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390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5.15 13:50
조회
2,360
추천
130
글자
26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3.

베베노 일행은 잘못된 상황판단을 거듭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레미라 마법사들이 디멘션 게이트의 파괴에 실패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어둠에 뒤덮인 숲으로 뛰어들어 무리하게 합류를 시도한 점.

그리고 악령의 존재를 의식하고도 최단거리로 숲을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두 번의 선택은, 베베노 일행을 사지로 내몰았다.

거기에다가 추격해온 라이칸스로프와 맞상대하여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 발생한 싸우는 소리는 위즈가 이곳을 찾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일이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군.”

이들이 라이칸스로프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위즈는 혀를 찼다.

소리를 듣고 여기까지 온 건 좋았지만, 당장 데리고 빠져나갈 수 없다.

마물과 싸우고 있는데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 기세 좋게 덤비는 모습에 비해 유효타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건 사람들이고, 라이칸스로프는 여전히 재빠른 몸놀림으로 이들을 농락하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어.”

위즈는 일단 화염병을 깨뜨려 불을 피웠다. 축축한 땅위에 이끼까지 돋아나있어 화재의 위험은 없었다. 위즈는 그 상태에서 화염의 발자국을 연달아 밟았다.

불속에서 생겨난 발자국이 하나둘씩 축적되었다. 위즈는 젖은 이끼를 불에 던져 넣고는, 모자손 건틀릿에 어린 라이팅 주문을 구슬모양으로 바꿨다.

마력이 저 혼자 형태를 갖도록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모자손 건틀릿에 깃든 빛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다보니 자연스레 요령을 깨우칠 수 있었다.

“라이팅!”

드디어 둥글게 뭉친 빛이 생겨났다. 위즈는 그것을 조종해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날려 보냈다. 그러면서 눈을 감으라고까지 알려주었다. 그런데 저들은 멍청하게 눈을 뜨고 있다가 라이칸스로프와 마찬가지로 시각이 마비되었다. 이래서야 아군을 노리고 섬광수류탄을 터뜨린 것과 마찬가지다.

‘내 쪽에서 멋대로 지시를 내린 거니까 손발이 안 맞는 것은 당연한가.’

위즈는 세 사람의 손을 이끌고,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가죽에 옮겨 붙은 불을 끈 라이칸스로프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시력이 회복된 모양인지 녀석들의 눈동자가 위즈를 정확히 노려보고 있다.

마치 누가 털가죽을 태웠는지 다 안다는 태도다.

“째려보면 어쩔 건데?”

위즈는 재차 라이팅을 날렸다. 그러자 녀석들은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듯, 일제히 눈을 감아버렸다. 위즈도 같은 수법이 계속 통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위즈는 다른 걸 노리고 있었다.

“섀도 런!”

위즈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위즈는 숨바꼭질-수를 사용했다.

완벽한 은신상태가 된 위즈의 모습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훅 사라져버렸다.


<숨바꼭질-수를 사용했습니다.>

<은신상태가 됩니다.>

<어둠으로 인해 엄폐율이 20% 추가됩니다.>

<현재 섀도 런 스킬을 사용 중입니다. 시너지 효과 ‘매스 블라인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섀도 런과 숨바꼭질의 시너지 스킬-매스 블라인드는, 대상 하나당 10의 마력을 사용해 블라인드를 거는 스킬이다. 이 상태이상은 9초가 지속된다. 하지만 이렇게 걸린 블라인드 상태는 3초마다 해제되며 시력이 회복된다.

말이 지속시간 9초이지, 실제는 6초짜리 블라인드인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점 때문에 위즈는 어떻게 해야 ‘매스 블라인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리고 이 매스 블라인드라는 스킬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매스 블라인드!”

라이칸스로프의 숫자는 셋. 위즈의 마력 30이 빠져나가며 라이칸스로프의 눈가에 짙은 어둠이 서렸다. 눈을 뜬 라이칸스로프는 갑자기 어둠이 덮치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매스 블라인드는 타깃에 직접 적용되는 스킬. 이미 걸린 이상 9초간은 꼼짝없이 블라인드 상태다.

위즈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즉시, 가장 가까운 라이칸스로프의 콧잔등을 노리고 단검을 휘둘렀다.

‘3초!’

공격을 받은 라이칸스로프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어둠이 걷혔다. 라이칸스로프가 움찔거렸다. 시력이 회복되자마자 본 게 달려드는 위즈의 모습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는 평소처럼 고개를 틀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 눈에는 다시 어둠이 깃들었다.

위즈는 공격을 피한 라이칸스로프의 코에 재차 공격을 가했다.

‘6초!’

시간이 지나자 라이칸스로프의 움직임이 기민해졌다. 이번에는 그 눈이 정확히 위즈를 쫓았다. 일시적으로 회복된 시각으로 재빨리 위즈의 모습을 확인한 라이칸스로프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도약하여 거리를 벌렸다. 시력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그 순간을 노려 위즈는 섀도 런을 사용했다.

라이칸스로프가 멀리 피했다지만, 숲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다.

숲이라는 공간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무 그림자가 들어찬 곳이다. 그런 곳에 들어온 이상 섀도 런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게다기 이곳은 보통 숲이 아니다. 디멘션 게이트에서 새어나온 어둠이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고 있다. 숲 자체가 어둠에 잠겨 있으니 거리는 의미가 없어졌다.

스태미나에 여유만 있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그런 이점을 이용해 위즈는 라이칸스로프가 착지할 예상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간발의 차로 라이칸스로프가 땅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을 노려서.

“9초다.”

라이칸스로프의 눈에서 어둠이 걷혔다. 블라인드 효과가 사라진 눈동자가 위즈를 찾았다. 위즈는 이미 라이칸스로프의 뒤쪽에 가 있었다.

샛노란 동공이 크게 확장되면서, 라이칸스로프의 몸뚱이가 쓰러졌다. 위즈는 목뒤 경추에 박아넣은 단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드러난 손잡이를 진각으로 밟아서 더욱 깊숙이 박아버렸다.

손잡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검이 깊숙이 들어가자 시스템메시지가 떠올랐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라이칸스로프를 잡았습니다.>

<422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이제 알겠어.’

위즈의 공격을 보고 피하자마자 다시 블라인드가 걸렸기 때문에, 재차 섀도 런을 사용해 소리 없이 다가온 위즈의 모습을 라이칸스로프는 보지 못했다.

라이칸스로프가 어이없게 죽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매스 블라인드와 섀도 런을 섞어 공격을 해보고 위즈는 깨달았다.

매스 블라인드에 걸린 대상이 도중에 잠깐 동안 시력을 회복하는 이유.

그것은 시각적 정보를 우선하는 심리를 이용하여 빈틈을 만드는 데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 누구나 불안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 위기를 맞으면, 차단된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기위해 애쓰게 된다.

하지만 한동안 눈을 못 쓸 거라는 생각과 달리. 잠깐 동안 반복하여 시력이 회복된다면?

매스 블라인드에 걸린 대상은 3초마다 시력이 회복되게끔 되어있다.

그렇지만 시력이 회복되는 건 일시적인 현상.

다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처음엔 당황하겠지만 6초 째에 같은 일이 반복되면, 다음에도 잠시 동안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감각에 의지해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눈으로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게 된다.

앞서 시력이 잠깐 돌아온 경험을 했기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고 기대하는 심리가 은연중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 걸린 상태이면서도, 시각에 의존하려는 마음을 갖는 순간.

눈으로 위험을 보고 피하려는 그 어리석음이 빈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어리석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3초 단위로 적의 움직임을 끊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3초.

이 3초에 현혹된 순간이 사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때이다.

여기에 섀도 런까지 사용하니 완벽하게 허를 찌를 수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는 그 재빠른 움직임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물.

그 엄청난 회피능력은 뛰어난 시력과 청력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시력을 빼앗겼으니, 오로지 소리로 공격을 파악해 피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즈의 섀도 런은 말 그대로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는 스킬.

아무리 귀가 밝아도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소리이니까.

“우와…….”

위즈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딱 봐도 노상강도인 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저 재빠른 놈을 달랑 세 번의 공격으로 잡다니.”

사냥꾼으로 보이는 옆의 두 사람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의 놀람은 이해가는 바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일일이 설명해줄 시간이 없다.

9초만에 동료가 당하자, 남은 라이칸스로프 두 마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공격할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위즈는 각개격파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었다. 모자손 건틀릿의 손가락 부분이 까딱거리며 움직였다.

명백한 도발. 이에 반응한 라이칸스로프가 자세를 낮추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

하지만 위즈의 스킬 발동이 더 빨랐다.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

위즈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땅을 타고 이동하더니, 잠시 후 라이칸스로프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축 늘어졌다.


<어둠의 피조물에게 당신의 마력을 강제 주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라이칸스로프 A~B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주입한 마력총량은 1800입니다. (20분간 통제 지속)>

<마물을 휘하에 거느리게 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네크로맨시’가 생성됩니다.>


“허?”

예전에도 위즈는 같은 일을 겪었다.

시에니투스로 가기 전, 위즈는 바하르칼 용병에게 의뢰를 했다.

이글아이 스킬북을 넘기는 대신 몇 가지 단서를 달았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련모드를 통해 한번 겨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빙글뱅글이란 네크로맨서와 싸우던 위즈는,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을 사용해 소환물을 탈취했다.

“디멘션 게이트에서 나온 것이니 라이칸스로프도 소환물은 맞지만…….”

짙은 어둠이 시작된 방향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울렸다. 숲에 들어오자마자 들었던 ‘어어어어’ 하는 낮은 신음소리도 가까워졌다.

“생각은 나중에.”

위즈는 서둘러 라이칸스로프에 올랐다. 세 사람이 입을 쩌억 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한 눈으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라이칸스로프들이, 위즈가 올라타자마자 초롱초롱한 인형 눈이 되어서는 헥헥 거린 것이다.

“어서 타요! 당장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위즈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세 사람도 라이칸스로프에 올라탔다.

라이칸스로프는 신장 2미터의 인간의 몸뚱이에 늑대의 얼굴이 달린 마물이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시에는 몸 자체가 변형을 일으켜 완전한 늑대의 모습이 된다.

몸길이 2.5미터의 거대한 늑대.

사람이 타기에 부족함이 없는 크기다.

위즈는 지금 작은 체구의 여자모습이었으므로, 산적처럼 생긴 덩치 큰 남자와 함께 탔다. 그리고 남은 라이칸스로프에는 사냥꾼 2명이서 타기로 했다.

“가죠!”

목주위에 길게 돋아난 갈기를 움켜쥐고 옆구리를 발로 차니, 웅크려 있던 라이칸스로프가 몸을 죽 펴며 도약했다. 그리고 착지. 위즈의 몸이 튕겨질 것처럼 위아래로 요동쳤다.

원래 무언가를 태우고 다니는 생물이 아니다보니, 라이칸스로프의 어깨부분은 뼈와 근육이 뭉쳐 활처럼 크게 부풀어 있다. 그런 곳에 타고 있으니 흔들림이 심해 결코 안락하진 않았다. 하지만 속도만큼은 달리는 말보다 빨랐기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라이칸스로프는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발을 바꿔가며 재빨리 방향을 전환하며 나무를 피해 다니고, 덤불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은 그냥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일정한 진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위즈가 머릿속으로 그린-엔틸리움과 연결된 최고로 짧은 길이었다.

뒤에 앉은 덩치 큰 사내가 소리쳤다.

“이봐! 저기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인 걸 모르고 있나!”

“당신 이름은?”

“베베노! 저 두 사람은 브롬, 아르길.”

“당신 말은 틀리지 않아요. 디멘션 게이트가 있는 방향이니, 마물의 출현빈도가 높겠지. 하지만 그걸 피해갈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들은 민첩하기로 유명한 라이칸스로프를 타고 있다는 걸 잊었나요?”

“하지만 이 어둠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마물과 어둠이 쏟아져 나온 근원과 가까워지면서 어둠 역시 농도가 짙어졌다. 이들의 불안은 당연한 것이었다.

“라이팅!”

흔들림이 심한 와중에도 위즈는 주문을 성공시켰다. 빛의 구슬이 연달아 어둠속을 뚫고 들어가 주변을 환히 밝혔다.

으어어어!

“구울이군! 그것도 가까이에 있어.”

“어떻게 그걸 알지?”

“예전에 질리도록 상대해보았으니까요!”

위즈는 앞서 날린 빛의 구슬을 스프레드 폼을 걸어 터뜨렸다.

이미 사용한 주문을 한차례 변조시키는 ‘폼’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비기.

그중에서도 스프레드 폼은 비교적 깨닫기 쉬운 편이었기에 마법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는 위즈도 쓸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엔 렌틸의 가르침이 크게 작용했다.

같은 중급마법사와 비교하면 조금 쳐지는 렌틸이지만,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훌륭한 선생이었다. 덕분에 위즈는 마법의 원리를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고, 다른 유저마법사들에 비해 응용능력이 높았다.

위즈는 재차 라이팅을 날리고 스프레드 폼을 걸었다.

스프레드 폼의 효과로 인해 순간적으로 어둠이 걷히며 주변의 풍경이 드러났다.

느릿느릿 걸어오는 구울들 사이사이에 키가 큰 엘리트 구울들이 끼어 있었다. 그 앞에는 눈을 가리고 괴로워하는 라이칸스로프들이 신음을 흘렸다.

“전방에 엘리트구울 20마리 포함 다수의 구울 군단! 선봉엔 라이칸스로프!”

“뚫고 들어갈 숫자가 아냐!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

“아뇨!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립니다! 강행돌파!”

위즈는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명령해 구울들을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도록 했다.

“다들 꽉 잡아요! 미친 망아지처럼 마구 날 뛸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이칸스로프들이 구울 떼를 헤집고 들어갔다. 시체 썩는 역겨운 냄새가 훅 끼쳤다. 살점이 말라붙은 손들이 사냥감을 노리고 일제히 손톱을 세웠다.

위즈는 마력을 쥐어짜내며 배리어를 쳤다. 배리어는 탐지스킬과 함께 마법사의 목숨줄.

EMP와 마법사 본인의 마력만 충분하면, 움직이면서도 쓸 수 있는 주문이다.

초보 중의 초보인 위즈라 해도 쓰는 데에 지장은 없다.

위즈를 중심으로 파르스름한 빛이 번져나갔다. 구울들의 공격은 파르스름한 막에 막혀 무산되었다. 그럴 때마다 위즈의 마력이 쭉쭉 깎여나갔다.

위즈는 모자손 건틀릿의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이템포켓에 저장된 마력 포션이 사용되면서, 간당간당하던 마력이 조금씩 채워졌다. 하지만 아직 구울들을 돌파하려면 한참 멀었다.

‘그전에 마력이 떨어지겠어!’

위즈는 마력을 소모하지 않는 스킬들을 총동원했다.

“진각!”

가까이 다가온 구울을 노리고 위즈는 발차기를 먹였다. 단숨에 목이 꺾이며 구울이 튕겨나갔다. 라이칸스로프가 무게와 달리는 속도까지 더해진 결과다.

“베베노! 지금 도끼 쓸 수 있겠어요?”

“해보겠다!”

베베노는 등에서 전투도끼를 꺼내, 기다란 자루를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리고 비스듬히 옆으로 내밀었다.

“크으으!”

도끼날에 닿는 족족 구울들이 뭉개지며 바닥을 굴렀다. 이쪽은 날붙이 이전에 중병기라서 더 효과가 좋았다. 그 모습을 본 위즈는 인벤토리 속의 학살자의 망령을 떠올렸다.

고스트 소드. 즉, 마검이니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여태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긴급한 상황이다.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 적갈색의 거도(巨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즈는 포션으로 떨어진 마력을 보충하는 한편, 학살자의 망령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 넣었다. 마력이 흘러들어가자 가드 근처에 박힌 구슬이 섬뜩한 혈광을 뿜어댔다.

잠들어 있던 망령이 눈을 뜬 것이다.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이 영혼은 강렬한 전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같습니다.>

<이 영혼은 당신을 도와 적을 섬멸할 것입니다.>

<영혼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20의 마력이 소모되고, 일반 공격을 할 때마다 50의 스태미나가 소모됩니다.>

<‘학살을 가로막는 자’ 칭호의 효과로 인해, 위력이 1/2로 줄어듭니다. 대신 폭주하지 않습니다.>

<근성과 집중력 스탯의 영향으로, 영혼을 다시 잠재울 수 있습니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앞으로 길게 세웠다. 비록 부러져서 반 토막이라 하나 여전히 기다란 도신은, 마치 창을 세워놓은 것처럼 앞을 가로막은 구울들을 훌륭히 처리하고 있었다.

『이곳은……아아…… 또 그대인가?』

레미라에서 얻은 칭호 ‘학살을 가로막는 자’의 효과 때문인지, 학살자의 망령에 깃든 영혼은 처음 접촉해올 때처럼 막무가내로 빙의하진 않았다.

『어린 아쿠에리언은……어떻게 되었지?』

그가 묻는 일은 한참 전에 끝났다. 학살자의 망령에 갇혀 있는 동안은 바깥의 일을 알 수 없게 되는 모양이었다.

“모두 무사하다! 1주일은 지났어! 그보다 유령씨! 보다시피 주변이 온통 마물투성이다! 저번처럼 땅을 쪼갤 수 있겠어?”

『시간이 필요하다.』

“최대한 빨리 부탁해!”

학살자의 망령을 치켜든 위즈의 왼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땅에 닿을 것처럼 늘어뜨려졌다. 달리는 라이칸스로프에 탄 채 무거운 중병기를 늘어뜨리자 무게중심은 자연히 아래로 쏠렸다. 게다가 라이칸스로프는 구울을 피하고 타넘으며 마구 날뛰는 상황.

그 탓에 균형 잡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몸이 기울어질 때마다 위즈는 구울을 진각으로 걷어차며 겨우 버텼다.

“묘기 대행진도 아니고 제기랄!”

위즈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냥꾼들이 탄 라이칸스로프는 길을 뚫는 위즈의 뒤에 바짝 붙어 잘 따라오고 있다. 사냥꾼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간간히 달려드는 구울들을 진각으로 걷어차며 대응했다. 그 동작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기마술은 그들 쪽이 더 뛰어나 보였다. 문제는 그들의 주무기가 활이라는 것. 적진을 돌파하는 능력은 떨어졌다.

‘그건 아무 직업도 없는 나도 마찬가지이겠군.’

위즈는 배리어를 쓸 수 있기에 앞장 선 것이지, 딱히 돌파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이봐! 아직 멀었어?”

『아직이다……조금만 더…. 스킬을 사용할 곳을……미리 선점해라.』

라이칸스로프는 이제 구울들을 짓밟으면서 무리하게 이동했다. 구울을 타넘을 때마다 머리가 앞뒤로 크게 흔들려 어지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올라탄 뒤로 좋지 않은 기분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어디까지 온 거지?”

위즈는 다시 라이팅을 날려 스프레드 폼을 걸었다. 다시 어둠이 밝혀지며 바글바글한 구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위즈는 대충 원하는 위치까지 온 사실을 흡족해 했다.

지금 있는 곳은 정확히 구울군단의 우측 모서리. 구울의 밀도가 낮은 곳이다.

“이곳이 좋겠군!”

위즈는 라이칸스로프에게 명령을 내려 같은 자리를 계속 배회하도록 시켰다. 그러자 돌파할 때와는 달리 구울의 공격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었다. 공격을 받을 때마다 라이칸스로프가 헐떡거렸다. 이미 라이칸스로프의 몸에는 무수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구울의 손톱에 찢겨 죽을 지경이다.

위즈는 사냥꾼들을 이쪽으로 옮겨 타게 했다. 앞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쐐기형 진형일 때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지금은 측면이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전에 위즈는 이들을 한데 모이게 하고 배리어로 보호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배리어가 깨질까 걱정이 된 위즈는 마력포션을 들이키고, 모자손 건틀릿의 아이템 포켓에도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을 본 베베노가 감탄했다.

“이렇게…흔들리는 중에도 할 건 다하다니 대단해!”

그때 신호가 왔다.

학살자의 망령을 든 왼손이 크게 휘둘러졌다. 땅을 내리친 곳으로부터 커다란 흔들림이 생겨났다. 위즈는 라이칸스로프에게 명령을 내려 무조건 오른쪽으로 뛰게 했다. 위즈의 명령을 받은 라이칸스로프는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 한 채, 최대한 높이 점프했다.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하르칼 마법사들을 상대로 사용했을 때처럼 땅이 무너지는 수준의 붕괴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 키만 한 깊이의 균열은, 구울군단을 두 개의 무리로 갈라놓기에 충분했다.

균열 너머의 구울들은 균열을 보고도 마구 밀고 들어왔다. 그 바람에 뒷줄의 구울에게 밀린 구울들이 균열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 깊진 않지만 폭이 충분히 넓었기에, 균열이 메워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위즈는 어렵게 번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다들 진각을 써요! 이 녀석을 지지대로 삼아서 최대한 멀리 뛰어요!”

그 말을 들은 베베노와 브롬, 그리고 아르길이 차례대로 진각을 사용했다. 그들의 몸이 멀리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착지할 곳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구울들이 버티고 있었다.

“섀도 런!”

위즈는 한발 앞서 구울 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숨바꼭질-수를 발동시켰다.


<숨바꼭질-수를 사용했습니다.>

<은신상태가 됩니다.>

<어둠으로 인해 엄폐율이 20% 추가됩니다.>

<현재 섀도 런 스킬을 사용 중입니다. 시너지 효과 ‘매스 블라인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매스 블라인드!”

섀도 런에서 매스 블라인드로 이어지는 콤보가 사용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초에 불과했다. 구울들이 순간적으로 앞을 못보고 허둥거리는 동안,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휘둘러 구울들을 멀리 쳐냈다. 영혼을 깨운 상태라서 위즈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스태미나가 50씩 소모되었다.

그렇게 구울들을 치워놓은 공간에 베베노 일행이 착지했다.

위즈는 학살자의 망령을 집어넣고 라이팅을 뿌렸다. 저 멀리 숲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위즈는 구울들을 밀쳐내는 한편, 각자의 스킬들을 아낌없이 사용하게 했다.

“자이언트 스윙!”

베베노는 전투도끼의 끝을 양손에 쥐고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무거운 병기에 원심력까지 실리자 그것에 얻어맞은 구울들이 크게 밀렸다. 거기에다 정령강화까지 걸려 있어서 회전속도도 빨랐다. 브롬은 가지고 있던 쇠줄을 나무 밑동에 걸어 구울들이 걸려 넘어지게 했다. 브롬은 그 뒤로도 이곳저곳을 오가며 쇠줄을 쳤다.

그동안 아르길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화살통 하나를 통째로 활에 걸었다.

“애로우 샤워!”

쏘아 올린 통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날붙이나 화살로는 구울을 상대하기 힘든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화살이 때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짧은 시간 동일인에게 같은 종류의 공격을 많이 얻어맞을 때, 장비의 내구도가 더 잘 깎이는 법. 그리고 구울은 체력 게이지 대신, 내구도가 붙어 있다. 이미 죽어있는 시체라 그렇다는 설정 때문인데, 그 때문에 아르길의 애로우 샤워에 맞은 구울들 중에 내구도가 0이 되어 부서지는 개체가 나왔다.

그리고……구울들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위즈는 그 눈이 무얼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종류의 소환수가 근처에서 소멸했을 때 버서커 상태가 되는 것.

그리고 버서커 상태가 되면 공격속도가 증가한다.

‘라이칸스로프의 통제권을 빼앗았을 때 네크로멘시가 스킬창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지금 구울이 죽자마자 근처 구울들이 광화상태가 되었다.’

위즈는 네크로멘서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지. 디멘션 게이트를 통해 소환된 중급마족의 능력일지도 몰라. 아무튼 상대가 네크로멘시를 가졌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 질 거야.’

위즈는 화염돌격을 발동시킨 뒤 진각을 사용했다. 화염이 한 차례 넓게 뿜어지자 구울들이 움찔거렸다. 위즈는 화염돌격을 써서 구울들의 어그로를 전부 자신에게 끌어 모았다. 순식간에 구울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위험하진 않았다. 안 되겠다 싶으면 즉시 섀도 런으로 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위즈는 어그로가 풀리지 않도록 일부러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

“지금이에요!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혼자서 죽을 생각인가!”

“이방인을 우습게보지 마요! 거치적거리니까 빨리 가라고요!”

“하지만!”

“구울에게 잡아먹히고 싶어요!?”

위즈가 빽 소리 지르자 베베노 일행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한동안 구울들을 끌고 다니던 위즈는 이정도면 세 사람이 숲을 빠져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죽고 싶진 않으니, 이정도로 해둘까. 섀도 런!”

위즈는 최대한 먼 거리를 연달아 이동했다. 스태미나가 마구 깎여나갔고, 위즈는 숲의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숲을 빠져나오던 베베노 일행이 위즈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귀신이다!”

“아직 안 죽었거든요.”

“우리보다 늦게 도망쳤을 텐데 어떻게 앞질렀지?”

“다~제가 잘나서겠죠. 그나저나 숲을 벗어났다지만 디멘션 게이트가 코앞인데 이러고 있어도 돼요?”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세 사람은 허둥지둥 엔틸리움으로 뛰어갔다. 위즈는 어둠에 잠긴 디멘션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시커먼 먹구름을 뚫고 마법진이 삐죽 튀어나와있는 모양새였다. 내부에서는 벼락이 마구 치면서 거대한 물체의 실루엣이 살짝 드러났다.

확실히 빌헬름텔의 말이 맞았다. 다른 게임이라면 마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크기다.

“저게 중급 마족.”

실루엣에서 눈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붉게 빛났다.


작가의말

연참 4일째.

감기에 걸렸습니다.

입도 안 막고 기침을 하여, 세균범벅인 침을 뿌려주시는

인간분무기들 덕분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사우나를 다녀온 것처럼 노곤하네요.

게다가 다리도 저려오는군요.

헤헤헤헤헤......어서 일요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2014.11.08 수정

[11,990 => 12,074]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또 다른 셸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4 12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2) +3 14.06.26 695 24 30쪽
123 12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1) +2 14.06.17 1,105 20 31쪽
122 11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0) +2 14.06.14 682 18 26쪽
121 11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9) +2 14.06.09 1,602 91 28쪽
120 11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8) +2 14.06.05 974 31 23쪽
119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2 14.05.31 1,614 96 23쪽
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69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7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5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09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09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4 40 25쪽
112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7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0 44 24쪽
11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59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3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3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88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4 33 25쪽
»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1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59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7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7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49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7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5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2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28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3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4 3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