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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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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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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0.

축제가 결정된 것은 오늘. 축제가 벌어지는 날도 오늘.

필요한 물건도 오늘 구해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오늘이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축제라 준비가 부족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사람들은 축제를 시작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신전 앞 공터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었다.

악기를 구해 달랑 1시간 동안의 연습으로 자신감이 붙은 연주자들이, 궤짝 따위를 가져다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때 거리의 악사로도 활동했다는 자칭-음악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악기를 꽉 움켜쥐었다.

이들이 함께 연주하려는 것은 흥겨운 춤곡으로, 축제 때 흔히 연주되곤 하는 친숙한 것이었다.

크게 어렵지 않은데다가,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기 때문에 실수할 부분도 적었다.

연주자들의 경력을 생각해보면 선곡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주는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렸다. 아니 그냥 불협화음이면 다행이었다.

곡은 흥겨웠으나 듣고 있자면 어딘가 괴로워지는 연주였다.

함께 음을 맞춰본 적도 없는 악기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갑작스레 협주를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악기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었다.

처음엔 전성기의 실력을 생각하고 자신만만했지만, 연주가 계속되면서 이들은 냉혹한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이며 입술이 주인을 배신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갔다.

바이올린은 음이 자꾸만 엇나갔고, 트럼펫은 가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궤짝을 두들기는 손길은 가끔씩 엇박자를 냈다.

이정도면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건 연주자 본인들이 더 잘 알았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연주를 계속한 것은, 엉망진창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그나마 봐줄만 했다. 축제 때 놀아본 가락이 있는지, 불협화음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스텝을 바꾸며 춤을 이어나갔다.

그들 중에는 고난이도의 동작-텀블링 따위를 성공시키며 흥을 돋우는 실력자도 있었다.

그 점이 연주자들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봐라! 이런 엉망인 곡에 맞춰 춤을 춰주는 이들이 있다! 다행이도 저들은 매우 숙련된 무용수임에 틀림없다. 저 움직임에 걸맞은 음악을 연주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연주자들의 눈빛은 진중해졌고, 조금씩 실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점점 곡에 익숙해지면서 이들은 뿌듯해 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젠 다른 곡도 연주하시죠. 신청곡 안 받나요?”

춤꾼들은 보다 다양한 곡을 원했다. 이들의 요구는 연주자들의 귀에는 도전과도 같이 들렸다.

이래가지고는 내 장딴지에 경련조차 일어나지 않는다오. 좀 더 분발하시구려.

연주자들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신청 받은 곡을 연주해야 했다.

축제에서 연주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곡을 연주해야 한다.

크윽. 분하다. 하지만 슬슬 젊을 때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어.

연주자들은 다시 예술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곡이 바뀌자마자 다시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연주자들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크윽!”

바이올린을 잡은 노인이 빠르게 활을 비비고 꺾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흥겨운 가락을 연주해냈다. 악기를 얼굴로 연주한다면 지금 노인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그 모습은 다른 연주자들을 자극했다.

궤짝을 두들기며 장단을 맞추는 노인은, 그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손목의 관절염을 이유삼아 태만하지 못했다. 트럼펫을 부는 중년인은 볼이 불룩해지도록 숨을 내뱉었다.

“오오! 아까보다 곡이 듣기 좋아졌는걸?”

사람들의 호응이 뜨거워지자 연주자들은 자신들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다! 병마와 오랫동안 싸워오며 잃어버렸던 게!

축제가 불러온 활력이 음악에 실렸다.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의 몸이 들썩거렸다. 노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정교한 맛이 없었지만, 그걸 듣고 있자니 왠지 춤을 춰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몸이 가벼워집니다. 경쾌한 발놀림. 음이 지속되는 동안 이동속도 [(W)초당 3m 고정]>


“이, 이건!”

호기심에 기웃거리던 유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이 축제지 유치원 학예회보다 못하다며, 은근히 무시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헌데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 자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드다! 저 노인네들!”

“그것도 고레벨이다!”

대충 연주한 것 같은 음악임에도 이정도 효과다. 몇몇 유저가 황급히 음악을 녹음했다. 나중에 악보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바드에게 이 곡을 팔면 비싸게 받아먹을 수 있다.

“다양한 곡을 얻어야 한다!”

유저들은 앞 다퉈 춤판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춰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새로운 곡을 연주해달라고 연주자들에게 부탁했다. 연주자들은 기꺼이 그리했다.

유저들은 다양한 곡을 녹음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연주자들은 마음껏 악기를 다룰 수 있어 좋았다. 이득을 얻은 건 이들만이 아니다. 위즈 역시 간만에 카피캣 관련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늙은 바드의 연주곡 - ‘골든 위크 에이머리’를 들었습니다.>

<이동속도가 [(W)초당 3m 고정]됩니다.>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서 효과가 반감됩니다.>

<카피캣 발동!>

<‘골든 위크 에이머리’의 불완전한 악보를 무한의 서에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바드가 아니더라도 이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효과적용 한계 80%.>


“바드가 아니라도?”

더 오션에서는 꼭 바드가 아니더라도, 유저가 악기를 다룰 수 있다. 대신 바드가 아니기에 아무런 효과도 누릴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막 들은 ‘골든 위크 에이머리’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고는 피아노 조금인데…….”

더 오션에도 피아노는 있다. 하지만 피아노는 가지고 다니면서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다. 바드의 음악을 연주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끙……기타라도 배워야겠군.”

위즈는 악보를 얻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제일 신난 것은 환자들이었다.

위즈가 만능조제스킬로 만든 가루약의 효과 덕분인지, 이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축제를 즐겼다. 엉터리 음악에 맞춰 장단도 안 맞는 춤을 췄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리고 축제가 계속되면서 유저들은 전율했다.

환자와 가족으로만 치부했던 NPC들이 특기를 발휘하자, 새삼 그들이 다양한 스킬을 가진 존재임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전투가 아닌 축제이기에 대부분의 스킬들이 생활 전반적인 것에 관련된 잡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저들의 관심을 끌만한 게 있었다.

예를 들면 바위 앞에 망치와 정을 들고 우뚝 서 있는 아줌마가 사용한 스킬 같은 것.

“우왓! 저 아줌마, 일격에 바위를 박살냈어!”

“훗! 숙련된 석수(石手)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더 오션의 여성은 대부분 가정주부나 농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바위를 쪼개어 유저들의 감탄을 자아낸 아줌마 역시,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굵직한 팔은 밀가루를 반죽하고 빨래를 빨면 어울렸다. 하지만 그 손에 들린 건 망치와 정.

그녀의 말대로라면 석수, 그것도 베테랑 석수였다.

유저들은 이 특이한 직업의 매치를 보고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본 아줌마는 턱을 치켜 올렸다.

“후후! 이번엔 더 큰 바위에 도전하겠다.”

“좋은 바위를 쪼개놓고 뭐가 잘나서 큰소리냐 큰소리가!”

아줌마를 윽박지르며 노인이 망치와 정을 빼앗아 들었다.

“지금 차력 쇼를 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자고로 축제라면 그럴듯한 조각을 만들어 세워놓아야지!”

“아빠~차력도 엄연한 축제의 꽃…….”

“두 동강 낸 바위를 어디다 쓰라고 이러는지 쯧쯧. 그리고 이 녀석아! 이제 나이 40이면 깍듯이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아빠가 뭐냐! 아빠가!”

그러면서 아줌마의 등짝을 철썩 소리 나게 때리는 노인. 아줌마는 등짝을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노인네가 갑자기 팔팔해져가지고는…….”

아줌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노인은 부서진 바위를 마주보고 섰다.

“잘 봐라! 이것이야 말로 4대를 이어 내려오는 석수의 비기!”

노인네는 부서진 바위의 반쪽에 대고, 그냥 정을 이리저리 그었다. 예사롭지 않은 노인의 모습에 유저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바위를 바라보았다.

과연 노인이 보여줄 비기가 무엇인가.

하지만 정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바위는 멀쩡하잖아?”

“영감님! 기력이 달려서 그래요? 그냥 따님이 차력쇼 하게 내버려 둬요!”

유저들이 야유를 보냈다. 그러자 아줌마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시끄러워! 모르면 잠자코 있어!”

아줌마의 기세가 어지간한 전투계열 NPC못지않았기에 유저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떠들었냐? 너냐?”

“침묵은 금이라 했지.”

“난 떠든 적 없어.”

단숨에 이방인들을 휘어잡은 아줌마가 손바닥의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아버지! 저 녀석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줘요!”

바위에 정을 이리저리 긋던 손길이 멈췄다. 노인은 바위의 한 점에 정을 고정시키고는, 망치를 후려갈겼다. 그러자 바위의 겉 표면이 바삭바삭한 과자처럼 바스러져 내렸다.

노인은 바위를 가볍게 탁 쳤다.

쩡!

바위가 부르르 떨리면서 돌 부스러기가 완전히 떨어져나갔다.

유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헉! 통배권이다!”

노인이 때린 부분은 멀쩡한데, 그 반대편 부분이 퍽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노인은 터져나간 반대편이 하늘을 보도록 바위를 굴렸다. 활짝 핀 장미가 드러났다.

“우와!”

“뭐, 뭐야 저거?”

망치로 때리기 전에 이리저리 정으로 그어대긴 했지만, 결국 망치질은 딱 한번 이루어졌다. 노인은 정교한 조각을 망치질 한번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파열을 극성으로 연마하면 정교한 조각도 쉽게 깎을 수 있지. 빠르고 정확하게! 이것이야 말로 사흘 만에 바위정원을 완성시킨 풀몬티家 비기다!”

“멋져요 아빠!”

“또 아빠라고 부른다!”

철썩. 등짝에 스매싱을 맞은 아줌마의 작업복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딸을 때리는데 통배권을 쓰고 있어.”

“그걸 맞고 멀쩡한 아줌마도 대단하다.”


<풀몬티 A. 제이비어의 파열조각술을 보았습니다.>

<카피캣 발동!>

<하위스킬인 해체를 가지고 있기에, 파열조각술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파열조각술에 앞서 사용된 ‘공상 선긋기’는 전승스킬입니다.>


“전승스킬이라 이거지?”

위즈는 바닥에 구르는 주먹만 한 돌을 주워들었다. 조금 전 아줌마가 쪼갠 바위에서 나온 것이다. 파열 조각술이라는 건 그다지 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상 선긋기’는 탐이 났다.

전승 스킬이라서가 아니다.

‘말이 선긋기지, 보이지 않게 잘라낸 거였어.’

마력을 보는 눈으로 노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기에 위즈는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마력을 정 끝에 집중하여 보이지 않는 칼날을 형성했다는 것을.

그래서 바위를 잘라내고도,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마력을 컨트롤 하는 것만큼은 렌틸에게 이미 인정받은 바 있는 위즈다. 마력을 보는 눈 덕분에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어서이다.

“호오? 자네!”

정을 든 위즈가 작은 돌조각을 이리저리 긋는 모습을 발견한 노인이 다가왔다.

“이건 우리가문의 비기이거늘! 어떻게!”

노인은 위즈에게서 돌조각을 빼앗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어설프지만 확실해. 자네도 석수인가?”

“그냥 해체만 겨우 하는 수준입니다.”

“겸손한 만큼 실력이 쓸 만하군. 좋아! 축제 때 자네 같은 이방인을 만날 줄은 몰랐지만, 알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수는 없지. 나를 도와 축제를 빛낼 조각을 만들지 않겠는가? 분명 얻을 게 있을 거야.”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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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퀘스트/ 늙은 석수의 유희]

축제가 벌어지는 엔틸리움에서 늙은 석수 제이비어는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싶어 합니다. 그를 도와 조각을 완성시키면 그의 비기를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난이도: D+ / 레벨제한: 없음.

임무: 풀몬티의 조각을 완성하시오.

보상-1: 파열조각술이 정교해집니다. [부서진 파편들이 더욱 작아집니다.]

보상-2: 공상 선긋기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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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겠습니다.”

위즈가 망치와 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던전 공략광인 레비의 말대로 자물쇠를 부수는 등의 용도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망치와 정을 가지고도 해체가 스킬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위즈였으니 조각을 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노인과 아줌마에게 구박을 받아가며 조심스레 손을 놀린 끝에, 양손을 모으고 서 있는 여신의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모델은 위즈가 가진 이름 없는 여신상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큰 틀은 늙은 석수와 아줌마가 담당했고, 디테일한 부분은 위즈가 작업했다.

“후후. 언젠가는 종교관련 석물을 제작하고 싶었는데, 그 바람을 오늘 이루게 되었군. 어떠냐. 나의 못난 딸아.”

“이방인의 심미안이 제법이군요. 딱히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신비한 미소가 모든 걸 압도하고 있어요.”

“후후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석수로서 오늘 참 즐거웠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난 이만 퇴장해야 될 것 같구나.”

“아빠? 몸이 안 좋은 거예요?”

“약기운이 떨어지는 것 같구나. 뭐, 이젠 괜찮겠지. 치료사들이 만든 약이 풀렸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한 병 사서 마셔야겠구나.”

위즈는 석수 모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살펴 가십시오.”

“석수의 길을 걸을 것 같진 않지만, 내게 배운 것들을 잊지 말게. 지금 배운 게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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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퀘스트/ 늙은 석수의 유희][완료]

보상-1: 파열조각술이 정교해집니다. [부서진 파편들이 더욱 작아집니다.]

보상-2: 공상 선긋기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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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웠다고 중얼거리며 늙은 석수는 딸의 등에 업혀 돌아갔다.

위즈는 시스템 메시지를 살폈다. 돌발 퀘스트로 위즈가 받은 보상은 파열조각술과 공상 선긋기였다. 하지만 카피캣 덕분에 덤으로 획득한 기술도 있었다.

바로 노인이 바위 부스러기를 털 때 사용한 기술.

장저로 가볍게 쳐서 충격파를 전달하는……촌경이었다.

이와 비슷한 기술로는 다리로 사용하는 진각이 있다.

진각과 마찬가지로 소모치가 전혀 없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었다.

위즈가 늙은 석수에게 퀘스트를 받는 것을 보고, 유저들이 웅성거렸다.

“이건 기회다! 비전투 스킬 중에서도 알짜배기만 골라 배울 기회!”

유저들은 흥분하여 축제가 벌어지는 엔틸리움을 헤집고 다녔다. 덕분에 축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NPC들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방인 때문에 더 신나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축제를 즐겨 볼까나.”

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음식이다.

위즈는 구리동전을 짤랑이며, 노점에서 파는 음식들을 맛보러 다녔다.

다양한 튀김과 구이를 우물거리던 위즈는 코를 벌름거렸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났는데, 그게 익숙한 냄새였던 것이다.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은은하게 구수한 이 냄새는…….”

위즈는 어제 여관 앞까지 찾아온 베베노의 늙은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호박파이를 떠올렸다.

호박으로 속을 가득 채우고, 겉은 바삭하게 구워낸 파이.

호박시럽이 듬뿍 들어 있어서, 설탕과는 비교도 안 될 단맛이 났었다.

그 고급스러운 달콤함 때문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설마 그 노인도 노점을 차린 건가?”

위즈는 달콤한 향기에 이끌리듯 걸어갔다. 그리고 퍽퍽 주먹을 내지르며 밀가루를 치대는 베베노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당신은 그……아얏!”

반죽을 하던 베베노는 정강이를 붙잡고 펄쩍 뛰었다. 그의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한심하게바라 보았다.

“말조심해라. 은혜를 원수로 갚을 셈이냐.”

“역시…… 알고 계셨군요.”

어제 여관 앞에서 만났을 때 베베노의 늙은 아버지는, 여성아처 모습을 한 은인에게 줄 파이를 엉뚱한 사람에게 주었다. 왜소한 체격의 애송이. 카무플라주로 모습을 바꾼 지금의 위즈에게. 노인의 변덕이라 볼 수도 있었지만, 위즈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그랬던 거라 생각했다.

이어지는 노인의 말은 위즈의 짐작이 맞았음을 증명해주었다.

“늙은이의 감이랄까. 허허. 새벽에 무사히 풀려나났다는 걸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네. 그런데 난데없이 축제라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군. 단숨에 긴장상황을 해소 시켜버렸으니.”

“거기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지 않았다면, 내 또래들은 이 축제가 누굴 위해 벌어진 건지 알고 있지. 그러니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저글링을 하는 거네. 나이를 먹으면 약삭빨라져서, 주어진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거든.”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강이를 주무르며 베베노가 물었다. 지혜로운 아버지와는 달리, 근육덩어리인 베베노는 이번 축제에 대해 생각한 게 없는 듯 했다. 노인은 베베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만약 축제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들은 신전을 쓸어버리려고 모인 불순분자로 오해받아 진압 당했을 거다. 그런데 이 이방인이 엉뚱한 축제를 들먹이며 우리들을 구제해준 거지. 게다가 이렇게 놀다보면 기분도 한결 나아질 거 아니냐. 그런데 아들아.”

“네?

“언제까지 밀가루만 주물럭거릴 거냐? 호박파이 말고도 만들 음식이 많거늘!”

“흐억! 살려 주세요 아버지! 저 요리 못하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러면서 베베노는 뒤쪽에 놓여 있는 그릇을 가리켰다. 그릇에는 보라색 액체가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위즈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보았다. 냄새가 그럴듯하게 났기 때문에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가지구이용 양념장을 맛보았습니다.>

<미각이 마비됩니다.>


“우웩!”

위즈는 떫은맛에 몸서리 쳤다.

“대체 뭐가 들어간 거예요? 마족의 심장이라도 집어넣은 거예요?”

“그, 그냥 평범한 재료를 넣은 것뿐인데…….”

베베노가 우물쭈물 거리자 그의 늙은 아버지가 다시 정강이를 걷어찼다. 베베노는 맞은 곳을 또 얻어맞고 방방 뛰었다.

“양 조절에 실패했으니 그렇지! 게다가 향초는 왜 이리 많이 넣었어!”

노점의 뒤편에는 재료가 많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 소모되기엔 요원해 보인다. 베베노는 힘쓰는 일 말고는 도움이 되지 않고, 실질적인 요리는 전부 그의 아버지 손에서 완성되고 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어이구! 내가 일류요리를 만들라고 하더냐. 그냥 평범한 재료로 다들 먹는 거나 만들자는 것 아니냐.”

“하지만 아버지의 요리는, 재료가 독창적이잖아요!”

“독창적?”

위즈는 노점에 걸린 메뉴를 보았다.

고소한 가지구이, 호박파이. 산딸기조림 등등.

다들 요리 이름에서부터 재료가 연상된다.

가지, 호박, 산딸기……모두 잘 알려진 것들이다. 이상한 재료는 없다.

“이 호박 파이만 해도 그래요. 벌집을 갈아서 집어넣었잖아요!”

“벌집?”

그러고 보니 구석에 벌집의 찌꺼기가 보인다. 위즈는 진열된 호박 파이 하나를 집어서 반으로 쪼갰다. 호박과 함께 버무려진 달콤한 시럽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기에, 검정과 노랑의 줄무늬가 새겨진 곤충이 들어 있다. 벌이었다.

벌은 머리가슴배로 3등분 되어 들어 있었다. 일부러 나눴다기 보다는 조리 과정에서 바스러진 것으로 보인다.

딱히 곤충의 식용문제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지 않는 터라, 위즈는 그것을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축축한 속 재료와 섞여 있음에도 바삭거린다.

“그냥 넣은 게 아니라, 한번 볶아서 넣었군요!”

“그렇지! 그냥 호박만 넣어서는 맛이 없거든!”

“꿀에 절인 다음 볶았죠?”

“오오! 그것까지 알아차리다니! 내 둔한 아들놈보다 훨씬 나아!”

베베노의 아버지는 위즈의 손을 마주 잡았다.

“마침 잘되었군! 요리하는 것 좀 도와주게. 겸사겸사 요리도 가르쳐 줌세.”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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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퀘스트/ 난해한 요리세계]

축제가 벌어지는 엔틸리움에서 ‘리비디시아 오레논’은 아들 베베노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 파는 노점을 열었습니다. 간만에 솜씨를 발휘하려는 그의 열정은, 일손부족으로 난관을 맞이하였습니다.


난이도: D+ / 레벨제한: 없음.

임무: 3시간 동안 요리하는 것을 돕습니다.

보상: 그 어떤 생소한 재료도 요리로 바꾸는 스킬 ‘요리개발’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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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겠습니다.”

요리스킬은 전투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가지고 있으면, 이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 보지는 않는다. 직접 만든 요리로 일시적인 버프 효과를 얻는 경우도 빈번하다.

위즈가 기대하는 점도 이런 것이었다. 더군다나 특이한 조리법을 사용하니, 색다른 효과가 부여될지 모른다.

“일단 호박파이부터 시작하지.”

베베노의 아버지는 그물망에서 살아있는 벌을 꺼냈다. 무슨 수를 쓴 건지 벌은 움직임이 둔해져서 날지 못하고 다리만 꼼지락 거렸다. 그것을 한껏 달군 팬에 살살 볶다가, 꿀을 조금씩 흘려 넣으며 뭉치지 않게 가볍게 굴렸다. 꿀이 얇게 코팅되며 바삭함이 더욱 배가된 꿀벌 볶음이 완성되었다.

그 다음엔 삶은 호박을 으깨어, 호박시럽과 섞어 파이에 들어갈 속을 만들었다. 파이 속은 적당량씩 덜어서 미리 준비해놓고, 앞서 만든 꿀벌 볶음을 한 숟갈씩 얹었다. 그리고 파이반죽으로 잘 싸서 화덕에 넣고 구웠다.

그 다음으로 도전하는 요리는, 베베노가 실패한 가지구이였다.

특이하게도……가지구이는 작은 도마뱀 튀김이 함께 곁들어졌다.

“내 상식이 시험받는구나.”

베베노가 한탄했다.

“시끄럽다. 애비의 요리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안하지?”

위즈가 베베노의 아버지와 의기투합해 요리를 만드는 동안, 베베노는 소외감을 느끼며 애꿎은 밀가루반죽만 때렸다.


작가의말

연참 11일 째......

내일만 지나면 다시 쉴 수 있겠네요.




2014.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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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2) +3 14.06.26 695 24 30쪽
123 12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1) +2 14.06.17 1,106 20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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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1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9) +2 14.06.09 1,602 9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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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70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7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5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09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10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4 40 25쪽
»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8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0 44 24쪽
11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60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3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3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88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5 33 25쪽
10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1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59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7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8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49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7 34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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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3 22 25쪽
9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5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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