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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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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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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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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6.

위즈가 화염돌격을 배운 것은 바하르칼 용병과 함께 움직이던, 던전공략광-레비를 통해서였다. 그때 레비는 진각과 화염돌격을 함께 섞어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위즈는 정령강화(바람속성)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코로나라는 시너지 스킬을 얻었다.

그동안 얼마나 재미를 봤던가.

코로나는 잘만 쓰면 잇페인 같은 상대와도, 호각으로 싸울 만큼 훌륭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시너지 스킬은 조건만 갖춰지면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러고 보니 정령강화(바람속성)을 배웠던 곳이 에켈산이었지.’

에켈산에서 노상강도를 이끌던 우두머리들을 해치우면서 얻게 된 스킬이 정령강화.

그때 만난 우두머리들은 바하르칼 용병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 화염돌격과 정령강화 두 스킬 모두, 바하르칼 용병을 만나지 않았다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암살자를 보낸 것은 잇페인, 그리고 잇페인은 바하르칼의 간부. 사실상 암살자들은 바하르칼에 소속되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암살자들이 코로나를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콰쾅!

배리어와 코로나가 부딪쳐 서로 상쇄되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열풍이 지하수로를 휩쓸었다. 앞뒤로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이런 일직선의 통로에서는, 코로나와 같이 일정 범위에 피해를 입히는 스킬을 피할 수 없다.

‘그동안 꾸준히 코로나를 써온 나다. 코로나의 약점 정도는 알고 있어.’

코로나는 마법이 아니면서도 화염으로 데미지를 입힌다. 그래서 마력의 컨트롤이 힘든 신성왕국에서도 저렇게 펑펑 써댈 수 있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화공을 떠올리면 된다.

코로나는 응집된 화염을 쏘아내는 기술에 불과하다.

코로나 역시 불이었다.

“중급마법사 한사람이 윈드 커터를 쓴다면 보통 몇 개나 나가죠?”

“30개 이상은 나간다고 보면 되오. 하지만 이곳은 신성왕국이니 절반으로 떨어지겠지.”

“그렇다면 다음에도 코로나가 들어오면, 일제히 통로의 왼쪽에 대고 윈드 커터를 쏘아주세요. 그 다음엔 지금까지처럼 배리어로 단단히 방어해주시고요.”

“뭔가 방법이 있는 거요?”

“저놈들에게 한방 먹여줄 거예요.”

위즈와 마법사의 대화를 들은 암살자들이 서둘러 코로나를 내쏘았다. 대비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칠 속셈이다. 화염의 발자국을 밟지 않고 쏘아낸 코로나는, 조금 전보다 기세가 약했다. 하지만 뒷줄에 서 있던 암살자들이 던진 화염병에서 불꽃이 치솟자, 코로나는 한층 매섭게 타올랐다.

“윈드 커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이 통로 왼쪽의 벽을 향해 쏟아졌다. 벽면이 깎여나가며 솟은 먼지가 윈드 커터와 함께 불길의 한쪽을 찢어발겼다. 원래 바람을 쐬면 불길이 더욱 강렬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물체를 절삭할 만큼 고도로 압축된 바람은 너무도 묵직했다. 그런 게 수십 개나 날아들자 통로 왼쪽에는 일시적으로 바람의 장벽이 가로막은 효과가 생겼다.

코로나의 불길은 바람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비어있는 오른쪽으로 몰려 나왔다.

그곳에는 위즈가 코로나의 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염돌격!”

위즈는 스킬을 발동하자마자 주저 없이 뜨거운 불길로 뛰어들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5초간 화염저항이 100%가 되니, 위즈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속에서 위즈는 바닥에 이글거리는 주홍빛 발자국을 골라 밟았다. 발자국에 발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위즈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번쩍거렸다. 화염의 발자국이 마구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위즈가 밟은 화염의 발자국은 10개. 하지만 고농도로 압축된 코로나의 화염을 흡수한 탓인지, 실제 중첩된 양은 10개가 아니었다.


<화염의 발자국 50개를 밟았습니다.>

<화염돌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효과가 중첩됩니다.>


위즈가 화염의 발자국을 밟은 탓에, 코로나의 기세는 한풀 깎였다. 그 덕분에 코로나를 막아내고도 배리어는 멀쩡했다.

“좋아! 이제 네놈들에게 돌려주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위즈는 곧바로 코로나를 쓰지 않았다.

암살자들이 화염 돌격을 사용하면, 5초간 화염저항 100%가 된다. 정직하게 코로나를 먹여서는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위즈가 했던 것처럼 화염의 발자국을 밟아, 코로나를 흡수해버릴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위즈는 범위공격에 해당하는 코로나로, 암살자 한 사람을 노릴 생각이었다.

바로 암살자의 입속에 쳐 넣어 버리는 것.

아무리 화염저항이 100%라고 해도, 몸속에서 폭발하는 코로나로부터 무사할 리 없다는 게 위즈의 판단이었다.

‘일단 매스블라인드로 놈들의 시야부터 제한시켜야겠다.’

위즈는 섀도 런을 이용하여 단숨에 암살자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코로나의 화염 때문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섀도 런을 쓰자마자 새로운 시너지 스킬이 등록되었다.


<조건이 충족되어 시너지 스킬 디아볼릭 브레스(Diabolic Breath)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디아볼릭 브레스(Diabolic Breath) / 암염(暗炎) ]

화염의 발자국을 50회 이상 중첩한 뒤, 암(暗)속성의 기술을 쓰면 발동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화염데미지의 20%가 암속성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염은 화염저항이 80%만 적용됩니다.

화염에 맞은 대상은 불이 꺼질 때까지, 앞을 볼 수 없습니다.

====================================


“디아볼릭 브레스라고?”

화염과 바람은 궁합이 잘 맞다. 그래서 시너지 스킬로 코로나를 얻었을 때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헌데 화염과 어둠은 그렇지 않다. 불과 얼음만큼 극과 극은 아니지만, 딱히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두 속성이 서로 어우러지며 새로운 효과가 생겼다.

위즈는 비로소 화염돌격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이제 보니 화염돌격은 다양한 스킬조합을 만들어 내는 피스였구나!’

화염돌격은 스킬 그 자체로는 진각만큼이나 별 볼일 없다. 주변에 화염을 퍼뜨리거나, 낮은 고정 데미지를 보태는 수준. 하지만 다른 스킬과 함께 연동하면, 이런 식의 변칙적 운용이 가능해진다.

위즈는 쾌재를 울렸다.

디아볼릭 브레스는 화염저항이 80%만 적용된다. 즉, 화염돌격을 가진 암살자들이라 해도, 20%의 데미지는 받아야 한다. 완벽하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

게다가 디아볼릭 브레스가 입히는 데미지는, 그냥 마법피해가 아니다.

무려 ‘고정’ 마법피해 120.

마법방어력을 무시하고 들어가는 순수 데미지라는 점이다.

위즈는 새로 얻은 시너지 스킬, 디아볼릭 브레스를 사용했다.

암살자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위즈의 발밑에서부터, 시커먼 연기와 보랏빛 화염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암살자 몇 명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공격인 탓도 있었지만, 화염속성이 분명한 공격이라 당연히 막겠지 하고 방심한 탓이 컸다. 암살자들의 눈에 시커먼 연기 같은 게 어른거렸다.

블라인드 상태에 걸린 것이다. 그들의 몸에는 불이 옮겨 붙어 있었다.

“화염돌격이 발동 중인데도 화염저항을 무시해?”

“이 블라인드는 또 뭐야?”

암살자들은 자신들에게 걸린 블라인드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펼쳐졌다는 걸 알았다. 마법사가 일일이 건 게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눈치 했다. 무능력자라고 무시했던 이방인이 부린 재주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암살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 틈을 노려 위즈는 암살자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도 맞지 않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공격이 먹힌다. 하지만 위즈의 낮은 공격력은 이들에게 모기가 무는 수준의 피해만을 입혔을 뿐이다, 차라리 디아볼릭 브레스로 입힌 120의 고정 데미지가 더 높았다.

그렇다고 급소를 노려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암살자들은 위즈의 공격이 위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런 위즈가 장님이나 마찬가지인 자신들의 급소를 노릴 거라는 것쯤은 쉽게 예상가능한 일.

암살자들은 뛰어난 기감으로 급소를 노리는 위즈의 공격을 피해냈다.

“뒤로 물러나시오!”

마법사들이 공격을 서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엔 배리어를 맡은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마법사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즌 스피어가 생겨났고, 뒤이어 플레임 스피어가 생겨났다. 두 주문은 파직거리며 서로의 존재를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극과 극인 속성의 주문은 서로 부딪쳐 상쇄되는 게 상식.

저런 식으로 주문을 운용했다간 헛되이 마력만 날리는 꼴이다.

그래서 위즈는 한마디 해주려다가, 저들이 중급마법사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내가 아는 걸, 저들이라고 모르겠어?’

뭔가 노림수가 있겠거니 싶어서, 위즈는 즉시 섀도 런으로 몸을 빼냈다. 그리고 마력을 보는 눈을 발동시켰다. 어째서 극성인 주문을 사용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위즈가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완성된 주문들이 쏘아져 나갔다.

먼저 프로즌 스피어가 나란히 암살자들을 덮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살자들이었지만, 주문이 날아드는 것을 직감했는지 다들 방패를 들어 올려 마력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프로즌 스피어는 방패에 닿기도 전에 스스로 폭발했다. 버스트 폼 같은 걸 사용해서가 아니다.

프로즌 스피어를 노리고 날아든 플레임 스피어 때문이다.

냉기와 화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극과극의 두 속성이 부딪치며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당연한 결과.

하지만 위즈의 눈에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명중직전에 서로 상쇄 된 주문으로부터 강제로 환원된 마력이 풀려나왔다. 그렇게 풀려난 마력은 넓게 흩어지며 주변에 거센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 흐름에 붙잡힌 암살자들은 방패를 떨어뜨리며 고꾸라졌다. 위즈는 그 모습에서, 거미줄에 걸린 벌레를 떠올렸다.

“속박?”

“상극의 마력을 부딪쳐서 몸을 경직시키는 기술이오. 잘만하면 이대로 계속 저들을 붙잡아둘 수도 있지.”

“이런 기술이 있다면 진즉 썼어야죠.”

“지하수로처럼 좁은 곳에서는 우리까지 피해를 입으니까 쓰지 않았소.”

“무슨 피해요?”

“일시적으로 EMP가 불안정해져서 우리들 역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된다오. 이런 곳에서는 배리어도 겨우 칠거요. 하지만 이젠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지.”

마법사들이 가리키는 곳을 본 위즈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암살자들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빌헬름텔이 활시위를 당겼다. 이미 그가 날린 화살에 맞은 암살자 서넛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수시로 탐지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통로의 암살자들을 처리한 빌헬름텔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패널티까지 무릅쓰며, 암살자들의 발을 확실히 묶어놓은 것이다.

빌헬름텔이 이곳에 있다는 건, 다른 통로의 암살자들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게 확실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빌헬름텔의 독무대였다. 빌헬름텔은 가만히 서있는 암살자들을 표적삼아 활을 쏘아댔다. 샤프슈터로의 전직을 앞둔 빌헬름텔의 화살은, 암살자들을 방패와 함께 꿰어버렸다.

하지만 일이 쉽게 풀려가지만은 않았다. 뒤늦게 몸에 붙은 불을 끈 암살자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위즈는 이자가 암살자들의 리더임을 알아차렸다.

“행운 스탯 600짜리가 너냐!”

위즈는 진각과 촌경을 함께 사용해, 무신장을 때려 넣었다. 하지만 암살자 리더는, 어깨를 틀어 무신장의 충격을 흘려내며 위즈를 스쳐지나갔다. 놈이 노리는 건 아이린.

“막아요!”

마법사들이 호신용 단검을 뽑아 휘둘렀으나, 암살자의 재빠른 움직임 때문에 하나도 맞지 않았다. 암살자 리더가 아이린에게 당도했다. 아이린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암살자를 올려다보았다.

“죽어라!”

암살자는 달리던 속도 기세를 실어 아이린의 가슴팍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아이린의 몸이 붕 뜨며 뒤로 내팽개쳐졌다.

“아이린!”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해 단숨에 아이린의 옆으로 이동했다.

암살자 리더는 손을 탁탁 털었다.

“임무는 완료되었다.”

그때 바닥에 쓰러진 아이린이 꿈틀거렸다.

“아야……너무 아파.”

아이린은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썼다. 암살자 리더가 눈을 치떴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갑옷을 입지도 않았는데?”

위즈는 아이린이 걸친 로브를 가리켰다.

“이것에는 스톤스킨 주문이 걸려 있거든.”

위즈의 말이 끝나자마자, 암살자 리더는 혀를 둥그렇게 말고는 퓻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아이린이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따가워…….”

“아까 만들어준 거 있지? 그걸 먹자꾸나.”

아이린은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마개를 열고 꿀꺽꿀꺽 소리 내어 마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암살자 리더가 주춤거렸다.

“설마 그건 해독제냐?”

“맞아. 이런 경우도 있을까 싶어서 미리 준비해둔 것이지. 어렵게 구한 고급 해독제니까, 희귀한 맹독이라 해도 당장 죽지는 않아.”

“빌어먹을!”

암살자 리더가 몸을 박찼다. 직접 목을 딸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못가서 암살자 리더는 몸을 비틀거렸다.

그의 어깨에 단검 하나가 박혀 있다. 암살자의 리더는 떨리는 손을 들어 단검을 뽑아냈다. 단검에 은은한 녹광이 어려 있다. 암살자 리더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초록의 단검……선배이셨소?”

리더의 얼굴이 아무것도 없는 지하수로의 천장을 향했다. 그러자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은신을 해제한 던컨이었다.

“선배는 손 털었다고 들었는데……어째서 이곳에?”

던컨이 입을 열었다.

“저 W라는 이방인에게 진 빛이 있어서 말이네. 이런 말은 자기자랑 같아서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그만 포기하고 물러나는 게 어떻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장소는 암살자의 놀이터 아닌가. 고급암살자인 내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자네들에겐 승산이 없다네. 게다가 이미 할 건 다해본 것 같구먼. 미련은 안 남았겠지?”

“처음부터 우리들은 질 싸움을 하고 있었군.”

암살자 리더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


위즈가 게임을 처음 시작한 장소는, 크레센토 왕국의 수도인 미노클이다.

이곳에서 위즈는 난감한 트러블에 휩쓸리게 되었다.

인육만두라는 이름의 도살자 유저를 잡은 것.

게임을 시작한지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루된 NPC가 던컨.

‘전직’암살자라는 신분을 가진 던컨은, 인육만두 일당에게 딸을 납치당했다. 그리고 인육만두는 딸을 살리고 싶다면, 어떤 노인을 죽이는 게 좋을 거라고 협박했다.

그 노인은 크로델 보육원의 원장이었다.

악덕대부업자인 아르비튼 때문에 보육원을 빼앗겼기에, 원장은 자작의 저택 앞에서 단식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던컨은 이를 거절했다.

던컨 역시 크로델 보육원 출신. 자신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원장을 죽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던컨의 반응에 열 받은 인육만두는 자신이 나서 원장을 죽여 버렸고, 이후 던컨의 딸을 구하려는 크로델 보육원 출신 NPC들을 계속 살해했다.

딸 때문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던컨은 괴로워했다. 이때 위즈가 나타나 인육만두를 잡았고, 던컨의 딸도 구해낼 수 있었다.

이후 과거 암살자였음이 드러난 던컨의 처분은 미노클 왕실에 맡겨졌다.

미노클 왕실은 던컨이 개과천선했고, 그가 죽인 사람들은 타국의 인물인 점을 이유로 과거의 죄를 묻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던컨을 자주 고용한 사람 중에는 미노클 왕실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선처할 수 있었던 것.

그 덕에 던컨은 어여쁜 아내, 귀여운 딸과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런 던컨이 엔틸리움까지 온 것은, 그와 같은 크로델 보육원 출신인 라미즈의 요청 때문이다.

약초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신성왕국 바하의 소요는, 신성왕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성왕국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나라다.

활발하게 신약 개발이 이루어지며, 치료사들의 수준도 매우 높다. 게다가 디바인 파워를 다루는 국민이 전체의 1/4이나 된다.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치료가 시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치료사를 많이 양성하고는 있지만, 그 수준이 신성왕국에 미치지 못한다. 디바인 파워를 다루는 사람은 더욱 귀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신성왕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환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대륙의 모든 사람들은 치료기회가 늘었고, 이로 인해 수명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로 인해 삶의 질도 높아져서, 사람들도 많이 느긋하고 유순해졌다.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지 않는 한, 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만큼 민심의 안정에는 신성왕국의 역할이 크다.

헌데 신성왕국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당장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왕국은 부랴부랴 나라에서 비축한 약재들을 추려 신성왕국에 보냈다.

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이제야 겨우 출발하고 있다.

신성왕국 측에서는 똥줄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불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인데, 약초의 운송이 늦어지고 있으니 당연하다.

이때 한시가 급한 신성왕국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유저들이다.

유저들은 사비를 털어 신속히 이동을 시작했고, 속속들이 신성왕국의 대도시에 약재를 공급중이다. 비록 가져오는 약재의 수량이 적다하나, 움직이는 유저들의 숫자가 많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크게 도움이 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한 것은 NPC도 마찬가지였다.

미노클에서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라미즈는 휴가를 내고, 지인들이 가진 약초를 몽땅 수거해 엔틸리움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직 암살자인 던컨은, 이 여행의 안전을 책임지는 보호자로서 함께 온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엔틸리움의 상황은 괜찮은 걸로 보이는구려. 다른 도시는 난리도 아니라던데.”

“약성강화법의 공개로 약이 증산되었거든요.”

“다행이군. 그런데 얼굴빛이 좋지 않구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위즈는 렌틸과 아이린이 처한 상황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던컨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런 쳐 죽일 놈들이 있나! 보복으로 어린애를 죽이려 한다고?”

자신의 딸을 납치한 인육만두 일당의 일이 떠올라서인지 그는 유난히 분노했다.

“남의 일 같지가 않군. 내가 도와주겠소. 전직이지만, 이래봬도 고급 암살자였다오. 그리고 예전에 부상을 치료하러 엔틸리움에 머문 적이 있어서, 이곳 지리도 빠삭하지.”

지하수로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던컨이었다.

여기에 라미즈와 함께 온 미노클의 사서들까지 가세했다. 이들 역시 초급 마법사 수준의 주문은 쓸 수 있었다.

“필사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까?”

위즈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최초의 스킬인 필사를 가르쳐준 건, 무뚝뚝해 보이는 도서관 사서 라미즈.

그 역시 던컨의 딸을 찾기 위해 애쓰던 사람이라, 암살 위협에 노출된 아이린의 사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렇게 아이린을 구하려는 사람이 여섯이나 추가 되었다.

이들 중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사람은, 단연 던컨이었다.

‘초록의 단검’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고급암살자답게 던컨은 다른 통로의 암살자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한 것이다.

아이린을 노리는 암살자들의 리더가 쉽게 굴복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사람의 인연이란 건, 정말 알 수가 없군.”

레미라 마법사들은 구석에 처박힌 하급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전원 무장해제당한 암살자들은 멍한 눈으로, 자신들 앞에 버티고 선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 남자는 던컨이라는 이름의 전직 암살자.

이 전직 암살자는 초록의 단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별명을 가지는 건, 고급암살자만이 해당되었다.

그는 대륙의 귀족들을 잠 못 자게 만들었던 악명 높은 사신이었다. 그의 은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귀족들이 그날은 단잠을 잤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런 유명인이다 보니, 레미라 마법사들도 그 이름을 한번 정도는 들어보았다.

그런 사람이 무능력자인 위즈에게 은혜를 입었으며, 아이린의 불행을 안타까워해 힘을 빌려주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지금 상황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하지만 하급암살자들이, 던컨이란 자에게 굴복하여 무장해제 당한 건 사실이다.

“이렇게 되니 믿지 않을 수 없군.”

위즈는 놀라는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건 죄송해요. 성기사들이 지하수로를 순찰하는 타이밍을 피하려면 서둘러야 했거든요.”

“괜찮소. 그나저나 저기 있는 마법사들도 같은 편인 것 같소만?”

“저분들은 미노클에서 도서관 사서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위즈는 라미즈와 그의 동료들을 소개했다. 사서들은 레미라에서 온 중급마법사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 눈빛을 받은 중급마법사들은 점잖게 감사를 표시했다.

마법사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던컨은 하급암살자들을 마비독으로 완전제압하고는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다.

“이놈들아! 나도 사람 죽이는 암살자였으니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다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네놈들은 상도덕도 모르는 것이냐? 아무리 명령이라도 그렇지, 어린애를 해치우겠다고 135명이나 동원해?”

하지만 마비독이 주입된 하급암살자들은 입도 벙끗 못했다.

“그래. 듣자하니 잇페인이란 자가 그리 무섭다더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네놈들도 평생을 피 보며 살고 싶진 않을 거 아니냐. 언젠가는 여자도 얻고, 아이도 낳을 거 아냐? 그때 아이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는 거냐? 부끄럽지도 않냐?”

암살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던컨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돈만 주면 아무나 죽이는 암살자라고 해도, 어린애는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어른의 허리높이에도 못 미치는 계집아이를 죽이려 했다. 게다가……암살에 성공이나 했으면 다행인데, 모두 당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135명이 전부.

마비되지 않았다 하여도 할 말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래도 까마득한 후배들이라, 이번 한번만 봐주는 거다. 만약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면……그때는 내 단검이 진짜 초록색으로 빛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암살자들은 기가 죽어 눈알만 위아래로 움직여 긍정의 의사를 표시했다.

말로 윽박질러 암살자들의 전의까지 꺾어버린 던컨이 뒤돌아섰다.

“갑시다.”

위즈 일행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갈래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고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쇠창살로 막혀 있던 통로들이 전부 무너져 있었다.

“확실하게 틀어막았군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위즈는, 이곳에서 적을 분산시킬 생각을 했다.

‘세 갈래 운명의 길’로 만든 분신을 이용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속은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 나와, 다른 통로로 들어가면 말짱 헛것이었다. 그래서 빌헬름텔과 던컨이 뒤에서 암살자들을 기습한 것이다. 이는 통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은 도서관 사서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위즈는 무너져 내린 천장으로부터 계속 흙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바위위에 토사가 계속 쌓여, 무너진 곳을 치우고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만 가지고 괜찮겠습니까? 뒤쪽은 이렇게 틀어막았지만, 지하수로는 성벽너머 바깥과 통하지 않습니까?”

“물론 암살자들은 그쪽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그렇다고 무사히 나가게 둘 수는 없지요. 직접적으로 아이린을 노리지 않더라도, 다른 암살자를 돕기 위해 훼방정도는 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지하수로부터 빠져나온 다음 이야기를 하죠. 싸우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크게 울려 퍼졌을 겁니다. 지금 당장 성기사들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모두가 공감했다.

던컨과 빌헬름텔의 경우는 조용한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위즈와 레미라 마법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터뜨리고 부수고. 폭발에 폭발을 거듭 일으켰으니, 지상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잠이 다 달아났을 것이다.

“지하수로의 입구는 이곳 하나뿐이 아니오.”

던컨은 혹시나 성기사들과 마주칠 가능성을 고려하여, 들어올 때와 전혀 다른 길로 앞장섰다. 그의 안내를 받아 빠져나온 곳은, 치료사길드와 가까운 골목이었다.


작가의말

연참 17일 째.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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