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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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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449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4.17 23:13
조회
1,764
추천
33
글자
21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

“아이고 게임 속에서 걷다 지칠 줄이야…….”

초현실주의 작품 같은 공간을 빠져나오자 위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저 끝없이 이어진 계단이었다.

“또 계단이야!”

이미 10분을 계단만 걸었다. 그런데 또 계단이 나왔다. 이 계단도 이미 10분은 넘게 걷고 있다.

“이거 인내력 테스트라도 하는 건가? 그런 거야? 어떻게 생각해 핏 스톤?”

하지만 핏 스톤은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넌 좋겠다. 다리품 파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보면 네가 가진 땅에 동화하는 능력이야 말로 굉장한 능력인데……어째서 난 그걸 배울 수 없는 걸까?”

이번에도 핏 스톤은 답이 없다. 위즈는 걸음을 멈췄다.

“핏 스톤?”

여전히 부름에 답하지 않는 핏 스톤.

위즈는 안내원의 설명을 떠올렸다.

공간이 뒤틀려 있어 위아래 구분이 없으며 앞뒤조차 분간할 수 없다.

게다가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그렇다면 핏 스톤은 따라오지 못한단 거로군.”

위즈는 이곳이 일종의 결계 비슷한 곳으로 보호받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어밴던드 폴리스(abandoned polis)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도 같군.”

길게 이어진 계단을 내려다보며 위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상상을 벗어난 것이 있다는 건 분명해.”


◇◇◇◇◇◈◇◇◇◇◇◇◈◇◇◇◇◇◇◈◇◇◇◇◇


계단이 끝나고 다시 숲이 나타났을 때, 위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계단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그 깊이만도 수백 미터는 족히 된다. 그렇게나 깊숙한 지하에 식물이-그것도 푸른 잎사귀를 가진 식물이 자란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지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밝은 빛이었다.

“광원은 뭐지? 설마 라이팅 마법 같은 건가?”

레미라는 마법사의 성지 같은 곳. 그런 곳의 지하이니만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주변에 자라는 나무부터가 수상해보인 위즈는 근처에 늘어진 나뭇가지를 끌어당겨 잎사귀를 하나 땄다.

“설사 독초라 해도 1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위즈는 잎사귀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씁쓰레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말귀지 나무의 잎사귀를 맛보았습니다.>

<딱히 해롭진 않으나 식용은 아닙니다.>


생긴 것은 어디서나 볼법한 나무. 설명도 평이했다.

“나무엔 문제가 없군.”

위즈는 일단 숲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숲 한가운데이긴 하지만 자갈을 깔아 길까지 만들어두었으니 이 끝에 어밴던드 폴리스가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밴던드 폴리스에 진입했습니다.>


위즈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여기가…어밴던드 폴리스?”

폴리스라는 표현대로 커다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위즈가 계단을 걸어 내려온 시간은 꽤 길었다. 그만큼 이 지저세계는 넓었고, 그 속에 자리 잡은 도시도 커다랬다.

“레미라 섬의 규모는 훨씬 뛰어넘잖아?”

규모만 큰 게 아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건 레미라보다 더한 활기.

그 활기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어제 구운 빵이 반값에 떨이요 떨이!”

“밖에서 들여온 신품종 사과묘목이 오늘 입고되었습니다! 구경하고 가세요!”

“엠마네 밭에 일손이 모자란대! 서둘러!”

저마다 행색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이 저마다의 삶에 치여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바깥의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하. 정신없군.”

위즈가 숲에서부터 도시로 들어서는데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위즈가 들어왔던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위즈는 도시로 들어서며 주변을 쓱 훑었다. 건물들은 대체로 오래되어보였다. 군데군데 보수를 하고 새로이 칠을 했지만, 어쩐지 고풍스러운 조각이 곳곳에 배치되어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바닥은 돌을 깔아 만든 포장도로였다.

다각다각. 옆 골목에는 짐말이 수레를 끄는 모습도 보인다.

위즈는 실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도시는 분명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데 하늘이 보인다. 그것도 너울거리며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태양도 떠 있다. 다시 고개를 숙이던 위즈는 도시 한가운데에 높이 치솟은 건축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뾰족한 고깔모양의 지붕을 얹은 탑이었다. 위즈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것만도 10개는 넘어보였다. 그 모습도 다양했다. 대체로 곧게 뻗은 모양새였지만, 어느 한 부분은 휘어지거나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 정신없는 계단만큼이나 기괴하군.”

설명을 듣지 않아도 위즈는 알 수 있었다.

“저게 마법사의 탑.”

위즈는 탑이 모여 숲을 이룬 곳으로 향했다. 탑에 가까워질수록 건물의 밀도는 낮아졌다.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 허허벌판에 걷는 이는 위즈뿐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탑 중에 어딜 가야 하는 거지?”

안내원은 톨네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작정 탑까지 오고 보니 사람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위즈는 일단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가기로 했다. 명색이 마법사의 탑인데 무작정 아무 탑이나 들어가서 톨네스 어디 있냐고 묻는 건 곤란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부구조가 뒤틀린 차원계단 같다면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역시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안 되겠어.”

위즈가 생각하는 마법사라는 족속들의 이미지는 괴팍함과 폐쇄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므로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그편이 무난하겠지.”

길을 밟아 돌아가던 위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름 없는 여신상이 빛납니다.>


위즈는 황급히 인벤토리 속에서 여신상을 꺼냈다. 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한 조각상에 은은한 초록빛이 감돌고 있었다. 정령목이라는 특이한 나무로 만든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물건이 갑자기 빛을 내뿜자 위즈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음을 기억해내고 과거 로그기록을 뒤졌다.

“찾았다.”

예전에 위즈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바하르칼 용병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했던 적이 있었다. 더 오션에서 던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 경험삼아 던전공략 베테랑들과 어울린 것이다. 이때 멤버는 던전 공략광인 레비, 바하르칼 소속 마법사 사쿠라, 네크로맨서 빙글뱅글.

적당한 던전을 하나 골라 공략을 마친 뒤 위즈는 이들과 차례대로 대련모드에서 대결을 했었다. 이들의 스킬을 카피캣으로 몰래 훔쳐 익히고, 전투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

이름 없는 여신상이 빛난 건, 그중에서도 빙글뱅글과 대련했을 때이다.

“맞아. 대련모드 상황인데도 퀘스트가 부여되었지. 어디보자……퀘스트 이름이 학살자의 흔적을 찾아서?”


§§§§§§§§§§§§§§§§§§§§§§§§§§§§§§§§§§§§§§§§§§§§§

[?? 퀘스트/ 학살의 흔적을 찾아서.]

이 땅의 어딘가에는 강자가 약자를 핍박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오래전에 벌어진 비극적인 일로서, 이름 없는 여신의 관심을 끈 사건 중 하나입니다.

만약 이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난이도: D± / 레벨제한: 없음.

임무A: 학살의 흔적에 이름 없는 여신상을 가져다 놓을 것.

임무B: 학살의 흔적에 랏센의 머리를 가져다 놓을 것.

보상-A: 칭호 ‘학살을 가로막은자’ 부여.

보상-B: 칭호 ‘학살자’ 부여.

[A와 B의 조건을 가진 2인의 경쟁 퀘스트입니다.]

[만약 A, B 둘 중 하나가 퀘스트를 완료하면, 남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퀘스트를 실패하게 됩니다.]

§§§§§§§§§§§§§§§§§§§§§§§§§§§§§§§§§§§§§§§§§§§§§


위즈는 퀘스트의 난이도부터 확인했다. ±(플러스마이너스)의 난이도를 확인한 위즈는, 시스템 로그를 열어보았을 때의 깊은 빡침을 떠올렸다. 퀘스트가 이루어지는 장소도 힌트도 주어지지 않는 극악의 난이도에 좌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실마리를 찾게 되다니!”

그야말로 운이 따라준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위즈는 마법사의 탑에 가기 전에 일단, 이 퀘스트에 관련된 단서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언제 다시 이곳에 들어오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챙길 건 확실하게 챙길 생각이었다. 굴러들어온 퀘스트를 걷어차 버릴 수 없는 일 아닌가.

위즈는 이름 없는 여신상을 움켜쥐고 여러 방향으로 내밀어보았다. 그러자 여신상에 어린 초록빛이 흐려지거나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 차이는 미묘해서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한참을 주의 깊게 살피니 분간할 정도는 되었다.

“이쪽으로 향할 때 밝아지는군.”

위즈는 여신상을 나침반삼아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보니, 여신상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은은한 떨림까지 느껴졌다. 점점 목적지와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위즈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콧노래도 오래가지 않았다. 위즈는 보수조차 하지 않은 낡은 건물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이곳 어밴던드 폴리스에는 처음 와보는 것일 텐데……어째서 이 골목이 이리도 낯익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층의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위즈는 그게 착각이 아닌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3층짜리 건물이 있으려나?”

생각했던 장소로 움직인 위즈는 담장으로 둘러쳐진 저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로 철창이 쳐진 대문은 만지면 녹이 묻어나올 정도로 헐어 있었고, 담장은 일부가 무너져 사람이 들락거리는 게 가능했다.

“여긴 확실히 내가 와본 곳이야.”

위즈는 냅다 큰길가로 나가서 곧장 북쪽으로 달렸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 방향에는 신전이 있고…….”

낡고 쇠락한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담벼락이 부서지고 종탑이 통째로 주저앉은 건물에는 당연히 사람이 살지 않았다. 떨어져나간 문짝에는 무수히 가해진 공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근처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가.

위즈는 비탈면을 미끄러져 내려가 무덤들을 확인해보았다. 성한 곳이 없이 파헤쳐진 땅에는 관이 없었다. 망자 없는 무덤엔 비석만이 쓸쓸히 남아 있었다.

“이제 알겠어. 여기는 빙글뱅글과 싸웠었던 대련모드 속 전장이야.”

위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련모드에 사용되는 전장은 인스턴트 필드이다. 따라서 그 밖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그런데 파헤쳐진 공동묘지와 부서진 신전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모든 게 빙글뱅글과 싸울 때의 상태와 같았다.

“이거 버그인가?”

돌연 손에 들린 여신상에서 빛이 수그러들었다. 그 대신 떨림은 더욱 강해졌다. 위즈는 여신상을 다른 방향으로 향해보았다. 그 결과 떨림이 멈추는 방향이 존재했다.

“어쨌거나 확인은 해야겠지. 버그이든 아니든…….”

위즈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신상을 이용해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여신상이 진동했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잠시 후 위즈는 공동묘지 너머의 조형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가운데에 위치한 비석과, 좌우에 늘어선 동상 두 개였다.

위즈는 먼저 비석부터 확인해보았다.


§§§§§§§§§§§§§§§§§§§§§§§§§§§§§§§§§§§§§§§§§§§§§

모년 모월 모일.

이든왕국과 리텐왕국은 5년간 지속된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각기 1천의 병력을 데리고 국경도시 레미라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 싸움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며, 패자는 승자에게 굴복한다.

이는 쌍방이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이 전쟁에 갑자기 난입한 자들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사악한 네크로맨서가 공동묘지를 점거함에 따라,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뭉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강력해 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한 용사가 나타났다. 불 속을 걸으며 불을 내뿜는 마법의 장화를 신은 용사는, 네크로맨서가 불러낸 마물과 동귀어진 하여 모두의 목숨을 지켜냈다.

그 외로운 돌진을 지켜본 1인으로서 그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의 희생은 진정 값어치 있는 것이었다.

후인들에게 이 같은 용기를 전하기 위해 이 비석과 동상을 남긴다.

§§§§§§§§§§§§§§§§§§§§§§§§§§§§§§§§§§§§§§§§§§§§§


“불을 내뿜는 장화에, 사악한 네크로맨서?”

위즈는 비석에서 묘사된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설마……아니겠지.”

위즈는 좌측의 동상에 눈길을 주었다. 한손에는 뾰족한 창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방패를 채운 남자가 해골더미를 밟고 서 있었다. 전형적인 전사의 모습이다.

“이자가 용사인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관찰해본 결과, 손에 든 것은 창이라기보다는 그냥 꼬챙이처럼 생겼다. 그 길이도 짧았다. 해골더미라고 생각한 것 역시 이상하게도 생동감이 넘쳤다. 그냥 시체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언데드를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쪽이 네크로맨서라 이건가? 방패를 들었는데도? 빙글뱅글과 닮았군.”

이번에는 우측의 동상을 살필 차례였다. 우측의 동상은 황소만한 짐승을 타고 있는 남자였는데, 양손에는 제각각 도끼와 검을 나눠 쥐고 있었다.

“기마전에 리치가 짧은 무기만 두 개라. 그것도 하나는 도끼? 비효율의 극치군.”

구경을 마친 위즈는 뒤로 돌아서려다가 다시 동상을 올려보았다.

촌스럽지만 의지가 단단해 보이는 표정의 인물이 노려보는 것은 맞은편에 위치한 네크로맨서의 동상. 당장이라도 격돌할 것처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반면 네크로맨서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네까짓 게 덤벼서 어쩔 것이냐는 태도가 느껴진다.

“이거 아무래도 진짜 빙글뱅글과 내 모습인 것 같은데?”

위즈는 여신상을 살폈다. 언제 빛을 뿜어내고 진동했느냐는 듯 얌전하다. 여기부터는 알아서 퀘스트를 깨라는 듯 냉담한 미소를 짓는 여신상.

“뭐 일단 장소는 알아냈으니까, 사실상 완료한 거나 다름이 없지.”

퀘스트 내용에 따르면 이곳은 학살의 흔적을 보존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곳에 가져다 놓을 물건은 ‘이름 없는 여신상’과 ‘랏센의 머리’.

그중에서도 위즈가 가지고 있는 건, 이름 없는 여신상이다.

위즈는 여신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학살의 흔적이 보존된 장소라면 동상과 비석까지 세운 이곳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퀘스트 완료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아무 곳에나 가져다 놓으란 건 아니로군. 하긴 ±(플러스마이너스)난이도이니.”

위즈는 비석을 한 바퀴 돌면서 혹시라도 여신상을 끼워 넣을 홈이 존재하는 지 살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남은 건 동상. 위즈는 자신의 모습이 분명한 동상에 올라가 구석구석을 손으로 만지고 두들겨댔다.

“역시나 그런 건 없어.”

이번엔 빙글뱅글의 동상으로 가서 조사해보았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무 곳에나 가져다두는 건 안 되고, 동상에 끼워 넣거나 올려두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위즈는 팔짱을 끼고 고심했다. 그러다가 여신상에 일어났던 최초의 이변을 기억해냈다.

그 당시 시스템메시지에는, 여신상이 빛나고 있다는 내용이 출력되었었다.

“빛. 빛이다!”

위즈는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어보았다. 그러자 이전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름 없는 여신상이 빛납니다.>


둥둥.

경쾌한 북소리가 울리며 추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

[?? 퀘스트/ 학살의 흔적을 찾아서.][완료!]

‘이름 없는 여신상’을 학살의 현장에 놓아둠으로써, 이곳의 원혼들을 달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상-A: 칭호 ‘학살을 가로막은자’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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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을 가로막는 자]

- 누군가를 지킬 때 잠재력을 발휘해 모든 방어력+α의 효과 ‘철벽수비’를 얻습니다.

(철벽수비→ +α : 적대세력의 숫자)

(실제 방어력이 10인데, 적대세력의 숫자가 20명일 경우, 추가되는 방어력은 9입니다)

- 추가방어력이 적용된 상태에서, 체력의 절반이 깎이면 모든 스탯 +β의 효과 ‘정당방위’를 얻습니다.

(정당방위→ +β : 적대세력의 숫자)

(실제 힘 스탯이 10인데, 적대세력의 숫자가 20명일 경우, 추가되는 힘 스탯은 9입니다)

- 10분간 적 그룹의 리더가 가진 능력치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을 카피해 보탭니다.

(최대 1/3 수준만 적용)

- 적대세력을 공격하면 높은 확률로 주머니를 털 수 있습니다.

- ‘선’ 성향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이끌어 냅니다.

[부가효과 : ‘학살자의 망령’ 사용 시 위력이 1/2로 반감되나, 그 대신 폭주위험이 사라집니다.]

====================================


칭호의 설명을 확인한 위즈는 할 말을 잃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스탯이 두 배 가까이 뻥튀기 되는 칭호라니.

“이건 사기잖아? 아니지, 지금 내 스탯은……크으.”

위즈는 썰렁한 자신의 스탯창을 떠올리며 신음을 삼켰다. 칭호가 주는 효과자체는 좋았지만, 그 덕을 보기엔 위즈의 스탯이 너무나도 낮다.

“잇페인 놈이 밉다.”

위즈는 이를 갈았다.


◇◇◇◇◇◈◇◇◇◇◇◇◈◇◇◇◇◇◇◈◇◇◇◇◇


새로운 칭호를 습득한 위즈는 뿌듯함과 찝찝함의 양가감정으로 복잡해진 머리를 흔들었다.

어찌되었건 볼일은 아직 남아있었다. 바로 퀘스트의 보상을 받는 것.

위즈는 마법사의 탑에 들어섰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마법사의 탑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 용무를 보면 된다고 했다.

“여기도 사차원으로 이어져있다거나 하는 건가?”

위즈는 가까운 탑에 들어가 1층에 서 있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혹시 톨네스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위즈님이시군요?”

“네. 위즈가 접니다.”

“따라오시지요. 사람을 보냈는데 길이 엇갈린 모양입니다.”

“하하. 탑이 원체 커서 별로 헤매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마법사를 따라 작은 방에 들어선 위즈는 바닥에 새겨진 원형문장을 볼 수 있었다. 마법사는 이걸 이용해 다른 탑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군.’

계단만 수십 분을 걸어오는 수고에 비하면 고마울 정도의 배려다.

“눈이 부실 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십시오.”

빛이 번쩍이며 기묘한 부유감이 위즈의 몸을 감쌌다. 위즈는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진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마법진이 그려진 작은 방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운동장만큼 널찍한 원형 홀이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매끈한 바닥과 굵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홀의 한가운데는 천장이 없이 뻥 뚫렸으며, 벽면을 따라 테라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테라스마다 문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마법사는 1층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붉은 천이 걸린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톨네스님의 탑입니다.”

“방이 아니라 탑이요?”

마법사는 빙그레 웃었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위즈는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은 건물의 안이 아닌 밖과 통해 있었다.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바위투성이의 땅. 하늘은 오렌지 빛 석양으로 물드는 중이었다.

사람은 없었다. 그저 덩그러니 의자 두 개와 탁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위즈는 왠지 주인 없는 방에 들어가는 게 켕겨서 목을 가다듬었다.

“이방인 위즈입니다. 톨네스님 계십니까?”

그러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톨네스가 큼직한 쟁반에 차를 내오고 있었다.

“어서 오게. 시간 맞춰 왔구먼. 차가 잘 우러났으니 즐거운 티타임이 될 것 같군.”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위즈는 톨네스가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톨네스는 손수 차를 따르고 쿠키가 담긴 단지를 내어놓았다.

“어떤가? 차 맛이?”

“시원한 맛이 나서 좋네요. 박하향이 나는 것도 같고.”

“맞네. 박하를 좀 넣어보았지. 요새 목이 칼칼해서 말이네.”

“생소한 조합이지만 은은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쿠키도 들어보게.”

와삭. 부서진 쿠키가 찻물에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기름기 하나 없이 고소한 게 부담 없군요.”

“취향이 맞는 사람과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지. 처음 자네를 봤을 때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건……witch에 대해 물었을 때부터인가요?”

톨네스는 싱긋 웃었다.

“바로 그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네. 오해할 틈을 주지 않거든.”


작가의말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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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1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8) +2 14.06.05 975 31 23쪽
119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2 14.05.31 1,616 96 23쪽
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71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9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7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10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11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5 40 25쪽
112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8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2 44 24쪽
11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61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4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5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90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6 33 25쪽
10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2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61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9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9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50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9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7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3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30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5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6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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