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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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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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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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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0.

며칠 전, 에켈요새의 지하에서 이루어진 계약의 내용은 간단했다. 핏 스톤의 마스터를 만날 용의가 있다면, 그 대가로 요새를 침공하는 적을 해치워준다는 것이 첫 번째.

이것은 이미 충족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위즈가 마스터의 제의를 수락했을 때 핏스톤이 던전의 안내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핏스톤은 단서를 하나 달았었다.

요새에서 자폭에 가까운 마력폭발을 막아내느라 큰 타격을 입었기에, 회복할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어둠의 열매였다.


◇◇◇◇◇◈◇◇◇◇◇◇◈◇◇◇◇◇◇◈◇◇◇◇◇


핏스톤은 더듬더듬 혀를 내밀어 어둠의 열매를 휘어 감았다. 그리고 입을 쩌억 벌려 그것을 삼켜버렸다.

“자기 몸뚱이만한 건데도 한 번에?”

『이건 마력이 구현된 것. 즉, 질량이 거의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불순물이 많군.』

그러면서 핏스톤은 조금 줄어든 크기의 핵을 내뱉었다.

그것은 조금 전과는 달리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딱 봐도 뭔가 귀해 보이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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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구]

마물이 잡아먹은 생명체에게서 취한 잠재력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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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하는 물건이지?”

『마물들은 자신들이 먹은 것을 기반으로 힘을 키워간다. 키머 히스나 사이테리아 같은 식물도 마찬가지. 식물계는 천천히 소화시키는 대신, 음식에서 모든 것을 뽑아내 저장하기까지 한다. 차후 녀석들이 번식에 사용하기위해서.』

“그럼 이걸 부숴야 하나?”

『내가 마력을 전부 뽑아먹었으니 땅에 심어도 싹은 안날 것이다. 싹이 난다해도 더 이상 마물이라 부르지 못하는 평범한 식인몬스터에 지나지 않아. 차라리 실력 있는 연금술사들에게 넘기는 게 어떤가? 마스터의 지인 중에는 내가 먹고 버린 봉인구를 이용해, 비약을 만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 비약이란 게 어떤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잘은 모른다. 하지만 마족 볼가와 최후의 결전을 하러 떠난 결사대들이, 비약을 지급받은 기억은 나는군.』

“일단은 모아두어야겠네. 나중에 연금술사를 수소문해봐야겠어. 이제 마력을 보급했으니,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겠지?”

『물론이다.』

“그럼 이곳에서 빠져나갈 통로 같은 게 있는지 알아봐줄 수 있어?”

『기다려라.』

핏스톤이 조용히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핏스톤.

대지속성을 가지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 더해 암흑속성까지 있기에 마물인 것이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핏스톤은 곤란한 소식을 전해왔다.

『위즈 그대가 가진 스킬로 몸을 줄인다면,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틈이 있다. 하지만.』

“무슨 문제지?”

『그 끝은 해저동굴과 연결되어 있다.』

핏스톤의 말에 다르면, 해저동굴의 깊이는 상당해서 빠져나오는 동안 숨이 막힐 것이라 했다.

‘더 오션에서 잠수란, 호흡이 아닌 스태미나를 소모하는 것. 단지 스태미나뿐이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예전 만테코른의 유령사서에게서 쿼터스태프를 얻은 뒤, 기존에 사용하던 몽둥이의 처분을 라미즈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라미즈는 좋은 나무로 만든 몽둥이라며, 이것을 가공해 액세서리를 만들면 쉬이 지치지 않을 거라고 충고했었다. 지금 위즈는 그 결과물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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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여신의 조각상][내구도 5/5]

신성한 정령목을 깎아 만들어 소지한 자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스태미나 재생(초당 +10 추가)]

[인벤토리에 들어 있으면 절반의 효과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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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다니기에 거추장스러웠기에 위즈는 인벤토리에 조각상을 넣어두었고, 지금 위즈는 절반의 효과만 적용받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위즈는 스태미나가 쉬이 고갈되지 않았다.

스태미나를 소비해 스킬을 쓰지 않는다면, 전투 중이라 해도 문제없었다.

이미 사이테리아와 싸워보고서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몇 배나 많은 스태미나를 소모해야 한다. 그걸 감안하면 해저동굴로 빠져나가는 건 힘들겠군.’

그렇다면 위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위즈는 단검에 정령강화를 걸어 암벽을 때려보았다. 번들번들한 광택의 암벽은 단검을 튕겨냈다. 너무 단단해서 흠집을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물이 내뿜는 암마력에 장시간 노출된 광물은, 그 단단함이 마계병사의 갑주와 맞먹는다.』

“암마력은 뭐지?”

『마물의 몸에서 생성되는 부산물 같은 것이다. 마력을 사용하고 남은 찌꺼기라고 보면 되겠군. 이곳의 마법은 주어진 환경마력(EMP/Environment Magic Power)을, 마법사의 마력을 씨앗삼아 컨트롤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주문이 완성되는 순간, 술식을 이루는 마력의 대부분은 천천히 EMP로 환원된다. 반면 마물들은 EMP를 몸에 받아들여, 직접 마력의 성질을 바꾸어 컨트롤이 용이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주문이라도, ‘흑마법’의 방식을 따르면 위력이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흑마법 역시 주문이 완성되면, 술식의 대부분이 EMP로 환원된다. 이때 찌꺼기처럼 남는 게 바로 암마력이다. 암마력의 특성은 두 가지다. 무거우며, 불안정하다.』

“무겁고, 불안정? 그렇다면 땅속에 갈라진 틈이 있다면, 무조건 그 속으로 스며들겠군.”

『맞다. 사이테리아의 소굴인 이곳은 지상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대가 떨어진 구멍까지의 높이가 30m라면, 그중 10m는 단단한 암반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불안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설마 화학에서 말하는 산(acid)과 같다는 뜻인가?”

『그렇다. 닿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녹아들 것이다. 거기에다 일반적인 마력과 접해 EMP로 환원되어버리는 성질까지 있다. 만약 암마력으로 가득 찬 공간이 있다면, 그 속의 인간은 어떻게 되겠는가?』

“최악의 상황이겠지. 암마력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면, 이미 주변의 암벽은 이곳과 마찬가지의 상태일 테지. 마법사라면 날아서라도 피하려하겠지만, 주문을 사용하는 족족 즉시 EMP로 환원되어버린다면 디스펠을 맞는 거나 다름없고. 다른 직업들은 더 비참하겠네. 결국 몸에 걸친 것까지 모조리 녹아버리겠지. 이방인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지만, 그런 곳은 누구도 가려하지 않을 거야.”

『위즈. 내가 암마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것은, 그대가 가야 할 곳 중에는, 암마력이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포기한다 하여도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 선택은 그대 몫이다.』

그 말을 끝으로 핏스톤은 입을 다물었다.

위즈는 생각을 거듭했다. 자신은 단순히 심심해서 더 오션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다.

시스템적으로 폐쇄구역과 연결되어 있는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 하여, 자신대신 잡혀간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위즈는 최강의 캐릭터를 포기하고, 단지 서포트에 특화된 육성을 선택했다. 하지만 말이 서포트이지, 사실상 잡캐라서 능률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서포트라고 해도, 한창 레벨을 올려야 할 때라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전투가 끝날 때마다 위즈가 느끼는 감정은, ‘죽다 살았네’ 였다.

‘과연 핏 스톤이 말한 곳에 들어가 무사할 수 있을까?’

witch와 핏 스톤이 제시한 퀘스트는 파티를 이루지 못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오로지 혼자서 해치워야 한다는 것. 전투가 빈번해질 때마다 난이도는 상상도 못할 만큼 높아지리라.

“핏 스톤.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다. 네가 보는 위즈라는 이방인은 강한 존재인가?”

『그 질문의 답이라면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약하다. 그건 나도 알고, 마스터도 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날 선택했지?”

『가능성 때문이다. 힘은 키울 수 있다. 누구나 수련을 쌓으면 강해질 수 있지. 하지만 강함이란, 비교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강함은 신기루 같은 것. 재능이 허락한 만큼 강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 역시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마스터의 강함은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다. 마스터는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지. 마스터는 그대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300년 전의 최강자에게서 퀘스트를 받았기에, 위즈 스스로도 자신이 후계자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이유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때는 어깨가 으쓱거려지기도 했다.

최강의 존재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최강의 존재도 음모에 빠져 추락했으며, 항마전쟁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최강이란 이름의 특별함은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것은 위즈로서는 사양하고 싶었다.

“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사는 세계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이지. 그 일을 위해서라면 난 어떤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어. 하지만 반복되는 죽음은 방해가 될 뿐이야. 너와 네 주인이 이끄는 길은 충분히 위험해 보여.”

『그렇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나 핏 스톤은 최대한 그대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끌 것이며,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던전에서 겪는 고난은 그대를 충분히 담금질해줄 것이다. 그대의 소원이 가라앉은 대륙을 끌어올리는 것이라 하였지? 마스터가 준 임무를 완수하다보면 그것을 이룰 동료 역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많은 이방인들을 돕는 것보다, 강자를 만드는 게 더 쉽고 빠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가?』

핏 스톤의 설득에 위즈는 결정을 내렸다. 그 말이 맞다.

수많은 유저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서포트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싹수가 있는 유저들을 중점적으로 도와줄 생각이었다.

300년 전의 전설적인 마법사가 남긴 유산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강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다면 위험 역시 분산된다. 설사 위즈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자들이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한 자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정말이겠지?”

『300년 전의 결사대는 세상을 구해냈다.』

“좋아. 일단 여길 벗어나고 보자. 곧 해가 떠오를 테니, 넌 숨어 있어. 곧 이방인들이 내려올 거야.”


◇◇◇◇◇◈◇◇◇◇◇◇◈◇◇◇◇◇◇◈◇◇◇◇◇


날이 밝자마자 유저들은 마물의 소굴로 뛰어들어 왔다. 이미 한스를 찾아 섬을 샅샅이 뒤진 뒤, 숨을만한 장소는 여기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게다가 밤새 구멍속의 마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아침까지 기다린 것은, 밤에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 미친 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밤에는 마물의 모든 능력치가 +20%가 된다.

“여기 있는 마물이 식물계열이라고요?”

“네. 잡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화염병을 뿌려서 해결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마물이 터를 잡고 산지 100년이 넘었다더군요. 그러니 그동안 뿌린 씨가 어디 가겠습니까? 보이진 않겠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바닥 전체가 마물의 부화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마디로 여긴 마물이 무한정 리젠되는 지역이로군요. 밤새 싸운 자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다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잘 살펴봐주세요!”

유저들은 혹시나 마물이 리젠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방어조와 수색조로 나뉘었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바닥이 파헤쳐져 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난들 알겠냐? 흠? 이거 마물의 뿌리 같은데? 용케도 뿌리까지 접근했나보군. 결국 서로 죽고죽인 모양이야. 이거 한스란 자의 솜씨일까?”

“학자계열이니까 마법은 쓸 줄 알겠지. 충분히 가능성 있어.”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는 현무암 같은 암반입니까? 마치 송곳으로 찍어놓은 것 같은 흔적이 가득하군요.”

그 말을 들은 유저들이 바닥을 살폈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만한 자잘한 흔적들이 빽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광역스킬의 흔적 같군.”

“확실히 그래.”

모든 유저들이 동의했다. 일정하게 찍혀진 자국들은 하나같이 크기가 일정했다. 일부러 바닥을 노릴 이유가 없으니, 광역스킬의 여파로 생긴 흔적이라 봐야 옳았다. 유저들은 얼굴을 굳혔다.

광역스킬은 범위가 넓어지는 대신 데미지가 한 단계 낮아진다.

많이 어중간한 스킬인 것이다.

그런 스킬로 마물을 해치웠다면, 일단 스킬 자체의 등급이 높다는 뜻이 된다.

“레전드 스킬? 설마 유니크 등급은 아니겠지?”

이들의 머릿속에는 마물을 상대로 높은 데미지를 입히는 광역스킬의 존재가 맴돌았다.

마물의 울부짖음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쳤다. 이곳에 널린 잔해를 보면, 누군가 마물과 싸웠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곳은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지역.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들어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마물과 싸운 존재를 한스로 단정 지었다.

유저들 몰래 도망가다가 이곳에 빠진 거라면 정황상 얼추 들어맞는다.

하지만 한스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상위 등급의 광역스킬에 전멸한 마물,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한스의 존재가 유저들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유저들을 이끄는 대표는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습니다. 마물의 리젠시간이 되기 전에, 스킬북을 찾는 게 원래 목적 아닙니까. 서두릅시다.”

“맞아. 후딱 찾고 나갑시다. 꾸물거려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유저들은 스킬북 수색을 재개했다. 그런다고 없는 물건이 생겨날 리 없다. 곧 유저들은 이곳에 스킬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다.

“올라갈 때도 내려올 때랑 똑같습니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줄을 잡고 갑시다.”

유저들은 하나둘씩 줄을 잡고 비스듬한 암벽을 걸어 올라갔다. 잠시 후 마지막 유저가 올라온 것까지 확인한 대표는 줄을 거둬들였다. 먼저 올라간 유저들은 다른 곳을 수색하겠다며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유저는 그들을 돌아보며 툴툴거렸다.

“매정하군요. 좀 도와주면 어때서.”

작달막한 유저가 줄을 감는 것을 거들자, 조금 전까지 무리를 이끌던 자가 가볍게 목례했다.

“고맙습니다. 저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긴. 이글아이가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니. 그래도 마물이 리젠되기 전에 빠져나와서 다행입니다. 솔직히 스킬북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물과 싸우는 건 좀…….”

“이해합니다. 예전에 마물을 잡을 때에도 피해가 컸다더군요. 일부러 아침시간에 맞춰 온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얼굴가득 수심이 가득했다.

작달막한 유저는 빙긋 웃어보였다.

“희망을 가지자고요. 필사본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배우는데 쓰진 않았을 겁니다.”

“허허.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활을 장비하고 계시는군요. 무척 낡아 보이는데, 혹시 처음부터 아처로 키우는 겁니까?”

“네. 레드 오션에서도 같은 계열을 갔었지요.”

“특이하군요. 명중률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아처인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순수 아처로 키우는 건 분명 힘이 듭니다. 그러니 다들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린 뒤, 아처스킬을 올려 전환하는 방식을 쓰지요. 하지만 저는 활을 쏘는 게 더 재미있어서 이렇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의 육성이 가진 장점을 자연히 깨닫게 되었지요.”

“예를 들면 어떤……앗, 죄송합니다. 묻는 게 아닌데.”

“아뇨. 괜찮습니다. 딱히 비밀도 아닌데다가, 이글아이도 못 얻었으니 소용없게 되었는걸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직업으로 가게 되면, 전직가능 레벨이 앞당겨진답니다. 레드 오션에서도 그런 식으로 샤프슈터가 되었었지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뵌 분 같군요. 혹시 레드 오션 최초의 전직유저 아닌가요? 그때 이름이…….”

“빌헬름텔입니다. 지금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지요.”

“위즈입니다. 유명인을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상대의 이름을 듣자마자 위즈는 눈을 번뜩였다.

아처만 죽어라고 판 외길인생 플레이어가 바로 빌헬름텔이다.

아들네미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쏘아 맞췄다는 명궁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활솜씨는 발군. 또한 그는 유저들을 조율해 합격기를 만들어 쓴 최초의 유저이기도 했다.

‘올 아처로 이루어진 궁병대를 사흘 만에 장악하여, 피어싱 웨폰 스킬만 죽어라고 올리게 했다지?’

그 결과 빌헬름텔이 이끄는 100인의 궁병대는 합격기 세 방으로 바하르칼의 중장기갑사단을 궤멸시키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2000 vs 100, 무려 20배의 병력차이를 스킬로 극복해낸 것이다.

많은 유저들은 ‘아쟁쿠르’가 게임 속에 재현되었다며 놀라워했다.

‘핏 스톤의 말대로 강자를 키워볼까 싶은 참에 이런 유저와 만나다니……. 어쩔지 모르니까 일단 말이나 붙여볼까?’

이제 막 만난 사람들끼리 공통된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

위즈는 무난하게 닉네임을 화제로 선택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이름, 실러의 희곡에서 본 것도 같군요.”

“맞습니다. 아들네미의 머리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쏜 스위스 명궁이지요. 하지만 원작과 달리 저는 활을 쏩니다.”

위즈는 기억을 더듬어 빌헬름텔의 무기를 기억해냈다.

오스트리아 총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에게 활을 겨눈 아버지.

과장되게 활시위를 한껏 당겨 화살을 메긴 무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활이 맞다.

위즈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원래 활이 아니었습니까?”

“원작에서는 석궁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석궁은 장전 속도가 느립니다. 게다가 사거리도 짧아 보조 무장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석궁의 장전이 느린 거야 유명하지만 사거리가 짧다는 말은 또 처음 들었다.

영화를 비롯한 매체에서는 석궁의 사거리가 그리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갑옷까지 뚫는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가.

“제가 알기로 이 게임에서 석궁의 최대 사거리는 200m인 걸로 아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히 먼 거리가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150~180m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그래도 긴 건 아닙니까?”

“거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째서이지요?”

“그야 최대 사거리가 그렇다는 거지, 유효 사거리로 따지면 암울하기 그지없으니까요.”

활에 대해 조금 깊이 들어가자 빌헬름텔은 신이 난듯 열변을 토했다.

그 이야기를 간추리면 요점은 다음과 같다.

석궁은 유효 사거리가 50~60m.

더 오션에서는 그 정도의 거리는 마음만 먹으면 좁힐 수 있다. 스킬이나 탈것, 버프 등등으로.

반면 활의 유효 사거리는 200m.

석궁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물론 이 수치는 현실에서 전해지는 전승에 따른 겁니다. 실제로는 재료나 궁사의 실력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짧아질 수도 있겠군요.”

“그것까지 감안해도 무기의 평균적인 능력치는 활 쪽이 더 높습니다.”

“지금 들고 계신 활은 유효사거리가 얼마입니까?”

“45m입니다.”

“그럼 석궁보다 짧지 않습니까?”

“제 레벨에 맞는 석궁의 최대 사거리는 25m. 그리고 유효 사거리는 8m입니다.”

“뭔가 많이 허접하군요.”

“하하하. 초보 때 쓰는 무기 아닙니까.”

“그래도 예전에 쓰던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실 텐데. 갑갑하진 않으십니까?”

“이젠 옛날 일이지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처계열은 사장될 것 같으니까요.”

“아……죄송합니다.”

위즈는 황급히 빌헬름텔에게 사과했다.

‘공통스킬인 이글아이가 물 건너간 마당에, 과거의 영광을 입에 올리다니. 이거 엄청 실례되는 거잖아?’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완급조절에 실패했다. 이래서는 호감을 얻기는커녕, 원한이나 안사면 다행이다. 위즈에겐 뼈아픈 실수였다.

“괜찮습니다. 뭐 한스같은 사기꾼 NPC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휴우…….”

위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게 바로 접니다.’

밧줄을 다 챙긴 빌헬름텔이 위즈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위즈님은 어떤 클래스이신가요?”

위즈는 현재 그 어떤 계열도 선택하지 않았다. 당연히 세부갈래인 클래스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대비해 생각해둔 답변이 있었다.

“저는 생산자 계열입니다. 나중에 트레저 헌터를 만들까 하고, 모험가와 학자군 쪽도 건드려보고 있습니다.”

“그거 되게 어정쩡한 클래스로 유명한데. 많이 힘드시겠네요.”

예상대로 빌헬름텔은 별 볼일 없는 직업 정도로 생각해주었다. 레벨에 비해 전투능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상대가 이렇게 오해하도록 놔두는 게 위즈에겐 유리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좋아서 하는 걸요. 그나저나 스킬북이 없다면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가겠군요. 빌헬름텔 님도 그러시겠지요?”

“이글아이만 아니라면……딱히 이 섬에 볼일은 없습니다.”

“저는 트레져헌터 수업 때문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메신저에 추가해도 되겠습니까? 처음 만났지만 좋은 분 같아서요.”

“좋습니다. 가끔 연락도 하고 지냅시다.”

빌헬름텔의 이름이 메신저 창에 입력된 것을 확인한 위즈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 그러고 보니 더 오션에는 개인 사서함이란 게 있는 모양이더군요. 혹시 빌헬름텔 님도 가지고 계시나요?”

“아직 게임 초반이라서 꼭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있어서 나쁠 건 없지요. 나중에 도시로 돌아가시면 사서함을 개설하시길. 조금 이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하……착한 일을 한 기억이 없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챙겨주실 리가.”

“사서함을 개설하시면, 맛있는 쿠키를 보내드립죠. 크레센토의 수도 미노클의 서민가에는, 왕자님의 입맛을 사로잡은 제과점이 있답니다.”

“오? 그런 게 있습니까? 왕자님이 좋아하는 쿠키라니……한번쯤은 맛보고 싶군요.”

“그러니까 꼭 사서함을 만드세요. 쿠키 하나 먹자고 미노클까지 오는 건 그렇잖아요.”

“그럼…저도 답례로 벌꿀술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약속한 겁니다.”

“네. 돌아가서 꼭 만들겠습니다.”


작가의말

나중에  더 오션 최초의 2차전직 유저는 전사계열 중에서도 ,

아처 클래스에서 나오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빌헬름텔’이란 유저가 그렇게 될 겁니다. 헌데...전, 이 이름 마음에 안들어요.

너무 뻔해보이지 않습니까? 활잡이다우면서도, 이렇게 뻔하지 않는 이름 어디 없을까요?


그리고 붙었습니다. 추후 보충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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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시러스
    작성일
    13.12.14 17:54
    No. 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3.12.14 22:37
    No. 2

    빌헬름텔이라.. 아리까리합니다.. ㅋㅋㅋ 활잡이라는 생각은... 으응???? 뭔가 기사느낌나요...
    암튼 크리쳐가 흡수한게 일종의 마정석같은 것이고 그것에 부순물로 낀 암흑덩어리를 흡수하고 순수한 정석만 남은 건가봅니다? 어둠의 열매는 큰틀에서 보자면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를 총칭하는 단어인가요? 아직 헷갈립는게 많네요. 암튼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이름좀늘려
    작성일
    13.12.15 12:58
    No. 3

    로빈 훗? 장궁병? 추코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나란토야
    작성일
    14.02.23 18:12
    No. 4

    빌헬름텔, 전에 하던게임에나왔던...ㅋㅋ 폰게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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