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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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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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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4,356

작성
13.12.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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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8)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8.

“간만에 늦잠을 자보네.”

더 오션을 시작한 뒤로는, 플레이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 새벽에 강행군을 해왔었다. 그러고도 3~4시간 자고나서는, 곧장 눈을 떠서 체력 단련을 후딱 해치우고 게임을 시작했다. 오늘처럼 10시에 부스스 일어나는 건 예외 중의 예외였다. 시간을 확인한 편재는 체력단련을 건너뛰고 아침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오후에 식물원에나 다녀오지 뭐.”

편재는 느긋하게 빵을 베어 물며 더 오션의 팬 사이트를 확인했다.

주로 이용하는 곳은 ‘솔티워터’. 그래서 편재의 앞에는 은백색 테두리에 걸린 화면이 떠올랐다.

같은 시기에 생겨난 ‘마린 블루’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푸른색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은색을 선택한 솔티 워터는 소식에 정통했다.

예를 들면 뒷골목 NPC의 흔한 시시콜콜한 가정사라던가 하는 것을 여과 없이 다루었다.

최근에 벌어진 인육만두 사건의 시작인, 던컨의 딸이 납치된 것도 이곳의 정보에 의해서였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유저들의 비난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에 솔티 워터는, NPC의 가정사나 신변문제에 관한 정보를 유료화 시켜버렸다. 그 결과 정보를 이용해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빈도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돈을 주고 정보를 사면 반드시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솔티워터에 없는 정보라면, 다른 곳에는 없을 거야.”

편재가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는 또 있다. 특히나 많은 유저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타고 번져나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조작한 동영상을 올려서, 노상강도와 바하르칼 용병들의 관계를 밝혔을 때 편재는 그 점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노상강도는 빠르게 퇴치되었고, 상당수의 유저들이 시작지점을 벗어나 여기저기서 모험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에 찾아낸 이글아이 스킬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일으키리라고 편재는 기대했다.

“무기점에서 화살 주문량이 폭주할 테지.”

예전, 레드 오션에서는 이글아이 스킬의 보급이 그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솔티워터의 게시판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이상하군. 이글아이를 배우면, 습격시 명중률이 100%나 오르는데 활쏘기를 안 배운다고?”

편재의 예상대로라면 너도나도 원거리 공격은 활쏘기에 의존해야 정상이었다. 아직 마법사들이 나서기에는 이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편재는 다른 팬사이트인 ‘마린 블루’도 살펴보았다. 역시나 화살 값이 치솟았다거나, 궁수들로만 조직된 파티가 나왔다거나 하는 등의 소식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제로니스 섬에서는 이글 아이 스킬이 발견되었는데 어째서?”

공통스킬의 경우 스킬북을 해당국가의 성도로 가져가면, 해당 국가의 모든 유저들이 훈련장에서 배울 수 있도록 조치된다. 그런데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이글아이 스킬을 배웠다는 유저가 없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편재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작성했던 글을 찾아보았다.

‘초폭마존’이라는 닉네임으로 직접 작성한 게시물을 확인해보니, 엄청난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본 편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섬에 뿌려진 이글아이 스킬북은……전부 바하르칼 용병들과의 전투 중에 소실? 그럼 내가 제보한 스킬북은?”

이번엔 ‘바하르칼 용병’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엄청난 분량의 글들이 떠올랐다. 맨 위의 글을 살핀 편재는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역시 이놈들은 인생에 도움이 안 돼.”


◇◇◇◇◇◈◇◇◇◇◇◇◈◇◇◇◇◇◇◈◇◇◇◇◇


곧장 더 오션에 접속한 위즈는 섬의 전경을 확인해보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로그아웃 했기 때문에 상황을 살피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인근의 바다는 크고 작은 배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 회색해골 마크를 그려 넣은 배가 절반이나 되었다. 위즈는 나머지 배들을 살펴보았다. 돛이 꺾여 항행능력을 잃은 배들이 태반이었다. 배의 크기가 작은 만큼 탑승인원도 적은 탓에, 유저들은 바하르칼 용병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많은 곳에서 유저들이 발 빠르게 스킬 북을 찾아내자 바하르칼 용병들은 위기를 느꼈다.

의외로 바하르칼 용병들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5:5에 가깝게 분배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바하르칼 측에서는 단 한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바하르칼은 이미 확보된 스킬 북을 강탈할 계획을 세웠다.

유저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스킬북이 파괴되었다. 바하르칼 용병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없애버리겠다는 게 유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스킬북이 10권이나 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비록 자신들은 스킬북을 파괴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파괴된 스킬북은 모두 9권. 남은 것은 제로니스 섬에 남은 1권이다.

이것마저 파괴된다면 더 오션의 유저들은 이글아이 스킬 없이 활을 쏴야 한다.

자연히 아쳐 계열의 직업은 사장되고 만다.

“빌어먹을. 바하르칼이고 유저고 간에 전부 멍청이들만 모인건가?”

위즈는 화가 치밀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깟 책 한권만 양보했으면 바하르칼이 이렇게까지는 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하르칼도 지나치게 유저들을 압박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침몰하는 배들을 보니, 이미 논리로 설득할 단계는 지나버렸다. 바하르칼 용병 죽어라! 유저들 죽어라! 하고서 싸우는 자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지켜야 한다. 딱 한권 남은 이글아이 스킬북을 날려먹으면 억울해서 잠도 안 올 거야.”

카무플라주 스킬로 모습을 바꾼 위즈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몸을 숨기며 이동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스킬북의 행방을 알려준 사냥꾼 NPC가 사는 집이었다.


◇◇◇◇◇◈◇◇◇◇◇◇◈◇◇◇◇◇◇◈◇◇◇◇◇


“바다 쪽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지?”

“우리들의 압승이다.”

“문제는 이쪽이로군.”

제로니스 섬에 있는 유저분포는 안티 바하르칼 계열이 높았다. 그래서 바하르칼 용병들은 방어진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만약 고지대를 선점하지 못했다면 단숨에 섬멸 당했을 것이다.

“솔티 워터의 정보를 바탕으로 스킬북을 얻는 데에는 성공했지만……여기서 발이 묶여버렸으니 큰일이야.”

다른 곳의 상황을 전해 듣고 섬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어느새 모여든 유저들이 차륜전까지 펼쳐가며 막아서는 바람에 시기를 놓쳤다. 뒤쪽의 절벽 아래로 보이는 해안가를 통해 헤엄쳐 건너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다른 섬과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불가능했다.

헤엄치는 데에도 스테미너는 소모된다. 스테미너는 무한정 솟는 게 아니다.

“유저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예상했던 일이다. 위쪽 녀석들은 뭐한 거지? 차라리 그들과 협상하여 공평히 나누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아닌가?”

“어이 머슬가이. 지금이라도 저들을 설득해야만 한다고.”

“방법이 있는가?”

“없으니까 생각해보자는 거 아냐? 그 빼빼마른 몸에는 지혜조차 안 담겨 있는 건가?”

“미리 준비했다면 가능한 방법이 한 가지, 그리고 불확실한 방법이 한 가지, 마지막으로 최악의 수가 하나.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최악의 수는 알만하군. 우리가 가진 스킬북을 불태워 없애고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자는 거 아닌가. 나머지 두 가지 방법은 뭐지?”

“먼저 이 상황을 예측했다면 우리들은 책을 필사할 수 있는 인원을 데리고 왔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국립도서관의 사서 정도는 되어야 안심할 수 있겠지. 불확실한 방법은, 본단과 연락하여 텔레포트로 스킬북을 빼내는 것이다.”

“이 섬은 마법방해가 심해서, 공간이동 계열의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하잖아.”

“이대로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좋아. 일단 연락은 해보겠다.

동료가 수정구를 들고 으슥한 곳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머슬가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보다는 탐색에 초점을 맞춰 파견된 인원이었기에 다들 레벨이 크게 높지 않다. 그나마 대부분이 은신 스킬 보유자라는 점이 바하르칼 용병들의 생존율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같은 방법은 안 통하겠지. 이 좁은 섬에서 숨을 곳이라 봐야 뻔한 것. 거기다 저들도 눈이 있다면 곧 바하르칼 함선이 도착하는 걸 알 것이고……조만간 총공격이 들어오겠군.”

“머슬가이. 배를 한척 보낼 테니 30분만 버티라고 한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나빠지면…….”

“알고 있어. 태워버리라는 거겠지.

전형적인 우물에 독풀기요, 물귀신 작전이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에게는 더더욱 넘길 수 없다는 유치한 발상.

하지만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리해야 한다.

“칫. 레드 오션에서는 나름 명궁소리 들었는데, 그것도 물 건너갔군.”

동료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머슬가이는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유저들의 진영에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전원 전투 준비. 은신을 활용해 최대한 적을 교란한다. 나 또한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겠다.”

말을 마친 머슬가이는 품속을 더듬었다.

마도로스社에서는 공용 스킬북을 특수한 아이템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벤토리에 넣지 못하고 손에 들고 다니거나, 옷섶에 품고 다녀야만 했다.

지금의 분쟁은 그로 인해 벌어진 것이었다. 쉽게 빼앗을 수 있다는 게 바하르칼의 입장.

쉽게 뺏길 수 있다는 건 기존 유저들의 입장.

팽팽하게 맞서던 양측이 다시 피를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포위하고 있던 유저들은 무기를 거두며, 누군가를 위해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의아해 하던 바하르칼 용병들은 잠시 후 유저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NPC?”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 콧수염을 기른 뚱뚱한 남자였다. 그는 두꺼운 판자를 조립해 어설픈 책상을 만들더니, 주섬주섬 책과 필기구를 늘어놓았다.

“에헴.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크레센토에서 대필을 주로 해온 한스라고 한다. 마음 같아선 이방인들이 치고받건 상관없지만, 하도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기에 이 한스님께서 나서게 되었다. 박수 안치나?”

“무슨…….”

“그 뭐시냐, 스킬북 나부랭이 때문에 이 사단이 난거라고 들었네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나 좀 쉬게 해달란 말이지. 쉽게 말해!”

한스는 책을 열어 무엇인가를 끼적였다. 그러자 바로 옆에 돌돌 말린 두루마리가 생겨났다. 유저들을 비롯하여 바하르칼 용병들까지 그것이 단순한 두루마리가 아닌, 스크롤과 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크롤이 베낀다고 해서 베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아무도 진짜 스크롤은 아니라고 여겼다. 한스는 자신을 향하는 눈빛을 즐기듯이 죽 훑어보더니만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는 힘주어 찢어냈다. 번쩍이는 빛이 높이 날아 사라졌다.

“저, 저건 매직 애로우!”

“헛! 진짜 스크롤이다!”

“그럼 스크롤을 만들어낸 거야? 마법사?”

짝짝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킨 한스가 거들먹거렸다.

“마법사라 하여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스크롤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당신은 누굽니까?”

“나? 이미 소개 했잖은가? 크레센토에서 대필을 해주는 한스가 나일세. 뭐 가끔은 책 한권을 통째로 베껴달라는 부탁도 들어주고 있지.”

바하르칼 용병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상대는 필사를 할 수 있는 NPC. 그것도 스크롤을 단숨에 복제할 수준의 고급인력이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너무도 좋은 타이밍에 나타난 NPC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뭘 믿고 당신에게 스킬북을 내어줘야 하지?”

“맞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냐! 특히 당신 얼굴! 마음에 안 들어!”

바하르칼 용병들을 이끄는 머슬가이와, 유저진영의 맨 앞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꼬리곰탕이 한스를 노려보았다. 한스는 콧수염을 꼬며 피식 웃었다.

“인신공격인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란 말인가? 이 얼굴을 해가지고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군. 자네 같은 기사에게 목이 날아 가버렸을 거 아닌가.”

그러면서 작은 판자를 들어 올렸다. 6이라는 숫자가 적힌 판자를, 널빤지 책상의 틈에 끼운 한스는 깍지를 낀 손가락을 뒤틀며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공짜로 해줄 마음도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욕 얻어먹은 값은 받아야겠네. 1권당 동화 60닢이네.”

“흥. 누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한스는 판자를 뒤집어 세웠다. 6이란 숫자가 뒤집혀 9가 되었다.

“1권당 동화 90닢.”

“누군 심각해 죽겠는데, 지금 장난하는 거요?”

“은화 9닢. 좋네, 좋아. 계속 튕기게.”

그러자 아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지 못했다는 쪽이 정확했다.

머슬가이는 바하르칼 용병들의 손에 잡혀 입이 틀어 막혀졌고, 꼬리곰탕은 아예 유저들의 손에 끌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1권당 은화 9닢이네. 동의하는가?”

머슬가이는 동료들의 간절한 눈짓을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

공용 스킬 정도는 이렇게 필사해서 나눠 갖는 게 바람직한 일인 건 맞았다. 하지만 한스라는 NPC에게는 도무지 신뢰가 가질 않았다. 안티 바하르칼 진영에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봐요! 당신들도 활은 쏴야 할 거 아냐! 그냥 나눠가집시다. 쫌.”

“맞아. 이글아이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또 피를 흘려야 해?”

“딱 한권 남은 걸 날려먹으면, 당신도 후회할 걸?”

머슬가이는 마음을 정했다. 그는 품속에서 스킬북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들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소. 그러니 자리를 옮깁시다.”

그렇게 해서 한스는 낭떠러지와 마물이 나온다는 구멍의 사이에 책상을 두고 앉아야 했다. 용병들과 유저들은 전원 무기를 빼어든 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한스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즉시 베어버리겠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이다. 한스는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펜을 놀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필사본이 두 권. 한스는 그것을 양쪽 진영에 고루 던져주었다. 앞 다투어 필사본을 확인한 유저들은 실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야? LV.100이 아니라, LV.1이잖아? 지금 장난해?”

하지만 한스는 유저들의 반응이 가소롭다는 듯 히죽 웃었다.

“어리석군. 스킬을 책으로 배우는 것만 해도 황송해하지는 못할망정, 곧장 마스터하기를 꿈꿔? 이방인들은 욕심이 목구멍까지 들어차 있다더니 정말 그렇구먼. 필사본이 필요 없다면 도로 내놓게. 그런 물건이라도 가지고 싶어서 돈을 보따리로 짊어지고 올 사람은 널렸으니 말이야.”

한스가 손을 내밀었지만 정말로 필사본을 돌려준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한스의 말이 맞다. 유저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글 아이를 배울 수만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긴……어차피 나라에 바치면, 결국 LV.1짜리를 배우는 건 마찬가지겠지?”

“LV.1 스킬도 배우려면 시간을 꽤 잡아먹잖아. 차라리 스킬북으로 배우는 게 낫지.”

“맞아. 다소 비싼 게 흠이지만, 훈련장에서 스킬을 배울 시간동안 레벨업 해서 만회하면 되니까.”

이곳의 이방인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한스의 필사본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기 은화 9닢 있소! 내 것도 한권 만들어 주시오!”

“난 은화 9닢 내겠소! 나부터 만들어 주시오!”

“뭐야? 내가 먼저라고!”

“저리 비켜. 나 바쁜 사람이라고!”

한스는 손가락을 들어 두 사람을 가리켰다.

“당신들은 맨 뒤.”

“뭣?”

“말도 안 돼. 어째서?”

“당신들만 줄에서 벗어나 있잖나.”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한 분위기를 흘리며 대치하던 두 세력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리고 모두 공평하게 은화 9닢이네.”

한스는 이미 필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들을 상대하지 않는 한스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은 터덜터덜 뒤로 걸어갔다.

완성된 필사본을 손에 넣은 유저들은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스킬을 익혀버렸다.

상황이 바뀌어 다시 쟁탈전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

그들은 만족스러워하며 섬을 빠져나갔다.

바다에서 벌어지던 싸움도 멈췄다. 한스의 필사본이 풀리면서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싸움을 멈춘 배들은 앞 다투어 제로니스 섬에 상륙하려고 노를 저었다.

사망 패널티로 돈을 잃는 게 두려워서, 돈을 많이 들고 오지 않은 유저들은 울상을 짓기도 했다. 그런 경우 한스는 유저들이 가진 장비 등을 대신 받기도 했다. 주로 포션, 음식부터 가끔 보조 무장으로 보이는 단검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한스에게 주어졌다. 한스는 군말하지 않고 그것들까지 싹 쓸어 담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래서는 필사는커녕 책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몇몇 유저들이 횃불을 켰다.

“불은 놔두고 물러서주게. 그림자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구먼.”

유저들은 한스의 말에 따랐다. 한스의 그림자가 횃불을 따라 일렁였다. 줄을 선 유저들은 옷깃을 여미며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떨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기대어린 눈을 빛내며 이제나 저제나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 이리 줄이 안 줄어드는 거야?”

“사람이 너무 많으니 그렇지. 다른 섬에서도 소식을 듣고 여기로 오고 있다니까, 지금보다 더 북적거릴걸.”

“그런 것 치고는 뭔가 이상한데? 저것 봐봐. 필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필사본이 더 이상 쌓이지 않고 있잖아.”

“설마 저 NPC 지친 건가?”

“AI가 너무 현실적이어도 문제네. 누가 확인 좀 했으면 좋겠는데.”

유저들은 이상함을 느낀 유저들이 점차 동요하자, 선두의 몇몇이 한스에게 다가갔다. 한스는 여전히 깃털펜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펜이 지나간 자리마다 글자가 빼곡히 들어찼다.

“히야. 굉장하네. 사각거리는 소리가 안나.”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필사스킬 레벨이 엄청 높은가보다.”

“그러니까 스킬북도 이렇게 찍어내는 거겠지. 이봐요.”

가까이 다가간 유저들이 한스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한스는 못 들은 척,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집중력이 참 믿음직스러웠지만, 한스라는 NPC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유저 하나가 한스의 어깨를 짚었다.

“어?”

허깨비를 만진 것처럼 손이 쑥 통과해버렸다. 잠시 후 한스의 모습은 흐릿하게 변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거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줄을 서 기다리던 유저 하나가 소리쳤다.

“바보들아! 그거 일루전이다!”

“그렇다는 것은?”

잠시 후 분노에 찬 유저들의 목소리가 제로니스 섬을 뒤흔들었다.

“사기꾼 놈을 찾아!”

“멀리가진 못했을 거야! 샅샅이 뒤져!”


작가의말

얄미운 사기꾼 npc한스 삽화 있습니다.

https://blog.munpia.com/gazha/category/287720/post/45071

제 서재의 좌측 게시판의

또 다른 셸터 <자료실>에서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8) 관련 검색 해보시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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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3.12.10 20:22
    No. 1

    푸하핫.. 일루전이라니!!!! 스크롤로 쓴걸까요? 마법은 못훔쳐배웠으니까.. 재밌네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시러스
    작성일
    13.12.10 20:43
    No. 2

    잘보고 갑니다 선호작에 예전것이 있어서 그런가 n이 안뜨고 선호작목록에서 상위로 이동되는거 말고는 변화가 없어서 안나온줄 알았네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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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5 2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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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1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2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5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3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7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5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69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0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6 42 22쪽
6 1. (5) 13.10.02 2,265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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