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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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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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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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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4,356

작성
14.05.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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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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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글자
19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9.

엔틸리움으로 들어올 때, 위즈와 렌틸은 많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신성왕국에 방문한 목적이 뭡니까?


많은 도시 중에 엔틸리움에 굳이 방문한 이유는?


다른 마을이나 도시를 거쳐 온 적 있습니까?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무기의 개인 소지는 허가합니다만, 이후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정황증거가 나올 시 다시 조사에 응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지금 꺼내놓지 않은 무기를 사용하는 게 적발될 때는, 의도적으로 범죄를 모의한 것으로 간주해 체포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신성왕국에 방문하기 전 행적을 증명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수단으로 크레센토에서 신성왕국까지 온 것 입니까? 도보? 마차?

.

.

.

검문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질문의 홍수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틴 자만이 출입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이라도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나, 답변이 부실하면 출입이 통제 당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성벽근처에 천막을 펼치고, 엔틸리움의 치료사들을 성 밖으로 호출해야 했다. 그래서 엔틸리움 근처에 세워진 천막에는, 왕진 나온 치료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줄을 선 사람들은 통행증의 내용을 달달 외우며, 혹시라도 질문을 받고 실수할까봐 초조해 했다. 단체로 그러고 있으니 사교무리들이 주문이라도 읊는 걸로 보일 지경이다.

위즈 역시 혹시 모를 실수를 예방하려고 통행증의 내용을 살피고, 머릿속으로는 이미지트레이닝까지 했다.

그럼에도 뜻대로 되진 않았다. 돌발 상황은 언제든지 찾아오는 법.


현재 선택한 직업이 없으시군요. 이 통행증을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 신기할 지경입니다.

이방인 위즈님의 것은 엄밀히 말하면 통행증이 아닙니다.

크레센토 왕국의 베스퍼셰일 왕가에 확인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특히나 위즈는 무능력자인데다가, 통행증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조차 변칙적인 문서.

그렇기에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을 잡아먹었었다.

이건 나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엔틸리움 밖으로 나가는 이유는?”

“향신료로 쓸 모안티아를 채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약에 쓸 약초를 캐러 간다는 말은,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둘러댄 말이다.

성기사는 무미건조한 딱딱한 어조로 몇 가지 질문을 몇 번 하더니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5분이었다.

난데없이 성기사가 위즈에게 모안티아를 누가 쓸 것이며, 그것으로 무얼 하려는 거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위즈는 이걸로 만들 음식을 떠올리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오갔는데, 갑자기 이러니 적응이 안 되네. 이래서야 게임 밖 현실세계와 다를 게 없잖아?”

콜로니는 암릿을 이용한 통제사회.

그것이 현대문명의 정체다.

통제가 시작되면, ‘순응하는 자’와 ‘겉으로만 따르는 자’가 나타난다.

문제가 되는 건 후자다. ‘겉으로만 따르는 자’들은 불만을 입에 올리며 주변인들을 ‘잠재적인 불만세력’으로 변질시킨다. 그리고 불만세력이 늘어나게 되면, 이들은 무력을 통해 뜻을 이루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과 충돌이 발생한다.

지금이야 비교적 통제에 잘 따르는 모양새이지만, 콜로니 생활이 시작된 초창기에는 내전 직전상황까지도 갔었다. 하지만 결국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사히 넘긴 것도 아니다. 대신 분리주의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콜로니 밖 아우터 라인으로 몰아낸 불만세력들이 바로 이들이다. 한번 생긴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를 잘 알고 있기에, 위즈는 이 더 오션이라는 게임 속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성 밖으로 나오면서 위즈는 이미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다.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천막이 있었다. 안쪽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벌써부터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입장. 거기에다가…….’

실질적인 피해까지 입었다면 이미 이익집단化가 이루어지고도 남았다.

“바하에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이렇게 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요?”

“맞아! 성기사 놈들 때문에 엔틸리움에 들어가는 게 늦어진다고!”

선동자와…….

“하지만 이건 우리가 자초한 일 아니요? 약초 때문에 사람만 패지 않았으면…….”

“그래도 검문 강화는 너무한 거라고 생각해요. 뻔히 환자들 사정 알면서 딱딱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

흔들리는 자와…….

“내 가족이 죽어 가는데, 사람 좀 팬 게 뭐가 어때서?”

“아내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찬동하는 자들…….

위즈는 그들이 드나드는 천막을 눈여겨보고 위치를 기억해두었다.

가족을 잃은 자는 악에 받혀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약간의 불씨만 던져져도 저런 이들은 가해자로 돌변한다. 그건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어도 마찬가지.

‘일단은 내 쪽에서 피해 다녀야겠다.’

위즈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게 보이면, 멀리 빙 돌아서 갔다.

천막과 사람들을 피해 움직이다보니 위즈는 뻔히 숲을 코앞에 두고도 곧장 들어가지 못했다.

그건 잘한 일이었다. 다들 엔틸리움에 들어가려 난리인데, 밖으로 나온 사람은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위즈 역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두리번거리며 천막들을 지나치는 모습은 마치 사람을 찾는 모양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관심을 접었다.

왕진 나온 치료사이거나, 혹은 심부름꾼 정도로 여긴 것이다.

위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참 좋았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드문드문 지나갈 때를 빼고는 밝은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그림자 역시 짙어진다.

구름이 살짝 낄 때 지상에 덧씌워진 잠깐 동안의 음영은, 구름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 갔다. 그중 하나가 우연히 숲과 연결되자 위즈의 눈이 번뜩였다.

‘섀도 런!’

그리고 위즈의 모습은 지워지듯 사라졌다.


◇◇◇◇◇◈◇◇◇◇◇◇◈◇◇◇◇◇◇◈◇◇◇◇◇


보통은 처음 보는 식물을, 그냥 생김새만 전해 듣고 채취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초록의 물결 속에 빠지면 이게 그거 같고, 그게 이거 같아서 더욱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렌틸이 알려준 ‘모안티아’는 일단 줄기가 주황색이었다.

꽃이 아닌 다른 부분이 그런 밝은 색을 띠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으므로, 그런 특이점을 중점적으로 파고들면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주황색……이거로군.”

위즈는 색이 너무 짙어 초록보다는 검은 색에 가까운 잎사귀가 달린 줄기를 꺾었다. 그 줄기의 색은 주황이었다. 하지만 말리지 않은 상태는 처음 본다. 아직은 이게 모안티아인지 뭔지 알 수 없다.

“일단 확인해야겠지.”

위즈는 그것의 잎사귀를 조금 뜯어 입속에 집어넣었다.


<모안티아의 잎사귀를 맛보았습니다.>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입니다. 맛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방부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방] 약성을 강화시키는 처리에 사용됩니다.>


별까지 붙은 설명을 보며 위즈는 픽 웃었다.

“비방이라……이건 실험으로 알아낸 결과 때문인가?”

어쨌거나 모안티아는 신성왕국의 위험한 분위기를 바꿔놓을 귀중한 것이다. 위즈는 즉시 모안티아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따로 모안티아를 담아올 자루는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이방인인 위즈에게는 인벤토리가 있었다. 문제는 위즈의 인벤토리에 빈 공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다는 점이다.

하얀 도자기 같은 파편들이 인벤토리를 절반이상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하나로 겹쳐지지 않았다.

레미라 수호전쟁 당시 위즈는, 풍랑을 만나 배에서 떨어졌고 그때 아쿠에리언과 만났다. 그리고 아쿠에리언의 부탁을 받아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용병마법사가 득시글거리는 섬에 홀로 침입했다. 그때 위즈는 용병마법사들의 제단을 파괴하고, 바다에 펼쳐진 광역기후통제 마법을 무효화 시켰다.

파편은 그때 얻은 것이다.

인벤토리 부족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지만, 위즈는 제단의 파편을 버리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쓸데가 있을 것 같았기에.

결국 위즈는 1칸 1칸을 알뜰하게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아이템은 번들(묶음)상태로 만들었다. 1칸이라도 더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건 모안티아를 채취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위즈는 모안티아를 꺾는 족족 나뭇단 같은 형태로 엮었다.

모안티아의 줄기는 회초리처럼 낭창낭창하고 질기기까지 하여, 묶는 끈 대용으로 모안티아의 줄기를 사용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된 나뭇단은, 대충 지금 여자 모습으로 팔을 펼쳐 한 아름 정도 크기다. 굵다면 굵은 크기이지만 위즈는 이정도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나뭇단 중에 일부러 작게 만든 걸 가운데에 두고, 다른 여섯 개를 둘러가며 엮고는 다시 바깥부분에 끈을 둘러 다시 묶었다. 그러자 일곱 개의 나뭇단이 둥글게 연결되어 훨씬 큰 덩어리가 되었다.

위즈는 시험 삼아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나뭇단 위에 앉았다. 무너지기는커녕 의자처럼 위즈의 몸을 훌륭히 받혀주고 있다.

“더 훌륭한 건, 번들취급 받아서 인벤토리를 1칸만 차지한다는 거지.”

위즈는 만들어진 나뭇단을 인벤토리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이 되니 익숙해져서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모두 다섯 개의 커다란 나뭇단을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은 위즈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엔틸리움은 보이지도 않는군.”

신나게 채취할 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엔틸리움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렌틸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왔던 길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막 꺾여 진액이 흐르는 모안티아 줄기를 이정표 삼으니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왔던 길을 절반 정도 밟아나갔을 때, 나무 사이로 엔틸리움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왔군.”

위즈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엔틸리움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막을 친 사람들의 눈에도 위즈의 모습이 보이게 된다. 숲속에 사람이 있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약초를 채취하려 들어왔다는 게 알려지면, 뭣도 모르는 사람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간격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렌틸은 중급 마법사니까, 들키지 않고 알아서 잘 오겠지.”

만날 장소야 따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숲의 바깥쪽에 있으면 탐지든 뭐든 써서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미리 마력을 보는 눈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위즈는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마력의 파문이 자신의 몸을 훑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탐지를 쓴 마법사가 렌틸이 아니라는 점.

렌틸의 마력은 적갈색. 하지만 지금 사용된 탐지에 담긴 마력은 오렌지색이다.

잠시 후, 전혀 다른 제3의 마력이 담긴 파문이 위즈를 지나쳤다. 뒤이어 제4, 제5의 파문이 발생했다.

위즈는 얼굴을 굳혔다. 마력의 근원은 멀리 있는데, 퍼져나가는 파문의 마력은 선명하다.

그만큼 고출력으로 탐지를 행하고 있다는 뜻.

신성왕국에까지 와서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찾아대는 마법사라면 다른 경우를 생각할 수 없었다.

“레미라의 강경파 마법사…….”

위즈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몰라도, 렌틸을 잡아가려는 자들이 이곳 엔틸리움에 와 있다. 저들의 방해를 떨쳐내지 못하면 퀘스트는 실패할 것이다.

“어떡하지?”

일단은 렌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엔틸리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아무리 렌틸을 잡아가는 일이 급하다 해도,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도시 안에서 허튼 짓을 할 리 없었다.

“여기서 뭉그적거릴 때가 아냐. 일단 정문 쪽으로 가서…….”

그때 위즈의 몸에 적갈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파문이 닿았다. 렌틸이 탐지를 사용한 것이다.

“아…….”

잠시 후 옆쪽의 풀숲이 흔들리며 렌틸의 모습이 나타났다.

“신전과 치료사 협회에 다녀오는 길이네. 모안티아를 이용한 약성 강화법을 알려주었으니, 약의 생산량이 늘어나게 될 거네. 모안티아는 많이 모았나?”

“렌틸…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꼼짝 마라.”

렌틸이 나타났던 방향에서부터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렌틸의 몸에서 적갈색 파문이 번져나갔다. 렌틸이 한숨을 내쉬었다.

“포위당했군. 중급마법사씩이나 되어서 꼬리가 붙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내 불찰이네.”

“몇 명이죠?”

“스무 명.”

“일단 숫자에서 밀리지만 여긴 숲이에요. 모든 공격이 다 명중하긴 힘들 거예요. 그리고 여차하면 성기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고요.”

“누구 마음대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스무 명의 복면인들.

그들의 손에는 도끼와, 단검을 동여맨 어설픈 창이 들려 있었다. 위즈는 나타난 그들을 보고 당황했다. 렌틸이 말한 스무 명이, 레미라의 강경파 마법사인 줄 알았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사람들 마법사인가요?”

“아닐세.”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스무 명이란 숫자. 그리고 어설픈 무장상태.

위즈는 저들이 세알마을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습격자와 동일인임을 알아차렸다.

“우릴 쫓아온 건가?”

“흥. 쫓는 건 어렵지 않았지.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렌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막 다른 사람이 사용한 탐지의 파문이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까지 찾아 왔는가.”

렌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신호로 위즈와 렌틸을 포위한 인원이 늘어났다.

새로이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여행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허리엔 호신용으로 쓸 법한 검을 차고, 손목에는 가죽보호대를 했으며, 담요로 써도 좋을 것 같은 두터운 망토를 둘렀다. 한날한시에 같은 가게에서 구입한 것처럼 같은 복장을 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이었다.

약 30센티미터 길이의 기다란 막대기가 바로 그것이다.

굵기도 가는 이런 막대기로는 때려도 아플 것 같지 않지만, 더 오션의 그 누구도 이것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 막대기의 이름은 매직스틱.

스태프와 함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2종의 무기 중 하나다.

“강경파 마법사에, 약초를 노리는 강도까지 들러붙다니.”

위즈는 인벤토리 속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막 꺼내든 단검의 상태를 보고는 얼굴을 씰룩거렸다. 내구도가 크게 떨어진 단검의 날은 군데군데 이가 빠졌고, 시커먼 얼룩 같은 게 껴 있었다.


====================================

[단검]

- 크레센토의 수도 미노클의 무기점 ‘글리텐’에서 양산한 단검입니다.

[내구도: 3 / 25]

[공격력: 10]

<정비 불량 : 날 부분에 심한 손상, 부식>

====================================


다른 단검들의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자루를 바꿔가며 썼지만 결국은 상점표.

제대로 된 관리조차 하지 않고 험하게 써댔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했다.

‘그렇다고 학살자의 망령을 꺼낼 수도 없다.’

학살자의 망령은 기본적으로 고스트 소드. 크게 분류하면 마검(魔劍)에 속한다.

지척에 성기사가 있는데 그런 무기를 휘두를 수는 없는 일이다.

퀘스트를 받고 신성왕국으로 오게 되었을 때, 위즈는 팬 사이트를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알아보았었다. 그중 하나가 고스트 소드에 대한 것이었다.

빌헬름텔에게 ‘키 소드’의 존재를 듣고 위즈는, 언젠가는 ‘학살자의 망령’을 들고 신성왕국을 방문하려고 생각했었다. 언제까지나 귀신 붙은 칼로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마검을 비롯한 마속성 무기를 가진 유저들이 주의할 점이다.

마검도 무기의 일종. 따라서 신성왕국에서는 이러한 무기의 소지를 금지하진 않는다.

다만, 신성왕국 안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마검을 사용할 때 발산되는 사악한 기운은, 마족이나 마물들이 내뿜는 기운과 유사하다. 따라서 정작 마물이 쳐들어왔을 때, 마검이 내뿜는 기운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성기사들이 위험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

그래서 신성왕국에서 마검을 사용할 경우, 즉시 체포되어 구금당한다.

평생 동안.

이건 유저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살을 해도, 부활장소는 감옥이다.

탈옥도 불가능하다. 이 감옥은 신성왕국의 대신전 앞 광장에 있다.

디바인 파워가 깃든 빛나는 쇠사슬에 묶여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시당한다. 디바인 파워 때문에 이 쇠사슬은 절대 끊을 수 없다.

사실상 게임 접으란 소리다. 신성왕국이 망하지 않는 한, 빠져나갈 길은 없다.

마검을 사용한 사람만 처벌받는 게 아니다.

마검 자체는 디바인 파워를 듬뿍 먹인 후, 깨뜨려서 용광로에 처넣어버린다.

캐릭터야 똥 밟았다 치고 다시 키우면 그만이지만, 고가의 마검은 그대로 박살나서 두 번 다시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신성왕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무기라고 가진 건 이런 것뿐이고 적들은 많아. 어떡하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사 무기가 멀쩡했어도 이들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약초를 노리는 자들이야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했지만, 이겨도 져도 문제가 된다. 숲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성기사들이 몰려들 것이다. 성기사들은 이러한 다툼 때문에 엔틸리움에 100명이나 배치 된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경우 애초에 상대가 불가능했다. 이들에게 포위당한 시점에서 진거나 다름없었다. 전투에 특화된 용병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도 까다로운데, 레미라의 정통 마법사와 싸우는 것은 몇 배나 더 어렵다. 위즈는 어밴던드 폴리스에서 이들이 ‘탐지’의 출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을 보았다. 톨네스는 10% 출력의 매직애로우로 바위를 깨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레미라 마법사들이야 말로 진짜배기 마법사.’

그렇기에 이들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설사 이들을 이길 실력이 되더라도 싸워서는 안 되었다.

‘퀘스트 설명 중에는 실패할 경우 게임 속의 모든 학자계열 NPC들에게 미움 받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건 레미라가 학자계열 직업군에게 영향을 미칠 역량이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레미라의 마법사와 싸워 다치게 만들면?’

위즈는 식은땀이 쭉 솟았다. 퀘스트를 실패했을 때보다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방해자인 강경파 마법사들은 절대 해쳐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뭐 이런 엿 같은 일이 다 있어?’

약초를 노리는 자들과도, 레미라의 마법사들과도 싸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약초도 빼앗기고, 렌틸은 잡혀간다.

그리고 아이린은 약을 먹지 못해 죽고 말 것이다.

그리 되면 퀘스트는 실패.

‘나 위즈 버리고, 캐릭터 새로 파야 하는 거야?’


작가의말

2014.11.08 수정

[8,912 => 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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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50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8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6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3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29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4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5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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