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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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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32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1.30 22:49
조회
960
추천
21
글자
21쪽

4. 고통을 먹는 자 (4)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4.

첫 동료로서 빌헬름텔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름이 알려진 실력자 중에서, 인간성이 좋다고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용병시절-다양한 사람과 일했던 경험에 의하면, 실력의 좋고 나쁨만 따져서는 임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실력만큼이나 고려해야 하는 건, 팀과 얼마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느냐다.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서 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고독을 씹는 외로운 늑대는 명이 짧은 법. 그리고 공을 다투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자는 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앞으로도 내가 끌어들이는 자들은, 서로가 만난 적 없는 남남이 대부분일 거야. 그러니 일단은 둥글둥글한 사람들을 위주로 뽑아야지. 그래야 내부갈등이 적어져.’

이제 어떻게 같은 편으로 만드느냐가 남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돈으로 사람을 사는 방법이다.

은행계좌를 불러달라고 하여 돈을 송금해주면 간단히 끝날 일.

하지만 빌헬름텔이란 유저의 명성이나 성향을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접근은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빌헬름텔을 설득하는 게 더욱 조심스러웠다.

‘아니,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건 원래 하책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막히자, 위즈는 감정에 호소해 볼까도 생각했다. 허나 ‘그녀’를 구하기 위한 절박함을 설명하자면, 왜 게임을 하는 게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 되는지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리되면 당연히 ‘레드오션’을 해킹한 장본인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된다.

‘수십만 유저들이 달려들어 한 번씩만 꼬집어도, 내 몸에 살점이 남아나지 않겠지.’

그래서 절충안을 만들었다. 대가를 지급하되, 게임 속의 이익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아이템, 높은 보상의 퀘스트.

게임하는 사람치고 이걸 마다할 수 있을까. 게다가 위즈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기도하다.

네메시스를 이용하면, 어디서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다. 게다가 이 방법을 사용하면 witch가 부탁한 일, 마족의 재침공에 맞설 영웅을 키워내는 것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시에니투스 인근의 던전 공략은 그래서 계획된 것이다.

헌데 실제 이야기를 나눠보니, 빌헬름텔의 태도는 시큰둥했다.

생활고 걱정에 몸살 앓는 실직자, 체면 같은 거 차릴 입장이 아닌 것이다.

‘가급적이면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일은 안하려 했지만……어쩔 수 없지.’

그래서 편재는 빌헬름텔의 계좌에 돈을 송금해주었다.


◇◇◇◇◇◈◇◇◇◇◇◇◈◇◇◇◇◇◇◈◇◇◇◇◇


“확인해보셨습니까?”

“네…….”

빌헬름텔은 정말로 돈이 송금되자 놀랐다.

게임 속에서 현질을 하는 사람은 많다.

좋은 장비를 위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현금이라는 강력한 힘을 얻은 유저들이, 무기를 사고 포션을 펑펑 써대며 레벨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일개 유저를 위해 큰돈을 내놓다니,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걸까?’

이 캐릭터-빌헬름텔이 제법 널리 알려져 있다지만, 단일 무력으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는 못된다. 더 오션이라는 게임은 직업 간의 상성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처는 전사계니까, 학자계열인 마법사에게 약하지.’

직업 간의 상성만 그런 게 아니다. 스킬 역시 절대무적의 것은 없다.


스킬의 위력은,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가, 어떤 타이밍에 발동하는가에 따라 크게 갈린다.

그래서 빌헬름텔은 위즈가 큰돈을 선뜻 내놓자 마음이 심란해졌다.

위즈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기대에 부응할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역시 돈을 돌려주는 게…….’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이건 대놓고 돈을 달라고 구걸한 것 같지 않은가.

빌헬름텔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지만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위즈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뭔가 말을 붙이려고 하면, 질문을 퍼부어서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고, 빌헬름텔은 비밀 던전의 입구를 앞에 두게 되었다.

그 방법이 너무 희한해 빌헬름텔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디언즈 네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


중립도시 시에니투스는 바다와 가깝지만, 동시에 산악지대와도 접점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높다란 산자락에는 하얀 눈이 설탕처럼 뿌려져 있었다. 검다 못해 파랗게 보이는 암벽이 모여 이루어진 산.

아무도 살지 못할 것 같지만, 그곳은 수천 명이나 되는 산적들의 터전이었다.

“항마전쟁이 끝나고, 많은 병사들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조국이 바다 속에 잠겨버렸으니까요. 원망할 대상인 마족도 모습을 감춰버렸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국적자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당시 여러 나라들은 이 문제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만을 품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으니까요. 그렇다고 받아들이자니, 국민들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국왕들은, 국경이 겹치는 곳의 황무지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럼 저 산에 있다는 수천의 산적들은 뭡니까?”

“저들은 신의를 지키는 자들, 꺾이지 않는 창입니다.”

“산적이 아니고요?”

“공식적으로는 산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들은 그렇게 위험한 자들이 아닙니다. 조금 전 국경지대의 황무지 이야기를 드렸지요? 대다수의 병사들은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10년 정도가 흐르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에 흡수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충성을 바칠 대상은 바뀌지 않는다며, 여전히 멸망한 왕국을 따랐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 땅에서라도, 다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소리와도 같았으니까요.”

“그럼 전쟁이 일어났겠군요.”

“아니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순히 저 산으로 갔으니까요. 너무 척박해서 쓸모가 없는 곳으로 말입니다. 그걸로 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 산에 살고 있는 자들은 그 후손들이지요.”

위즈는 접어서 들고 있던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난데없이 항마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지도 때문이었다. 시에니투스로 가는 길목에 놓인 험준한 산, 그곳에는 산적 출몰주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만약 저들이 진짜 산적이 되었다면, 시에니투스라는 도시는 생겨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산적이 되건 되지 않았건, 시에니투스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요?”

위즈의 말을 들은 빌헬름텔이 물었다.

“저는 시에니투스가, 저 산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고 생각해요.”

“네? 저들이 뭘 어쨌다고 감시를 합니까?”

말이 산적이지 저들은, 충성의 대상을 바꾸지 않겠다며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자들.

그래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각 왕국의 사람들은 저들을 존경한다.

특히 기사들은 산적의 오명을 쓰면서까지 충성을 바치는 모습에 깊이 감명을 받고, 자신들 역시 그런 모습으로 최후를 맞기를 바란다. 기사 서임식에서 ‘꺾이지 않는 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아주 오랜 전통이 되기도 했다.

물론 저들을 잠재적인 위험인자로 보고, 없애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저들은 산에 들어간 이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간간히 약초나 짐승 가죽을 들고 내려와, 생필품과 바꿀 때 말고는 존재감도 희미하다.

“여긴 국경지대에요. 여기까지 오면서 검문을 세 번이나 받았지요. 만약 수상한 사람이라면, 갇히거나 사살되었겠죠. 그런데 수상한 자들이 수천 명이나 산속에 모여 있는데, 그걸 가만 놔둔다고요? 저라면 저들 근처에 군대를 주둔시켜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하게 하겠어요.”

“하지만 여긴 여러 나라의 국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많은 병력이 모이면, 다른 나라들이 전쟁을 하려는 줄 알 텐데요?”

“그러니 편법을 쓴 거죠. 시에니투스에는 해적들도 드나든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중엔 사략해적도 있다면서요?”

“그렇지요.”

“사략해적은 국왕에게서 면허를 받아 해적이 된 경우. 그렇다면 결국 국왕의 신하인 건 매한가지네요? 그런 자들이 여길 뻔질나게 드나드는데, 그게 결국 군사들이 저 산을 감시하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요, 저 산에 사는 사람들이 사고 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조용히 지낸 건, 겉모습뿐일 거예요.”

위즈는 에켈산에서 죽인 노상강도들의 우두머리를 떠올렸다. 일반 노상강도들과 비교해, 너무 실력이 뛰어나 상대하기 힘든 자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저산에서 내려온 자들이라면?

실제 저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하. 걱정 마세요. 저들은 길가는 사람을 덮치진 않습니다.”

레드오션 시절부터 이 산의 산적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존재했다.

빌헬름텔이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레드 오션의 미적용 데이터를 모조리 풀어내버린 게, 지금의 더 오션이다.

‘레드오션과 달리 뭔가 다른 움직임이 있을 거야.’

위즈는 더 이상 산적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당장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

산을 돌아서 걷는 길은 언덕과 언덕이 끝없이 이어져 그늘진 길.

나무들이 드리운 그림자 사이로 부서진 햇살이, 땅위로 흩뿌려진 길은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잔뜩 경계를 할 수 밖에 없다.

『위즈. 발걸음을 죽인 자들이 언덕을 오가고 있다. 저들을 꼬리에 단채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다.』

핏 스톤의 경고를 들은 위즈는 난감해졌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항마전쟁 당시 결사대로 참가한 영웅의 흔적이 남겨진 장소다.

그곳에 남겨진 유산을 취한다면, 보다 강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사실.

누구라도 탐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돌아서 가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니…….

‘이를 어쩐다? 저들이 어디 한군데에 처박혀 있게 만든다면 참 좋겠는데. 아!’

위즈는 레비를 비롯한 바하르칼 용병들과 던전을 공략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레비의 스킬을 훔쳐 배우려고, 가까이 접근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스티키 젤 때문에,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래서 핏 스톤은 땅속의 빅웜을 자극해, 던전에 나타나게 했어.’

위즈는 빌헬름텔에게 잠시 쉬어가자고 하며 바닥에 앉았다.

육포를 먹고 물을 마시며, 위즈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글씨를 끼적였다.

빌헬름텔에게 핏 스톤이라는 존재를 알리진 않았다. 핏 스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의사소통.

핏스톤은 텔레파시 같은 걸로 위즈에게만 말을 걸 수 있지만, 위즈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결국 바닥에 글씨를 쓰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 빅웜을 이용해 근처의 사람들이 이쪽에 신경 쓰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빅웜은 지상으로 나오진 못한다.』

- 그럼 이 근처에서 저들을 따돌릴만한 장소는?

『지도를 바닥에 내려놔라. 그림이 그려진 곳을 땅 쪽으로 해서.』

잠시 후 지도의 한 부분에 작은 구멍이 났다. 지도를 뒤집어 확인해본 위즈는 시냇물이 표시된 지점 근처의 작은 언덕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곳까지 가려면, 일단 길을 벗어나야 했다.

그건 언덕이 계속 이어진 곳과 떨어진다는 것이며, 추적자로 보이는 자들이 대놓고 쫓지 못한다는 뜻과 같았다.

“충분히 쉬었으면 가죠.”

지금까지는 빌헬름텔이 안내했지만, 이번에는 위즈가 앞장섰다.

“그쪽은 길이 아닌데요?”

“괜찮아요. 여기가 왠지 지름길 같거든요.”

빌헬름텔은 군소리 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그는 뭔가 사정이 생겼거니 하고 선선히 넘어가주었다.

위즈는 시냇물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굳이 길을 놔두고 신발이 젖게 하는 행동을 하는 건,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비록 게임이지만, 물에 젖으면 축축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가상현실게임이라 축축한 옷을 입을 때의 불쾌감도 똑같이 구현되었다.

위즈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허나 핏스톤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놈들 중에 개를 데리고 있는 녀석이 있다. 카무플라주로 모습을 바꿔도 냄새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참아라.』

게다가 핏 스톤의 말에 따르면, 이게 지름길이다. 지름길로 들어선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겠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전설의 한 자락을 훔치는 대가라고 생각하지 뭐.’

시냇물을 거슬러 오른 지, 10여분이 지났다. 시냇물은 좁아져 작은 물줄기로 바뀌었고, 그 물줄기는 좁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틈에서 흐르는 맑은 물줄기를 바라보던 위즈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최종 목적지에요.”

“네?”

“물이 흐르는 이 속이 던전이에요.”

“어디로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까?”

“당연히 이 구멍으로죠.”

빌헬름텔은 당황했다. 이 좁은 구멍으로는 머리조차 들이미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즈는 믿는 게 있었다.

“헉!”

빌헬름텔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구멍이, 갑자기 크게 확장되어 동굴처럼 되었다. 핏 스톤의 솜씨였다. 대지속성을 가진 핏 스톤이 가진 재주 중 하나였다.

『어서 들어가라.』

위즈는 놀라는 빌헬름텔을 이끌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깊숙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핏 스톤은, 동굴 입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적자들이 들이닥쳤다. 개들은 자꾸만 시냇물이 흐르는 바위틈에 고개를 들이밀고 낑낑거렸다.

“이놈들, 자꾸 왜 이러는 거야!”

“개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응? 어떻게 이 좁을 곳으로 들어가? 열려라 참깨라도 외치고 들어갔어?”

테이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가에서 얼쩡거린 걸 보면 답이 나오잖아 이 밥통들아! 우리가 쫓는 걸 눈치 챈 거란 말이다!”


◇◇◇◇◇◈◇◇◇◇◇◇◈◇◇◇◇◇◇◈◇◇◇◇◇


그렇게 들어온 던전-가디언즈 네스트는 시커먼 암석으로 이루어진 빈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곳곳에 야광초가 피어, 굳이 횃불을 켜지 않아도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던전 같지 않군요.”

빌헬름텔의 말대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복잡한 미로와 함정이 없었다. 몬스터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던전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오두막까지 세워져 있다.

“여긴 던전의 맨 마지막 방. 보물 방입니다. 최종보스만큼이나 어려운, 퍼즐 방이기도 하지요.”

“그런 곳을……쉽게 들어왔다고요?”

“믿기 힘들겠지만 그렇습니다. 제가 말했지요? 빌헬름텔 님에게 드릴 건, 이곳의 보상이라고. 저 오두막으로 가서 마지막 시험을 치시기 바랍니다. 저는 몬스터를 막고 있겠습니다.”

“몬스터를 막다니, 무슨 소립니까?”

“침입자를 감지한 몬스터들이 곧 이곳으로 몰려올 겁니다. 꼼수를 써서 보물 방까지 들어왔지만, 어쨌건 한번은 넘어갈 산이지요.”

“차라리 저와 함께…….”

“아니요. 이건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상은 빌헬름텔 님이 드시니까, 저는 경험치라도 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위즈는 뒤돌아섰다.

“어서 가세요.”

단호한 위즈의 태도에, 빌헬름텔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위즈는 무한의 서를 꺼내들었다. 스크롤을 만들기 위해서다.

틈틈이 만들어둔 게 있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만약 던전 공략을 끝낸 후, 추적자들과 마주친다면 스크롤은 더 많이 필요해진다. 무엇보다 중립도시 내부에서 범법자들과 시비가 붙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때 몹들의 움직임을 핏 스톤이 알려왔다.

『쥐떼들이 흡혈박쥐와 함께 이동 중. 스티키 젤은 이동하지 않고 자리지킴.』

“숫자는?”

『쥐 100마리와 흡혈박쥐 50마리는 통로를 따라 움직인다. 쥐구멍을 통해서는 400마리의 쥐떼가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다. 위즈! 천장에 대고 코로나를 사용해라. 지금 막 쐐기벌레의 유충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위즈는 즉시 정령강화를 신발에 걸고, 화염돌격을 발동했다. 그리고 둘의 시너지 효과로 생긴 코로나 스킬을 천장으로 날렸다. 텀블링을 하며 휘둘러진 발끝을 타고 넘실대는 화염이 천장을 훑었다. 그러자 톡톡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가운데 손가락만한 나사못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더 오션의 쐐기벌레는 말 그대로, 쐐기 못과 같은 형태.

이것들은 몸을 회전시키며, 대상에 날아가 박히는 공격을 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피를 흡수해 몸집을 키운다. 몸에 박힌 채 쐐기벌레가 커지면, 상처가 크게 벌어지며 피해를 입힌다.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해도, 틈새로 들어가 상처를 입으면 그걸로 끝장. 갑옷이 크게 벌어지고, 사람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죽게 된다.

더 악랄한 것은, 알 상태에서는 감지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놈들 역시 대지속성이라서, 바위에 달라붙은 상태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쐐기벌레를 처리하는 동안 놈들이 전부 와버리는군.”

일단 입구를 틀어막고 싸울 생각이었던 위즈는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흡혈 박쥐들은 위즈의 근처를 날아다니며 피를 빨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바닥을 뒤덮은 검은 물결-쥐떼들이 지금 막 보물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위즈는 조금 전 필사 스킬로 만들어낸 스크롤을 길게 찢어냈다.

그러자 푸른색의 냉기가 옅게 퍼져나가며 쥐떼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박쥐들은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허우적거렸다. 진각으로 박쥐를 터뜨리며 위즈는 활짝 웃었다.

“역시 큰돈을 들여 프리징 웨이브를 구입하길 잘했어.”

안드리크의 잡화점에서 은화 300개를 주고 구입한 프리징 웨이브 스크롤.

눈물이 날만큼 바가지요금이지만,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위즈는 후회하지 않았다.

프리징 웨이브는 냉기의 파도를 뿌려, 주변의 수분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맨바닥에 사용하면, 그저 적을 느리게 만드는 정도의 위력밖에 없었다. 그래서 광역주문이긴 하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 장소를 가리는 주문이기 때문.

하지만 위즈는 프리징 웨이브가 가진 숨겨진 가치를 알고 있었다.

필사를 하다보면, 스크롤이 가진 숨겨진 내용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다.

위즈가 얼음족쇄 스크롤을 100장 넘게 필사했을 때였다.

101번째로 만든 스크롤에서 빛이 나더니, 추가효과가 부여되었다.


===================================

[향상된 얼음족쇄 스크롤]

복제품을 반복하여 만들다보니, 무의식중에 마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만들어진 스크롤입니다.

효과-0 :필사 스킬로 만들어졌지만, 이 스크롤은 유효기간이 무한입니다.

효과-1 :반경 1m 내의 모든 대상에게 얼음족쇄를 채웁니다. 얼음족쇄들끼리는 서로 연결됩니다.

효과-2 :반경 5m 내에 작은 구멍이나 틈이 있다면, 3㎝두께의 얼음에 덮입니다.

효과-3 :프리징 웨이브를 사용한 직후 사용하면, 모든 효과가 2배 향상됩니다.

===================================


그 다음부터는 5%의 확률로 이런 스크롤들이 만들어졌다. 기존의 스크롤처럼 하루가 지나면 종잇조각이 되어버리는 핸디캡이 사라졌기에, 위즈는 이 스크롤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언젠가 꼭 필요할 때 쓰기위해서 저축하는 기분으로 아껴둔 것이다.

“오늘 첫 개시다! 영광으로 알도록!”

위즈는 인벤토리 속에서 ‘향상된 얼음족쇄 스크롤’을 두 장 꺼내들었다. 그리고 통로 쪽에서 한 장을 쓰고, 쥐구멍이 많은 장소에서 또 한 장을 썼다.

기존의 얼음족쇄와는 차원이 다른 냉기가 퍼져나가며 쥐들을 꽁꽁 얼렸다.

쥐구멍이 막히고, 얼음족쇄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이 된 쥐들이 눈만 뒤룩뒤룩 굴렸다.

위즈는 단검을 두 자루 꺼내 붕붕 휘둘렀다.


<시궁쥐를 해치웠습니다.>

<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쥐들은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 공격은 빗나가지 않아 명중률은 100%.

성의 없이 단검을 휘둘러도 경험치가 쑥쑥 들어왔다. 공중전을 담당할 골칫거리-박쥐마저 바닥을 기고 있었으니, 완전히 위즈의 세상이었다.

“역시 은화 300개의 값어치는 하는구나!”

얼음족쇄로 얼린 쥐들을 거의 처리했을 때쯤, 다른 구멍을 찾아 튀어나온 쥐들이 위즈를 감쌌다. 위즈는 프리징 웨이브 스크롤을 먼저 사용한 뒤, 마찬가지로 ‘향상된 얼음족쇄 스크롤’을 사용해 녀석들을 꽁꽁 얼렸다. 그렇게 쥐들은 모조리 정리되었다.

“그나저나 잘하고 있을까 모르겠네.”

위즈는 빌헬름텔이 들어간 오두막을 불안하게 돌아보았다.


작가의말

이번 주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아마 일요일 쯤이 되겠군요.

다들  설명절 잘 쇠시길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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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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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1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3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9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1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9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1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8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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