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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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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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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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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9.

한스를 찾기 위한 유저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LV.100짜리 스펠북을 들고 날라버린 NPC라니, 과거 레드 오션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혹시……말로만 듣던 카오틱 NPC 아닐까요?”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봐야 별 수 없네. 그것보다…….”

- 당장 몸을 피해야 하네. 저들에게 죽기 싫으면.

머슬가이는 파티 채팅으로 전환하여 말을 이었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채팅에 집중했다.

- 네? 뭣 때문에 저들이 우리랑 싸워요?

- 필사본으로 스킬을 익힌 유저는 300명도 못되네. 그런데 한스가 사라져버렸으니,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글아이를 배우지 못한 상태네. 거기에 유일한 희망인 스펠북까지 강탈당했으니 유저들의 분노가 우리를 향할 거야.

- 우리 탓이 아니잖아요? 그 한스라는 NPC가 나쁜 놈이지.

- 화풀이 대상은 꼭 필요한 법이네.

바하르칼 용병들은 어수선한 틈을 타, 은신을 전개하여 섬을 빠져나갔다.

뒤늦게 이들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많은 유저들이 분통을 터뜨렸으나, 한스의 행방을 찾는 게 더 급한 문제였기에 아무도 섬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도리어 배를 둘러서 섬을 철통같이 경계하는 한편, 10평방미터당 3명의 유저들이 교대로 지키며 人의 장벽을 강화해나갔다.

하지만 한스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허공에 녹아 버린 듯,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


“적당히 눈치를 봐서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이야.”

한스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부들거리며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마물의 소굴로 떨어질건 뭐야.”

그의 눈앞에서는 식충식물을 닮은 마물이 불에 타버린 껍질을 깨고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유저들은 이 존재가 불에 약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화염병을 던져 태워버린 후 스펠북을 회수했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이렇게 다시 자라나고야 만다. 하지만 유저들이 경험치도 그리 높지 않은 마물의 뿌리를 캐려고 땅을 들쑤시는 수고를 할 리 없다. 그 결과 마물은 점점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것은 한스도 마찬가지였다.

잇몸이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한스의 얇은 입술이 이리저리 뒤틀리더니, 곧 도톰한 입술이 치아를 덮었다. 가늘게 휘어져 올라간 눈썹과 간사해 보이는 눈매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눈동자는 조금 크게 바뀌었고, 우스꽝스럽던 눈썹은 숱이 늘어났다.

한스의 야비한 얼굴을 완성시켜준 간신배 타입의 콧수염은 자취를 감추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반짝이는 은발로 뒤바뀌며 길게 자라났다.

얼굴에 붙어 있던 살도 위치를 바꾸었다.

은발머리를 한 통통한 얼굴은 더 이상 한스가 아니었다.

키도 2m 가까이 자라나, 짜리몽땅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도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 와버렸구나.”

NPC 한스의 정체는 위즈였다.

바하르칼 용병과 안티 바하르칼의 접전을 지켜보던 위즈는, 그대로 두면 스킬북이 불에 타 없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필사본의 만들어 이들에게 분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저의 신분으로 이들에게 접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제로니스 섬에 모인 유저들은 스킬북을 노리고 온 자들이며,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 위즈가 하는 말을 쉽게 믿을 리 없다.

그래서 위즈는 카무플라주 스킬을 이용하기로 했다. 예전 인육만두 사건을 조사할 때 일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한 위즈는 유저들에게 NPC로 취급받았으며, 수도의 경비 병력에게조차 의심을 사지 않았다. 카무플라주가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3분간의 경직 패널티가 주어진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카무플라주 스킬을 연구해보니 NPC처럼 보이는 데에는, 한 가지 절대적인 기준이 작용했다. 바로 본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특징들을 부여하면 된다는 것.

이것은 어린아이처럼 키를 작게 만드는 것부터, 없던 수염을 만드는 정도로도 가능했다. 그렇게 지금의 바뀐 위즈의 모습은 한스라는 NPC가 되었다. 머리위에 NPC마크가 생겨난 것은 물론이다. 다만 NPC 본연의 기능인 퀘스트 부여는 불가능했다. 어쨌든 겉모습은 누가 봐도 NPC였기에 위즈는 유저들에게 무사히 접근할 수 있었다.

계획대로 필사본을 만들어 뿌리자, 스킬북을 둘러싼 분쟁은 그렇게 끝나는 듯 해보였다.

‘문제는 필사본을 자신들의 소속단체에 전해주려는 유저들이 없다는 거야.’

필사본을 계속 찍어내는 한스는 유저들에게 너무도 편리한 존재였다.

필사본을 사용하면 즉시 스킬을 익힐 수 있는데, 굳이 훈련장에 가서 배울 필요는 없었다.

당연히 유저들은 그 자리에서 이글아이를 배워버렸다.

필사본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그게 반복되자 위즈는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은 유저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할 수 없다.

카무플라주 스킬로 NPC 행세를 하고 있지만, 의식주의 문제로 로그아웃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생긴다.

그 시간동안 유저들이 싸우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이 짓만 계속할 수도 없다.

그래서 위즈는 자신이 직접 필사본을 각 단체에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원본부터 확보해야 했다.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 복원시키는 것도 가능은 했지만, 그런 열화판으로 배운 스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원본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 많은 유저들의 감시를 뚫고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위즈는 일부러 밤까지 기다렸다. 분명 유저들은 어둠을 밝힐 물건을 준비해 올 것이며, 그것은 마법이 아닌 진짜 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기회는 왔다.

횃불을 준비해온 유저들에게,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떨어지라는 말을 남긴 위즈는 즉시 모자손에 저장된 일루젼 스크롤을 사용했다. 그리고 횃불로 인해 생겨난 책상의 그림자를 엉금엉금 기었다.

스펠북 원본을 비롯한, 소지품 일체를 챙긴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마물이 나온다는 구멍을 신경 쓰지 못했다. 땅이 사라지고 허공을 짚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추락하고 있었다. 구멍이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통로와 연결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떨어지는 순간 죽고 말았을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구나.”

위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스펠북을 찾은 곳은 마물의 소굴.

당연히 유저들은 날이 밝는 대로 이곳까지 조사해 들어올 것이다.

“이걸 가지고 로그아웃 해봐야 빠져나가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게다가……여기는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일종의 던전 지역. 그것도 휴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닌 일종의 보스룸의 구조이니 목숨을 부지하긴 틀렸어.”

위즈는 몸을 일으켰다. 3분 경직의 패널티는 끝났다. 허나 무엇 하나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아직 마물의 재생이 이루어지는 중이었지만, 식충식물을 닮은 아가리는 벌써 세 개 이상 벌어져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식물계니까 불에 약하겠지?”

즉시 플레임 플라워를 날리자 막 생겨난 아가리가 불에 타들어가며 몸부림쳤다. 위즈는 휘말리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연이어 주문을 뿌렸다. 위즈가 던진 스크롤이 윈드커터에 찢겨지며 보라색 가루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독가루는 마물에게 통하지 않았다.


<마물이 독을 빨아들여 사이테리아로 변화합니다.>

<반경 10m내에 미혹의 향기가 들어찹니다.>

<미혹의 향기를 들이마시면, 캐릭터의 컨트롤이 불가능해집니다.>


“남 좋은 일만 하다 가는군.”

플레임 플라워와 원드 커터를 모조리 쏟아 부었지만, 핑크빛으로 변한 마물은 더 이상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공격을 해오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꽃잎을 활짝 벌린 채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사이테리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희생자를 꾀어내는 요부(妖婦)로 변한 마물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제 이 마물은 촉수를 뻗어 능동적으로 먹잇감을 사냥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의 모습을 한 채, 달콤한 향기를 내뿜어 먹잇감이 스스로 걸어오게 만들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손쓸 방법은 없다.

사이테리아는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방어력을 가진 식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법은 당연히 안통하고, 가까이 다가가 공격했다간 홀린다.

“그저 독이 통하는지 알아보려고 시험한 대가치고는 너무 크군.”

위즈는 쓰게 웃었다. 설마 독을 흡수하여 진화해버릴 줄은 몰랐다.

이로써 다른 유저들이 구멍을 타고 내려와도 스킬북을 얻을 수 없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화염병을 보따리로 싸가지고 와서 덤벼도 못 이긴다. 그렇지만 위즈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스킬들이 제법 많다.

“지금 상황에서 공격용 스킬은 카피캣으로 습득한 정령강화, 그리고 에켈 요새의 지하에서 핏스톤에게 받은 스킬북으로 배운…‘별 하늘 아래 어둠가시 밭’이 있다. 둘 다 대단한 스킬임에는 틀림없지만 대체 뭘 써야하지?”

정령강화는 장비에 바람의 정령을 깃들게 하여,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종의 버프계열 스킬이다. 헌데 정령으로 무기를 강화시켜봐야 고작 공격 속도의 증가 보너스밖에 얻지 못한다.

“몽둥이로 빠르게 때려봤자 마물을 상대로 큰 피해는 못 입힐 테고, 날붙이다운 물건은 단검뿐이야.”

그렇다고 ‘별 하늘 아래 어둠가시 밭’을 사용하자니 이것 역시 마음에 걸린다. 마력을 몽땅 잡아먹는데다 광역스킬이라서 생각보다 높은 데미지를 입히진 못한다. 최대 데미지를 뽑는 방법이 분명 있을 테지만 아직 연구가 부족해 알아내질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걸 어떡한다……응?”

위즈는 바닥에 낮게 깔리는 희끄무레한 연기를 감지하고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사방에서 달콤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혹의 향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캐릭터의 컨트롤을 할 수 없습니다.>


“뭐? 사이테리아는 저쪽에 있는데?”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려 해도 몸이 제멋대로 뒤틀리며 움직여댔다.

인육만두의 인형술은 저항이라도 했지만, 미혹의 향기는 그게 힘들었다.

이건 스킬이 아닌 상태이상.

그것도 훨씬 고레벨의 몬스터가 걸어둔 것이다.

위즈는 관절을 삐거덕거리며 뒤로 걸었다. 그러다가 다시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다시 뒤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전면의 사이테리아 꽃 부분이 열리면서 아가리가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으르렁거리는 사이테리아. 위즈는 즉시 상황을 이해했다.

‘뒤에도 사이테리가 있구나. 그런데 어째서 날 잡아먹지 않는 거지?’

위즈는 지금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기를 반복하며 움직이고 있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럴수록 앞뒤에서 사이테리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높아졌다.

급기야 기다란 혓바닥을 내밀어 위즈를 낚아채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이테리아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혓바닥이 닿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그 모습을 본 위즈는 자신이 재미있는 상황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앞뒤의 사이테리아는 서로 다른 개체다. 그렇기에 먹이를 두고 다투는 거야.’

진화하면서 기존의 촉수가 몽땅 사라져버렸으니, 사이테리아는 있는 힘껏 위즈를 유혹해야만 했다.

달콤한 향기는 이미 마물의 보금자리를 가득 채운 상태였지만, 위즈는 어느 쪽에도 넘어가지 못했다.

그만큼 두 개체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급기야 사이테리아는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멋…진 남자. 나…를 봐요……』

사이테리아의 모습이 일렁거리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러자 갑자기 위즈의 몸이 휙 돌려졌다. 뒤쪽에는 더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이테리아는 어디가고 부상당한 어린아이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나……피나…흑흑.』

위즈는 어느 쪽이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의 모습은 점차 심한 모습으로 변해갔으며, 그것은 위즈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특히 불에 타들어가는 아이는 위즈를 패닉에 빠뜨렸다.

“그만! 그만해!”

위즈의 눈에 핏발이 섰다.

『오빠 나……』

불길이 아이의 모습을 삼켜버렸다.

“빌어먹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즈는 진각을 힘주어 밟았다.


<집중력 스탯으로 미혹의 향기를 이겨냅니다.>

<10의 집중 스탯이 올랐습니다.>

<10의 근성 스탯이 올랐습니다.>


위즈는 쏜살같이 근처의 갈라진 틈으로 파고들었다. 여전히 미혹의 향기가 가득 차 있었지만 더 이상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유혹하던 여자와 아이의 모습은 다시 사이테리아로 바뀌어 있었다. 먹잇감이 도망치자 사이테리아는 울부짖었다.

하지만 더 크게 울부짖고 싶은 건 위즈였다.

“닥쳐라 마물! 감히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놀아?”

분명 사이테리아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그 때문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헤집은 건 사실.

위즈는 사이테리아를 사냥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게임속의 몬스터였지만, 위즈는 그런 프로그램 다발을 상대로 증오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넌 적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잡아 없애버리겠다!”

위즈는 가지고 있는 포션들을 모자 손에 밀어 넣었다. 스크롤이 통하지 않는 걸 확인했으니, 포션만 10개를 집어넣었다. 그것도 전부 체력회복용 포션.

그리고 즉석에서 이글아이 스킬의 필사본을 제작해 사용했다. witch의 훈련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에서도 필사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

[공통스킬]/[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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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아이:MX-LV.100] [LV.1-숙련도 00.00/100%]

사냥꾼들이 화살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스킬. 시야를 넓혀서 멀리 있는 대상도 한발의 화살로 꿰뚫을 수 있습니다.

[기습시 화살의 명중률 100%부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전투시 0.5%의 명중률이 상승.]

[단검던지기 ,투창 등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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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을 꺼내든 위즈는 스킬을 정령강화를 사용했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이 깃든 것은 단검이 아닌 신발이었다.


<정령강화(바람속성)을 사용하셨습니다.>

<신발에 적용.>

<3분간 이동속도가 증가됩니다. [(W)초당 1.2m / (R)초당 3.8m /(B)초당 2.2m]>

<3분간 이동에 따른 스테미너 소비가 0으로 감소합니다.>


이동속도까지 올린 위즈는 단검을 들고 사이테리아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불에 타죽는 아이의 환상을 보여준 개체였다.

먹잇감이 달려들자 사이테리아는 입을 쩍 벌리며 반겼다.

위즈는 진각을 밟으며 단검을 힘주어 뿌려냈다. 비교적 연해보이는 입속이 만만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분홍 살덩이에 불과한 혓바닥이 휘둘러지자 단검은 어이없게 튕겨나고 말았다.

‘이글아이의 명중률에, 진각과 이동속도 보너스. 거기에 던지기의 묘리까지 넣었다. 그런데 안 통한다? 레벨차이는 어쩔 수 없군.’

뒤이어 위즈를 노린 거대한 혓바닥이 바닥을 찍었다. 부글거리며 흙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본 위즈는 거리를 벌리는 대신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사이테리아는 6m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몬스터이다. 하지만 식물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바로 밑 부분까지 다가가면 입 부분은 닿을 수 없다. 사람이 선채로 자기 발가락을 핥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가 세이프 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이긴 했지만 무턱대고 달려든 것은 아니었다.

사이테리아는 분명 지금의 레벨로는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한 몬스터. 그것도 마물로 분류되어 있으니 전직을 하고 덤벼야 겨우 상대가 가능한 종류다. 그렇다고 해서 잡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이 게임에서는 약점을 공략할 수 있다면, 초보자라도 마왕을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했다.

이미 급소를 노려 여러 번 재미를 본 위즈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뿌리가 잘못되면 시들어버린다. 사이테리아도 일단은 식물이니까 시도해보자.’

단검을 새로이 하나 꺼낸 위즈는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이테리아가 요동치며 혓바닥을 마구 휘둘러댔다. 하지만 위즈가 있는 곳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위즈는 사이테리아의 꽃이 있는 곳과는 정반대편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러지마……제발.』

사이테리아의 모습이 상처투성이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위즈는 허상 따위에 현혹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땅이 단단하여 단검의 날이 계속 부러져 나갔다.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새로 꺼냈다. 유저들에게 필사본을 만들어 주고받은 단검만 열 자루가 넘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단검을 버려가며 땅을 파헤친 지 3분정도 지나자 위즈는 바닥에서 시커먼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뿌리로군.”

위즈는 단검의 날을 슬쩍 뿌리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눈앞의 소녀가 어깨를 떨어댔다.

『그러지마……제발. 그러면 나……죽어…….』

“알게 뭐야.”

위즈는 단검을 힘주어 박아 넣었다.

키아아아악!

소녀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즈는 손잡이만 남은 단검에 진각을 때려 넣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45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소녀 모습의 허상이 일그러지며 사이테리아의 거대한 몸체로 변했다.

약점을 공격당한 사이테리아는 인간을 유혹할 정신이 없었다.

위즈는 단검을 한 자루 더 꺼내어 뿌리에 상처를 입혔다. 사이테리아의 몸부림이 거세어졌다.

그 바람에 땅이 갈라지면서 뿌리의 대부분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위즈가 파헤쳐 드러난 것보다 열배는 되는 크기였다. 그 뿌리들이 부르르 떨더니 위즈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정령강화로 이동속도를 올린 상태였지만, 거리도 가깝고 숫자도 많았기에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고 말았다.

실뿌리조차 손가락 굵기만 한 뿌리가 연이어 위즈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큭!”

체력을 표시하는 막대가 쭉쭉 내려가자 위즈는 포션을 연거푸 사용했다. 모자 손에 저장된 것이 전부 체력 포션이었기에 빈사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제길……도중에 정령강화를 다시 걸었다지만……저런 식의 공격을 다 피하는 건 무리야.”

더 이상 뿌리 곁에 머물다간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었다. 위즈는 진각을 밟으며 맞은편의 사이테리아에게 몸을 날렸다. 녀석 역시 뿌리를 드러내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위즈의 의도를 간파한 사이테리아는 허상으로 홀리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혓바닥으로 바닥을 마구 찍어대며 녹여서, 위즈는 충분한 속도로 달릴 수 없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 굴곡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위즈의 이동속도가 느려지자 사이테리아는 입을 닫고는 꽃부분을 휘둘러 위즈를 쳐냈다. 마치 권투 선수가 힘주어 내뻗은 스트레이트 같았다.

“크헉!”

위즈의 몸이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뇌진탕에 빠졌습니다.>

<1분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1분간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염병. 상태 이상 판정인가?’

다행인 건 빈사상태에 빠진 게 아니라는 것. 상당히 깎이긴 했어도, 아직 절반 가까운 체력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상대들이 식물계 몬스터, 그것도 촉수가 없는 것이라 먼저 공격당할 걱정은 없었다.

‘무작정 달려들면 같은 일이 반복 될 거야.’

집중력 스탯이나 근성 스탯의 힘을 빌면,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이테리아는 그냥 몬스터와 달리 마물이다. 레벨만 높은 게 아니라, 높은 지능 역시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의 대응은 위즈의 회피능력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 결과 자신은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게다가 녀석은 입을 다문 채로 단단한 겉 부분을 이용해 공격해왔다. 뿌리는 몰라도 다른 부분의 방어력은 극악. 녀석은 그 점을 십분 이용한 거야. 게다가……혀를 이용해 공격하지 않은 것은, 혹시나 내 공격이 먹힐지도 모른다고 여겨서이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놈인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뇌진탕에서 회복되었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바닥에 엎어진 사이테리아는 여전히 뿌리를 휘두르며 발광 중이었고, 교활하게 굴던 개체는 인근의 지형을 곰보로 바꿔놓고 있었다.

“저래서야 달리는 건 무리겠지.”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로브를 꺼내 입었다. 그동안 로브에 걸린 스톤스킨 주문 덕에 목숨을 부지한 적이 많았지만, 그 때문에 위즈는 필요 이상으로 마력 관리에 애를 먹었다. 비싼 마력회복포션 역시 많이 사용해야 했다. 크레센토를 떠나자마자 로브를 벗은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회피가 불가능한 공격을 무릅쓰고 달리는 마당에 마력을 아끼는 건 사치다.

“마력량만큼 스톤스킨이 방어해줄 테니, 이로써 체력이 늘어난 셈이군. 그 다음엔…정령강화!”


<정령강화(바람속성)을 사용하셨습니다.>

<방어구에 적용.>

<3분간 회피율 증가. [5%]>


비전투용이라 몇 장 남아있던 일루전 스크롤도 풀었다. 사이테리아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써보기로 한 것이다. 위즈는 일루전과 섞여 사이테리아에게 다가갔다. 사이테리아는 입을 꾹 다문 채 꽃 부분을 수그렸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공격을 위해 주먹 쥔 손을 뒤로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흩어진다!”

모자손이 까딱거리자 일루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사이테리아의 공격은 정확히 위즈를 노렸다.

“진각!”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땅을 밀자, 위즈의 몸이 우스꽝스럽게 나동그라졌다. 그 대신 사이테리아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맨땅에 박치기를 한 사이테리아의 꽃 부분이 활짝 열리며 혀가 쏘아졌다.

정확히 위즈가 있는 곳이었다.

그것이 땅을 녹일 정도의 산성액을 뿜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위즈는 엎어진 채로 바닥을 굴렀다.

혓바닥은 아슬아슬하게 위즈를 스치고 지나가, 바닥을 길게 녹였다.

위즈는 벌떡 일어나 진각을 사용해 울퉁불퉁한 바닥을 타넘으며 줄기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사이테리아는 꽃을 거둬들이더니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바닥에 금이 가면서 마구 요동쳤다.

“뿌리가?”

위즈는 사이테리아가 바닥을 마구 녹여 작은 구덩이를 만든 것이, 자신의 돌격을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수한 구덩이는,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약하게 만드는 작용도 했다.

그 결과 사이테리아는 스스로 뿌리를 뻗어내 위즈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잔뿌리의 다발들이 기어 나와 위즈에게 몰아치고 있었다. 굵은 뿌리까지 튀어나오면 위즈는 뿌리에 파묻혀 압사당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위즈는 태연했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력포션을 꺼내는 것이었다.

“자진해서 꺼내주면 고맙지.”

포션으로 스톤스킨으로 깎이는 마력을 계속 채워 넣으며 위즈는 스킬을 사용했다.

“별 하늘 아래 어둠가시 밭!”


<마력이 300 소모되었습니다.>

<부족한 마력으로 인해 충분한 위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력이 0이 되었습니다.>


사이테리아의 시커먼 뿌리에 번들거리는 가시가 무수히 솟았다. 안쪽에서부터 꿰뚫고 튀어나온 가시는 사이테리아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키아아아아악!

뿌리가 마구 휘저어지며 위즈를 때려댔다. 뿌리에 맞아 바닥을 구르면서도 위즈는 포션을 연거푸 들이켰다. 역시나 마력 포션이었다.

“별 하늘 아래 어둠가시 밭!”


<마력이 300 소모되었습니다.>

<부족한 마력으로 인해 충분한 위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력이 0이 되었습니다.>


포션을 마구 퍼부으며 스킬을 열 번이나 쏟아 붓자, 사이테리아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커먼 뿌리가 쪼그라들면서 바삭바삭하게 변해갔고, 활짝 열린 아가리에는 힘없이 늘어진 혀가 걸렸다. 위즈는 시험 삼아 플레임 플라워를 날려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는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던 줄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둥둥.


<마계의 식물 사이테리아를 쓰러뜨렸습니다.>

<레벨차이가 100이 넘는 적을 쓰러뜨렸습니다.>

<10의 근성 스탯이 올랐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경험치가 조정됩니다.>

<12,00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12,00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3올랐습니다.>


더 오션에서는 지나친 쩔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레벨차이가 큰 적을 쓰러뜨리면 경험치를 온전히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위즈는 레벨업을 했다.

“마물이란 게 대단하긴 하군. 원래 경험치는 얼마나 되는 거야?”

놀라는 것도 잠시, 위즈는 루팅을 위해 죽은 사이테리아에게 다가갔다. 아이템은 드롭의 형식으로도 떨어지지만, 이렇게 시체가 남아 있는 경우는 뒤져서 얻는 것도 가능했다. 비교적 온전해 보이는 꽃 부분을 뒤적인 위즈는 수박만한 덩어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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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테리아의 핵]

마법시약, 연금술 등등 다방면에 사용되는 물건. 달리 ‘어둠의 열매’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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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열매? 설마 이거 녀석이 말한 그건가?”

위즈는 펫 인벤토리를 열어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 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돌덩이였다.

“어이……어둠의 열매란 거 이걸 말하는 거냐?”

그 말에 돌덩이가 가로로 쩍 갈라지며 연분홍 혀가 날름거렸다.

『맞는 것 같군.』

“네가 해달라는 건 전부 다 해줬어. 이젠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핏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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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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