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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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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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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3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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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7.

하늘 높이 떠올랐던 조각달이 비스듬히 하강하고 있었다.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치닫는 시각. 차가운 공기는 너무도 고요하여, 고양이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들릴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드러누워 ‘잠’이라는 안식을 누리는 시각.

이러한 안식을 마다하고 눈을 부릅뜬 이들이 있었다.

바로 성기사들이다.

이들은 엔틸리움의 성벽을 거닐고, 도시내부를 순찰했으며, 신전 주변에도 못 박혀 있었다.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고 깨어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성기사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럴수록 이들은 억지로 몸을 움직이며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얼중얼 기도문을 읊는 성기사도 있었다. 다들 쏟아지는 잠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성기사들이 효과적으로 ‘잠’에 저항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전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경우는 자리를 함부로 떠나지 못했다. 기도문을 읊지도 못한다. 한밤 중 신전 앞에서 기도문을 읊는 모습은, 괴담 속에 나오는 유령기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있어야만 하는 기사들은, 매일 밤마다 밀고 밀리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특히나 정문을 지키는 자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억지로 하품을 참느라 계속해서 코가 벌름거렸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들의 노력을 알아주는 건 좌우에서 끊임없이 춤추는 화톳불뿐이다.

쐐액! 탱!

성기사들의 시선이 발밑을 향했다. 화톳불을 피운 화로 밑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어둠과 대비되는 선명한 흰색의 물건이. 기다란 나무막대기 같은 것에 꽂혀 있었다.

성기사 한사람이 그것을 주워들었다. 하얀 것의 정체는 여러 번 접힌 종이였고, 종이를 꿴 막대기의 정체는 화살이었다. 화톳불에 화살 끝을 확인한 성기사가 중얼거렸다.

“화살촉을 빼냈군. 날아온 방향은 맞은편 건물인가?”

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지는 몰라도 떳떳치 않은 자들이나 할 짓이다. 그러니 이미 쏘고 도망갔을 것이다.”

“그렇겠지.”

정체불명의 서신이라 해도, 일단은 서신이다. 상급자를 불러 알려야 했다.

하지만 신전의 경비인력은 제 자리에서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원래대로라면 이 서신을 줍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망설이던 성기사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에 매달린 나무 조각을 빼들었다. 순찰조들이 사용하는 패각과 똑같은 것이었다. 딱딱 소리가 나게 마주치면서 순찰조가 지나간다고 알리는 것이다. 야간순찰은 그동안 자경단이 해온 일이지만, 약재파동 이후 성기사들까지 합세했다. 이것이 성기사가 패각을 소지한 이유다.

딱딱.

신전의 구조상,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게 되어있다. 그 때문인지 입구에서 울린 패각소리는 크게 증폭되어, 신전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 안쪽에서 다른 성기사가 걸어 나왔다. 그는 100인의 성기사를 통솔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급자에게 존칭을 듣진 못한다. 성기사에게 계급이란 군대를 꾸리느라 할 수 없이 부여한 체계일 뿐. 그로 인해 신분상승을 꾀할 의도가 없다.

그렇기에 ‘기사’이면서도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 말을 놓으며 평대를 한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 이런 걸 보내왔다.”

쪽지를 받아든 통솔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쪽지에는 엔틸리움에 암살자가 숨어들었으며, 그들을 지금 지하수로에 가둬놓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런 내용의 투서를 받고도 조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일단 가서 확인해봐야겠군.”

“혹시나 성기사를 분산시키려는 꿍꿍이는 아닐까?”

“이정도 일로 다른 성기사들을 소집할 이유는 없다. 지하수로에 가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하다. 일반 병사들과 함께 다녀올 테니, 다른 용무가 생기면 신전의 책임자를 통해 해결하도록.”


◇◇◇◇◇◈◇◇◇◇◇◇◈◇◇◇◇◇◇◈◇◇◇◇◇


한밤의 치료사 길드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오늘 아침까지 철야작업을 했기 때문에, 대다수 치료사들이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길드를 지키는 사람들 역시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그들은 코로 피리를 불었으며, 입가에 흘러나온 침으로는 강을 이루었다.

이런 상태였으니, 위즈 일행이 갑작스레 들이닥쳤음에도 반응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 사람들에게 딱히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깨울 필요는 없겠네요.”

위즈는 비어있는 소파에 앉았고,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편하게 앉아 쉬었다. 잠도 설친데다 싸우기까지 했으니 기력소모가 심했다. 다들 자리를 잡자마자 숨소리가 낮아졌다. 던컨과 위즈만이 잠을 자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빌헬름텔님이 제대로 전했을까 모르겠군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군.”

던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빌헬름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고하셨어요. 그들이 움직이던가요?”

“처음엔 꿈쩍도 안하는 것 같더니, 신전에서 나온 성기사가 일반 병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더군요.”

신전에 쪽지를 매단 화살을 쏘아 보낸 건 빌헬름텔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했다간 붙잡혀서 조사를 받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암살자를 상대하느라 지하수로를 붕괴시킨 것까지 드러나게 된다. 이는 엄연히 엔틸리움의 시설을 파괴한 것이니, 당연히 처벌 받게 된다.

날이 밝자마자 떠날 계획을 세운 위즈 일행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직접 가지 않고, 쪽지를 매단 화살을 쏘아 알린 것이다.

“치료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아이린이 마시고 있는 거 보이죠?”

위즈가 가리키는 곳에는, 이제 막 유리병을 입에 가져다대는 아이린이 있었다. 그 옆에는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한 렌틸이 손녀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연신 아이린을 훑는 그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까지 아이린이 먹어온 약은, 중요한 재료가 빠진 ‘미완성’이었다.

순전히 약재만 조합한 반쪽짜리 결과물.

그래서 1년마다 같은 약을 계속 먹어줘야만 했다. 고작 병의 진행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제 아이린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위즈가 넘겨준 수정구 덕분에, 연금술의 비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연금술의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는 ‘비약’이다.

상식을 무너뜨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의 약물.

그렇기에 불치병을 치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렌틸이 레미라로 건너가 연금술을 연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실을 눈앞에 둔 렌틸은 안절부절 못했다.

비약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성이 없음을 확인했지만, 그 사실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진 못한다.

최악의 상황에는 손녀인 아이린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비약을 제조한 것은, 언제까지고 약에 의존하는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렌틸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남겨진 손녀를 위해 조제법을 남기면 그걸로 안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약재부족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1년 뒤에 라르리르고를 무사히 구해서, 약을 지어 먹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것도 앞으로 평생 동안?

그리고 이렇게 순도 높은 수정구를 얻을 기회도 흔치 않다.

어둠의 열매라면 돈을 마구 퍼붓는다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둠의 열매에서 어둠의 마력을 말끔히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비약을 제조했을 때 독성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위즈가 건네준 수정구는, 렌틸이 찾던 최상의 재료였다.

결심도 섰고 재료도 갖춰졌다.

이때가 아니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고 생각한 렌틸은, 곧장 비약을 만들어냈다. 이젠 기다리는 것뿐.

“기분이 어떠하냐?”

아이린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약병을 내려놓았다.

“전에 먹던 것보다 끈끈해서 잘 안 삼켜졌어요. 그것 말고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프진 않고?”

“전혀. 그냥……좀 졸리네요. 눈 좀 붙일게요.”

“그러려무나.”

렌틸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린은 그냥 탁자에 엎드린 자세에서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자면 어깨 아플 텐데…….”

렌틸은 아이린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아이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호흡이 길게 안정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깊게 잠든 상태.

“아무래도 비약의 부작용인 것 같구먼.”

“병증완화제처럼 말입니까?”

“그건 수면 유도 성분이 들어 있으니 당연한 거고. 비약에는 수면제 성분 같은 건 없다네. 아무리 잠을 못자서 피곤하다 해도, 이렇게 빨리 잠들 이유는 없는 거지. 그래서 부작용이라 생각하네.”

“심각한 겁니까?”

“글쎄……일단은 체온도 일정하고 맥박도 안정되어 있으니, 크게 이상이 있어보이진 않네.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정도면 안심해도 좋을 것 같네. 그나저나……이젠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아이린을 소파에 데려다 눕힌 렌틸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이 꼭두새벽에 아이린과 함께 길드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사실은 아이린을 노리고 암살자가 몰려들었습니다.”

“몰려들었다라……어찌되었든 여기까지 무사히 온 걸 보니 물리친 거로군.”

“135명이었습니다.”

“으음…….”

단일 타깃을 노리는 암살자 치고는 너무도 많은 숫자에 렌틸의 얼굴에 수심이 내려앉았다.

“렌틸. 아이린은 생각보다 거물입니다.”

“거물……인 건가.”

“그렇습니다. 연금술을 익히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부족한 자료를 토대로 연구하고, 결과를 내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지. 잘 알고말고.”

“그런데 부족하나마 자료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고, 전승마저 끊긴 학문을 토대부터 세우는 건 얼마나 힘들까요. 아이린이 공부하는 마법공학이 그런 학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린은 그저 공부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습니다. 제가 낀 건틀릿이 보이십니까?”

위즈는 강철 부품으로 손가락까지 감싸는 쇠장갑을 내밀었다. 기사들이 착용하는 건틀릿이다. 위즈의 것은 손목부분에 모자챙과 닮은 둥근 테두리가 달려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모자손 건틀릿. 아이템 포켓과 건틀릿을 결합한 물건으로 알고 있네.”

“이걸 만든 사람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분명히……유랑하는 발명가 소녀였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네만 대단한 실력이라고 생각하네.”

“그 발명가 소녀는 유적 주변에 주로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요.”

출현장소는 유적이며, 나이어린 소녀.

두 가지 단서가 제시되자 렌틸은 위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곧 눈치 챘다.

“설마, 그게 내 손녀란 말인가?”

“아이린도 인정했습니다.”

렌틸은 아이린의 자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내 손녀가 너무 뛰어나다 이건가? 그래서 135명의 암살자가 동원된 것이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하르칼에서도 아이린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회유를 한다면 장차 바하르칼에 힘이 되어줄 인재였겠지요. 하지만 렌틸을 이용한 시점에서, 그 손녀가 협조적으로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정확하게 보았네. 내 손녀는 자신과 주변사람을 해하는 사람이라면, 겉으로만 웃는 척하고 속으로는 뒤통수 칠 궁리를 할 테니까.”

렌틸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 옆집에서 기르던 개를 어떻게 골탕 먹였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옆집에서 기르던 개는 사람이 타고 다녀도 좋을 만큼 커다란 덩치의 맹견이었다. 이 개는 영악하기까지 해서 사람을 놀리길 즐겼다.

비가 온 다음날, 길거리가 진창이 되면 이 개는 적당한 대상을 물색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한 목표가 진창 근처를 지나가면, 갑자기 달려 나와 크게 짖는다. 덩치 큰 개가 나와 짖어대면 사람들은 놀라서 뒷걸음질 치고, 그때 진창을 밟아 뒤로 넘어지게 된다. 그러면 넘어진 사람은 더럽혀진 옷 때문에 울상을 지으며 허둥지둥 자리를 벗어난다. 이 개는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을 골려먹었다.

피해를 당한 사람 중에는 렌틸도 있었다. 이때 넘어진 렌틸은 꼬리뼈에 금이 가서 한동안 의자에 앉질 못했다.

할아버지가 끙끙 앓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은, 그날부터 노끈을 가지고 참새를 잡기 시작했다. 올무를 놓는 방법은, 사냥감에 대한 관찰이 전제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린은 매번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렌틸은 손녀가 그저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잡아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린은 일주일 뒤, 정말로 참새를 잡아왔다.

그때 아이린이 한말은, 참새를 구워달라는 것이었다.

“참새를 ‘정말’ 좋아하는군요.”

“어린애 식성치고는 특이하지. 다른 맛난 것도 많은데 하필이면, 술안주나 할법한 볼품없는 걸 깨작이고 있으니. 아무튼 그날부터 아이린은 매일 참새를 구워먹었네. 그리고 다 먹고 남은 뼛조각을 추려서 참새의 모습을 재구성했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 모습은 마치 해부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모습 같았어.”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아이린은 참새보다 훨씬 큰 새를 먹고 싶다고 했다.

렌틸은 닭고기 수프를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도 아이린은 생전의 닭의 모습으로 뼈를 늘어놓았다.

닭고기수프를 먹고 난 뒤부터는 아이린이 참새를 가져오는 일이 끊겼다. 렌틸은 어린애가 싫증을 낸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이튿날.

옆집의 맹견은 주인의 손에 죽었다.

“듣기로는 갑자기 미쳐 날뛰면서 주인을 물었다더군. 화가 난 주인은 장작을 패던 도끼로 녀석의 머리통을 쪼개놓았지.”

주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하던 놈이, 그날은 어째서 주인을 물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렌틸만은 어찌된 일인지 알았다.

이날 저녁 아이린이 모든 걸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렌틸이 술안주로 참새구이를 먹을 때, 향긋한 냄새에 침만 꼴딱꼴딱 삼키던 아이린이 달라고 보챈 적이 있었다. 이때 렌틸은 살만 발라 아이린의 입에 넣어주면서, 뼈가 부서지면서 날카롭게 변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때 일을 기억한 아이린은, 뼛조각이 뱃속에 들어가면 매우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참새를 잡았던 것이다.

“그럼 이웃집 개에게 새의 뼛조각을 먹인 겁니까?”

“아이린은 날마다 참새를 두 마리씩 잡았다더군. 한 마리는 구워서 먹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날개에 상처를 입혀서 이웃집 개에게 던져주었지.”

처음엔 본체만체 하던 개였지만, 피를 흘리는 작은 생명은 잠자고 있던 야성을 깨웠다. 아이린은 날마다 참새를 먹였고, 이웃집 개와도 점점 친해졌다.

그리고 닭고기수프를 먹은 다음 날.

아이린은 고깃점이 붙어있는 닭다리와 뼛조각을, 이웃집 개에게 먹였다.

그동안 꾸준히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이웃집 개는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다.

아이린이 준 닭고기에는, 작은 나사못과 설사를 일으키는 열매가 들어 있었다.

“이웃집 개가 주인을 문 것은, 뱃속을 찔러대는 나사못 때문이었네.”

아이린은 할아버지를 다치게 만든 개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린의 나이는 6살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리광 부리고 떼쓸 때, 아이린은 할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나갔던 것이다.

“잠깐만요. 결국 나사못을 사용할 거였으면, 어째서 참새를 잡은 건데요?”

“아이린은 정말로 참새의 뼈 때문에 다칠 수 있는지를 확인한 거였네. 그래서 그 많은 뼈 중에 어느 부분이 쓸모가 있을지를 알아보았던 것이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참새같이 작은 생물의 뼈는 조리를 잘하면 그냥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하네. 먹이를 토막 내어 삼키는 짐승의 경우엔 위장에 구멍이 나기도 전에 소화시켜버릴 정도지. 하지만 아이린은 그 사실을 몰랐어. 그렇지만 자신의 계획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만은 인지하고 있었지. 그래서 스스로의 미숙함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거야.”

“그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군요. 참새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래서 아이린이 닭을 사용한 거라네.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실제 닭의 뼈를 삼켜, 위장에 천공이 생긴 경우를 여러 번 보았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보였는지 나사못까지 사용했네.”

“불확실한 계획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자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맞춰볼까? 아이린이 무섭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자면…네, 그렇습니다. 미물을 상대로 벌인 일이기는 하나, 한 생명을 죽이기 위해 한 달의 시간을 투자한 건 사실이니까요.”

“섬뜩한 이야기지. 하지만 아이린을 혼내지는 않았네.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위해서 한 일이었으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아이린에게 가족은 나 하나뿐이라네. 날 얼마나 끔찍이 생각할지 상상해보게나.”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흔히들 가족구성원이 부족한 만큼, 비뚤어지게 성장할거라고 여기기 일쑤다. 하지만 인간은 부족한 걸 채우고, 아쉬움을 만족으로 바꾸는 게 본능으로 자리잡아있다.

따라서 빈자리를 채우려고 정을 갈구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가족구성원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과적으로 가족 간의 결속은 강해진다.

과일나무의 가지를 치고, 꽃의 숫자를 줄이면 과실이 더욱 탐스럽게 영그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면, 아이린은 복수를 하려고 할 거네. 옆집 개에게 친근하게 굴듯이, 원수에게 웃으며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겠지.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겠지. 바하르칼에서도 그걸 알고 있을 거야.”

“전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할아버지를 해친 자들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렌틸님의 말을 듣고 보니, 아이린의 성격상 집요하게 복수할 타입이군요. 바하르칼에서는 이런 것까지 알고서 암살자를 135명이나 투입한 걸까요?”

“내가 알기로는 암살이 결정될 때까지, 타깃에 대해 많은 조사가 이루어진다더군. 출신이나 환경, 평소의 언행 등을 수집해서 성격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걸세. 단적인 예로, 조금 전에 말한 ‘결손가정’이란 것만 생각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거지. 아이린이 가족에 집착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말이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여자아이가,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이 여자아이는 장래 마법공학을 이끌어갈 천재이며, 겉으로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 자제력까지 지니고 있다.

당연히 이 여자아이가 크기 전에 처리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잇페인의 요구대로 렌틸님이 죽어도, 아이린은 암살당할 거예요. 그럴 바엔 둘 다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죠.”

정곡을 찔린 렌틸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후…또 들켰나.”

“렌틸이 자살한 것만 세 번을 봤어요. 이젠 눈빛만 봐도 다 안다고요.”

“이젠……어떡해야 할 지 나도 모르겠네.”

“방법이 있어요. 두 사람 모두 살아날 방법이.”

위즈는 레미라의 마스터들이 아이린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을 알려주었다. 아라톨이란 이름의 마스터가 평생 동안 아이린을 보호할 것이며, 아이린은 이제 원 없이 마법공학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원래대로라면 아이린이 직접 할아버지에게 말해줘야 했지만, 이렇게 잠들어버렸으니 할 수 없이 제가 대신 알려주는 거예요.”

“오…신이시여…….”

렌틸은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위즈가 중얼거렸다.

‘바하르칼이 아이린을 암살하려고 하는 건, 다른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도 있었었다.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


날이 밝자마자 위즈는 간밤에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글쎄 엔틸리움에 암살자들이 들어왔다더군.”

“감히 신성왕국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려 했다는 건가? 그것도 요즘 같은 시기에?”

“이놈들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던 거지. 숫자도 100명이 넘는다던데?”

“이거 등골이 서늘한 게 기분이 영 안 좋군.”

“괜찮아. 성기사들이 간밤에 출동해서 다 잡아들였다고 하니까.”

하지만 몇 걸음 앞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자네 눈이 충혈 됐군.”

“우리 집이 지하수로 근처에 있지 않나.”

“거기서 악취라도 올라와 잠을 설친 건가?”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지하수로에서 밤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네. 땅이 울리고 집까지 흔들렸지.”

“우리 집은 멀쩡했으니 지진은 아닌 것 같군.”

“듣자하니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100명의 암살자 있지? 그놈들이 거기서 누군가와 싸웠다나봐.”

“오늘밤은 편히 잘 수 있겠군. 그놈들은 죄다 잡혔다고 하니 말이야.”

“그게 그렇지 않다네. 성기사들이 지하수로에 들이닥쳤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고 하네.”

“뭣? 그렇다면 이 도시에 암살자들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린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위즈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행준비를 끝마친 일행들이 속속들이 들어와 입을 열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암살자’ 이야기였다.

“누구는 잡혔다 말하고, 누구는 도망쳤다고 말하더군.”

“땅굴을 팠다는 이야기가 있었소.”

“신전에 잡혀간 소환자 녀석이 제물로 삼았다는 말까지 있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는, 성기사들이 암살자를 잡지 못했다는 것.

“분명 통로를 무너뜨렸고, 독으로 마비까지 시킨 뒤 성기사들에게 알렸는데 어떻게 도망쳤을까요?”

“한패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

“하긴, 135명이나 동원했으니 아직 더 남아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그나저나 아이린은 아직도 자고 있나요?”

“비약의 기운이 제법 강한 것 같네.”

“억지로라도 깨워서 나가야겠네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네. 억지로 깨우려면 억지로 비약의 기운을 토해내게 해야 하네. 그러면 치료는 물 건너가지.”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암살자가 언제 다시 습격할지 모를 상황에서, 엔틸리움에 머무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냥 잠든 채로 데리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네.”

“그래도 괜찮겠어요?”

“괜찮고말고. 간밤에 비약의 부작용에 대해 조사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네. 수정구를 얻은 마물의 특성에 따라 비약의 효과에 차이가 있더군. 자네가 준 수정구는 사이테리아에서 얻은 것이라 했지?”

“네. 분명 사이테리아였어요.”

“사이테리아는 환각을 보게 하는 마물이네. 그래서인지 사이테리아로부터 얻은 수정구에도 꿈을 꾸게 하는 힘이 있다고 적혀 있더군.”

“그래서 아이린이 잠에 빠진 거로군요.”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 보이네. 수정구 그 자체를 삼킨 게 아니니까, 비약이 완전히 체내에 흡수되면 깨어날 걸세.”

“그럼 짐 챙기는 대로 이곳을 떠나도록 하죠.”


작가의말

연참 18일 째...

연참대전 마지막 날이니만큼, 엄청난 분량을 드랍하고 싶었습니다만.....

오늘은 시간이 부족해서 이정도로만 올립니다.

10시경에 집에 들어와서

씻고 글 쓰니 시간이 촉박하군요.


100분 토론도 아니고....

1시간 30분동안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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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2) +3 14.06.26 695 24 30쪽
123 12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1) +2 14.06.17 1,105 20 31쪽
122 11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0) +2 14.06.14 682 18 26쪽
121 11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9) +2 14.06.09 1,602 91 28쪽
120 11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8) +2 14.06.05 974 31 23쪽
»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2 14.05.31 1,615 96 23쪽
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70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7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5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09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10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4 40 25쪽
112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7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0 44 24쪽
11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59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3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3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88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5 33 25쪽
10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1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59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7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8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49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7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5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2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28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3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5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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