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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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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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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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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4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8.

밤새 말을 달려 돌아온 엔틸리움에서는 그 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

왕래가 자유롭던 정문은 굳게 닫혔고, 그 옆의 작은 쪽문만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줄이 엔틸리움을 한 바퀴 감은 상태.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건 다름 아닌 성기사들이었다.

쪽문의 양옆에는 성기사들이 일일이 통행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어찌나 깐깐한지 출입하는 사람의 인원이며 무기 소지상황까지 꼼꼼하게 조사 중이다.

뿐만 아니라 환하게 불을 밝힌 성벽에서는 평소보다 많은 성기사가 서 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약재를 둘러싼 다툼이 끊이질 않으니, 신성왕국 곳곳에서 연일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러다 성직자가 휘말려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성왕국에서는 더 이상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치안악화를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가 성기사들의 대대적인 출동.

엔틸리움의 성벽에 늘어선 성기사의 수는 얼핏 봐도 100을 훌쩍 넘는다.

이는 집단공격기를 사용가능한 최소한의 숫자.

다른 직업군의 집단공격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범위를 자랑하는 성기사의 집단공격기는,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한 분쟁 억지력을 제공해왔다. 이 점이 신성왕국이 노리는 것이었다.

줄을 선 사람들도 불평은 하고 있을지언정, 누구하나 소리 높여 따지지 않았다.

공포로 억압하여 얻은 통제는 반발을 사기 쉬웠지만, 그게 신성왕국이 하는 일이니 다들 아무 말도 못했다. 신성왕국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많이 참아준 것이었고, 이러한 배려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다툰 건 이들이었다.

“약재 때문에 싸우는 일은 줄어들겠군요.”

“당장은 그렇겠지. 당장은.”

렌틸은 지금의 평화가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약재를 찾아 돌아다녀보니 알겠더군. 바하르칼이 쓸어간 게 너무 많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요? 약초야 시간이 지나면 곧 생산될 테니까요.”

렌틸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약초의 수량과 가격을 적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거기엔 상인들의 푸념까지 적혀 있었다. 아무리 상품을 주문해도 수량이 없어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약재는 채취 후 곧바로 쓰는 건 힘드네. 말리거나 찌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독성이 제거되고, 운송 중에 상할 염려도 줄어들지. 이 과정에 열흘이 걸린다면, 운송과정은 그 배가 걸릴 걸세.”

“한 달이나 약초파동이 계속된다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힘든 건 환자와 가족들이지. 이틀……아니, 하루 뒤면, 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할 거네.”

“그렇게 빨리요?”

“바하까지 찾아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을 거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안 되니까 온 경우지. 누구하나 급하지 않은 환자가 없어. 당장 필요한 약을 쓰지 못하면 곤란한 사람이 많을 거네. 이미 만들어둔 약이 있으니 아직까지는 성기사들로 통제하지만, 그것마저 다 소모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저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겠군요.”

가족을 잃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폭도로 변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이들의 절망과 분노의 화살은, 약초부족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신성왕국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진짜 전투부대가 아니라 해도, 많은 숫자의 민간인이 불만을 품고 움직인다면, 이는 충분히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대위기다.

이 위기를 해결하려면 당장 약재를 구해 와야 한다. 허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

남은 것은 폭도들을 전부 죽이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신성왕국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것이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 오명을 뒤집어쓰느냐. 아니면 폭도들을 건드리지 않고 자멸할 것인가.

한 국가를 다스리는 수장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도들의 본질은 다른 왕국 사람들. 만약 폭도들을 죽이게 되면, 타 국가들과 신성왕국의 사이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다면 그건 바하르칼 용병들 때문이야.’

위즈는 시에니투스에서 바하르칼과 결탁했던 무법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마법시약의 재료와 약재들을 긁어모아 넘겼다. 또한 대륙 곳곳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혼란을 일으키기로 모의했다. 이때 당시엔 이들의 무력에만 정신이 팔려 무심코 넘겨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산적이나 해적들만으로 여러 나라를 뒤흔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바하르칼의 수뇌부들이라고 이걸 몰랐을까?’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키워갔다.

바하르칼은 정말 무법자들을 이용해 1대륙을 도모할 생각이었는가?

그렇게 보기엔 바하르칼 용병들과 변절한 무법자들이 몰래 만난 장소가 문제다.

‘그들은 시에니투스 근처에서 만났다. 시에니투스는 무법자들을 위한 중립도시야. 이건 마치 화약통 옆에다 불을 피운 격이잖아?’

위즈는 산적이나 해적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재기하다시피 쓸어가 버린 약재가 진짜 노림수였음을 깨달았다.

그 결과가 지금 신성왕국의 긴장상태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이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폭도로 변한다면?

그리고 신성왕국이 폭도들을 처단한다면?

겉으로는 정당한 무력행사지만 폭도들은 원래 다른 왕국의 백성들이니, 그 본질은 타 왕국의 백성을 학살한 게 된다.

자신의 백성을 죽인 신성왕국을 좋아할 왕국이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이건 스캔들이야.’

만약 바하르칼이 레미라를 점령했다면……1대륙 침공의 적기는 지금이었다.

“이것도 바하르칼에서 계획한 일일까요?”

“1대륙을 침공한다면 어수선한 편이 좋겠지.”

“레미라에서 바하르칼을 꺾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위즈는 이게 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레미라에서 물리친 건, 선발대에 불과하다.

본 병력은 아직 바하르칼에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는 상태.

각 왕국의 군함이 무력시위를 해서 바하르칼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만약 신성왕국에서 폭도 섬멸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다면, 더 이상 바하르칼에만 신경 쓸 수 없게 된다.

왕국의 군함들이 뱃머리를 돌리면, 바하르칼의 본 병력은 계획대로 다시 레미라를 치고 1대륙까지 넘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억측에 불과해.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까.’

너무 앞서가는 건 좋지 않았다. 위즈는 당장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렌틸의 손녀, 아이린에게 약을 건네주는 것.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잡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군.’

평소와 달리 꼼꼼한 확인 절차는 점점 줄이 길어지게 만들었고, 두 사람은 새벽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엔틸리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관에 돌아간 렌틸은 즉시 약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기껏 구해온 퍼플웜의 씨앗에는 약성을 깎는 불순물이 있었던 것이다.


◇◇◇◇◇◈◇◇◇◇◇◇◈◇◇◇◇◇◇◈◇◇◇◇◇


“이래서는 안 되겠네.”

렌틸은 시험 삼아 만든 약에 시약을 떨어뜨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약재에 남은 성분이 적은데, 불순물까지 들어 있으니 효과는 반의반으로 깎였다.

“이 불순물만 제거할 수 있다면, 지금의 약초만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을 텐데…….”

혹시나 놓치고 있는 게 있을지 모른다며 렌틸은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위즈는 스킬창을 열어 조제법 목록을 살폈다. 하지만 위즈가 가진 조제스킬은 일반적인 것이라서,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약품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내친김에 위즈는 채집과 분석 스킬창도 열어보았다. 그러자 조제스킬창의 기다란 스크롤바가 짧아지는 게 아닌가. 스크롤바가 짧다는 건 많은 내용이 감추어져 있다는 뜻과 같았다.

위즈는 조제목록을 다시 살폈다. 새로 늘어난 내용들은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훑어보던 위즈의 눈에 ‘스칸다르’라는 단어가 보였다.

‘이건?’

핏스톤이 잇페인에게 납치당했을 때, 위즈는 힘든 상대라고 포기하지 않았다. 기꺼이 잇페인의 배-페인킬러에 올랐다.

그건 무모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싸움이라 준비가 미흡했으며, 잇페인과의 레벨 차이도 컸다. 아니, 사실상 퀘스트의 보스와 싸우는 일이니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했다.

귀상어나 레이스단의 조력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위즈에게 운이 따랐다. 그 당시 침입한 경로에는 화물이 있었고, 위즈는 당장 소용이 닿는 아이템을 구하려 마구잡이로 약재를 맛보았었다.

스칸다르는 그때 맛본 독초의 이름이다. 위즈는 이 스칸다르를 이용해 갑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잇페인의 배에서 먹은 약초만 수십 가지나 된다. 이 붉은 글씨들은 그것들에 대한 내용이구나!’

스칸다르 말고도 다양한 약초들이 새로이 목록이 올라와있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조제법이 생겨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약초 하나하나의 쓰임 정도만 표시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새로운 조제법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정보인 것이다.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무한의 서를 꺼내어 내용의 일부를 적었다. 그리고 렌틸에게 양해를 구했다.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장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살피느라 정신없었던 렌틸은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위즈 정도의 조제능력으로는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여관을 빠져나온 위즈는 즉시 엔틸리움의 시장들을 돌았다. 아무리 약재가 귀해졌다지만, 모든 약재가 다 그렇지는 않았다. 잘 사용되지 않는 약재는 남아돌았다. 그리고 위즈가 구하고자 하는 것들은 남아도는 쪽에 속했다.

약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위즈는 적어도 어떤 게 구하기 힘들고, 어떤 게 남아도는 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장을 돌며 남아도는 약재들을 한 아름 구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시간에 불과했다.

위즈는 그것들을 들고 여관에 돌아왔다. 렌틸은 여전히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완전히 독서삼매경에 빠진 렌틸은 위즈가 돌아왔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큼 손녀를 살려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겠지.’

위즈는 가져온 짐을 벽에 기대놓았다. 상자가 아닌 자루에 담아 둔 것이다 보니 중심이 맞지 않아 옆으로 쓰러졌다. 벽에 기대놓자마자 서랍장으로 자꾸만 기운다.

“쯧.”

할 수 없이 서랍장과 벽의 두 면에 기대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짐을 부려놓고 허리를 편 위즈는 서랍장에 놓인 물건들에 눈길을 주었다.

서랍장은 손님의 소지품을 집어넣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이린의 배낭도 이 서랍장에 있었다. 그리고 서랍장 위에는 항아리 뚜껑처럼 널찍한 질그릇과, 꽃 한 송이 없는 큼직한 화병이 있다. 세수를 하고 가볍게 손을 씻는 용도의 도구들이다.

여느 여관이나 마찬가지인 풍경이었기에, 지금까지 위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눈길이 간다.

질그릇에는 물이 찰랑거렸다. 반대로 물을 담아두는 화병 비슷한 그릇에는 물이 줄어들었다.

말 그대로 누군가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한 흔적이다.

위즈는 자고 있는 렌틸의 손녀-아이린을 살폈다. 서랍장과 침대는 붙어 있었다. 몇 걸음만 걸으면 침대다.

아이린의 얼굴에 몇 올의 머리카락이 물기를 머금고 달라붙어 있었다.

위즈가 시장에 간 사이, 렌틸이 손녀의 얼굴을 씻겨준 모양이다.

“렌틸. 제대로 닦아주지 그러셨어요.”

책을 뒤적이던 렌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아이린요. 물기가 남아 있잖아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네.”

그러고는 다시 책에 몰두하는 렌틸.

위즈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아이린의 얼굴에 남은 물기는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가.

위즈는 침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막만한 얼굴에 어린 홍조나, 고른 숨소리는 전혀 아픈 사람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양 갈래로 엉성하게 묶은 머리카락이 이불까지 늘어뜨려진 모습은, 일반 가정집에서 평범하게 잠든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내일 아침이면 깨어나 할아버지를 조르고, 까르륵거리며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뛰어다닐……개구쟁이처럼.

“흐음…….”

위즈는 손을 뻗어 이불속에 넣었다. 아이린의 손가락은 곧장 아이린의 겨드랑이에 닿았다.

그리고 곧장.

“간질간질 간질간질.”

아이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헤헤헤!”

하지만 위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현실세계에서 편재는 커다란 덩치나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아이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과 장난을 쳐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정도껏 하는 법을 몰랐다. 게임 속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간질간질 간질간질.”

“그만!”

“간질간질 간지…….”

“그만 하라고!”

퍽!

이불이 홱 젖혀지며 아이린의 작은 주먹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야 애교라 생각하고 맞아줄 수도 있다. 그 생각은 곧 묵직한 충격과 함께 저 멀리 날아 가버렸다.

“크헉!”

위즈의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지며 몸이 살짝 들려 올라갔다. 그리고 위즈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바닥에 엎어졌다.


<17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불의의 공격에 무방비로 얻어맞아 10초간 그로기 상태에 빠집니다.>


‘그, 그로기 상태?’

위즈는 놀랐다. 그로기란, 스턴과는 다른 개념으로 몸에 힘이 빠진다는 표현으로 설명되는 상태 이상.

이는 보통 인지하는 것 이상의 타격량 때문에 발생한다. 즉, 시스템 메시지상으로 170의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실제 들어온 것은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소리다.

‘고작 170짜리 공격에 맞고 그로기상태라니?’

위즈는 체력게이지를 확인했다. 풀 체력 3,500에서 1,200밖에 남지 않은 상태.

‘엔틸리움에서 전투 같은 걸 벌인 적이 없는데?’

분명 꽉 차 있던 체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200대에서 출렁거린다.

그렇다면 실제 들어온 데미지는 2,300이 된다. 그 중 170을 뺀 나머지인 2,130이 추가적으로 들어간 데미지가 된다.


<10초가 경과하여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납니다.>


“끄응.”

위즈는 달달 떨리는 손을 침대에 걸치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렌틸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랄 법한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눈치다.

“요 장난꾸러기 녀석. 할애비를 놀리려 했구나.”

“자는 척하기도 힘들었다고요. 바로 옆에서 세수까지 했는데 그것도 몰랐어요?”

“허허. 일에 열중하다보니 그렇지.”

“그 둔함이 어딜 가겠어요.”

어떤 일에 집중하다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렌틸은 직업상 그런 경우가 허다했고, 그럴 때마다 아이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난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에요? 마법사는 아닌 것 같고.”

아이린은 이제 막 침대에 기대며 몸을 일으키는 위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위즈와는 사정이 있어서 함께 다니고 있단다.”

“이방인이잖아요?”

그러면서 아이린의 고개가 미묘하게 까딱거리며 밖을 가리킨다. 눈가의 근육 역시 찌푸려진 상태. 왜 함께 다니느냐는 제스처다. 바로 옆에 위즈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건 이미 대놓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표현이 되고 말았다. 렌틸은 난처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꽤 도움을 받고 있단다.”

“흐음……할아버지가 이방인에게 도움을 받았다고요? 반대로 말한 거 아니에요? 어째 무능력자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이젠 대놓고 무능력자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위즈는 그냥 흘려들었다.

사실 이 게임에서 무능력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아닌가.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단다.”

렌틸이 엄하게 말하자, 아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겪어보면 알 일.”

아이린은 위즈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가 위즈가 자신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눈치 채고는 배시시 웃었다.

“아아. 이것 때문이군요?”

아이린이 손을 들어올렸다. 조금 전 위즈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린 조막손.

그 손에는 건틀릿이 끼워져 있었다. 모자챙과 같은 것이 손목에 빙 둘러 감겨진 모습은, 위즈가 착용한 것과도 똑같았다.

“모자손 건틀릿…….”

“맞아요. 장안의 히트 아이템. 특히나 이방인들이 기를 쓰고 사더라고요.”

위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자손은 건틀릿으로 분류된다.

여러 개의 쇳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쇠장갑. 무겁거나 날카롭지도 않아서 큰 데미지를 주지도 않는다. 원래부터 보조적인 보호구에 속하니 당연한 것이다.

물론 강화시켜서 데미지를 늘린다면 건틀릿도 훌륭한 무기가 된다. 스파이크를 달거나, 손가락 끝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다던지. 하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나치게 리치가 짧은데다가, 강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다. 게다가 잘못하면 파손되기 딱 좋았다.

‘그런데 데미지 2,130짜리로 강화한다?’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조금 전 위즈는 그런 공격에 얻어맞았다. 통상적인 데미지를 상회하는 위력의 공격에.

위즈의 눈이 아이린의 모자손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자신이 낀 것과 비교하면 매우 작았다. 건틀릿은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전투상황에 소용이 닿는 물건이다.

10살짜리 어린아이의 손에 꼭 맞는 걸 팔 리가 없으니, 이건 주문 제작된 커스텀 제품이 틀림없다.

위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건틀릿 어디서 났니?”

“그건 왜 궁금한데요?”

“강해지고 싶으니까.”

아이린은 건틀릿의 손가락 관절을 살살 까딱거렸다.

“결국 인정하는 거네요? 이런 물건에 의지하지 않으면 약하다는 걸?”

“맞아. 지금은 초보니까 약하지.”

“차라리 직업을 구하는 게 어때요? 지금 상태로는 힘들다는 거 잘 알지 않나요?”

“무능력자인 채여야만 얻을 수 있는 힘이 있어. 이미 그걸 얻었지. 내게 필요한 건 시간뿐이야.”

위즈의 말을 듣고 아이린이 피식 웃었다.

“그럼 열심히 시간이나 죽이시던가. 할아버지 나 잘래요.”

하품을 하던 아이린은 그대로 드러눕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버렸다.

위즈에 대한 명백한 무시다. 렌틸은 안절부절 못했다.

“미안하네. 내가 대신 사과하지. 얘가 좀 드세다네.”

“뭐, 씩씩한 게 보기 좋군요.”

위즈는 침대에서 물러나 시장에서 구입한 약재들을 꺼냈다. 망설이던 렌틸도 제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다시 손에 쥐었다. 흘끔대며 위즈를 살폈지만 그때마다 위즈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문득 위즈는 어째서 아이린이 깨어났는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아이린은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아침에 약을 복용했을 것이야. 그 증거가 서랍장 위에 놓인 빈 도자기 병.’

이 약의 효과는 환자를 재워서 안정시키고, 그동안 병의 진행이 더디게 만드는 것.

그래서 렌틸은 내일 아침까지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헌데, 약을 마신 아이린은 조금 전 깨어났다. 이것이 무얼 의미 하는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렌틸. 설마 약성이 약해서…….”

“……알고 있다네.”

무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책을 훑던 렌틸은 미간을 꾹꾹 눌러댔다. 그러고 보니 저 책은 시장에 다녀오기 전부터 보던 책이다. 페이지마저 똑같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치료사인 렌틸에겐, 다 외우고 있어서 펼쳐볼 이유조차 없는 책이었다. 그걸 굳이 펼치고 앉아 있는 것은, 속 타는 심정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렌틸로서도 답이 없는 것이다.

위즈는 침대로 눈길을 돌렸다. 자신과의 대화를 갑자기 끊고 이불을 푹 눌러쓴, 아이린의 저의도 쉽게 파악되었다. 아이린은 영민한 아이다. 약을 먹었음에도 아침이 되기 전에 깨어 나버린 것에, 이상을 감지한 것이다.

‘울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냥 자는 척?’

다시 밖으로 나가 아이린에게 먹일 약을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엔틸리움에는 여분의 약이 남아있지 않다. 있다 해도 내놓을 사람은 없다.

‘난 저들과 달라. 난 포기하진 않는다. 재료는 엄청나게 사들였고, 내 실험은 아직 결과조차 나지 않았어.’

위즈는 방구석에 약재를 늘어놓았다. 자신이 가진 조제관련 스킬 중에는, 만능조제나 마구 섞기 같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만능조제는 이미 만들어진 약을 다시 섞어서 새로운 약을 만드는 것이고, 마구 섞기는 아예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약재들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그렇다면 1%의 확률이라도 좋으니까, 차라리 새로운 조합을 찾는 게 나아.’

이건 확률게임이나 마찬가지인 도박. 순전히 운에 맡기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다.

하지만 그런 거라도 찾지 않는다면, 위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공법을 렌틸이 잘 안다면, 변칙은 자신이 감당할 생각이었다.

결과물에 대한 테스트는 어쩔 수 없이 위즈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위험이 따르기도 하지. 적어도 내 경우는 죽음에 대항할 방법이 두 가지나 있다.’

그것은 ‘세 갈래 운명의 길’과 ‘망령화’이다.

거기다가 그 어떤 치명적인 독을 섭취하더라도, ‘채집과 분석’의 효과로 1시간동안은 절대 죽지 않는다.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는 일.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위즈는 구해온 약재들을 굽고, 빻고, 물에 우렸다.

약재들은 기본적으로 1차가공이 끝난 상태였으므로, 이 이상 색다른 방법은 시도하기 어려웠다. 위즈는 그것들을 종류별로 늘어놓고, 차례대로 짝을 지어 조합했다.

(A+B), (A+C), (A+D) │ (B+C), (B+D) │ (C+D)……이런 식으로.


<조합에 실패하였습니다.>

<조합에 실패하였습니다.>

<조합에 실패하였습니다.>

.

.

.

조합을 거듭할 때마다 단지 약재를 섞어놓은 것뿐인 정체불명의 혼합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위즈는 그것들조차 따로 분류해놓았다. 설사 실패한 것이라 해도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섞을 생각이었다. 조제스킬도 낮은 유저가 아무렇게나 아까운 약재를 주물럭거리는 모습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으나, 지금 이곳에는 위즈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

만약 렌틸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뭐라고 한 소리 했을 테지만, 그는 여전히 책 속의 내용을 살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위즈는 만들어진 혼합물들을 가지고 다시 조합을 시도해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가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성공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을 본 위즈의 눈이 번뜩였다.


====================================

[물과 불의 혼탁액]

독하다 못해 화끈한 성질을 지닌 모안티아에, 청량감을 지닌 박하엑기스를 섞었습니다.

마셔보기 전에는 효과를 알 수 없습니다.

====================================


위즈는 주저 없이 만들어진 약을 들이켰다.


<물과 불의 혼탁액을 복용했습니다.>

<이 약은 위장에 적당한 자극과 청량함을 주어 소화를 촉진합니다.>


직접 약을 복용해 효과를 확인하자, 아이템의 설명이 갱신되었다.


====================================

[??? 소화제]

특별한 제법으로 만들어진 소화제입니다. 먹어서 생긴 문제라면 이 소화제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을 복용한 경우, 독의 지속시간이 1/10으로 감소합니다.]

[포만감을 20깎습니다.]

[10분 안에 재사용할 경우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


<당신만의 조합을 만들어냈습니다. 물음표 표시된 곳에 원하는 표현을 넣을 수 있습니다.>

<ex. ‘홍길동의’ 소화제, ‘특제’ 소화제 등등.>


“W의 소화제.”


<만들어진 조합이 ‘W의 소화제.’로 저장됩니다.>


위즈는 소화제를 만든 공식을 살펴보았다. 위즈는 거기에 들어가는 약제들만 골라서 다시 비율과 순서를 변형시켰다. 이번엔 주재료가 바뀌었다. 새로운 조합이나 마찬가지이니, 실패가 주르륵 떠야 하건만. 단번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앞서 경험한 실패를 통해 대략적인 비율에 대해 감 잡았기 때문이다.


====================================

[물갈퀴 꽃의 잔영]

모안티아와 박하가 수줍음 많은 물갈퀴 꽃의 향기를 널리 퍼뜨립니다.

====================================


위즈는 만들어진 결과물은 살피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모안티아와 박하의 조합이었다.

“물갈퀴 꽃은 조금만 넣었다. 주재료는 모안티아와 박하. 하지만 이 비린내는 틀림없는 물갈퀴 꽃의 향기.”

제조스킬에 새로이 떠오른 붉은 글자들을 발견했을 때, 위즈는 모안티아에 대해 추가된 내용을 주목했다.


§§§§§§§§§§§§§§§§§§§§§§§§§§§§§§§§§§§§§§§§§§§§§

모든 약초에는 그에 얽힌 이야기가 존재한다. (중략)……따라서 모안티아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존재임에도, 모자라고 부족한 소수의 존재에게서 그 매력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매력이 파멸을 불러온다면, 모안티아의 리더십은 불화를 예방하는 칼날로 작용할 것이다. ……(중략)……모안티아는 균형을 이끌어내는 존재에 가깝다.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중에서도 위즈의 눈길을 끈 것은, ‘불화를 예방하는 칼날’과 ‘리더십’이었다.

뜬 구름잡는 이야기였지만, 이는 약초에 대한 설명을 의인화 시켜 전개한 내용이다. 이것을 나름대로 풀어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결과 위즈는 모안티아야말로,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약초라는 걸 알아냈다.

‘불화를 예방하는 칼날’이란 표현은, 약에 도움이 안 되는 불순물을 걸러내어 약의 배합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리더십’이란, 약이 잘 섞이게 돕는 역할을 말한다.

불순물을 제거함과 동시에, 약의 완성도를 높이는 약재라니……저질 약재로 인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방법이 아닌가.

그래서 위즈는 모안티아라는 약재의 비율을 달리 해가며 변화를 관찰했다.

모안티아를 넣은 덕분에, 약이 되지 못한 혼합액들조차 재료들이 잘 섞여서 겉보기로는 문제가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모안티아의 리더십은 확인했다. 이제 불화를 자르는 칼날을 확인할 시간이다.’

이것은 모안티아의 약성을 조절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미 위즈는 그 방법도 생각해 놓고 있었다.

혼합된 모안티아와 박하를 이용하여, 순수한 모안티아의 약성을 강화 혹은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뒤섞인 혼합물은 순수 약재와 성질이 달라진 상태.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번번이 실패한 혼합물만이 만들어졌다. 그때 위즈의 어깨를 흔드는 손이 있었다.

뒤돌아보니 렌틸이었다.

“자네 지금 뭘 하는 건가?”

렌틸은 이것저것 마구 뒤섞인 것처럼 보이는 혼합물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널리 알려진 황금비율을 무시한 결과물은, 어딜 봐도 실패작이었다. 그것들이 방구석에 가득 널려 있으니, 자연히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렌틸은 읽던 책을 덮고 위즈에게 다가온 것이다. 위즈는 가감 없이 자신이 하던 일을 알려주었다.

“모안티아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약재라기보다는 향신료에 가깝지 않나?”

위즈는 모안티아로 약성을 강화시킨 비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렌틸은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뒤적거리더니, 모안티아에 대한 항목을 찾아 보여주었다.

약초로 쓰기엔 약성이 너무 약하여, 환자의 식사에 넣는 향신료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함께 넣은 약재의 성분을 강화시키다니, 그것도 조금밖에 넣지 않은 약초를…….”

렌틸은 즉시 위즈를 흉내 내어 모안티아로 레몬밤의 향을 강화시켰다. 달랑 잎사귀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상큼한 레몬밤의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위즈가 만들었을 때보다 몇 배나 강력한 효과다. 렌틸은 자신이 만든 혼합물을 창가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켜 최대한 냄새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냄새가 날아갈 리 없다. 조바심이 난 렌틸은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내용물을 말려버렸다. 큼직한 사발에 담긴 액체는 증발해서 그 양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플레임 애로우까지 만들어 액체 속에 집어넣었다. 직접적으로 화기에 노출된 액체는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렌틸은 내용물이 줄어든 사발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이럴 수가. 이렇게까지 하면 허브의 향은 변질되어야 하거늘…….”

넋이 나간 렌틸에게서 사발을 낚아챈 위즈 역시 내용물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증발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상큼한 냄새가 물씬 났다.

“안정성을 시험해본 겁니까?”

위즈의 질문에 렌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합물이란 건 잠깐 동안만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똑같다면 그건 성공작이지. 하지만 이건 그냥 성공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네. 이건…이건……혁명이야.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

“그냥 실패를 각오하고 마구 섞었는데 얻어걸린 거예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도움? 물론 되고말고. 이 방법을 잘만 이용하면, 약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렌틸은 즉시 퍼플웜의 씨앗을 꺼내어 위즈의 조합법으로 만든 모안티아의 혼합물을 첨가했다. 이렇게 2차 가공을 거친 퍼플웜의 씨앗으로 약을 만들자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위즈는 완성된 약을 집어 들었다.


====================================

[강화된 완화제]

주성분인 퍼플웜의 씨앗의 약성을 강화시켜, 적은 양으로도 예전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미 진행 중인 모든 병증이, 하루 동안 현 상태를 유지합니다.]

[약을 마신 뒤에는 잠에 빠지며, 그동안 스태미나와 체력이 회복됩니다.]

====================================


‘역시 숙련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

단 한번 알려준 것만으로도 금세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렌틸을 보고, 위즈는 틈나는 대로 조제스킬의 레벨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전투 계열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유용한 스킬 아닌가.

하지만 초짜중의 초짜인 줄도 모르고 렌틸은 위즈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렌틸은 이미 시약으로 약효를 시험해본 뒤였다. 그 결과는 당연히 합격.

“정말 대단해. 조제나 연금술 쪽에 조예가 깊지 않고서는, 이런 식의 발상은 꿈도 못 꿀 텐데.”

“정말 우연이라니까요.”

“젊은 친구가 겸손하기도 하지.”

무슨 말을 해도 렌틸의 생각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위즈는 이런 일로 유명세를 타거나 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저지르고 다닌 일 때문에, 노리는 적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육만두, 아니 에제키엘을 비롯한 바하르칼 용병들이 그렇다.

“후우……렌틸.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뭔가?”

“저 말이죠. 여기저기 밉보였기 때문에, 이 조합법을 발견한 게 저라는 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어요. 예를 들어 바하르칼이라던가.”

“잠깐. 자네는 지금 이 조합법을 공개하겠다는 뜻인가?”

“그럼 이걸 독점해야 하나요?”

“내가 보기엔 이 조합법만으로도 매우 큰돈을 만질 수 있네.”

“돈도 좋지만 사람 목숨보다 중할까요. 그리고 약재부족이 계속되면, 환자들과 가족들이 폭도로 변할 거 아니에요? 그럼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거예요. 그걸 막을 수 있다면 이깟 조합법을 공개하는 정도야 싸게 먹히는 거죠.”

“자네 정말 크게 될 사람이군. 알겠네. 지금 당장 신전과 치료사 협회에 조합법을 알리고 오겠네. 아, 그동안 자네는 모안티아를 채취해줄 수 있겠나?”

“이 근처에 모안티아를 구할 곳이 있어요?”

“모안티아는 숲이나 물가에 가면 흔하게 널려 있네. 주황색 줄기를 가진 거무튀튀한 풀의 모습이라 찾기도 쉬울 거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난 사람들에게 알리고 뒤따르겠네.”

서로의 역할을 정한 두 사람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거기 두 사람! 스톱!”

여관을 나서려던 두 사람은 앙칼진 외침에 우뚝 멈춰 섰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아이린이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렌틸의 손에 들린 약병을.

“약 내놔요.”

렌틸은 즉시 실험에 성공한 약을 내밀었다. 그것을 단숨에 비워낸 아이린은 풀썩 드러누웠다. 하지만 렌틸과 위즈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서있자, 화를 버럭 내며 두 사람을 내쫓았다.

“뭐하고 있어요! 빨리 나가지 않고! 가뜩이나 잠도 안 오는데 환자 신경 긁을 거예요?”

렌틸은 손녀의 일갈에 쩔쩔매며 문을 열었다.

“아, 알았다. 나가마. 나갈 테니 절대 안정…….”

“가죠. 렌틸님.”

렌틸과 위즈가 나가자마자 아이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허둥지둥 달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렌틸은 엔틸리움의 신전방향으로, 위즈는 성문 쪽으로.

그리고 아이린의 시선은 위즈를 향해 있었다.

“할아버지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방인이……그것도 무능력자가 해냈다? 대체 뭐하는 작자지?”

분명한 것은 할아버지인 렌틸이 위즈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쏟아지는 졸음을 보면, 엉터리 약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하암. 역시 두고 봐야 하겠지…….”

아이린은 침대 속에 몸을 파묻었다.


작가의말

2014.11.08 수정

[10,349 => 15,612]

아이린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추가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0 이름좀늘려
    작성일
    14.05.03 22:55
    No. 1

    바하르칼에 또다시 빅엿을 주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4.05.04 16:31
    No. 2

    대박 아이템 그것을 푸는 위즈...
    신성왕국에서 분명... 공로를 주겠지 혹은...
    무명용사 칭호가 한단계 상위로 오를려나...
    무면용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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