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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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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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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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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ED)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1.(E)

안드리크는 크레센토 왕국의 외곽에 자리 잡은 마을 중에 하나다. 근처에 관문도시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곳은 군사요충지라 일반 유저는 출입금지다. 사실상 크레센토를 빠져나가려면 이곳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서 아직은 유저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타 국가로 이동하려면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먼저 수많은 퀘스트를 통해 많은 이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일종의 신분 보증이었다.

또한 타국에 나가서 당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자기 한 몸 건사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여야 했다. 끝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도 납부해야만 한다.

이 과정 중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하지만 퀘스트를 하다보면 다른 나라로 가야 할 경우는 반드시 생긴다.

상인을 직업으로 골랐으면 무역을 하고 싶어 하며, 생산직 역시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먼 길에 오르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유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통행증 발급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바하르칼 용병들 밖에 없다. 용병패는 그 자체로 신분증명서였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드는 게 자유로웠다.

‘그런 점에서 내가 누리는 건 특권이야.’

위즈는 레벨도 낮으며, 어떤 직업도 선택하지 않은 무능력자다. 전투 능력도 들쭉날쭉.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올 노가다 사냥터에 들어가는 것도 벅차다.

그럼에도 위즈는 통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퀘스트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위즈는 퀘스트를 적게 했다.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려서, 퀘스트를 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온 퀘스트도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만테코른 섬의 유령사서의 부탁.

외딴 섬에서 이루어진 이 퀘스트는, 관련 NPC가 유령이었다. 그것도 솔로 퀘스트.

그렇지만 모든 걸 끝내고 크레센토로 돌아온 위즈는 은근히 기대했었다.

뒷골목에 소문 정도는 돌 것이라고.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크레센토 왕국에서 이 사실을 아는 NPC는 도서관 사서인 라미즈 뿐이었다.

라미즈는 언데드의 일종인 유령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을 거라 했다. 물론 보상으로 아이템을 받았으니 그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도 다 얻는 명성이 안 생기니 아쉬움도 들었다.

나중에 통행증을 만들 때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위즈는 남들보다 퀘스트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도 미노클에서 휘말린 사건들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연쇄살인 사건과 무장 세력의 요새침공.

하나같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라, 윗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그 결과 제 3왕자와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단지 얼굴만 익힌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사건 속에 뛰어들어 활약했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위즈 스스로 인육만두를 꾀어낼 미끼가 되어 연쇄살인 사건을 종결지었고, 노상강도들의 존재를 알려 에켈 요새를 지켰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3왕자는 위즈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몇 번이고 왕실금화를 하사했고, 소소한 편의도 봐 주었다.

그 결과 크레센토의 고위층은 모두 위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위즈는 당장이라도 통행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걸림돌이 발생했다.

위즈가 해결하다시피 한 사건들은 하나같이, 알려져선 안 되는 속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에켈 요새 침공’과 관련해서는 침묵의 서약까지 해야 했다.

따라서 위즈가 해온 일들은, 대외적으로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없었던 일들을 업적삼아 통행증을 발급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놓고 보니, 위즈는 여전히 무능력자인 상태였다.

사실이야 어쨌건, 한일도 없이 빈둥거린 한량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크레센토의 국왕-아론 베스퍼셰일 미노클은 한 가지 꼼수를 썼다.

바로 위즈에게 어떤 물건을 맡겨, 국경너머까지 운반하도록 한 것이다. 이럴 땐 통행증에 유효기간이 찍혀 있어야 하지만, 위즈가 가진 것에는 그런 표기가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통상적인 통행증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수수료도 내지 않았지.’

오히려 위즈가 돈을 받았다. 무려 왕실 금화 한 닢.

즉, 위즈의 인벤토리에는 수도에서 정원이 딸린 작은 저택을 하나 구입할 금액이 들어있었다.

“여기부터는 다른 나라 영토로군요.”

“통행증은 준비했소?”

“가지고 있습니다.”

“통행증을 분실하면 꽤나 골치가 아파지니까, 간수 잘 하시구려”

안드리크에 도착하자 레비가 악수를 청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련 즐거웠소. 나중에 던전을 탐험할 일 있으면 부르구려.”

던전 공략에 미친 사람답게 레비는 눈을 반짝였다.

“네. 그러죠.”

사쿠라와 빙글뱅글은 별 다른 말없이 손만 흔들어줬다.

사쿠라는 그렇다 쳐도, 빙글뱅글은 위즈에게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도 묻지 않았다. 아무 것도.

‘스캐빈저 소환에 대해 물을 것 같았는데 이상하군.’

하지만 곧 위즈는 이들의 꿍꿍이를 알아챘다. 핏 스톤의 경고 때문이었다.

『위즈. 지금 저 둘의 마력이 네 몸에 깃들어 있다. 위저드 마크로군.』

‘추적할 생각이야.’

위저드 마크는 주문의 적중률을 높이는 보조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훌륭한 추적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즈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핏 스톤의 말 때문이다.

『적당한 때에 내가 가진 어둠의 마력으로, 위저드 마크를 지워주겠다. 난 언제라도 준비되어 있으니, 나중에 신호하도록.』

이로서 바하르칼 용병의 추적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위즈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마을로 들어섰다.


◇◇◇◇◇◈◇◇◇◇◇◇◈◇◇◇◇◇◇◈◇◇◇◇◇


“무슨 가게를 이렇게 뻔질나게 돌아다녀?”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뒤를 밟는다는 것 정도는 눈치 챘겠지.”

“하지만 소용없어요. 위자드 마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걸요.”

“내 것도 마찬가지.”

제로니스 섬에서 NPC 한스가 벌인 사기 행각은 이미 유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하르칼 측에서는 한스가 이글아이 스킬북을 필사해, 여러 나라에 뿌린 사실도 알고 있다.

이글아이가 일제히 수련장에 등장한 점을 미루어 볼 때, 한스는 보통 NPC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포섭하던가, 아니면 속여서 이용해먹을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러자면 일단 소재부터 파악해야 했는데, 가장 최근에 접촉한 사람은 W였다.

그래서 사쿠라와 빙글뱅글은 위저드 마크를 찍고, 그 뒤를 쫒는 중이었다.

“이러다 로그아웃이라도 해버리면 곤란한데…….”

“상관없다. 우리말고도 100명이 안드리크 바깥을 감시하고 있다. 마을을 빠져나가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하지만 키를 바꾸는 스킬은 어쩔 건데요?”

“그래봐야 뚱보의 모습을 벗어나진 못해. 넌 우리가 왜 100명이나 동원했는지 모르겠냐?”

“설마, 이 마을의 모든 뚱보를 감시하려고?”

“그렇지. 사람을 찾는 것은, 그냥 인원이 많으면 장땡이다. 응?”

“왜 그래요?”

“위저드 마크가 사라졌다.”

“제 것도 마찬가지에요.”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이 저기였지?”

두 사람은 서둘러 옷가게로 들어섰다. 로그아웃을 한 거라면, 그 흔적이라도 확인해두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로그아웃 직후에는 EMP(환경마력)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이 관측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위저드 마크를 지워버렸다고?”

“주인장! 여기 들어온 손님이 혹시 뒷문으로 빠져나갔소?”

빙글뱅글의 물음에 옷가게 점원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들어오신 손님은, 탈의실에 계시는데요? 친구 분이신가 보군요? 허브차라도 내올까요?”

“저리 비켜!”

빙글뱅글은 탈의실로 가서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사쿠라를 돌아보았다. 사쿠라는 목을 길게 빼 그의 어깨너머로 드러난 광경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W는 어딜 가고 웬 젊은 여자가, 옷을 갈아입다가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더 오션에서는 착용해제 할 수 없는 의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기본 속옷이었다.

전투에서 방어구가 깨진 유저들이, 기본 속옷으로 터덜터덜 걸어 다니는 모습은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기본 속옷을 입고 있다하여 그 모습이 딱히 선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상위 방어구 중에는 노출도가 비키니 급인 것도 있으니 유난떨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이 의복을 판매하는 상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에 더해 여자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있는데 웬 남정네가 들이닥친다?

황당한 일이기에 앞서 악몽과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안 좋아. 안 좋다고. 이 시추에이션은…….”

사쿠라의 말마따나 불리한 상황이다.

이미 점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세워들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는 울먹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란 뻔한 것이었다.

“치한이야!”

빙글뱅글은 정신을 차리고 문을 닫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가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았다.

“내가 잘못했다! 문 닫아 줄 테니까 옷부터 입어!”

상황이 역전되어 남자가 문을 닫아주려 하고, 여자는 그걸 막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치한이야!”

여자가 꽥 소리 지르자, 빙글뱅글은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여자는 씩씩거리며 탈의실 문짝에 붙여진 문구를 가리켰다.

“이거 진짜인가요?”

“당장 준비 하겠습니다!”

점원 하나가 밖으로 나가고 나머지 점원들은 빗자루를 들고 다가왔다.

사쿠라와 빙글뱅글은 난감해졌다.

상점이나 지키는 NPC라고는 해도, 기본 스탯이 일반 유저들보다 좋다. 막 싸움을 하면 분명히 진다. 게다가 반항하다가 다치게 하기라도 한다면 수배 당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벌금을 물고 끝내는 게 낫다.

“그러게 왜 탈의실을 엿봐요?”

“이럴 줄 알았나? 그보다 엿본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문을 열었지.”

“자랑이네요. 그런데 대체 뭐라고 적혀 있기에?”

사쿠라는 탈의실 문짝에 붙여진 종이를 소리 내 읽어나갔다.


§§§§§§§§§§§§§§§§§§§§§§§§§§§§§§§§§§§§§§§§§§§§§§§§§

탈의실을 엿보는 행위는 범죄입니다.


짐승같은 남정네가 탈의실에 고개를 들이민다고요?

여성 고객님들!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다리에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고간에 묵직한 킥을 날리시면, 그 다음부터는 점원이 알아서 합니다.


발에 물컹거리는 감촉이 남아 기분이 안 좋으시다고요?

구리동전 1개를 내시면, 레몬을 띄운 물이 제공됩니다.

(발 씻을 물은 마셔도 되는 깨끗한 물입니다.)


< 의복상점 주인 '데컨' >

§§§§§§§§§§§§§§§§§§§§§§§§§§§§§§§§§§§§§§§§§§§§§§§§§


“어? 고간을 때려? 이게 어느 부위에요?”

“컥!”

고개를 돌린 사쿠라는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빙글뱅글이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도 모르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아……남자는 저기 맞으면 아프지.”

게임이긴 해도 더 오션은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구현해놓았다. 실제 육체에 미치는 충격은 없으나, 그 고통만은 체험할 수 있게 해둔 건 마도로스社.

빙글뱅글은 이를 갈며 마도로스社의 개발자들을 욕했다.

“씨이…….”

잠시 후, 점원이 불러온 경비병에 의해 빙글뱅글과 사쿠라는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젊은 여자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한참을 씨근덕거리다가 점원이 내온 물을 보고 인상을 풀었다. 그녀는 꼼꼼하게 구석구석 발을 씻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말렸다.

사장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치한인줄 알았으면 내쫓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어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사죄의 뜻으로, 모자나 장갑 중에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공짜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럼…저기 있는 검은 색 모자로 주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뭐 하냐? 손님이 마음에 드신단다. 저것도 함께 포장해 드려!”


◇◇◇◇◇◈◇◇◇◇◇◇◈◇◇◇◇◇◇◈◇◇◇◇◇


안드리크에 도착한 사내는 망토를 툭툭 털어내었다. 거친 손길에 일어난 먼지가 바람을 타고 사라져갔다. 찢겨지고, 구멍이 나고.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망토는 곱게 포개져,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갔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겠지?”

남자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옷가게를 찾아 걸었다. 그는 마을이 시끌벅적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경비병이 많이 모여 있군? 무슨 일이지?”

고개를 쭉 내밀고 살펴보니, 옷가게에서 두 사람의 유저가 끌려나오고 있었다. 회색빛 해골 브로치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하르칼 용병들이었다.

“브로치를 착용했다면, 적어도 백인장일 텐데? 마을 한가운데에서 문제를 일으키다니?”

경비병들이 사라지자 남자는 원래 목적을 떠올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다.”

가게로 들어선 남자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의 가게를 죽 훑어보았다. 점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발견한 남자가 성큼 다가섰다.

“저어…….”

“아이쿠. 오셨습니까, 손님.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지요?”

“그게 아니라, 사람을 찾습니다만…….”

“음?”

영업용 미소를 짓던 가게주인은 금세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남자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조금 전 경비병이 왔다 간 거 봤소?”

“봤지요. 바하르칼 용병들 같던데.”

“그들이 왜 끌려간 줄 아시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게주인은 탈의실의 문을 확 열어젖히며 말했다.

“어떤 이방인 여성분이 여기 계셨는데,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이렇게 했소. 그 남자가 가게에 와서 한 일이 뭐였을 것 같소?”

“그건 잘…….”

“당신처럼 사람을 찾는 거였지.”

점원들과 가게주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눈에는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남자는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난 그런 변태가 아닙니다. 내가 찾는 건, 뚱뚱한 남자인데……진한 회색 머리카락을 하고, 눈초리가 사나운 사람인데. 혹시 여기 오지 않았나 하고…….”

점원과 가게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뚱뚱보?”

“사나운 눈의 회색 머리카락?”

“왔습니까?”

“글쎄…눈매가 사나운 여자는 있었지만, 뚱보 남자는 여기 안 왔소.”

“그렇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꾸뻑해주고 가게 밖을 나섰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이틈에 장비라도 수리해야겠다.”

무기점을 찾아 움직이려던 남자는, 뒷골목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는 여자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제게 볼일 있습니까?”

“사나운 눈초리. 짙은 회색 머리카락.”

여자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팔짱을 풀며 다가왔다.

“거기에 특징을 하나 더 추가해줬을 텐데요?

“네? ……어, 저를 아십니까?”

남자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흔하디흔해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 얼굴.

눈매는 사나웠지만, 그것은 겉모습 뿐. 딱히 시비를 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녀의 허리에 걸린 것은 조잡해 보이는 석궁. 노상강도를 잡으면 간간히 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행운의 올가미를 2개나 장착하고 있다.

‘행운의 올가미는 재료 아이템이라, 효과가 1개밖에 적용이 안 되는데. 어? 그러고 보니?’

남자는 여자의 목과 팔뚝을 번갈아 가리켰다.

“어째서 그걸 2개나 매고 계십니까? 행운+50과, 사망 무시 효과는 중첩이 안 됩니다.”

“하. 편지 뒷면에 뭐라고 적어둔 게 있을 텐데요?”

“편지? 무슨……어?”

인벤토리 속의 편지를 떠올린 남자는 곧바로 꺼내어 확인해보았다. 편지 뒷면에는 동그란 고리처럼 생긴 게 그려져 있었다. 딱 2개. 남자는 편지에서 눈을 떼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게 행운의 올가미라고?”

여자가 싱긋 미소 지었다.

“쿠키는 맛있었나요? 빌헬름텔님?”


◇◇◇◇◇◈◇◇◇◇◇◇◈◇◇◇◇◇◇◈◇◇◇◇◇


빙글뱅글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에제키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속았군.”

- 뭐?

“W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어. 널 치한으로 만든 여자. 내 생각엔 그 여자가 W였을 거 같군.”

- 잠깐, W는 남자잖아?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만약에 성별을 바꾸는 스킬이 있다면?”

- 우리가 언제부터 플레이어의 실제 성별을 따지게 되었지? 가상현실 게임이 도입되고부터야. 직접 뇌파로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감 있는 모습으로 아바타를 생성할 수 없기 때문이지. 더 오션도 가상현실 게임이다.

“헛똑똑이 같으니라고.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더 오션은 게임이다. 불가능은 없어.”

- 네 말이 맞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소용없어. 모습을 또 바꿨겠지. 한심하긴.”

- 크윽.

빙글뱅글은 클럽채팅을 끊어버렸다. 에제키엘은 턱을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능력자에 불과한 자가 안드리크까지 찾아왔다. 그것도 통행증까지 얻어서.

“그동안 성장했나보군. 게다가 마법을 사용하다니. 역시 학자군의 직업을 고른 것인가?”

에제키엘은 깔고 앉은 몬스터의 뿔에 대고 매직스틱을 휘둘렀다. 그러자 매끄러운 단면을 남기며 뿔이 잘려 나갔다.

“뭐 언젠가 만나서 확인하면 되겠지. 아이보리 스태프의 재료는 이제 둘 남았나?”

에제키엘은 인벤토리에 뿔을 던져 넣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말의 사체가 희미한 빛을 내며 사라져갔다.


◇◇◇◇◇◈◇◇◇◇◇◇◈◇◇◇◇◇◇◈◇◇◇◇◇


빌헬름텔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눈앞에서 유저 하나가 밀가루반죽처럼 일그러지며 모습을 바꾸고 있다. 포니테일로 묶은 짙은 회색 머리카락은 갈색으로 물들고, 얼굴에는 살이 조금 붙어 통통하게 변했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털듯이 매만졌다. 그러자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아졌다.

“카무플라주라……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걸 제게 알려주셔도 되는 겁니까?”

빌헬름텔이 묻자, 여자 행색을 한 위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깐 동안이지만, 명색이 일행이잖아요.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해줘야죠, 게다가 겉모습만 바뀌는 것인걸요 뭐. 자, 여기 행운의 올가미.”

위즈는 팔뚝에 찬 밧줄을 풀어 내밀었다.

“이거 주시는 겁니까?”

“어차피 2개 찬다고 해서 행운이+100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부가 효과도 마찬가지고.”

“그래도…공짜로 받기엔 너무 미안하지요.”

“이정도로 미안해하면 안 되죠. 어차피 서로 주고받는 것뿐이에요.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위즈는 창문을 닫고 문단속을 했다. 이곳은 여관 1층. 당연한 일이지만, 문밖은 술과 음식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문틈에 귀를 대고 엿듣는 수상한 사람은 없었다.

“감시는?”

『여관 근처에 마법사가 몇 명 있다. 들어오진 않는군.』

핏스톤의 확인까지 끝낸 위즈는 다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과거 레드오션에서, 빌헬름텔님은 남들보다 앞서 이곳저곳에서 모험을 즐겼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빌헬름텔님의 경험을 사고 싶습니다.”

“제 경험을요? 그것도 산다고요?”

“네. 그렇다고 긴장하진 마세요. 레어아이템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에서 비밀 퀘스트가 있다더라.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궁금했다면, 차라리 솔티워터에서 검색하는 게 더 빠르지요.”

“그건 그렇지요.”

빌헬름텔은 궁금해졌다. 위즈의 말대로 자신은 레드오션에서 나름 상위권에 속하는 유저였다.

남보다 앞서나간 개척자로서, 그때 쌓은 지식은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또한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는 그 지식의 일부분은 정도는 베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경험을 돈 주고 사겠다는 이야기는 난생 처음 듣는다.

“하하. LV.100짜리 이글아이 스킬북으로 사는 정보라니, 이거 부담되는군요.”

위즈는 고개를 저었다.“필요한 곳에는 필요한 만큼의 투자를. 그래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죠. 그리고 제가 보낸 스킬북은 대가성 물건이 아닙니다. 애피타이저에 지나지 않죠.”

“에피타이져?”

“저는 시에니투스로 가는 길안내를 부탁하고자, 빌헬름텔님을 불렀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실제 만난 곳은 안드리크죠.”

“그건 이곳이 사실상 외국에 나가기 위한 관문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위즈는 인벤토리 속에서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들었다. 가끔 몬스터들를 잡으면 떨어지는 흔한 지도였다. 구멍이 숭숭 뚫려서 사실 쓸모가 없는. 실제 찾아가도 빈 상자만 나오는 별 볼일 없는 지도.

“이건 오늘 어떤 던전을 깨고 얻은 보상이에요. 여기에 협조해주신 바하르칼 용병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익살스럽게 경례를 붙인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하나 더 꺼내들었다. 상점에서 쉽게 구 할 수 있는 은화10닢짜리 지도였다. 위즈는 구멍 뚫린 지도에 적힌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1/2000. 상점표 지도의 축척과 동일하죠. 자, 이 둘을 한데 겹쳐서 이렇게 보면…….”

“어라? 완전히 들어맞는군요?”

빌헬름텔은 자세를 바로하고 지도를 바라보았다. 던전에서 얻은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는 시에니투스 인근이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도 수수께끼가 풀리는군요!”

“이걸로 끝이 아니죠.”

위즈는 펜을 꺼내어 두 지도를 겹쳐놓은 채, 구멍 난 곳에 점을 콕콕 찍어댔다. 그리고 던전에서 얻은 지도를 치웠다. 상점표 지도에는 8개의 잉크자국이 남았다. 위즈는 펜으로 그것들이 마주보게 연결되는 선을 그었다. 그 결과 선들이 겹치며 가운데에 하나의 접점이 생겨났다.

“여기가 우리들이 가야할 던전이에요. 저는 이 던전 끝 보스방의 보물 상자로 빌헬름텔님의 경험을 사겠어요.”

위즈의 손가락이 북쪽을 가리켰다.





<<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끝] >>


작가의말

여자로 둔갑 못한다고는 안 했다.




삽화 있습니다.

https://blog.munpia.com/gazha/category/287720/post/45072

제 서재의 좌측 게시판의

또 다른 셸터 <자료실>에서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ED) 관련 검색 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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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4) +2 13.11.30 1,021 23 27쪽
33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3) +2 13.11.29 1,150 30 21쪽
3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3 13.11.28 1,048 25 20쪽
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0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4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2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5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2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3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1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1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7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2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1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2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5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3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7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5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69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0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6 42 22쪽
6 1. (5) 13.10.02 2,265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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