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395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4.21 22:35
조회
1,134
추천
34
글자
21쪽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

witch라는 말이 가리키는 건 단순히 마녀가 아니다.

이 세계에 마녀라고 불리는, 아니 불릴 존재는 오직 하나.

300년 전 최강이라 불린 존재, 그녀 하나뿐.

그 강력함은 세상의 지배자들에게 경계를 샀다.

주변 국가들은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그녀의 친동생을 이용한 함정까지 파게 된다.

300년 전의 크레센토는 신생국가. 그리고 그 국왕이었던 동생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친 누나를 배신해야 했다.

그 때 공식적으로 witch는 죽었다. 이후 항마전쟁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활약상은 모조리 삭제되었으며 이름마저 전해지지 못했다.

각 나라에서 witch의 존재는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금지된 단어.

그것은 3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오해를 입에 올린 톨네스의 태도에서 위즈는 자신이 시험받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원래 레미라를 방문한 것은 바하르칼과의 전쟁 때문이었지, witch에 대해 알아볼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난 톨네스의 말에 즉흥적으로 반응했을 뿐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참으로 멍청한 짓을 했음을 깨달았다.

톨네스는 witch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지만, 그것이 유도심문이었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존재를 아는 체 않는 건 현명한 처세지. 이방인이라 해도 예외는 없으니 말일세. 실제론 알고 있는 자들이 드물겠지만 말이지. 그렇지만 자네는 그분에 대해 알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아닌 마법사의 성지-레미라에서 그분을 언급했네.”

“그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레미라의 마법사들과 접촉한 그랄누타이는 위즈를 이렇게 소개했다.

심상세계에 침입한 잇페인과 싸워 이긴 이방인이라고.

이 사실에 흥미를 보인 톨네스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정보인 ‘부서진 제단 파편’의 용도를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마법사의 대선배 격인 어떤 분의 의지를 이었느냐고 물었다.

위즈는 톨네스가 말한 존재가 witch를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00년 전의 최강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생각이 맞나 확인까지 했다. 그리고 톨네스의 호의를 이끌어내어, 레미라의 무명용사 퀘스트까지 받아 마법사의 탑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witch를 가리켜 영웅이라고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숨길 이유는 없었지요. 마법사 계열이니까 뭔가 통하는 것도 있겠다 싶었고요.”

“그건 맞는 말이네. 마법사라면 누구나 그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자네 지금까지 마법사들이 주문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나?”

“많이 봤죠. 굳이 레미라가 아니어도 마법사가 된 이방인들이 수두룩하니까요.”

“그렇다면 그들이 주문을 사용할 때 마법시약을 사용하는 모습도 봤겠군.”

“당연히 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마법사들이 마법시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네. 고작 이삼백년 밖에 안 되었지.”

위즈는 300년이라는 시간에 주목했다. 이 시기는 여러모로 witch가 활약한 시기와 맞물린다.

“설마?”

“맞네. 그분이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마법사들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마법시약이지. 이 밖에도 그분이 남긴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네.”

“그렇다면 모든 마법사가 witch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생각해도 됩니까?”

톨네스는 천천히 차를 한잔 비우고는 따뜻한 차를 따랐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한결같은 사람은 없는 법이고, 이익을 쫒다보면 도리를 망각하는 게 사람이기도 하네.”

“그 말씀은……witch를 존경하고 그녀가 남긴 연구로 이득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witch를 적대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까?”

“자네는 크레센토 왕국에서 왔지?”

“그렇습니다.”

“듣자하니 크레센토 왕실에 남겨진 유훈과 관련하여 문제를 해결해준 듯 하더군. 그것은 아마도 유린에 얽힌 일이었겠지.”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이 사실이 퍼지면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 걸세. 그분은 우리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할머니 격인 존재이니, 그분의 불행한 과거사가 일단락 된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줄 테지. 하지만 크레센토 왕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마법사들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네.”

“witch를 함정에 빠뜨린 건, 300년 전 신생왕국이었던 크레센토를 압박하던 주변 국가들이었으니까요. 그들의 후손인 타 왕국 출신의 마법사들은 대 놓고 아는 척하진 못한다 이거로군요.”

“그렇지. 그리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라도 레미라 역시 대놓고 그분을 지지할 수는 없네. 자네가 ‘마음속의 성소’를 이은 걸 알면서도, 시험하듯이 결사대로 내몬 건 그런 이유에서였네.”

“하지만 아예 시험할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조금 전에 절 보고 오해할 틈이 없다고 말씀하신 건 톨네스님이지 않습니까?”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네. 혹시나 함정이 아닐까 걱정하지 않았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정말 제가 witch와 관련이 있어서 처분할 생각이었다면, 지금 제가 초대받은 곳이 다과회가 아니라 지하 감옥이어야 하겠지요.”

“역시 솔직해서 좋군. 오해할 틈이 없어서 말이네.”

“이렇게 해주시니 제 입장에서도 좋습니다. 그럼 톨네스님이 해주신 충고를 받아들여, 앞으로는 witch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나.”

둥둥.


§§§§§§§§§§§§§§§§§§§§§§§§§§§§§§§§§§§§§§§§§§§§§

[돌발 퀘스트/ 레미라의 무명용사] [완료!]

§§§§§§§§§§§§§§§§§§§§§§§§§§§§§§§§§§§§§§§§§§§§§

보상-1: 칭호-레미라의 무명용사.

보상-2: 레미라의 어밴던드 폴리스로의 통행이 가능해집니다.

§§§§§§§§§§§§§§§§§§§§§§§§§§§§§§§§§§§§§§§§§§§§§


====================================

[레미라의 무명용사]

- 성장 :

① 레벨업 때마다 집중력과 근성 스탯이 자동으로 오를 확률이 10%.

② 스킬 사용으로 얻는 보너스 스탯이 집중력과 근성인 경우, 자동으로 획득할 확률이 50%로 상향.

- 불굴의 투지 :

[현재 HP가 최대수치의 10% 이하로 떨어졌을 때 1분 동안 캐스팅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 평정 :

언제나 영적에너지가 넘치는 상태가 됩니다. (마력 재생력 초당+5)

- 존재감 zero :

선행이든 악행이든, 어떤 일을 해도 인정받기 힘듭니다. (상위 NPC가 당신의 존재를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


<언제든지 레미라의 어밴던드 폴리스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칭호의 내용을 대충 살핀 위즈는 그럭저럭 쓸 만하다 생각하고 일단 퀘스트 창을 닫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직 퀘스트가 완전히 끝난 게 아냐.’

두 사람은 조용히 쿠키를 씹고 차를 따라 마셨다. 쿠키가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티 포트에 담긴 차가 줄어들었다. 대화 없이 그저 마주 앉아 즐기는 티타임은, 생각을 정리하기 딱 좋았다.

‘톨네스는 시험하듯이 결사대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주변국가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행한 일.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은 ‘무명용사 칭호’의 부여와, ‘어밴던드 폴리스로의 진입권한’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받은 보상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결사대 칭호’를 받았고, 경험치 버프와 함께 1주일간 레미라의 던전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내가 받은 보상은 진짜 보상 같지 않아. 마치 구색만 맞추려고 끼워 넣은 모양새야.’

특히 어밴던드 폴리스로 진입할 자격이 그렇다.

차를 마시며 계속 생각한 결과, 위즈는 여기에서만 받을 수 있는 어떤 특혜나 보상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마음속의 성소’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어 무명용사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그렇다.

달리 말하면 witch의 유산을 이은 후계자 같은 존재이기에, 전해줄 무언가가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 일부러 구색에 불과한 결사대 퀘스트를 주고, 그 보상으로 레미라의 지하도시-어밴던드 폴리스로 불러들였어.’

위즈는 일단 자신이 받을 게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물건만 건네주는 거라면, 지상의 레미라 요새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이곳까지 내려오게 할 이유는 없다.

“침묵은 시간을 더디게 만들고, 시간이 더디면 생각이 많아지지.”

찻잔을 내려놓으며 톨네스가 입을 열었다. 이미 그는 위즈의 머릿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자네에게 줄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네. 그저 창고에서 찾아낸 한권의 책이지.”

톨네스가 허공을 길게 훑어 내리자, 그의 손에 두꺼운 책이 한권 잡혔다.

금속마구리가 네 귀퉁이를 장식한 두꺼운 책은,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처음 봤을 때 위즈는 그것이 하드커버로 된 책이라 생각했지만, 금속질의 광택을 흘리는 책 표지는 아무리 봐도 종이나 가죽재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그분께서 나중에 찾아올 자신의 후예를 위해 남긴 책이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초급 마법사를 양성하는 용도지.”

위즈는 무심코 책을 받으려 내민 손을 거두었다. 초급마법사용 책이란 말은 이걸 받으면 마법사로 전직한다는 뜻과 같았다.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스킬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카피캣이 사라지면 위즈는 그저 그런 평범한 마법사가 되고 만다.

“죄송하지만…저는 어느 직업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자네가 그분을 계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이지?”

“여러 가지에 손대느니, 한 분야만 깊이 있게 파들어 가는 게 일반적인 건 알지만……그 길 끝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면 굳이 걸어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톨네스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직업을 택하면 실패할 일이라니? 이보게 위즈. 그분이 불우했던 건 사실이네만, 그렇다고 마법사가 되면 무조건 불행해지는 건 아니네. 무엇보다 무능력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렵지 않은가? 자네도 겪어왔을 텐데? 능력이 없으니 다들 자네를 무시하려 들 것이 아닌가?”

실제 위즈는 다른 유저들과 비교해, 퀘스트를 많이 받지 못했다.

다른 유저들은 그냥 말만 붙여도 퀘스트가 쏟아지는데, 위즈가 말을 걸면 그냥 일상대화로 시작해 일상대화로 끝난다. 단순히 길이나 묻고, 소문이나 듣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이득이 없었다. 이는 무능력자인 위즈를 게으름뱅이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깊은 속내를 내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NPC들로서는 그냥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톨네스의 경우도 위즈가 witch와 관련된 게 아니었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저는 성공확률이 낮은 어떤 일을 계획 중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다양한 것을 배워서 얻는 ‘만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괜찮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면 될 뿐입니다.”

“만능…만능이 목표라. 자네는 날 두 번이나 놀라게 하는군.”

“제가 가는 길이 witch라는 존재와 어느 정도는 닿아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그림자를 쫒는 건 아닙니다.”

“매혹하는 자가 아닌 조율하는 자를 바라보는 것인가…….”

톨네스는 들고 있던 책을 탁자에 올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손을 들어 허공을 훑었다. 이번에도 역시 한권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겠네. 그렇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걸세.”

“이것은?”

“무한의 서라는 것이네.”

위즈는 인벤토리에 있을 자신의 무한의 서를 떠올렸다. 책을 베껴 필사본을 만들거나, 인스턴트 스크롤을 뽑아낼 때 사용하는 무한의 서는, 이미 위즈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이템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톨네스는 지금 그런 무한의 서를 내밀고 있다.

“톨네스님. 무한의 서라면 저도 한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즈는 자신이 가진 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톨네스는 위즈가 내미는 무한의 서를 슥 훑어보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자네가 가진 건, ‘무한증식’을 걸어둔 거로구먼. 아마도 서기나 도서관의 사서가 쓰는 물건이었을 테지. 하지만 내가 주는 건, ‘흡수 & 제한해제’가 걸린 물건이네. 상당히 귀한 물건이지.”

“그게 어떤 능력입니까?”

“먼저 흡수란, 어떤 종류의 책이든 그 내용을 이 책이 빨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네. 이렇게 내용을 빨린 책은 알맹이가 모두 백지가 되어버리지. 필사와는 달리 완벽하게 내용을 옮기기 때문에 오탈자는 절대 없는 게 장점이라네. 그리고 제한해제란, 이 책을 소지한 사람이 책속의 지식을 활용함에 있어 어떤 제한도 받지 않게 하는 것이지.”

“지식을 활용한다는 건 정확히 어떤 것입니까?”

“음……예를 들어 스킬북을 통해 스킬을 배울 경우, 그 스킬이 가진 힘을 100%밖에 쓰지 못하네. 상황에 따라 응용하거나 스킬의 위력을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지. 하지만 주어진 지식을 올바르게 활용할 능력이 생긴다면, 같은 스킬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이 가능해지지. 내 경우엔 10% 위력의 매직 애로우로 어지간한 바위는 다 깨버릴 수 있네. 헌데 굳이 100%위력의 매직 애로우를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조금 더 응용하자면, 적을 기만할 때는 위력이 낮은 공격을 가하고, 진짜 결정타는 제대로 된 걸로 먹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로군요? 그렇다면 200% 위력도 낼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충분히 가능하지. 이 책을 이용하면 원리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게 되니까. 말하자면 스스로 참뜻을 깨닫고 오의를 개발할 가능성까지 열리게 된다네.”

이건 해당 직업을 선택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마력을 보는 눈을 얻고도 카피캣으로 마법을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 불편하던 참에 이런 아이템이 굴러들어오자 위즈는 기뻤다.

“그럼 이 책이 있다면 무능력자라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물론이네. 배우는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렇지만도 않을 거네.”

“네?”

“마법사의 무기인, 매직스틱과 스태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지. 빗자루로 검술을 펼쳐봐야 그걸로 무얼 할 수 있겠나? 쥐나 잡으면 다행이지. 마법도 마찬가지네. 그냥 주문만 배운다고 다 되는 게 아냐.”

“하지만 무능력자라도 스태프는 들 수 있었는데요?”

“물론 쿼터스태프겠지?”

“네.”

“쿼터스태프는 둔기의 역할도 겸하니까 누구나 들 수 있지. 하지만 마법사 전용의 무기는 그렇지 않네. 물론 손에 쥘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걸 들고 주문을 사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네. 이래도 무능력자의 길을 고수할 텐가?”

“어째서 무능력자는 주문을 배우지 못하는 겁니까?”

“마력의 컨트롤이 힘들기 때문이네. 눈으로 마력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그게 안 되는 이상, 진짜 마법사가 되어 마력의 세례를 받아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로 마법을 쓰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네.”

위즈는 문득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미 마력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이 책에 초보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주문이 있습니까?”

“라이팅이 있네. 바로 여기 이 부분이지. 일단 무한의 서부터 사용해보게.”

위즈는 톨네스가 건네준 무한의 서를 초급 마법서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한의 서에 초급마법서를 흡수시켰습니다.>


위즈는 초급마법서를 펼쳐보았다. 빽빽하게 글자가 들어차 있어야 할 책은 텅 빈 백지로 변해있었다. 이번엔 무한의 서를 펴보았다. 초급마법서의 내용이 옮겨져 있었다.

“어디보자……라이팅은…여기로군.”

위즈는 주문을 반복해서 살펴보고는 라이팅을 시전 해 보았다. 제대로 되었다면 빛 덩어리가 떠올라야 하건만, 작은 섬광조차 생겨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력을 보는 눈을 먼저 사용했다.


<‘마력을 보는 눈’이 시전 되었습니다. 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위즈는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수인을 맺고 시동어를 외웠다.

“라이팅!”

마력이 손끝을 빠져나와 뭉치는 듯하더니,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렸다. 위즈는 너무 일찍 마력을 내보냈다고 생각해, 이번에는 느긋하게 마력을 움직여보았다.

“라이팅!”

푸시식. 이번에는 작은 빛이 생겨나나 싶다가 맥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톨네스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수가! 마법사도 아닌 일반인이! 그것도 초보가 맨손으로 여기까지 해내다니?”

톨네스는 소매에서 자신의 매직스틱을 꺼내 위즈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한번 해보게나.”

“굳이 이러실 필요는…….”

톨네스의 태도가 너무나 열광적이었기에 위즈는 오히려 꺼림칙했다. 하지만 톨네스는 억지로 위즈의 손에 자신의 매직스틱을 쥐어주었다. 어쩔 수 없이 위즈는 매직스틱을 들고 주문을 사용했다.

“라이팅!”


<라이팅 주문을 사용했습니다.>


작은 포도알 만한 빛 덩어리가 매직 스틱 끝에 매달려 둥둥 떠다녔다. 톨네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위즈의 손을 덥석 쥐었다.

“자네! 마법사가 되지 않겠나?”

“아니……저는 마법사가 될 생각이…….”

“마법사란 전장을 휩쓰는 돌풍과도 같은 존재네. 마법사를 선택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네.”

“하지만 저는 만능을…….”

“내가 보기에 자네는 마법사가 체질이네. 전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을 성공시킬 정도라면, 이만한 자질이 어디 있겠나.”

이미 톨네스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을 거라는 기세에 눌려 위즈는 주춤거렸다.

‘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건 마력을 보는 눈 때문이라고.’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틈조차 주지 않고, 위즈에게 매달리는 톨네스.

그의 태도에서 사실을 알려줘 봐야 더욱 곤란해질 뿐이란 걸 위즈는 예감했다.

‘아쿠에리언들과 만나고 싶다며 보채기라도 하면 그건 더 곤란해.’

거절하려 해도 무작정 들이미는 톨네스 때문에 위즈는 한숨만 푹푹 내 쉬었다. 그때 톨네스의 뒤쪽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위즈가 들어온 문 쪽이다.

톨네스는 위즈의 손을 놓고는 헛기침을 하더니, 천천히 걸어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조금 전까지 어린애처럼 보채던 모습은 어딜 가고, 근엄한 노 마법사로 변모했다. 위즈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슬금슬금 문 쪽으로 이동했다. 뭔가 급한 일이 터진 것 같은데 눈치를 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톨네스가 준 무한의 서는 진즉 챙겨 넣었다.

“큰일입니다. 톨네스님. 마검을 분실했습니다.”

“마검? 여기에 마검이 한두 자루 있는가? 어떤 마검을 분실했는지 말해 줘야지.”

“고스트 소드입니다. 특수능력은 없는 겁니다.”

“좀도둑이 훔쳐간 모양이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행방을 찾게.”

“문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마법사 렌틸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어디서 찾았나?”

“마법사의 탑에 들어와 있습니다.”

레미라 수호전쟁 을 앞두고, 마법사 렌틸은 ‘링 오브 언밸런스’를 펼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바다로 들어오는 바하르칼의 병력을 차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사실은 잇페인의 사주를 받고 꾸민 일이었다.

그 렌틸이 이곳에 들어와 있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동료 마법사들에게 마비 독을 사용한 전력이 있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그게……한 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치료를? 대체 렌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톨네스와 젊은 마법사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위즈 역시 이들을 따라 움직였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건 분명해 보였으므로.

“여깁니다.”

젊은 마법사가 문을 열어젖혔다. 약초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는, 딱 봐도 치료목적으로 사용되는 곳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렌틸! 렌틸 여기 있나?”

붕대를 감고 있던 마법사가 손을 들어올렸다.

“렌틸은 여기 없습니다. 마스터.”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톨네스는 발을 동동 굴렀다. 렌틸이 따로 해코지를 한 건 아니지만, 그가 전쟁 중에 배신행위를 한 건 사실이다. 오늘은 환자들을 치료했다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

“렌틸이 어디로 갈 거라고 하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죗값을 치르겠다고 중얼거리긴 했습니다.”

“이런! 그의 연구실로 간다!”

톨네스가 홱 돌아섰다. 그의 반응에 젊은 마법사는 어리둥절해했다.

“설마하니 그런 곳으로 도망칠 리 있겠습니까?”

“도망친 게 아닐세!”

“그럼 어째서 연구실로 갔겠습니까?”

“렌틸 그자가 죗값을 치르겠다고 했네. 그게 무슨 뜻일 것 같나?”

위즈가 톨네스의 말을 받았다.

“자살!”

“그래! 렌틸 그자는 죽음으로 사죄하겠다는 걸세!”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또 다른 셸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4 121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2) +3 14.06.26 695 24 30쪽
123 120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1) +2 14.06.17 1,105 20 31쪽
122 119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0) +2 14.06.14 682 18 26쪽
121 118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9) +2 14.06.09 1,602 91 28쪽
120 117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8) +2 14.06.05 974 31 23쪽
119 116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7) +2 14.05.31 1,614 96 23쪽
118 115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6) +1 14.05.30 970 22 25쪽
117 114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5) +3 14.05.29 2,017 39 31쪽
116 113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4) +2 14.05.28 1,235 32 29쪽
115 112화...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3) +8 14.05.27 1,909 59 30쪽
11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2) +3 14.05.26 809 23 23쪽
11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1) +2 14.05.24 1,954 40 25쪽
112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20) +4 14.05.23 1,837 33 23쪽
11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9) +3 14.05.22 1,720 44 24쪽
11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8) +5 14.05.21 1,659 60 22쪽
10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7) +4 14.05.20 2,273 40 24쪽
10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6) +5 14.05.19 1,633 50 25쪽
10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5) +6 14.05.17 1,088 32 30쪽
10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4) +2 14.05.16 1,785 33 25쪽
105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3) +2 14.05.15 2,361 130 26쪽
104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2) +2 14.05.14 1,059 23 25쪽
103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11) +2 14.05.13 927 28 25쪽
102 99화...5.혼돈을 비추는 거울 (10) +2 14.05.12 1,548 34 29쪽
101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9) +3 14.05.07 1,749 106 19쪽
100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8) * +2 14.05.03 1,527 34 34쪽
99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7) +4 14.05.01 1,135 22 25쪽
98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6) +2 14.04.29 1,002 30 23쪽
97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5) +2 14.04.25 1,528 29 27쪽
96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4) +1 14.04.24 1,213 22 25쪽
» 5. 혼돈을 비추는 거울 (3) +2 14.04.21 1,135 3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