 졸업했어. 그야 천재였으니까. 하지만 더는 학교에 남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끔찍한 사고를 겪은 곳에서 계속 지내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새서림으로 간 건가? 인형의 집을 짓고."

"글쎄,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군. 자나의 몸을 만드는 데 수많은 교수가 공을 쏟았어. 시칼트라 학장님까지. 안타레스를 떠나고, 새 몸을 만들자마자 그 몸은 버렸다는 것 같지만."


지금의 그 몸이 본인이 만든 몸이란 말인가. 바넬드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엘은 자신의 표정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걸 알았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괴로운 이야기였으니까.


"그 이후로 자나가 영혼에 대해 연구를 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하지만 자나는 학교 사람들과 깊이 교류하기를 원하지 않았지. 어제 그 인형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거야. 자나가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무슨 일까지 저질렀는지."


자나라는 인물에 대한 의문은 어느 정도 풀렸다. 이제 남은 건 레몬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감당할 수조차 없을 만한 일을 겪고, 영혼이라는 개념에 심취한 자나가 만들어낸 결과물.


이쯤 되자, 이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커다란 의문이 하나 있었다. 레몬의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 있다는 건 사실인가?"

"굳이 또 확인받고 싶다면 얼마든지 대답해 주지. 그래, 사실이야. 정확히는 온전한 영혼이라고 할 수 없어. 영혼의 조각이라고 설명하면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군."

"그게 누구의 영혼인지까지도···알 수 있나?"


바넬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엘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아주 선명한 형태로 확인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상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는 제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치안관리부 부장, 사사야 타테지아의 집무실에 갔을 때 그의 옆에는 레몬이 앉아 있었다. 시종일관 얌전한 인형인 척 입을 다물고 있던 레몬이 단 한 번 움직였다.


"나는 그게 사람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물론 가끔 아주 사소한 동작을 마치 사람인 양 취하고는 했지. 고민하는 시늉을 하며 뒷머리를 긁는다든가, 턱을 괸다든가. 그런 건 단지 완성도 높은 작품의 기능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 레몬이 지나치게 사람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강하게 동요했을 때, 그 인형은 내 무릎을 꽉 붙잡더군. 마치 사람이 그러듯이."


바넬드는 숨을 죽인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짜고짜 이엘의 목에 밧줄을 걸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신중함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낯을 가렸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유도 없이 주눅이 드는 어린애였지. 그때마다 누군가가 말없이 무릎을 꼭 붙잡아 주면 괜찮아지고는 했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경악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그는 이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예감했다.


"레몬은 결국 나와 함께 움직일 운명이었어.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누구의 영혼인지 짐작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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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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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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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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