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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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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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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11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0.

일행들이 말을 타고 이동하는 길은, 깊은 숲속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내뻗은 나뭇가지에 잎사귀들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어서, 안쪽에서 본 숲은 해질녘처럼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피워 만든 길 근처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나뭇가지를 길게 내뻗어 그늘을 드리우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밤낮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숲은 나무들로 인해 지붕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이 뚫어놓은 길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달리는 길은 드문드문 밝은 황토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깨진 유리조각이 길 위에 흩뿌려진 모습처럼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부린 마법이다.

말을 달려 그곳을 밟으면, 그림자가 져서 황토색은 어둡게 변하고, 이번엔 말과 사람들이 반짝거렸다.

서늘한 숲 그늘을 헤치며 말을 달리다가 그런 햇살을 뒤집어 쓸 때면, 사람들은 서늘함과 포근함이 공존하는 이 순간이 그렇게나 청량할 수 없었다.

이 때 만큼은, 뒤에서 추적해오는 라이칸스로프들과 암살자들의 존재를 잠시만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조금 전 마법을 퍼부어 암살자들의 발목을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말을 달리면서도 꾸준히 캐스팅을 했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들이 달려드는 순간을 노려, 후방의 숲 수십 미터를 늪으로 만들어버렸다. 늪의 지속시간은 3분. 이미 빠진 녀석들은 3분간 늪 속을 헤엄쳐야만 하고, 아직 빠지지 않은 녀석들은 늪을 돌아 움직여야만 한다.

“이제 슬슬 숲의 좌우에서 녀석들이 치고 나올 때인가?”

레미라 마법사 한 사람이 고삐를 바꿔 쥐며, 매직스틱으로 길 옆-오른쪽 숲을 겨누었다. 숲을 향해 매직 스피어가 연달아 발사되었다.

우직! 콰직!

나무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바닥에 몸을 뉘었다. 발사된 주문에 비해 쓰러진 나무들이 많았다.

컹!

숲속을 달리던 라이칸스로프들이 일제히 뛰어올라 나무위로 이동을 시작했다. 놈들이 밟고 지나간 나뭇가지들이 꺾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문의 관통력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길의 왼쪽에 위치한 숲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마법사가 한 차례 주문을 쏟아낸 것만으로도, 라이칸스로프들은 이처럼 확실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다른 마법사가 기다렸다는 듯 매직 스틱을 쳐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땅에서 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무가 뿌리를 뻗은 단단한 땅이 뭉그러지더니 이내 질퍽대는 진창으로 변했다. 나무들은 땅에 박힌 모습 그대로, 서서히 늪 속으로 잠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파괴력 있는 주문이 아니다보니 모든 변화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가 늪지대의 나무를 밟는 순간, 나무가 뿌리째 기울어지며 라이칸스로프를 진창에 패대기쳤다. 라이칸스로프는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멀쩡한 나무조차 통째로 삼켜버리는 깊이의 늪이었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라이칸스로프의 몸은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잠시 후 라이칸스로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번엔 죽었겠지요? 제법 깊으니.”

빌헬름텔이 기대할 만도 하다. 이번에 쓴 주문은 강화판, 늪의 깊이만 해도 20여 미터나 된다.

“저걸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하필이면 녀석들이 마물이라 장담할 수 없소.”

“그래도 생물 아닙니까?”

그때 빌헬름텔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늪의 표면이 꿀렁 소리를 내며 라이칸스로프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건 잠시 뿐, 라이칸스로프의 머리는 다시 가라앉고 말았다.

“허…허허…….”

빌헬름텔은 질린 표정으로 물러섰다. 레미라 마법사는 다시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마물은 숨도 안 쉬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도 며칠을 버티지. 용암 속에 던져버리지 않는 이상, 그리 쉽게 죽진 않을 거요.”

라이칸스로프들은 마물다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녀석들에게 늪은 단순한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빌헬름텔은 이것이 단순한 시간벌이임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렇다면 이대로는 안 되겠군.’

마법사들을 따라 말을 달리며 빌헬름텔은 남은 화살의 수량을 확인했다.

20발 들이의 특제 화살이 1통.

틈나는 대로 만든 수제화살이 200개.

엔틸리움의 잡화점에서 싸게 구입한 저급한 화살이 500개.

저급화살은 100발 단위로 묶어서 인벤토리에 들어 있다. ‘애로우 샤워’를 쓸 때 사용하기 위해서다.

빌헬름텔은 100발 단위로 묶여진 화살묶음을, 활시위에 살짝 걸어 비스듬하게 쏘아 올렸다.

“애로우 샤워!”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날아가던 화살 묶음이 풀리면서, 화살이 확 퍼져나갔다.

한 점을 노리는 공격이 아니라, 일정 면적을 제압하는 공격.

화살비는 마법사가 만든 늪을 향해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화살이 아무것도 없는 늪에 박혔다. 단 3발의 화살이 이제 막, 탈출을 시도하는 라이칸스로프의 머리에 박혔을 뿐이다.

크륵!

그 모습을 확인한 빌헬름텔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라이칸스로프는 회피율이 높은 적이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아처가 상대하기엔 난이도가 너무 높다. 그런 적을 여유롭게 상대할 때도 아니고, 지금은 도주하는데 더 신경 써야 할 처지다. 그렇지만 견제사격으로 적을 소모시키는 건,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할 일이다.

‘딜레이와 코스트가 큰 마법사보다는, 아처인 내게 적합한 일이다.’

이것이 때때로 화살을 날리는 이유다.

그동안 빌헬름텔은 곡사로도 날려보았고, 힘을 잔뜩 실어 관통화살도 먹여보았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눈치 빠르게 피해버리니, 정직하게 날리는 화살로는 부상조차 입히지 못했다.

한 점을 노리는 공격은 피하면 그만이었다.

아처가 한명 더 있었다면 시간차 사격이라도 하겠지만, 일행 중에 아처는 빌헬름텔이 유일하다. 그래서 애로우 샤워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빌헬름텔은 실망했다.

100발을 소모하여 3발이 명중했다. 그것도 단 한 마리의 라이칸스로프에게.

‘싼 화살을 썼지만, 그래도 형편없는 가성비야.’

늪에 빠졌기에 한 마리라도 맞춘 것임을, 빌헬름텔은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발을 묶어 놓지 않으면, 애로우 샤워도 모조리 피해낼 라이칸스로프들이다.

어찌 보면 이번에야말로 제 값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킬이 주는 고유 효과는 노리기 힘들다. 이래서는 반쪽짜리 성공이지.’

애로우 샤워는 화살자체의 데미지는 적다.

다만 상태이상을 주는 옵션들이 높게 책정되어 있을 뿐이다.

어지간한 상태이상은 무시하다 못해 씹어 먹는 마물들에겐 유효한 수단이 아니다. 화살에 은도금을 하지 않는 한, 평범한 화살로 마물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긴 힘들다.

차라리 그냥 관통력을 높여 활을 쏘는 게 나았다.

‘그래봐야 아직 샤프슈터로 전직하지 않았으니, 데미지는 미미할 뿐이야.’

빌헬름텔은 예전에 샤프슈터를 키운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냥 아처이면서도 샤프슈터가 쏜 것과 비슷한 위력의 화살을 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진짜 샤프슈터와 비교하면 격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빌헬름텔이 애로우 샤워를 사용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네이쳐스 아크.

네이쳐스 아크의 힘을 사용하면, 화살에 바람, 화염, 냉기, 대지, 전격의 속성을 걸 수 있다. 거기에다 올코너스의 유산을 얻으며 섭취한 ‘맹독의 정화’로 인해, 빌헬름텔은 모든 공격에 독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화살에 맹독과 다른 다섯 가지 속성을 동시에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빌헬름텔이 애로우 샤워로 뿌린 화살 하나하나에는 맹독이 실려 있었다.

아무리 마물의 생명력이 대단하여도, 그런 화살을 맞고 멀쩡할 리 없다.

라이칸스로프가 다시 한 번 늪의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번엔 머리뿐만 아니라, 상체가 늪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제까지의 시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성과다.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나무 끄트머리를 박차면 단숨에 늪을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는 그러지 못했다. 도약하는 자세 그대로 몸이 뻣뻣하게 굳은 라이칸스로프는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다시 늪 속에 잠겨들었다.

다시 가라앉는 라이칸스로프의 머리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조금 전 애로우 샤워 스킬로 날린 화살이다. 라이칸스로프는 마물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죽진 않았지만, 거의 빈사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말았다. 때문에 행동 불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라이칸스로프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화살에 맞지 않았음에도 중독되어 체력의 1/3이 날아갔다.

늪 속에 빠진 화살로부터 새어나온 맹독 때문이다.

빌헬름텔이 섭취한 ‘맹독의 정화’는, 뱀을 닮은 종족 ‘알골’이 건네준 것이었다.

알골족의 여왕 하르페는 맹독의 정화를 만들기 전, 스스로 피를 내는 의식을 거쳤었다. 그때 그녀의 피가 뿌려진 바닥은, 단단한 돌이었음에도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그런 알골족의 피로 만들어진 독성이, 지금 라이칸스로프가 빠진 늪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죽이진 못해도 시간은 확실히 벌겠지.’

마법사가 불러낸 늪은 약 5분간 지속된다. 하지만 주문이 해제되어 늪이 사라져도, 독 때문에 라이칸스로프들은 곧바로 뒤쫓진 못한다. 설사 빈사상태를 이겨내고 움직인다 하여도, 중독 상태에선 꾸준히 체력이 감소하게 된다. 이는 최상급 중화제가 아닌 이상 절대 풀지 못한다.

잘못하면 레미라 마법사들이 견제용으로 아무렇게나 날린, 매직 애로우 한발에 끝장 날수도 있다. 독 데미지는 이래서 무섭다.

그렇다면 저들은 소모품에 불과한 라이칸스로프의 중독 증상을 치료할 것인가?

그럴 리 없었다. 네크로맨서 입장에서는 중독된 채 쓰다가 죽어버리면, 다시 새로운 개체를 소환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마물을 소환하게 되면, 레미라 마법사들이 눈치 챌 수밖에 없다. 위치가 노출된다면 곧장 캐논급의 주문을 쏠 것은 분명하다. 위즈 역시 섀도 런으로 네크로맨서를 급습하고 싶어 했다.

즉, 마물을 소환하는 순간이, 네크로맨서를 해치울 기회인 것이다.

아처인 빌헬름텔 자신도 라이칸스로프보다는,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살가죽이 두꺼워 화살을 막아내는 건 아닐 테니까.

‘네크로맨서도 그걸 경계하고 있다.’

마법사들이 탐지를 해도 걸리지 않는 게 그 증거.

네크로맨서는 탐지범위를 까마득히 벗어난 곳에 있다.

그렇다면 해치운 숫자만큼의 라이칸스로프를 소환하는 작업도, 당연히 멀리서 이루어지게 된다. 멀리서 소환했으니, 추격하는 대상을 따라잡는 건 더욱 힘들어진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이득이지.’

네크로맨서를 잡을 기회를 얻거나, 아니면 증원을 늦추는 것.

이것이 빌헬름텔이 노리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위즈님은 어떡하고 있는지 궁금하군.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언제까지나 속아 넘어가진 않을 텐데.’


◇◇◇◇◇◈◇◇◇◇◇◇◈◇◇◇◇◇◇◈◇◇◇◇◇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는 길가와는 달리, 숲속은 너무도 어두웠다. 이따금씩 쓰러진 고목이 있는 곳을 지나야, 겨우 햇빛을 맞을 수 있었다. 암살자들이 모인 곳도 그러했다.

한창 도주 중인 타깃을 내버려두고, 이들이 잠시 멈춘 이유는 독으로 범벅이 된 늪 때문이었다.

암살자들은 늪에서 막 벗어난 라이칸스로프와 다시 합류했다. 그때 암살자 하나가 라이칸스로프의 털에 남아있던 독에 당해 쓰러졌던 것이다. 평소 훈련을 통해 독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암살자가, 몸도 못가누고 쓰러지는 독.

암살자들은 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타깃을 처리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몰살당하리라는 것을 알았다.“사람만이 아냐. 마물까지 중독되었다.”

늪을 빠져나온 라이칸스로프들은 어딘지 모르게 기운이 없어보였다. 빳빳하게 서 있어야 할 귀가 축 늘어져 있고, 코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마물을 중독 시킬 정도의 극독이라니. 그런 게 있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쓰질 않았던 거지?”

“독해서일 거다. 마물에게 통할 정도라면, 다른 곳에 새어나갈 경우 큰일이 벌어질 테니까.”

“대단한 독인만큼 양도 부족할 테고.”

“일단은 늪에서 빠져나온 놈들은 따로 분류하고,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해야겠어.”

이렇게 되자 암살자들은 더 이상 라이칸스로프들을 직접 통솔하지 못했다.

털에 묻은 독을 씻어낼 시간이 없었기에, 가까이 둘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최상급 중화제를 준비해오긴 했다. 중독되는 일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최상급 중화제라는 게, 각 상점마다 하루 ‘5병, 10병’ 이렇게 낱개로 들여놓는 귀한 물건인 게 문제다. 그렇기에 암살자들이 가진 최상급 중화제는, 한두 번 사용할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중독될 때마다 펑펑 써댈 수 없다.

“그럼 근접공격은 포기해야 하나? 지금까지처럼 석궁으로 공격하는 건, 신경 긁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다. 놈들의 일행은 대부분이 마법사니까.”

“결국 라이칸스로프의 자폭 밖에 안 남는군.”

“하지만 가까이 붙지 않으면, 자폭이고 뭐고 소용없지 않나? 게다가 자폭이 가능한 라이칸스로프는 몇 마리 남지도 않았다고. 한 20마리가 동시에 자폭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고민도 안 하는데.”

“잠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좋은 수가 있나?”

“이거 알고 있나? 이 지역에선 구운 벽돌로 집을 짓지 않는다.”

“그냥 흙벽돌로?”

“그렇지. 왜냐하면 그냥 흙이 아니니까. 횟가루가 많이 섞인 흙이거든.”

“그러고 보니……이 근처에 석회석 광산이 있었군.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차피 라이칸스로프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어. 그리고 중독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전부 죽겠지. 그렇다면 빨리 써버리는 쪽이 더 이득이다!”


◇◇◇◇◇◈◇◇◇◇◇◇◈◇◇◇◇◇◇◈◇◇◇◇◇


레미라 마법사들은 인상을 구겼다. 통하지 않는 걸 뻔히 알면서 계속하여 석궁을 쏘아대는 암살자들 때문이다.

“신경을 긁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이로군. 매직 애로우!”

쿼렐이 날아온 방향으로 주문을 날리며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말을 몰면서 배리어를 유지하고, 따로 캐스팅을 하여 주문을 쏘는 게 계속되자, 레미라 마법사들의 평상심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캐스팅의 시간이 길어졌으며, 주문의 정교한 컨트롤이 되지 않아 주문의 명중률이 떨어졌다.

또 다시 발사된 쿼렐이 배리어를 긁으며 튕겨져 나갔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마법사 하나가 조금 과격한 주문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이번에도 주문은 명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하면서 흩뿌려진 화염에 암살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정확히는 암살자들이 타고 있는 라이칸스로프들이 그러했다.

마법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달리던 빌헬름텔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그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저놈들은 화살을 마차에 싣고 다니나? 어째서 물 쓰듯이 낭비하는 거지?’

다른 게임이라면, 아처는 그냥 활만 가지면 되었다. 화살 같은 건 따로 팔지도 않았으며, 그냥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동작만 하면 알아서 생겨난 화살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오션에서는 활만 가지고는 활을 쏠 수 없다. 소모품인 화살을 꼭 챙겨야 했다.

그래서 더 오션에서는 다른 게임과 달리, 아쳐가 화살을 마구 퍼부으며 싸울 수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싸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화살이 떨어지고, 아처는 맨몸으로 적에게 내던져지게 된다.

아처들이 화살 하나하나의 명중률을 높이는 쪽으로 발달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게임 초반에 공통스킬인 이글아이를 둘러싸고 다툰 것이다.

‘석궁에 쓰는 살, 쿼렐은 그 길이가 조금 짧을 뿐 일반 화살과 다를 게 없다. 한 사람이 소지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 그런데 저렇게 마구 퍼붓는다는 건……총력전?’

빌헬름텔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드문드문 호수 같은 게 있었다.

‘설마 수중 몬스터를 숨겨 놓았나? 아냐. 호수는 길과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를 호수로 끌어들이지 않는 이상, 소용없는 일이야. 그럼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지?’

그가 고민하는 동안 일행들과 암살자들은 숲을 벗어났다. 이들이 숲을 막 벗어난 순간, 암살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황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배리어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크게 확장되기보다는 두꺼워진 배리어는, 동료 마법사들이 친 배리어와 합쳐지면서 보다 견고해졌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 위를 덮친 라이칸스로프 두 마리가, 풍선처럼 몸을 크게 부풀렸다.

마법사들은 서둘러 배리어에 변화를 주었다. 위즈를 통해 놈들이 자폭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리플렉션 실드 폼!”

잠시 후.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는 지경까지 늘어난 살가죽이 터지며, 보랏빛 화염이 이들을 덮쳤다. 밖에서부터 덮치는 맹렬한 충격에 배리어가 부들부들 떨리며 사람들을 압박했다. 이대로 가다간 배리어가 날아 가버리고, 사람들은 화염에 휩쓸려버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 배리어의 떨림이 멈추며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보랏빛 화염은 배리어를 맴돌면서 그 기세를 잃어갔다. 그 대신 배리어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마치 불의 장벽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배리어 안쪽은 한증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끈후끈하게 변했다.

레미라 마법사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익스플로전!”

그러자 배리어가 머금고 있던 보랏빛 화염이 사방으로 뿜어져나갔다. 이들을 해치우려고 한 자폭공격이 고스란히 암살자들에게 날아들었다.

“모두 피햇!”

하지만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암살자가 셋이나 되었다. 그들은 보랏빛 화염에 닿는 즉시 재가 되어 스러졌다. 타고 있던 라이칸스로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울부짖음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시 거리를 벌린 암살자들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공격을 되돌릴 줄이야!”

“하지만 이걸로 됐어. 놈들은 이제 고립되었으니까.”

바닥으로부터 작은 울림이 전해졌다. 암살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아! 모두 파워드 스톰프를 사용한다!”

암살자들이 석궁을 치우고 무기를 뽑아들었다. 모닝스타와 워 해머. 하나같이 무거워 보이는 것들뿐이다.

그것을 확인한 빌헬름텔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주변의 호수로 시선을 주었다. 저들의 노림수는 저 호수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호수에 눈이 간다.

“저 호수는 함몰된 빈 공간에 물이 고인……. 아!”

빌헬름텔은 암살자들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석회암 지대입니다!”

레미라 마법사들은 빌헬름텔의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그들은 말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놀란 말들이 일제히 튀어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암살자들이 이죽거렸다.

“이미 늦었어!”

암살자들의 손에 들린 중병기들이 땅바닥을 힘차게 찍었다.

그러자 땅이 쩍쩍 갈라지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길이 무너져 내렸다.

이곳은 석회암 지형.

스며든 빗물에 석회암이 녹아, 땅속 깊숙이 빈 공간이 드문드문 존재하는 곳.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아래에도 빈 공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단단하게 천장을 받치던 석주 덕분이다. 그런데 암살자들이 라이칸스로프들을 보내어, 그 석주들을 모조리 박살내버렸다.

‘산사태라면 이해하겠지만, 멀쩡한 지반을 붕괴시키다니! 역시 암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군!’

뒤늦게 알아차린 만큼, 일행들은 완전히 도망치진 못했다.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쪼개진 균열은 일행들을 완전히 양단시켜 놓았다.

균열은 그 폭이 십여 미터나 되어 건너 뛸 수 없었다. 비행주문이라도 쓰지 않는 한 절대 무리.

그리고 균열을 피해 라이칸스로프들이 이들을 에워쌌다.

기껏 숫자를 줄여놓았더니, 이런 식으로 다시 포위망을 형성할 줄은 빌헬름텔도 몰랐다.

게다가 포위망을 형성한 녀석들 중에는 맹독에 당한 녀석들이 있었다.

머리위에 떠 오른 그래프가 붉은 색으로 변한 놈들.

‘난 맹독에 내성이 있지만, 일행들은 그렇지 않다. 저 놈들과 가까이 하기만 해도 중독될 수 있어.’

빌헬름텔은 매고 있던 활을 풀어 화살을 메겼다. 1발에 은화 10개짜리인, 특제 화살이다.

“화염이여……내 화살에 깃들라.”

장갑 상태인 네이쳐스 아크로부터 전해진 화끈한 기운이 화살에 담겼다. 불을 붙인 화살과는 달랐다. 불의 하급정령이 직접 깃든 것이라, 약간의 아지랑이가 생길뿐, 겉으로는 표시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정령을 깃들게 했어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그렇다면……익스플로전 애로우!”

시위를 떠난 화살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며 전방에 강렬한 불꽃을 내뿜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이 재빨리 피했지만, 퍼져나간 화염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거의 풀스택의 코로나와 맞먹는 범위였다.

화염의 정령과 익스플로전 애로우의 궁합이 너무 잘 맞아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넓은 범위만큼이나 데미지도 분산되어 사실상 큰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 의도한 대로, 라이칸스로프의 털에 묻은 독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털까지 홀라당 타버린 라이칸스로프들의 노란 눈동자가 빌헬름텔을 향했다.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군.”

빌헬름텔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라이칸스로프를 한 녀석을 노리고 재빨리 활시위를 튕겼다 놓았다. 라이칸스로프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머리를 처박은 채 빌헬름텔의 발치까지 밀려왔다. 라이칸스로프의 양쪽 눈에는 한 개씩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속사로 쏘아낸 것이다.

빌헬름텔은 활을 아래로 내려 쓰러진 라이칸스로프의 정수리에 대고 활을 쏘았다.

퍽!

정확히 급소를 얻어맞은 라이칸스로프의 몸이 한차례 들썩이더니 잠잠해졌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라이칸스로프를 잡으셨습니다.>

<422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빌헬름텔은 자신이 잡은 라이칸스로프의 머리에 한쪽 발을 올리고 느릿하게 화살을 재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할뿐 당장 달려들지 못했다.

마법사보다 쉬운 상대라고 여겼는데, 너무나 쉽게 동족이 죽어나가자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중독된 놈들 잡아놓고 의기양양하구나!”

“감히 아쳐 따위가 우릴 방해해?”

암살자들이 일제히 석궁을 겨누었다. 그것을 본 빌헬름텔은 코웃음을 쳤다.

“이래도 웃을 수 있나 보자!”

암살자들이 일제히 석궁을 발사했다. 빌헬름텔은 활을 들어 마주 화살을 발사했다. 그러자 화살이 날아간 궤적을 따라 거센 바람이 일며, 쿼렐들이 모조리 튕겨나가 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샤프슈터를 상대해본 적이 없나보군.”

“뭐?”

빌헬름텔은 세발의 화살을 꺼내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순차적으로 발사했다. 한발은 하늘 높이 쏘아올리고, 나머지 두발은 정면의 암살자들을 노렸다.

푸푹!

라이칸스로프들이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 뒤에 숨은 암살자도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그리고 암살자는 정수리로 날아든 화살에 맞고, 라이칸스로프에서 굴러 떨어졌다. 보나마나 즉사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중급암살자를 잡았습니다.>

<2612의 경험치를 얻으셨습니다.>


“이, 이럴 수가!”

“하늘로 쏜 화살이 떨어지는 순간을 계산했다고?”

죽은 암살자의 머리에 꽂힌 화살은, 앞서 하늘로 쏘아 보낸 화살이 맞았다. 암살자들은 서둘러 투구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 모습을 본 빌헬름텔은 활을 바꿔들었다. 지금까지의 나무 활과 달리, 들고 있는 것만도 벅찬 철궁이다.

“잠시 배리어로 보호해주시겠습니까?”

“그리 하겠소.”

지켜보던 레미라 마법사가 배리어를 확장시켜, 빌헬름텔을 감쌌다.

“흐읍!”

빌헬름텔은 활대를 바닥에 찍으며 체중을 실었다. 그러자 활이 구부러지며 완만한 아치를 그렸다. 그것의 양 끝에 줄을 건 빌헬름텔은, 활시위에 저급화살을 걸었다.

“이제 배리어를 치워주십시오.”

푸른색의 막이 걷히자마자 활시위로부터 화살이 떠났다. 화살을 따라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화살에 걸린 강력한 회전력이 바닥의 흙먼지를 말아 올리며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목표는 측면의 라이칸스로프.

하지만 라이칸스로프는 이제까지처럼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라이칸스로프는 어쩔 수 없이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팔이 닿는 순간, 화살의 회전력 때문에 팔뚝이 접히며 종잇장처럼 구겨져나갔다. 그렇게 팔을 날려버리고도 화살에 실린 회전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화살은 라이칸스로프의 몸통을 꿰뚫고 뒤로 빠져나가, 그 뒤에서 얼쩡거리던 다른 라이칸스로프의 어깨마저 박살내버렸다. 그러고도 남은 기세 때문에 화살촉이 빙글빙글 돌며, 상처에서는 피 분수가 치솟았다.

크쿼어어어!

어깨를 꿰뚫린 라이칸스로프가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암살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빌헬름텔이 다시 철궁에 화살을 먹이며 중얼거렸다.

“말에서 내리니 확실히 잘 맞는군.”

암살자들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작가의말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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