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붉은 솔라늄
3-7
숙소에 들어서자,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레노아 중사와 최 소령님까지 여기에 오면, 나는 어디서 자야하지.
최 소령님이 짐이 들어있는 가방을 방에 내려놓자 내가 먼저 물었다.
“소령님, 소령님까지 여기서 주무시면….”
내 목소리를 쥐구멍에 들어가듯 끝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왜, 바네스 대위 이 숙소가 좁아?”
나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아니라, 방에 여성분들만 계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율 중령이 쓰던 방은 증거로 수집할 것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폐쇄해두는 것이 맞는 것 같고, 다른 간부들 숙소 역시 가득차서 누군가를 받을 공간은 없다고 하니, 바네스 대위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방을 같이 쓰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지만, 그제야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최 소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은, 성별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배려하려 하는 행동이다.”
나는 결코 성별에 따라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손과 고개를 같이 저으며 말했다.
“그… 그게 아니라, 여자들이랑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부끄러워서….”
최 소령은 그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른 성별과 같이 자는 것이 부끄러우면, 혹시라도 전장에 가서도 그렇게 행동할 것인가?”
“아닙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편하게 자.”
최 소령님이 먼저 씻고, 그 다음 레노아 중사까지 모두 씻은 다음, 내가 마지막으로 세면실 겸 샤워장에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하루 종일 광산의 먼지와 싸우고 헬기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쌓여있던 땀과 피로가 샤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따듯한 물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마저 들었고, 먼저 샤워를 한 두 여성들이 사용한 샴푸와 바디 워셔의 향기가 남아있어 약간은 향긋한 여성의 내음까지 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밖에 나가자, 레노아 중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위님.”
“담당관님 왜요.”
“어제 이야기 했던 것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어제 말했던 침대 사용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제일 구석으로 가서 자겠습니다. 잠꼬대도 조금 있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닥에 깔 모포와 군용 담요를 들고 방구석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최 소령이 침대를 차지했고, 레노아 중사는 침대 바로 옆의 바닥에서 취침을 취했다.
내 몸은 레노아 중사의 발이 닿는 바로 아래에 있었는데, 방이 좁다보니 방의 가로 사이즈에 내 몸을 맞춰 놓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자리에 누워서 단말기에 올려놓을 자료 정리를 하던 도중 얼마 지나지 않아 레노아 중사가 말했다.
“취침 소등 하겠습니다.”
레노아 중사가 불을 끄자 단말기를 사용해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내 단말기에서 나오는 빛이 은은히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을 본 최 소령이 말했다.
“내일부터 정리할 것도 많고 피곤할 수 있으니 그냥 편히 쉬어.”
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상관이 그만 하고 자라는데 어쩌겠는가. 단말기를 바로 옆에 두고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사람을 숨 쉬지 못하게 만들며 거품을 물고 쓰러지게 만들어 버리는 적성을 가진 U.I.의 생각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이럴 때 셀 레온 선배님이라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 순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는 꼭 나를 필요할 때만 찾냐?’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벌떡 숙였고,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 역시 놀라서 바라보았지만, 나는 잠버릇 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자리에 누웠다.
‘선배님!’
‘뭐. 인마’
한동안 들을 수 없던 그의 목소리가 그리웠지만, 세입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반가워서 6일 만에 나를 부르냐?’
‘그게 아니라.“
그는 듣기 싫다는 투로 말했다.
‘아주 영영 가버렸으면 좋겠지?’
‘아뇨. 그건 아닌데.’
‘왜, 너도 그러면 그 망할 길리언의 손자 놈처럼 내가 네 몸을 뺏을 것 같기라도 했냐?’
‘아뇨, 그건 아니었고. 그냥 힘들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속사포처럼 나한테 쏘아붙였다.
‘하여간 군부라는 것들이 안전한 것만 추구하고 말이야,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이놈들은!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
‘저도 피해자인데요.….’
나도 스스로를 변호하려 했지만, 셀 레온은 완전히 마이페이스로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화풀이 겸 잔소리를 해대던 도중 그는 양 손의 강령진을 사용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러던 도중 그가 말했다.
‘네 손에 느껴지는 기운이 강한 것을 보니, 이 근처에 그 여자가 있는 것 같은데.’
셀 레온은 손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포박 때문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처럼 말했다.
‘이 방에 같이 있어요.’
그러자 그는 멍청하다는 듯 말했다.
‘젊은 여자랑 같은 방을 쓰는데 이러고 있다고?’
‘그러면요?’
그는 원통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이놈아. 내가 이 팔에 있는 포박만 아니었어도!’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안되겠군, 셀 레온식 연애교육을 가르쳐줘야겠어.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말이야.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 사관들이나 사병들이 아주 그냥 한 가득 있었지.’
나는 저번에 들었던 이야기로 답했다.
‘그런데 잡혀 사셨다면서요.’
그러자 그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말했다.
‘인마, 남자는 사소한 실수를 할 때도 있는 거야. 여자에게 져주는 것도 남자가 할 일이지.’
‘방금 최 소령님은 그렇게 안 말하시던데. 왜 남녀를 차별 하냐고 말하시기에….’
‘어휴…. 말을 말자 그냥,’
그는 답답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그래서 U.I.가 뭐.’
‘모르겠어요. U.I.가 여기에 나타나서 노역자 몇 명을 죽이고 사라졌는데, 우리는 아직 그 존재도 몰랐으니까요.’
셀 레온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너는 100평짜리 숲 속에서 특별한 표식 하나를 찾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뇨.’
‘수색도 같은 것 이지. 일을 저지르는 쪽, 숨으려는 쪽 보다는 당연히 찾는 사람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그 대상이 숙련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더 난이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고.’
‘네, 알겠습니다.’
시끄럽게 머릿속을 울려대는 고삐 풀린 셀 레온의 잔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고, 모든 것을 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셀 레온이 나를 재촉했다.
‘일단 포박에 대한 실험부터 해봐야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강령진에서부터 시작된 한기가 손등을 타고 양 손으로 올라오려는 찰나, 그 한기가 손목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 동시에 손등에 그러져있던 포박의 술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여파로 샤워를 하고 있던 최 소령님이 머리에 샴푸 거품이 묻어다는 상태로 세면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네스 대위 왜!”
나는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게 아니라.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어서 컵을 살짝 얼려보려고 했습니다.”
나는 손안에 있는 컵을 보여주며 황급히 해명했다.
“그렇게 약한 기운이 아니었는데, 내가 아침이라 예민한 건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마저 씻기 위해 그녀는 다시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역시, 포박의 술이 막고 있군.’
셀 레온은 예상했었던 것처럼 말했다.
‘선배님은 이런 적성에 대해서 알고 계셨어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뭐 이런 봉인과 관련된 적성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용해서 내 까마득한 후배라는 것들이 이렇게 뒤통수를 후릴 줄은 당연히 몰랐지.’
‘그게, 군에서는 선배님의 존재보다는. 선배님이 제 몸을 점령하는 상황을 막고자 하였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뭐, 네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 포박의 술을 건 저 여자소령도 까라니 깠을 것이고. 그냥 이런 것에 당한 놈이 멍청한 거지.’
그는 그렇게 누구를 비꼬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꼬아서 말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여기는 어디냐. 아오조라는 아닌 것 같고.’
‘C-152 알리스타입니다. 알리스타에 있는 군 노역소에 파견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정곡을 찌르듯 말했다.
‘군 노역소에 사령부 감찰관을 보낼 정도면 상당히 큰 일이 생겼다는 것인데. 군 노역소면 돈이 들어오는 곳 인데, 그런 곳에 있는 사람이 그대로 있을 수 있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는 듯 셀 레온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노역자가 U.I.에게 살해되어 죽은 것에 대한 조사를 하는 거냐?’
‘네.’
‘노역자들에 대한 조사는.’
나는 단말기를 보면서 특별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며 말했다.
‘이 노역소 인사과에 일단 요청은 해놓았는데 동맹과의 전쟁에서 생긴 전쟁 포로들도 있어서 모두의 신분이 확인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최 소령님이 세면장을 전부 이용하고 나오고, 그 다음 레노아 중사가 세면장을 이용하고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단말기에 올라오고 있는 자료들을 계속 검토해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셀 레온이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여기 짬밥은 좀 잘 나오냐?’
- 작가의말
슬슬 3화도 끝나갑니다.
4화는 3화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직 이 사건의 배후가 등장하지 않았죠?
그닥 생각 안하고있었는데 식객 레온이 되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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