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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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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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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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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5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0.

부상자의 살을 헤집는 손톱을 따라 피가 튀었다. 그냥 구울의 공격이라 해도 그냥 당할 만큼 부상자들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시궁쥐들이 퍼뜨린 역병 때문이었다. 그것을 겨우 정리하고 치료받는 중에 난입한 구울들은 그냥 구울이 아니었다. 한층 더 강화된 엘리트 구울.

위즈는 다른 희생자를 찾아 움직이는 엘리트 구울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엘리트 구울은 크게 손톱을 휘둘러 위즈를 갈라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엉뚱한 방해자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다른 엘리트 구울이 팔을 쳐내버린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위즈를 공격한 엘리트 구울은, 곧바로 반응을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 눈이 뒤룩뒤룩 굴러갔다. 같은 편이라 생각한 동족에게 방해를 받은 게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상황일 것이다. 허나 위즈는 걸어 다니는 시체 따위에게 이해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위즈는 달려드는 속도 그대로 도끼를 쳐들었다. 노리는 곳은 무릎.

구울로 변하면서 단단해진 몸이지만, 묵직한 도끼로 펼친 공격은 먹혀들었다. 무릎 뼈가 약간 부서지면서 엘리트 구울의 몸이 휘청거렸다. 위즈는 즉시 다른 녀석에게 다가가 마찬가지로 무릎을 노렸다. 공격할 각도가 안 나오면 그냥 발등을 찍어버리기도 했다.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그때마다 위즈는 적절히 자신이 지배하는 2마리의 엘리트 구울을 투입했다. 그 결과 10마리의 엘리트 구울 모두의 다리를 조금씩 부술 수 있었다.

“부상자들을 뒤로 끌어내!”

명령을 받은 일반 구울들이 거적때기의 한 귀퉁이를 잡고 힘을 썼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신전에서는 앞마당에 천막을 쳐 놓았다. 부상자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방이 부족한데 침대가 넉넉할 리 없다. 당연히 천막의 환자들은 침대 대신, 거적때기에 눕혀져 있었다. 부상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행이었다. 단지 거적때기의 끄트머리를 쥐고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부상자들은 안전한 곳에 옮겨졌다.

“어차피 일반적인 구울로는 엘리트 구울을 상대하는 게 벅차.”

그게 일반 구울들을 멀리 치워놓은 이유였다. 게다가 부상자가 뒤섞여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싸울 수가 없다.

이제 거치적거리는 문제들이 해결되자, 위즈는 근처의 화로를 걷어찼다. 엎어진 화로에서 불이 붙은 장작개비들이 쏟아졌다. 선뜻 불속에 발을 내민 위즈는 춤을 추듯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불길이 잦아지면서 발바닥이 뜨끈해졌다.

불속을 빠져나와 찍는 첫 번째 발자국.

그것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위즈는 다시 그것을 되밟았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두 번 밟을 시간은 없어.”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이고 중첩해 피해를 늘리고 싶은 게 위즈다. 하지만 무릎이 부서지고, 발가락이 잘린 상태에서도 엘리트 구울들은 움직이고 있다.

운 좋게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 스킬로 통제권을 훔친 엘리트 구울이 있다지만, 이쪽은 겨우 2마리뿐이다. 결국 8마리는 어떤 방해도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 일단 자잘한 공격이라도 해서 주춤거리게 만들어야 했다.

“코로나!”

최대한 화염이 넓게 퍼져나가도록 위즈는 돌려차기를 했다. 그러자 발끝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불꽃이 일어나 쏘아져나갔다. 엘리트 구울들이 화염에 휩싸여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많은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불은 곧 꺼져버리고, 내구도 역시 거의 깎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코로나를 날린 게 헛짓거리는 아니었다.

코로나의 폭발에 밀려났다가 자세를 바로 하는 데 걸린 시간이 3초.

일반 구울도 아닌 엘리트 구울이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하나.

“역시 무릎을 부숴놓길 잘했어. 진각!”

엘리트 구울들이 균형 잡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앞서 가한 공격 때문이었다. 위즈는 다리만 노리고 진각을 쏟아내었다. 따로 소모치가 없는 진각이었기에, 아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진각에 서너 대씩 얻어맞자, 엘리트 구울들은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다. 취약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에, 부품이 망가진 기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구울은 생명력대신, 내구도가 같은 역할을 한다. 내구도는 아이템이나 오브젝트에 붙는 수치. 그렇다면 구울을 물건처럼 망가뜨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괜히 위즈가 도끼로 무릎을 부순 게 아니다. 충분히 생각해보고 세운 추론의 결과다.

그것이 맞아떨어진 지금, 엘리트 구울이라 해도 전혀 상대 못할 것 같진 않다.

일단 절뚝거리며 걷는 통에, 손톱공격은 자꾸만 엇나갔다. 허공을 찢을 것처럼 빠르게 휘두르는 손동작은 오히려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하체가 튼튼해야 제대로 된 공격이 나오는 법. 이놈들은 이제 허우대만 멀쩡한 속빈 강정이다.’

위즈는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다시 한 번 관절을 노리면, 엘리트 구울이고 뭐고 이번에는 완전히 잘라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언데드라 해도, 관절은 취약할 수밖에 없지.’

가장 바깥쪽의 엘리트 구울에게 달려들며 위즈는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당연히 시독이 맺힌 손톱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위즈는 그 공격을 무시했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공격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헌데 위즈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 공격은 정확히 위즈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조금 전과는 딴판이었다.

“큭! 카무플라주!”

위즈는 재빨리 키를 줄여 손톱을 흘려내고, 진각을 밟아 뒤로 빠져나왔다.

“공격이 갑자기 정교해졌다?”

이유는 엘리트 구울들의 공격속도에 있었다. 느리게 공격하는 대신, 상체의 반동을 최소화시켜서 명중률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 무릎이 부서진 상태로도 공격이 정확해진 것이다.

그때 위즈의 몸에 환한 빛이 뿌려졌다. 뒤를 돌아보니 부상자들을 추스른 성직자들이 위즈에게 각종 버프를 걸어주고 있었다.


<체력이 500 회복됩니다.>

<마력이 200 회복됩니다.>

<스태미나가 500 회복됩니다.>

<홀리 실드 효과가 깃듭니다. 언데드의 공격에 50% 저항을 가집니다. [10분 지속]>

<퀵 스탭 효과가 깃듭니다. 피격시 순간적으로 이동속도가 8㎧ [5분 지속]>


“고맙습니다!”

“혹시 5분만 더 버텨 줄 수 있겠소?”

“네?”

“명색이 신전이오. 언데드를 상대할 ‘디바인 웨폰’ 정도는 있지.”

위즈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지금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언데드들이 성직자가 득실거리는 신전으로 들어오고도 멀쩡하다니, 그건 누구도 생각한 적이 없는 일일 것이다.

‘어째서 이들이 어이없게 당하고 있나 했더니, 그럴 틈조차 안주고 몰아붙여서로군.’

어차피 지금 위즈가 가진 스킬만으로는 이 많은 엘리트 구울을 해치우는 게 힘들다.

화염돌격을 이용한 스킬들은 높은 데미지를 주기는 하지만, ‘화염의 발자국’을 찍어 강화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밤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은 데미지조차 주지 못했다. 나름 비장의 스킬이라고 생각했는데, 엉뚱하게 구울을 빼앗았다.

‘그것도 나름 좋지만, 진짜 네크로맨서가 된 게 아니라서 명령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어.’

게다가 이게 효율이 좋지도 않다.

마력을 모조리 퍼부어 빼앗은 게, 엘리트 구울 2마리와 일반 구울 30마리다.

32마리 VS 1000마리.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가성비가 떨어져. 차라리 공격이 먹혀서 데미지를 줄 수 있다면 그편이 나았을 텐데.’

한마디로 위즈에겐 결정타를 입힐만한 스킬이 전무한 것.

거기다가 빙글뱅글이 불러낸 구울들은, 근처에서 동료가 소멸하면 광화상태에 돌입한다. 한 놈만 골라 패 쓰러뜨렸더니, 나머지가 눈이 시뻘겋게 되어가지고 날뛰면 감당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 구울보다 뛰어난 엘리트 구울인데, 광화까지 걸리면? 아휴. 포기해야지 뭐.’

그러던 차에 성직자가 뭔가 준비한 게 있다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성직자의 치료를 받은 병사들까지 하나둘 가세했다.

“이정도면 5분은 충분히 버틴다.”

위즈는 병사들과 보조를 맞춰 엘리트 구울들을 한 곳에 모았다. 때때로 몇 대 얻어맞아가면서도 기어코 진각을 때려 넣어 밀쳐냈다. 병사들도 방패치기를 연달아 날리고, 파이크를 마구 찔렀다. 하지만 방패치기를 날리면 도리어 밀려 나오고, 찔러넣은 파이크는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헉! 키만 커다란 게 아니라, 단단하기도 보통 단단한 게 아냐.”

“윽, 힘도 장난이 아냐!”

부러진 무기에 다칠 뻔한 병사들은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 틈을 비집고 엘리트 구울들이 치고 나왔다. 그때 위즈가 병사들을 막아섰다.

“진각!”

발차기에 맞은 엘리트 구울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끔씩 기회를 보아 도끼를 휘둘러 무릎이나 발목을 찍기도 했다. 그런 동작들이 반복되어 이루어지자 엘리트 구울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저게 가능한 거야? 방패도 없이 저 괴물들을 밀쳐내?”

위즈의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보던 병사 하나가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튕겼다.

“저 자의 무기! 도끼잖아! 두꺼운 거라면 충분히 통해!”

병사들은 즉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 도끼가 부족하자 메이스와 플레일을 가져와 무장하기도 했다. 엘리트 구울의 높은 내구도를 감안해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위즈를 따라 공격을 시작한 병사들은 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메이스로 정강이뼈를 때린 병사가 혀를 내둘렀다. 그는 타격과 동시에 튕겨지는 메이스에 맞아 다칠 뻔했다. 당연하게도 엘리트 구울의 정강이는 멀쩡했다. 보다 못한 위즈가 나서 도끼로 무릎을 찍었다.

“관절! 관절을 노리십시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녀석들 키만 3m라고요.”

“맞습니다. 커다란 놈들이라 공격할 각도가 안 나옵니다.”

카무플라주로 키를 키워놓은 위즈와 달리, 일반 병사들은 위즈와 30㎝ 이상 차이가 났다. 이들에게는 엘리트 구울의 무릎 높이가 눈높이였다. 그러니 공격하려면 펄쩍 뛰어오르며, 머리까지 들어 올린 메이스를 휘둘러야 했다. 엘리트 구울들의 공격속도가 느려졌다고는 해도, 그렇게 큰 움직임은 충분한 빈틈이 된다. 일반적인 구울과 달리 엘리트 구울은 생각이란 것을 하는 존재. 빈틈이 발견되는 족족 반격 받고 만다.

“그럼. 그냥 눈에 띠는 곳만 두들기십시오. 관절은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아무 곳이나 때려도 구울의 내구도는 닳는다.

‘병사들은 그냥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게 낫겠어. 내가 조종하는 엘리트 구울이 상대편 2마리를 잡아두고 있으니, 사실상 7마리를 상대하는 거야. 충분히 통한다.’

위즈는 엘리트 구울들의 이동속도를 더 깎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만큼 병사들도 숨통이 트이리라. 위즈는 도끼를 들어 가까이 다가온 엘리트 구울의 무릎을 찍었다.

콰직. 어찌나 집중적으로 얻어맞았는지, 무릎을 이루는 뼈가 깎여나가며 엘리트 구울이 무릎을 꿇었다. 위즈는 무릎을 타고 올라가 엘리트 구울의 턱에 대고 진각을 쑤셔 박아주었다. 그러자 엘리트 구울이 턱을 뒤로 젖히며 뒤로 자빠졌다. 날카로운 손톱이 휘둘러지며 위즈의 등을 노렸다.

“흥!”

위즈는 재빨리 몸을 굴려 빠져나왔다. 어차피 성직자들이 디바인 웨폰인가 하는 것을 준비하기 위한 5분을 벌기 위한 싸움이다.

진득하게 달라붙어 끝장을 볼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앉은뱅이를 해치워봤자, 득보다 실이 더 많다.

‘광화상태라도 되면 큰일.’

숫자를 줄이려다가 다른 놈들이 강해지면 감당이 안 된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린 위즈는, 다른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비명이 울렸다.

“크아악!”

뒤돌아보니 성직자에게 치료를 받던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원흉은 다른 엘리트 구울이었다.

“어? 어째서?”

지금까지 위즈는 엘리트 구울들을 건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신전의 외벽과 수 미터 거리까지 엘리트 구울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이는 부상자들의 안전을 고려한 계획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공격으로 인해 엘리트 구울들의 어그로는 위즈를 향했으며, 그 동안 만큼은 다른 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해진다. 그 덕분에 건물근처로 피신한 부상자들은, 차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엘리트 구울 하나가 뛰어들어 휘젓는 것이다.

“어그로 관리는 하고 있었는데? 설마?”

위즈는 조금 전 무릎을 박살내 발을 묶은 녀석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의 구울은 50명이나 되는 병사들에게 짓밟혀 찰흙처럼 흐물흐물해진 상태. 도끼에 조각나고, 메이스로 짓뭉개진 몸통을 보니 다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근처의 구울들은 눈이 시뻘개져서 병사들을 무서운 속도로 밀어 붙이는 중이었다.

“광화? 빌어먹을! 모든 구울들! 놈들을 막아라!”

위즈는 일반 구울, 엘리트 구울 할 거 없이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32마리의 구울들이 엘리트 구울들을 막아섰다. 광화상태의 엘리트 구울이 마구 내지른 손톱에, 일반 구울들의 살이 퍽퍽 파여 나갔다. 어떤 녀석은 머리통이 절반 넘게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나마 엘리트 구울들은 버티고 있었지만, 고작 2마리뿐이다. 그래도 숫자가 많아서 발을 잡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어떻게든 부상자들을 건물로 밀어 넣어요!”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지만, 위즈는 더 암담해졌다.

‘밤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 스킬을 이용해 통제권을 빼앗은 시간은 불과 9분.

그 시간은 이제 1분도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32마리도 적으로 돌아설 거야.’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아군으로 믿었던 존재에게 공격을 당하면 상황은 악화되리라. 그걸 알면서도 위즈는 구울들을 물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인 걸 알면서도, 당장 버티는 게 힘들어 뒷일을 생각할 수 없다.

“디바인 웨펀은 아직 멀었습니까!”

소리 지르는 순간, 광화상태의 구울들을 막던 구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것들이 손톱을 세우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9분이 지나 위즈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진각! 코로나!”

다시 적이 되어버린 구울들을 향해 위즈는 스킬을 날리며 저항했다. 놈들이 위협을 느끼고 물러서길 바랐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했다. 딱히 타깃을 노린 것도 아니다. 화염의 발자국을 밟아 강화시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코로나에 스친 일반 구울 몇 마리가 맥없이 바스러져버렸다.

앞서 위즈의 위즈의 명령대로 엘리트 구울을 막느라 내구력이 상당히 깎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 한방에 내구도가 0이 되어버린 것.

그러자 모든 구울들의 공격이 위즈를 향해 쏟아졌다. 그 눈동자가 전부 시뻘겋게 물든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잠깐사이에 위즈의 마력이 쑥쑥 빠져나갔다.


<로브에 걸린 스톤 스킨으로 총 800의 데미지를 받아냈습니다.>


“빌어먹을! 디바인 웨폰은 아직 멀었습니까?”

그러자 지붕 쪽에서 성직자들이 소리쳤다.

“1분! 딱 1분만 버티십시오!”

성직자들은 지붕에 올라가 종탑 근처에서 피뢰침 같은 걸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거 술래잡기나 하자!”

위즈는 숲속에서 동물들을 상대로 어그로 끌는 연습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스태미나가 부족했음에도 죽지 않고 잘만 돌아다녔다. 싸우지 않고 도망만 치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유저면 모를까 일개 소환물, 그것도 구울을 상대로 그것도 못할까.”

얼음족쇄 스크롤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다 써버리고 없으니 순전히 몸으로 때워야 할 상황. 하지만 인벤토리 속에 들어 있는 ‘이름 없는 여신상’의 효과가 있다. 넘치는 스태미나를 위안 삼으며 위즈는 건물 벽을 따라 사선으로 내뺐다. 그러자 모든 구울들이 위즈를 노리고 우르르 움직였다.

위즈는 구울들이 서 있는 위치가 미묘하게 상호 보완적인 것을 눈치챘다.

약한 쪽을 뚫고 들어가면, 즉시 사방에서 덮쳐들기에 좋은 진형.

“이것 봐라?”

광화상태임에도 구울들은 협공에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위즈는 시험 삼아 내구력이 많이 떨어진 녀석을 공격할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놈들이 까딱거리며 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페인트 모션인 것을 알고는 다시 자리를 지켰다.

“얼마나 우등생들인지 확인해볼까?”

위즈는 크게 스윙을 걸어 도끼를 던졌다. 목표는 엘리트 구울.

텅. 당연하게도 엘리트 구울은 손톱을 휘둘러 도끼를 쳐내버렸다. 튕겨지는 도끼를 따라 흩뿌려지는 액체가 있었으니 기름이었다. 위즈는 마지막으로 남은 스크롤 한 장을 쳐들었다.

“플레임 플라워.”

찢겨진 스크롤에서 생겨난 작은 불똥이 기름을 흠뻑 머금은 엘리트 구울에게 날아갔다. 기름으로 범벅이 된 팔에서 불로 된 꽃봉오리가 피어올랐다.

크르르르.

엘리트 구울은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리쳤다.

그 모습은 사람의 행동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기름을 먼저 끼얹고 나서, 붙인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는 더 오션의 시스템 판정에 의한 것이었다.

화공을 보다 쉽게 하도록 만들어진 화염병은, 지속시간이 기본적으로 10초라고 정해져 있다.

업그레이드를 해서 데미지는 높일 수 있지만, 지속시간은 절대 불변.

화염병만으로 재미를 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기름과 불을 따로 사용하여 불을 지르면, 일종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져 기름이 다 탈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용한 기름의 양에 따라 십여 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즈는 다짜고짜 불이 붙은 엘리트 구울에게 달려들었다.

그 손에는 새로 꺼내든 기름병이 들려 있었다.

불을 끄느라 정신없던 엘리트 구울은 위즈가 무엇인가를 던지자 이번에는 쳐내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 떨어져 깨진 병에서 피처럼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보급품 상자에서 얻은 체력회복용 포션이었다. 당연히 불도 옮겨 붙지 않았다. 구울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위즈가 빈 공간으로 들어선 뒤였다. 화염돌격을 발동한 채 위즈는 진각으로 무언가를 걷어찼다. 병이 깨지며 쏟아진 액체가 활활 불타면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진짜 기름이다! 화염돌격!”

화염저항력이 100% 상태에서 불속을 거닐자 곳곳에서 화염의 발자국이 생겨났다. 위즈는 그것을 모조리 밟아 중첩시켰다.


<화염의 발자국 7개를 밟았습니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효과가 중첩됩니다.>


구울들은 바닥에 옮겨 붙은 불을 피해 멀리 물러섰다. 아니 화염에 둘러싸인 위즈에게서 위험을 느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일반 구울만 있다면 그대로 달려들었겠지만, 엘리트 구울이 11마리나 끼어 있으니 하는 행동마다 조심스러웠다.

‘지능이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군. 그나저나 화염의 발자국을 7번이나 중첩시켰는데 쓰지 못하다니 아깝군.’

위즈는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1분이 지나 성직자들이 일제히 지붕의 종을 때리고 있었다.

귀에 들리지도 않을 만큼 낮은 울림이 신전을 휩쓸었다.

바람도 없는데 옷이 펄럭거리고, 일반 구울들의 몸이 잘게 바스러져 몸을 뉘었다.

엘리트 구울들은 황급히 담벼락을 넘었다.


<디바인 웨폰 ‘홀리 웨이브’가 발동되었습니다.>

<반경 100m의 언데드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반경 50m에 성역이 선포됩니다.>

<성역에서는 아군의 상처와 상태이상이 완전회복 됩니다.>


두 번째 종소리가 울리자 효과는 뻥튀기 되었다. 공진현상 때문이었다.


<디바인 웨폰 ‘홀리 웨이브’가 발동되었습니다.>

<반경 150m의 언데드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반경 80m에 성역이 선포됩니다.>

<성역에서는 아군의 상처와 상태이상이 완전회복 됩니다.>


그렇게 종이 계속 울리면서 성역이 확장된 결과, 반경 600m에 달하는 범위가 성역으로 변해버렸다. 공동묘지의 2/3

사실상 빙글뱅글이 만든 구울들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담벼락을 부수며 흙투성이의 전사가 튀어나왔다.

네크로맨서 빙글뱅글이었다.

그는 성직자들이 종을 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디바인 웨폰이라니……잘도 생각해냈군 그래. 이대로 가면 언데드들은 모조리 궤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빙글뱅글의 말대로다. 성직자들은 디바인 웨폰만으로 끝장을 보려는 듯, 계속해서 종을 울려댔다. 광역마법이 계속 몰아치는 전장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구울의 숫자가 1000여 마리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그럼 역시 1:1로 승부입니까?”

“아니. 아직 이르다. 비장의 한 수가 있지.”

빙글뱅글은 방패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구울을 일으킬 때 사용한 책이었다.

그것이 저절로 펼쳐지며 책장이 좌르륵 넘어갔다.

“앰플리파이어 온!”

책에서 강렬한 빛이 쏘아지면서, 바리톤의 저음이 울렸다.

듣는 것만으로 우울증에 걸릴 것처럼 한없이 음울한데다가, 살을 에는 냉기를 품은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블웨폰 ‘죽음의 찬송가’가 발동되었습니다.>

<지면에 어둠의 기운이 스며듭니다.>


“W! 네크로맨서는 서모너 중에서도 언데드를 주로 다룬다! 그렇다고 그 외의 것은 손도 못 대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네크로맨서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 스캐빈저 소환!”

빙글뱅글의 발밑에서 시작된 그림자가 공동묘지 쪽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신전 바깥으로부터 흙먼지를 머금고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신전을 에워싼 담벼락이 무너지고, 땅이 너울거리면서 멀쩡한 건물에 쩍쩍 금이 갔다. 충격파 때문에 성직자들은 더 이상 종을 칠 수 없었다. 성역의 효과도 희미해져갔다.

“크윽!”

공동묘지가 통째로 폭발했는지, 부서진 비석 파편들이 날아왔다.

이미 뱅글뱅글은 무릎앉아자세를 취한 채 방패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뭣도 모르고 서 있던 사람들은 낙석에 맞고 쓰러졌다.

“오라! 마물이여! 모든 인간들을 유혹하라!”

무너진 담벼락으로부터 연분홍 빛깔을 띤 향기로운 안개가 훅 끼쳐 들어왔다. 연기를 들이 킨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헤 벌린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공동묘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반 병사들은 그렇다 치고…성직자들까지?”

어여쁜 분홍색 유혹, 제정신이 아닌 채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결코 모를 수 없다. 위즈도 최근에 같은 일을 경험했다.

“사이테리아?”

빙글뱅글이 히죽 웃었다.

“마물에 대해 빠삭하시군? 맞다. 사이테리아. 그것도 1000여 마리의 언데드를 양분삼아 피어난, 팜므파탈 그 자체지. 지금도 양분을 빨아들이는 중이니 더욱 강해질 것이다!”

빙글뱅글이 방패를 들어 위즈를 후려쳤다. 위즈는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하며, 바닥에 버려진 파이크를 주워들어 창대로 후려쳤다.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빙글뱅글이 눈을 실룩거렸다.

“어떻게……사이테리아의 유혹의 향기를 맡고도 멀쩡할 수 있지?”

그건 위즈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의지력으로 버틴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을 줄 알았는데 멀쩡하기만 하다. 심지어 시스템 메시지 창에 글자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잘 모르겠지만 이런 종류의 공격에 면역이 있나보군. 그렇다 해도 패배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빙글뱅글이 방패를 앞세워 돌진해오자 위즈는 비스듬히 비켜서며 파이크를 내밀었다. 측면을 노릴 생각이었다. 헌데 빙글뱅글은 방패를 한손으로 쥔 채, 반대편 손을 엇갈려 자신의 어깨에 대고 있었다. 그 손에 들린 것은 30㎝도 안 되는 가느다란 막대기. 그것에서 번쩍하고 빛이 일자 위즈의 체력이 200이나 깎여나갔다.

“매직스틱!”

“이래봬도 나 학자군 직업이다. 당연히 마법도 쓰지. 윈드커터!”

보이지 않는 반월형의 칼날이 마구 쏟아졌다. 위즈는 흐느적거리며 그것들을 모두 피해냈다. 윈드 커터는 자주 써봐서 범위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빙글뱅글은 주문을 이리저리 휘어지게 발사했다. 어떤 것은 꽈배기 모양으로 너울거리며 느리게 날아왔고, 어떤 것은 좌우 양쪽을 점하며 날아왔다. 곡사로 발사된 것은 위즈의 정수리를 노렸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위즈에게 뒤로 피하게끔 강요하고 있었다.

‘뒤만 비어 있다. 그리로 가면 새로 주문을 사용하겠지. 뒤쪽에서 들어올 공격이 치명타다.’

눈앞의 공격이 미끼라고 생각한, 위즈는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판단은 반만 맞았다. 미끼 공격이라 해도, 빙글뱅글은 마법사였다.

나선형으로 움직이던 빛 무리에 닿은 위즈는 부르르 몸을 떨며 엎어졌다. 제대로 캐스팅 하지 않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주문이었지만 전격계열 주문임에는 확실했다.


<상태이상 ‘감전’ 효과에 걸렸습니다. (3초간 지속)>

<근성과 집중력으로 이겨냅니다.>


“크윽! 코로나아!”

위즈는 디바인 웨폰의 발동으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스킬을 쏟아냈다. 화염의 발자국을 7번이나 중첩시킨 코로나는, 이름 그대로 태양에서 뻗어 나온 이글거리는 불줄기가 되어 빙글뱅글에게 쏟아졌다. 빙글뱅글은 방패를 세워들며 중얼거렸다.

“아이스필드!”

방패가 하얀 서리에 뒤덮이며 얼어붙었고, 바닥에 흐른 냉기는 붉은 화염과 섞여 수증기를 내뿜었다. 결과적으로 소리는 요란했으나 폭발은 없었다. 위즈는 빙글뱅글이 자신보다 수준 높은 유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쓸 만한 주문이 없어.’

위즈는 초조함에 스킬창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소용이 닿을만한 주문은…….

“응?”

생각지도 못한 주문을 발견한 위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네크로맨시]/[패시브]

====================================

[죽음을 거스르는 자] [조건:1의 언데드 보유]

최초로 언데드를 일으킨 그대에게, 죽음마저 거스르는 진리를 부여하노라.

네크로맨시에 입문하셨습니다.

보유한 언데드의 숫자에 따라 사용가능한 네크로맨시가 늘어납니다.

====================================

[네크로맨시]/[액티브]

====================================

[스캐빈저 소환] [조건:파괴된 언데드 발생]

언데드의 잔해를 먹고 자라는 마계의 벌레를 소환합니다. 식사를 마친 벌레는, 자신이 먹은 만큼 성장하여 마물로 변태합니다.

강력한 마물을 부르고 싶다면, 더 많은 먹이를 공급하십시오.

====================================


‘왜 이게 남아 있지?’

위즈는 스킬 ‘밤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으로 인해 32마리의 구울들의 지배권을 훔쳐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스킬창에 네크로맨시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구울을 지배한 시간은 고작 9분. 지금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네크로맨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도 기본이 되는 스킬들만 하나씩.

‘네크로맨서도 마법을 쓴다. 그러니 마법사와 다를 게 없다. 사쿠라를 상대할 때만큼이나 불리해. 그때는 스크롤을 마구 퍼부어 어떻게 물리쳤지만, 지금은 퍼부을 스크롤조차 없다. 어지간한 스킬은 저 방패로 다 막아버리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위즈는 포션으로 마력을 채운 후 발에다가 정령강화를 걸었다. 그리고 무너진 담을 넘어 공동묘지로 달렸다. 그 모습을 본 빙글뱅글이 주문을 난사했다.

“도망치는 것이냐!”

위즈는 단숨에 비탈길을 굴러 내려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는 구울들로 가득 찼었지만,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이테리아가 내뿜는 향기는 그만큼 강력했다. 위즈는 비명을 질렀다.

“커도 너무 크잖아!”

빙글뱅글이 소환한 녀석에 비하면, 제로니스 섬에서 위즈가 잡은 사이테리아는 꼬맹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사이테리아는 꽃봉오리의 크기만 30m. 초대형 사이즈다.

그 거대한 몸체만큼이나 식탐도 대단한지, 곳곳에 뻗은 뿌리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곳곳에 널린 구울의 잔해가 쭈글쭈글해지며 말라갔다.

“이대로 가면 빙글뱅글의 말마따나 계속 커지겠지.”

위즈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사이테리아가 가장 뿌리를 많이 뻗은 곳을 찾았다.

“저긴가!”

뿌리가 가장 많이 드러난 곳은, 파괴된 구울들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위즈는 그곳에 올라가 소리쳤다.

“스캐빈저 소환!”


◇◇◇◇◇◈◇◇◇◇◇◇◈◇◇◇◇◇◇◈◇◇◇◇◇


“뭐라고?!”

공동묘지에 막 발을 들여 놓은 빙글뱅글은 당혹스러워했다.

그가 생각하는 W는, 전사계 스킬을 어설프게 익힌 초짜였다.

물론 간간히 주문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스크롤의 위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법을, 그것도 네크로맨서 전용의 주문을 사용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만……내가 사이테리아를 만들어 내고 남은 구울의 시체는 최소 200개. 그걸로 만들어지는 마물이라면?”

잠시 후 빙글뱅글은 볼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거대한 쥐가 사이테리아의 줄기를 물어뜯는 광경을 봐야 했다. 사이테리아는 마물이지만, 동시에 식물이기도 하다. 줄기를 쏠아대는 설치류의 공격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상성으로 보면 완벽한 패배다.

“이젠 마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앰플리파이어 온! 아이스 캐노온!”

바닥을 향한 매직스틱의 끝에서부터 피어오른 냉기가 휘몰아쳤다. 질척거리는 공동묘지의 흙에서 서릿발이 자라났고, 근처의 수분들은 모조리 빙글뱅글의 손끝에서 응결되었다. 작은 화살모양의 냉기가 주먹만 하게, 다시 수박만 하게 커지는 과정이 수초 만에 이루어졌다.

그는 발에 힘을 주며, 매직스틱을 쥔 손을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그 동작을 따라 수박만한 얼음덩이들이 비탈을 굴러 내려갔다. 그러면서 주변의 습기를 머금어 두 배나 커졌다.

“브레이크!”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간 얼음덩이가 폭발하며, 사방에 날카로운 조각을 뿌렸다. 사이테리아의 향기에 현혹된 사람들은 너무 밀집한 상태였다. 때문에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크아악!”

“으윽! 다리! 다리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공동묘지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얼음덩이가 또 날아들었다. 앰플리파이어(증폭기)를 사용하는 이상, 캐논급의 발사체는 얼마든지 뿌릴 수 있는 빙글뱅글이었다.

“브레이크!”

다시 한 번 얼음덩이가 폭발하면서 사람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들을 뛰어넘어 마계에서 소환된 거대 쥐가 달려왔다. 빙글뱅글은 그 위에 올라탄 W를 발견했다.

“와라!”

빙글뱅글은 매직스틱을 들이밀었다. 그 앞엔 이미 아이스 스피어가 나선형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통째로 꿰뚫어 주지!”

증폭효과로 인해 십여 발의 아이스 스피어가 거대 쥐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마계의 생물답게, 거대 쥐는 아이스 스피어를 맞고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브레이크!”

거대 쥐의 몸에 박힌 아이스 스피어가 터지며 살점이 튀고, 털이 붉게 물들어갔다. 아무리 마물이라 해도, 근육이 끊기고 심장이 멎어버리면 살 수가 없다. 거대 쥐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고도 관성 때문에 땅을 헤집으며, 공동묘지 입구까지 밀려왔다. 빙글뱅글은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W……설마하니 스캐빈저까지 불러내다니, 에제키엘 녀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 그래봐야 나한텐 안 돼.”

빙글뱅글은 거대 쥐에 깔린 W에게 매직스틱을 겨누었다. 딱 봐도 빈사상태였지만, 적당한 스킬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게임. 어떤 황당한 스킬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스 스피어!”

다섯 발의 얼음창이 날아가 위즈의 몸을 꿰뚫었다. 위즈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빙글뱅글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잔뜩 노이즈가 낀 채 잔상이 사라져 간다.

마력공급이 끊긴 일루전만이 보이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빙글뱅글의 뒤편에 쓰러진 시체가 벌떡 일어난 것은 한 순간이었다.


◇◇◇◇◇◈◇◇◇◇◇◇◈◇◇◇◇◇◇◈◇◇◇◇◇


결과적으로 위즈는 패배했다.

어수선한 상황임에도 일루전 스크롤을 필사해 빙글뱅글의 빈틈을 만들어 낸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빙글뱅글의 노련함은 그런 기습조차 막아내었다. 애초에 빙글뱅글이 장비한 방패에는 모든 물리공격의 데미지를 반으로 줄여주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빙글뱅글이 방패에 담긴 주문을 발동한 순간, 위즈가 입힌 데미지는 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전사가 아닌 위즈는 원래 물리공격력이 높지 않았다. 그런 단점을 기습과 급소 공격으로 커버해왔던 것인데, 이게 실패한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위즈는 가까이에서 발사된 아이스 애로우에 꿰뚫려 사망했다.

“그래도 빙글뱅글님을 상대로 제법 오래 버텼네요.”

“맞소. 도망 다니기만 해도 대단한 건데, 오히려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사쿠라와 레비는 위즈의 패배를 당연하게 여겼다. 위즈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나름 뜻밖의 소득도 얻었다.


=======================================

[사이테리아의 핵]

마법시약, 연금술 등등 다방면에 사용되는 물건. 달리 ‘어둠의 열매’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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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제로니스 섬에서도 같은 아이템을 얻었었다.

‘사이테리아를 해치운 건 거대 쥐였는데, 대련모드가 끝나자마자 인벤토리에 이게 들어와 있단 말이지.’

보급 상자에서 꺼낸 포션들은, 대련모드의 종료와 함께 소멸되었다. 대련모드 속의 전장에서 취한 아이템은 밖으로 가져오지 못한다는 규칙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테리아의 핵은 멀쩡히 들어 있다. 원래 마물의 존재는 대련모드 속에 존재하던 게 아니기 때문에, 예외로 친 것이 아닐까. 위즈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대련모드 종료와 함께 출력된 시스템 메시지들. 그것은 무언가의 단서 같았다.

‘대련모드 속에서 가지고 나올 수 없는 건 아이템뿐. 이들의 스킬을 훔쳐 배우고, 사이테리아의 핵을 얻었는데, 퀘스트의 단서로 보이는 정보까지 얻었다. 이정도면 넘치도록 얻은 거야.’

위즈는 만족스러웠다. 기대이상의 소득이었다.

그때 레비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이제 각자 대련을 끝마쳤으니, 한 가지 계약만 이행하면 되겠군. 지금 가능하나?”

레비가 말한 마지막 계약은 안드리크까지의 호위. 볼일을 마친 이상, 뭉그적거릴 거릴 이유는 없다.

“당장 출발하죠.”

네 사람은 고목나무가 자리 잡은 황량한 대지를 벗어났다.


작가의말

요새 안 써지는군요. 갱년기(?)인가봅니다.

조금 더 추가해서 20화를 마지막으로 3챕터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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