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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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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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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4,356

작성
14.05.2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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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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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
22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8.

자신이 묵는 여관방으로 돌아온 위즈는, 약방에서 사온 약들을 늘어놓았다.

“역시 감기약의 양이 제일 많군.”

위즈는 약들을 조금씩 덜어내어 한데 몰아넣고 섞었다. 약수저로 조금씩 양을 조절해가면서, 약을 섞자 즉각적으로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만능조제로 감기약A와 감기약B를 섞어 감기약C를 만들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10분간의 진통・해열・염증완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중복사용에 의한 효과의 중첩이 가능합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어떤 방법으로 약을 섞든지 간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만능조제는 무조건 섞기만 하면 되는 거로군.”

하지만 지금 위즈가 원하는 건, 단순히 약을 섞어 약효를 합치는 게 아니다. 약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약재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약효를 되살리는 것. 그것이 지금부터 위즈가 하려는 일이다.

“나는 약해진 약성을 강화시키는 처리법을 알고 있다. 그걸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위즈는 식료품을 파는 가게에서 구해온 모안티아를 이용해, 감기약에서 필요한 약성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처리 과정을 거친 감기약들을 다시 조합하자, 이번엔 전혀 다른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만능조제로 감기약 a'와 감기약 b’를 섞어 제독(制毒)의 가루를 만들었습니다.>

<독소 배출에 도움을 줍니다. 간접적으로 병증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1시간지속)>

<중복사용에 의한 효과의 중첩이 가능합니다.>


재료로 사용한 감기약에는,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성분의 약초가 들어 있었다. 그걸 감기약에 넣은 이유는 이 약초에 들어 있는 다른 성분 중에, 진통・해열・염증완화가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약초만 사용해도 3가지 효능을 가진 감기약을 만들 수 있기에, 치료사들이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그 대신 신진대사의 활성화 성분은 버려졌다.

하지만 위즈는 보잘것없게 취급받는 성분을 되살려, 체내의 독소를 빼내는 약을 만들어냈다.

엔틸리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병증완화제의 마이너버전격인 약을 만들어낸 것이다.

위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머지 약들을 조합하여 진통성분과 지혈제까지 집어넣었다.


<만능조제로 ‘제독의 가루’와 ‘비전지혈제’를 섞어 ‘수수께끼 가루-X'를 만들었습니다.>

<체내의 독소를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지속시간 30분)>

<출혈을 멎게 하며, 3시간동안 고통을 경감시킵니다.>

<간접적으로 병증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중복사용에 의한 효과의 중첩이 가능합니다. (최대 3회)>


약을 하나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들어간 비용 역시 싸다. 구리동전 27개. 약효의 중첩 때문에 연달아 3번복용해도 구리동전 81개 값이다.

‘값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대체제의 등장. 내 생각대로다. 역시 오리지널 스킬이야!’

다른 스킬과 달리 오리지널 스킬은 NPC나 유저가 직접 개발해 사용하는 것.

효용성이나 위력은 제각각이겠지만, 노멀 스킬만큼이나 성공률이 높다.

그 때문에 생산직계열 스킬임에도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것이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니, 당연히 조심스럽게 조합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조합 속도가 빨라진다. 조합법에 익숙해지자 위즈는 1분에 2회분의 약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위즈는 신이 나서 약방에서 사온 모든 약을 조합해 ‘수수께끼 가루-X’로 만들어버렸다.

이름이 구린 게 문제였지만, 그것만 빼면 매우 획기적인 약이다.

위즈는 다 만들어진 결과물을 하나하나 약봉지에 쌌다.

뭉쳐서 알약으로 만들 시간이 없었기에, 만들어진 약은 이름 그대로 가루 상태였다.

“이제 이걸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일만 남았다.”

위즈는 여관을 나서 분수대 근처의 식당가로 향했다. 이곳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볐다.

단순히 식당이 모여 있기만 한 게 아니라, 환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다양한 메뉴들이 끊임없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곳에는 노점상이 있는 법.

이곳에는 유저들이 좌판을 벌이고 앉아서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도시에 따로 지정된 시장이 상인들을 위한 곳이라면, 이러한 좌판은 일반유저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이렇게 형성된 플리마켓은 엔틸리움 같은 대도시에만 3곳이 있었다.

위즈가 찾은 식당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었다. 영업이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식당가의 아무 곳에서나 좌판을 차릴 수 있었다.

위즈도 빈자리에 앉아 멍석을 깔았다.

늘어놓은 것들은 전부 '수수께끼 가루-X'

그리고 팻말에는 병증의 완화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가격은……은화 1개.

제대로 만든 병증 완화제와 같은 가격이다.

오리지널에도 못 미치는 짝퉁에, 이런 가격을 붙인 건 폭리를 취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건 위즈의 의도와 정반대다.

‘마음 같아서는 공짜로 나눠주고 싶지만……그러면 거들떠도 안보겠지.’

쉽게 얻는 것은 그 가치가 반감된다. 특히 공짜로 제공되는 거라면 싸구려 취급 받기 마련. 게다가 공짜로 나눠주는 사람이 무능력자인 이방인이라면, 위즈가 만든 약은 홀대받아 버려질 것이다.

‘무능력자에 대한 NPC들의 인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야.’

그렇다면 단순히 상품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홍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위즈가 만든 '수수께끼 가루-X'는, 유저가 만든 조합품이다. 따라서 그 정보는 유저만이 알 수 있게 ‘정보창’으로 표시되었다. 하지만 NPC들은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만약 치료사라면 시약을 사용하여 효능을 미리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치료사들은 모두 약의 증산에 동원되었다.

결국 위즈 혼자서 수수께끼 가루-X를 홍보해야 했다.

그래서 플리마켓에 좌판까지 벌인 거였는데…….

‘역시나 손님이 없군.’

정확히는 잠재적인 손님이신, 환자와 그 가족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위즈가 세운 간판을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다.

위즈는 슬그머니 가격을 내렸다. 원래 가격인 구리동전 81개로.

자신이 무능력자인 걸 감안해보면, 은화 1닢은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가격을 내렸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위즈의 앞을 지나가면서 수군거리거나 키득거릴 뿐이다.

“틀렸어.”

그때 플리마켓 한쪽에서 소란이 발생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환자가 쓰러진 것이다.

위즈의 눈이 번뜩였다.

“기회다!”

위즈는 약을 한 봉지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위즈는 약을 홍보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성직자가 달려와 안수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긴 인구유동량이 많은 곳이야. 당연히 성직자가 배치되었겠지.”

위즈는 다시 좌판에 주저앉았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렇게 1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약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다. 위즈는 포기했다.

‘접자.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실제 써보면 기대에 못 미칠지도 모르잖아?‘

위즈는 다시 여관에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때 또 환자가 쓰러졌다. 이번에도 식당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다.

“여자가 쓰러졌다!”

“성직자를 불러!”

하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데도 성직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이미 다른 환자를 치료중이라 당장은 못 온대.”

“누구 유저들 중에 성직자 있습니까?” 치료사도 좋아요!“

하지만 다들 전투계열직업이라 해당사항이 없었다.

위즈는 약을 챙겨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간판을 접어 한손에 들었다. 돌돌 말린 멍석은 옆구리에 꼈다. 위즈는 모여 있는 사람을 지나쳐 여관으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 위즈를 불렀다.

쓰러진 여자를 부축한 남자였다.

“당신! 아까 보니까 약을 팔고 있던데, 치료사 아닙니까?”

위즈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사 아닌데요.”

“팔고 있던 약이 병증을 완화시켜준다고 되어 있던데요?”

“그건 맞지만, 치료사는 아닙니다.”

“그래도 약을 가지고 있지 않소? 돈을 줄 테니까 파시오.”

“생각보다 효과가 좀 떨어질지 모릅니다.”

“알겠으니까 파시오. 얼마요?”

위즈는 은화 한 개를 불렀다. 남자는 즉시 은화를 꺼내주었다. 위즈는 약봉지 3개를 넘겼다.

“이걸 한꺼번에 다 먹여야 합니다.”

“알겠소.”

남자는 식당에서 물을 얻어와 가루약을 개었다. 그리고 묽은 죽처럼 변한 '수수께끼 가루-X'를 한 숟가락씩 떠먹였다.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다 받아먹었다.

“어때 여보? 괜찮아진 것 같아?”

“으으……글쎄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약을 만든 위즈는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조제한 약을 먹은 환자, 그러니까 남자의 아내 머리위에 상태 그래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프에서 점점 초록색이 늘어나고 있다. 3회분을 먹자 약효가 겹치며 상승효과를 낸 것이다.

“……몸이 으슬으슬 춥네요.”

위즈는 남자에게 조언해주었다.

“약하게나마 해열제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몸을 따듯하게 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아내에게 입혀주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속옷상의까지 벗어 아내의 목덜미에 둘러주었다.

“돌아갑시다.”

남자는 아내를 업고서 식당가를 빠져나갔다. 이제 여자의 정수리에 떠오른 그래프는 초록색이 절반이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지켜보던 환자와 가족들이 위즈에게 몰려들었다.

“그 약 내게도 파시오.”

“은화 1닢에 3봉지였지? 돈을 더 줄 테니 10봉지만 파시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자 위즈는 다시 멍석을 깔았다.

“3봉 이상 먹어봐야 효과 없어요. 그러니 환자 한 사람당 3봉지만 사가세요.”


◇◇◇◇◇◈◇◇◇◇◇◇◈◇◇◇◇◇◇◈◇◇◇◇◇


위즈가 만든 '수수께끼 가루-X'는 10분 만에 모두 동이 났다. 100명분밖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약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무리 적게 만들었다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많잖아?’

사실상 인구유동량을 훨씬 뛰어넘는 인원이 몰려든 식당가는,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약을 사겠다며 소리를 질러대니, 위즈는 좀비무리 한가운데에 갇힌 기분까지 들었다.

“약은 다 떨어졌어요.”

“그러지 말고 팔아요! 돈은 가지고 왔으니까!”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다 이야기 듣고 왔어요! 병증완화제 비슷한 걸 판다면서요?”

두서없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맨 처음 위즈에게 약을 사간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병증완화제를 먹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내가 기운을 차렸다.

분명 식당가의 돌팔이 치료사에게 구입한 약이 효험을 본 거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약을 줘요.”

“약이 떨어졌어요. 거짓말 아니라고요!”

“아!”

다 팔리고 약이 없다는 이야기가 파도타기처럼,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약재부족 때문이라고 누군가 뇌까렸다.

“조금만 더 빨리 올걸.”

자신의 느린 걸음을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미적거리며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약방에 가서 재료를 구하려던 위즈는 짜증이 솟았다.

“비켜주세요! 약방에 가야 해요!”

그러자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물었다.

“약방엔 왜 가려고 하는 겁니까?”

“재료가 거기 있으니까요.”

순간 식당가의 소음이 뚝 그쳤다.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 것이다.

“그럼 계속 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까?”

“재료가 있는 한, 만들 수 있어요. 진짜 병증완화제에 비하면, 효과는 확실히 떨어지지만.”

“필요한 게 뭡니까? 말만 하세요. 사올 테니까.”

“에……감기약이랑 두통약 위주로 구입해주세요. 감기약은 A, B 타입 둘 다요. 그리고 식료품점에서 모안티아도 좀 사다주세요. 가지고 있는 게 거의 떨어져 가거든요.”

“정말 그것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네. 그것만 있으면 돼요.”

위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가를 곽 채운 인파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누군가는 약방에 쳐들어가 진열대에 놓인 약들을 쓸어 담았고, 다른 누군가는 짐 속에 처박아놓은 감기약과 두통약을 찾으러 달렸다. 모안티아를 꺾어오겠다며 성 밖으로 나가는 자도 있었다.

잠시 후 그렇게 모인 재료들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위즈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위즈는 즉석에서 모안티아로 약을 가공한 뒤, 그것을 빻아 만든 가루를 정해진 비율대로 섞었다. 그렇게 만든 '수수께끼 가루-X'는 1회분씩 포장되어 환자들에게 넘겨졌다. 즉석에서 약을 삼킨 환자들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

이제 입소문이 널리 퍼져 엔틸리움에 '수수께끼 가루-X'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몰려들자 식당가의 모든 점포는 문을 닫았다. 길이 막히니 장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점 주인들은 항의를 하지 않았다. 그저 마구잡이로 약을 뒤섞는 위즈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대충 만드는 것 같은데 효과가 있다며?”

“그것도 감기약 같은 걸 섞어서 말이지.”

“모안티아도 쓰던데?”

“뒤떨어지는 약성을 강화시키는 재처리 법이라더군.”

“그렇다 해도 이미 약으로 만들면서, 버린 성분들이야. 그걸 되살리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신성왕국의 주민들이다보니 상점 주인들도 기본적인 약학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위즈가 어떤 발상을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상점 주인들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즈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돌팔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군. 무능력자 치곤 제법이야.”

상점 주인들은 막자사발을 들고 바쁘게 약을 갈아 넣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짜 돌팔이라면 곧 큰일 나겠군.”

“그게 무슨 뜻인가?”

“저길 보게.”

오리구이 전문점을 운영하는 상점 주인이, 여성 성직자를 가리켰다. 이방인으로 보이는 여성성직자는 굳은 표정으로 위즈를 바라보다가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저 방향은 설마?”


◇◇◇◇◇◈◇◇◇◇◇◇◈◇◇◇◇◇◇◈◇◇◇◇◇


약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 때문에 위즈는 정신이 없었다.

‘이건 마치 먹이 달라고 보채는 아기 새잖아?’

얼마나 막자사발을 젓고 휘돌렸는지, 이런 메시지까지 떠올랐다.


<근성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앉아서 하는 일에 근성이 다 올랐을까. 아무리 게임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육체를 혹사시키자, 진짜 어깨가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프다. 그렇다고 쉬엄쉬엄 할 수도 없다. 위즈를 둘러선 사람들은, 위즈가 조금이라도 쉴라치면 눈을 부릅떴다.

눈에서 레이저 빔이라도 쏘아붙일 기세다. 이럴 바엔 차라리 시작하지 말 것을……하고 위즈는 후회했다.

‘할 수 없다. 빨리 끝내고 쉬어야겠다. 노가다도 이런 개 노가다는 없을 거야.’

위즈는 기합을 넣고 더욱 격렬하게 손을 놀렸다.

“이야아아압!”

파파파팍!

막자사발에 들어간 알약에서 가늘게 먼지가 피어오르더니, 삽시간에 바스러져 고운 가루가 되었다. 가루는 칵테일을 만드는 용기에 담겨졌다. 혼합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근처 카페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위즈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널찍한 대접에 혼합물을 따랐다.

위즈는 남은 재료를 눈대중으로 확인했다. 대략 100명분의 재료가 남았다.

“막판 스퍼트다!”

그 뒤는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모든 작업을 끝마친 위즈는 흐느적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볕이 참 좋은데도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게임 속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약을 얻어서 돌아갔다. 언제 사람들로 복작였나는 듯, 식당가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위즈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로그아웃 해야겠어.”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막 걸음을 뗀 순간, 뒤쪽에서 beadsman유저와 성기사들이 함께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이에요.”

beadsman의 손가락이 위즈를 가리켰다. 위즈는 영문을 몰라 눈만 끔벅거렸다.

성기사가 물었다.

“이곳에서 무면허 의료행위가 이뤄졌다는 신고를 받았다. 몰랐다면 모르되, 신고를 받은 이상 이를 묵과할 수 없다. 치료사라면 스스로를 증명하라.”

위즈는 인상을 구겼다. 치료사에게 면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당연히 치료사 면허는 없다.

“저는 치료사가 아닙니다.”

“죄를 인정하는가?”

성기사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건틀릿 낀 손을 활짝 펼쳐 내밀었다.

그 행동이 말하는 건 한 가지. 무장해제.

위즈는 가지고 있던 단검을 모두 넘겼다. 어차피 신성왕국 내에서 성기사의 체포에 불응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위즈는 성기사를 따라 신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상점 주인들이 주절거렸다.

“역시나 이렇게 되는군.”

“돌팔이라곤 해도 제법 괜찮은 약을 만들었던 같던데…….”

“하지만 무면허인데다가, 돈까지 받았으니 빼도 박도 못하겠지.”

상점 주인들은 성기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신성왕국 전역에 성기사들이 증강되었다. 패트롤 중인 성기사의 숫자도 평소보다 많았다. 그러니 돌팔이가 파는 약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진즉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돌팔이의 약 때문에 사상자가 생겨나진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두고 보는 쪽으로 결론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beadsman이 신고를 했으니,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신고 받은 즉시 잡아가면 성난 군중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에, 사람들이 해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위즈를 잡아간 것이다.

하지만 성기사들이 아무리 조심해도 소문은 퍼졌다.

“가루약을 만들어주던 그 돌팔이가 성기사들에게 잡혀 갔다더라.”

“진짜 돌팔이였어? 치료사 면허 없었대?”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그 약을 먹고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걸?”

병증완화제가 마지막으로 풀린 건 어제 아침. 그나마 수량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병증완화제를 마시지 못했다.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약의 증산 계획이 알려졌지만, 내일 아침에나 약이 나오기 시작한다니 당연하다.

재수 없으면 오늘밤을 못 넘기고 죽는 사람이 나오게 될 거라며 불안해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돌팔이가 만든 약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들은 그 덕에 자신들이 살아있는 거라고, 돌팔이에게 감사해했다.

그런데 돌팔이가 잡혀들어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환자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나둘 신전으로 모여들었다.

환자들은 소리 높여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신전 앞에 진을 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전을 지키던 성기사들은, 그 어떤 무서운 적보다도 살벌한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야 했다. 원망어린 사람들의 시선을 묵묵히 받으며 성기사들은 진땀을 뺐다.

“어째서 환자들이 우릴 노려보는 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


같은 시각.

낮에 연행된 돌팔이 치료사를 조사하기위해 취조실에 들어선 성기사는 화들짝 놀랐다.

왜소한 체구의 남자는 어딜 가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성아처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마물이 득실거리는 숲에서 사람을 구해낸 용기를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이방인.

또한 그녀는 엔틸리움을 구해낸 은인이기도 하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요? 돌팔이 치료사는 어디 있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게 접니다.”

위즈는 정체모를 자들이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변장을 한 채 활동하고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이거 난처하게 되었구려. 돌팔이 치료사와 당신이 동일인물이라니.”

성기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돌팔이 치료사 문제는 자주 발생하는 문제요. 그렇지만 일일이 대처하진 않았소. 원래대로라면 이건 치료사 길드에서 해결할 문제라오.”

“그렇다면 어째서 신전 측에서 나선 겁니까?”

“약의 증산 때문에 치료사들이 바쁘질 않소. 그러니 우리들이 나설 수밖에. 하지만 우리 역시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오. 대중을 착취하거나, 엉터리 약 때문에 사람이 상하는 일이 없다면 그냥 눈감아줄 생각이었지. 하지만 신고를 받은 이상 단속할 수밖에 없다오.”

위즈는 자신을 가리키던 beadsman을 떠올렸다.

“그녀가 절 신고한 거로군요.”

“같은 성직자가 신고를 했으니 더더욱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오.”

“제가 면허도 없이 의료행위를 한 건 사실입니다. 처벌해야한다면 처벌 받을 수밖에 없지요. 전 어떤 벌을 받게 되는 겁니까? 벌금? 구류? 징역?”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럴 수가 없게 되었소이다.”

성기사는 가지고 온 서류뭉치를 뒤적이더니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수도에서 교황들이 회의한 내용이오. 이방인 위즈는 바하를 구해낸 은인이니, 최대한 융숭하게 대접하여 받은 은혜의 일부라도 갚길 바란다고 적혀 있소. 그리고 윗분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성기사들은 당신에게 큰 빚을 지고 말았소. 그런데 어찌 죄를 물어 감옥에 처넣을 수 있겠소. 게다가…….”

성기사는 위즈의 뒤쪽에 나 있는 창문을 열었다. 신전 앞의 광장이 드러났다. 한밤중이라 한산해야 할 광장엔 횃불들이 가득했다.

“대중들도 원하지 않는구려.”


작가의말

연참 9일째.




2014.11.08 수정

[9,838 => 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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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80 시든나무
    작성일
    14.05.21 23:46
    No. 1

    세상 어딜가나 좋은일 하고도 그 놈의 쓰잘데기 없는 법 이나 면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꼭 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시러스
    작성일
    14.05.22 00:22
    No. 2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이름좀늘려
    작성일
    14.05.22 07:34
    No. 3

    으어어아우우아트카아르으트크우으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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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내안의천사
    작성일
    14.05.22 14:35
    No. 4

    시든나무님 세상에 좋은일 하고 고생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법 이나 면허는 좀 더 안좋은 일을 막을 쓰잘데기 있는 일이 아닐까요? 지금 작중에서도 성기사들의 대처는 굉장히 융통성 있는 편이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4.05.22 19:21
    No. 5

    성기사들의 대처는 옳았다고 봅니다. 저런 대에서 혹 돌팔이가 활동하다가 일시적으로 생명을 갉아먹어 생명을 유지하고 떼거리로 다 아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분명 좋은 의도였으나 절법한 절차를 밟지 않아 취조를 받은 것은 당연한겁니다. 암튼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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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2) +3 14.06.26 695 24 30쪽
123 12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1) +2 14.06.17 1,106 20 31쪽
122 11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0) +2 14.06.14 682 18 26쪽
121 11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9) +2 14.06.09 1,602 91 28쪽
120 11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8) +2 14.06.05 974 31 23쪽
119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2 14.05.31 1,615 96 23쪽
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70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7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5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09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10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4 40 25쪽
112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7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0 44 24쪽
»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60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3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3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88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5 33 25쪽
10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1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59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7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8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49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7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5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2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29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3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5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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