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13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23 18:30
조회
31
추천
4
글자
13쪽

균열

DUMMY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자나는 레몬이 한 번 고장 났다는 사실을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에게 거들먹거리거나 내 약점을 잡으려 들지도 않았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왜 아실카 시칼트라의 마력을 차단해 둔 겁니까?"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기분 나쁘기도 하고."

"뭐가 위험하고 뭐가 기분 나쁘다는 거죠?"


그를 의심해서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 필요한 문제였다. 하필 아실카 시칼트라의 마력을 차단했다니.


그건 마치 레몬이 안타레스에 오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것 같잖아. 나조차 불과 며칠 전까지는 내가 여기 와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 사람의 힘은 위험하고, 그 사람 개인은 기분이 나빠요.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자나.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내가 레몬과 함께 안타레스에 오게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까?"

"네."


나는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정말 솔직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으니까. 내 옆에는 레몬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인형이 나와 자나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죠?"

"당신은 영혼석으로 보이는 물체를 감정하려 했으니까요. 가장 남들에게 신뢰를 얻기 좋은 방법은 아레인스터에서 감정하는 거겠죠."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확실히, 윌 로체스티아도 자나도 진짜 영혼석을 판별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한테 필요한 건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유력자의 서류였다.


치안관리부의 부장이 절대 함부로 이용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아실카 시칼트라만한 존재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처음에는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자나는 내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영혼석을 감정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누구보다 먼저.


"이엘 알체이라 씨. 당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자나가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짐짓 과장되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인형의 집 안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저를 의심하는 그 일은, 절대 내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습니까?"

"그렇군요, 지금으로서는 당신이 나를 믿을 이유가 없네요."


레몬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얌전했다. 이 통신 내용을 듣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래도 저를 믿을 수는 없나요? 단 한 번이면 됩니다. 저는 당신 편입니다. 인형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때 모든 걸 말하겠습니다."


배신자들의 단골 레퍼토리. 그렇지만 나는 일단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그를 믿기로 결정하는 것, 그가 배신자라고 단정 짓는 것, 둘 다 너무 많은 기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그럴 기력이 없어.


"나중에 다시 걸죠. 그리고 아레인스터의 인형사가 레몬의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바넬드 하이넨이겠군요. 솜씨가 확실한 사람이니 믿어도 괜찮겠네요."


나는 통신을 끊어 버렸다. 사실 내가 아리나딘의 성소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 거대한 혼돈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는데.


"통신 내용을 들었어, 레몬?"

"듣지 않았다. 하지만 본 기체의 저장 장치에 녹음 되어 있음."

"녹음 되어 있는데 너는 듣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이지?"

"내가 그 정보를 아직 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엘 알체이라의 집에 막 어떤 상자가 도착했다고 가정한다. 이엘은 그 상자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물은 모른다. 그것과 비슷함."


왜 열지 않았지? 원래라면 그렇게 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그건 자나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수많은 일이 폭우처럼 몰아치는 가운데서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우선 루토 시칼트라에게 갈 생각인데, 따라올 생각이야? 단 이제부터 당분간 나와 함께 행동하려면 사생활 보호 모드를 켜 줘야겠어."


스승님의 집에 갔을 때 분명 그런 모드가 있다고 했었지. 레몬을 통해 자나에게 정보를 보내는 게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레몬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불안정해진 보안 장치를 손봐야 함. 오늘은 호텔 방 안에 있겠다."

"그래, 그럼 마음대로 해라."


학장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붕 아래로 뛰어 들어갔다.

"우연이네요."


내 옆자리로 살짝 젖은 머리칼의 누군가가 들어와 섰다. 선글라스를 낀 여자, 루토 시칼트라였다. 오늘은 흰 가운 대신 옅은 베이지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짓말이지만.


하지만 루토 시칼트라를 여기서 마주쳤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그녀에게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분석 결과에 관해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루토는 주머니에서 가짜 영혼석 두 개를 꺼냈다.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보석들. 그녀가 그 돌 두 개를 내 쪽으로 휙, 던졌다. 날아오는 돌을 얼떨결에 잡았다.


"그건 가보석들이에요. 누군가가 영혼석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죠. 아마 두 개를 같은 장비로 깎아냈을 겁니다. 세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들을 찾아보면 어디서 했는지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수사를 교란할 목적으로 조작한 거로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보석처럼 보이는 돌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영혼석이라고 넘겨짚은 게 아니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건 너무 닮았거든요. 특히 마력이 남아 있는 방식이라고 해야 할지. 고등 마법 무기로 만들어진 영혼석에는 마력이 남죠. 이 가보석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마력이 남아 있어요. 일반적인 가보석에서는 이런 마력이 감지될 리가 없거든요. 누군가가 혼동을 주려고 한 거죠."


일단 누군가가 영혼석을 위조한 건 사실이라는 건가. 그게 치안관리부 쪽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가짜 돌 두 개를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영혼석 하나를 꺼냈다.


"시칼트라 씨. 이건 진짜 영혼석입니다.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나온 물건이죠. 제가 가장 먼저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이걸 찾았습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요."


"그게 진짜 영혼석이고, 알체이라 씨가 그걸 갖고 있다는 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나요?"


"치안관리부 조사관 윌 로체스티아. 제가 연구소에 갔을 때 제 동행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 지금 루토 시칼트라 씨. 세 명 정도 되겠네요. 레몬을 사람이라고 치지 않는다면."


"그 인형의 이름이 레몬이었던가요?"

"그랬죠."


루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피웠다. 비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내렸다. 그녀는 오늘도 장갑을 끼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야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 영혼석을 제가 봐 드리길 원하시나요? 아마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누가 만든 물건인지. 어쩌면 누가 죽었을 때 만들어진 물건인지까지도."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내가 여기 온 건 그걸 위해서였다. 손에 들고 있는 이 영혼석을 그녀에게 맡기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그러면 사건은 해결된다. 하지만 막상 이걸 건네려니 좀처럼 손이 나가지 않았다. 정말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까?


"제가 왜 안타레스에 왔는지 말했던가요, 시칼트라 씨?"

"짐작은 가지만 직접 들은 적은 없죠. 연구소에서 있었던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대충 비슷하네요. 그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 같군요."


나와 루토는 같은 방향을 보고 서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고, 각자의 눈은 선글라스를 써서 가린 채였다. 거센 빗소리가 주위의 다른 소음을 걷어냈다.

무언가를 고백하기에 딱 좋은 순간이었다.


"치안관리부에서 제국에 마법 총을 든 살인마가 설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 어제 했었죠."

"이미 들은 이야기네요."

"저는 그게 사실일까 봐 두렵습니다."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꼈던 일이다.


나는 내 스승, 이쉐 알첸브라임이 정말 어떤 사건에 엮여 있을까 두려웠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연구소를 쓸어 버리고, 치안관리부의 조사관들을 연속적으로 해치고.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쉐 알첸브라임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이 영혼석을 조사했을 때······만약 이 영혼석을 만들어 낸 게 정말 다른 마법 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물론 머리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법 총은 유리오가 가지고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쉐 알첸브라임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그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믿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하지만 이대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영혼석을 건넸다. 루토는 망설이지 않고 그걸 받아 제 주머니에 넣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루토는 태연하게 벽에서 등을 뗐다.


"그럼 가죠. 비가 그칠 것 같지도 않고, 아무리 비가 와도 갈 길은 가야 하니까."

확실히, 그칠 때까지 기다리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군.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외투를 머리에 뒤집어썼고, 그대로 학장의 집이 나올 때까지 언덕길을 달렸다.


"아주 쫄딱 젖으셨네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어 주는 파리스의 표정이 미묘했다. 그는 내 얼굴과 루토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작업실이 하나 필요해, 파리스. 영혼석을 좀 봐야 하거든."

"네, 네. 어제 쓰시던 방을 마저 쓰시죠. 깨끗하게 치워 뒀으니까."


파리스가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그녀에게 수건을 하나 던져 주었다. 현관에 나와 그 둘만 남자, 그가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어제 그 인형사 분, 기억하시죠? 바넬드 하이넨 씨."

"기억하죠."

이름은 잊고 있었지만.


"그분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셔서···접견실을 준비해 뒀습니다."

"중요한 용건인가 보죠?"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참고로, 접견실에 들어가시면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셔야 합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외부에서 침입할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까지?"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길래 그렇게 거창한 방을 준비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인형사가 여기 와 있다는 건 잘된 일이었다. 자나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자나는 내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꽤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지금 바로 가야 합니까?"

"네, 다른 특별한 일이 없으시다면. 들어가실 때 무기를 챙겨 가시죠."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파리스를 바라보자, 그가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접견실에 들어가시는 모든 분께 권하는 일입니다. 의무적으로 그러게 되어 있다고요."

"안타레스에 온 이후로 항상 총을 들고 다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기가 무슨 우범 지역이라도 되는 것 같잖습니까."

"사월과 비교하면 여기는 지상낙원이죠."


날씨가 안 좋은 것만 빼고 말이다. 하여튼, 나는 파리스가 안내해 준 접견실로 향했다. 안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문을 열자 어제의 그 인형사가 책상에 가만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엘 알체이라 씨. 저희는 구면이죠? 바넬드 하이넨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목에는 밧줄이 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지각 사과 및 연재 관련 공지 22.12.08 79 0 -
142 추심 +1 22.12.03 66 3 12쪽
141 정리정돈 +1 22.12.01 33 2 12쪽
140 결착 22.12.01 26 2 12쪽
139 세 번째 만남 +1 22.11.29 42 2 13쪽
138 남겨진 사람들 +1 22.11.27 24 1 12쪽
137 실종 22.11.25 29 1 12쪽
136 유일한 목격자 22.11.24 34 1 12쪽
135 왕의 귀환 22.11.23 35 1 12쪽
134 빈틈 +1 22.11.20 74 2 12쪽
133 꽃의 공주 22.11.19 30 2 12쪽
132 신의 부산물 22.11.18 36 2 13쪽
131 진짜 이야기 +1 22.11.17 55 2 13쪽
130 책의 무덤 +1 22.11.16 33 3 12쪽
129 복수 22.10.08 44 3 13쪽
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5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0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4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49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