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종전협정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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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감찰관 바네스 대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엔리케 소령님이 답했다.
“다시 오셔서 반가워요, 리프킨 소령 아니 이제 중령님이신가.”
그러자 누런 금발의 남자가 말했다.
“어휴, 넣어둬. 전쟁터에서 1년 살았다고 진급 반년 일찍 시켜준다는데 그게 좋으냐?”
“다시 여기 적응하시려면 힘드시겠네요.”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야. 말을 마라. 내가 다녀왔던 전장들 중에서 제일 최악이었다. 나야 뭐 전투보다는 정보수집 위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한동안 전쟁터는 생각도 말아야지 원.”
옆에 있던 검은 머리의 소령도 같이 거들었다.
“이번에는 동맹에서 작정하고 달려드는 바람에 우리 측 손실도 많았고, 막판에는 까만 천사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부대 분위기도 완전 초상집에….”
그러자 엔리케 소령님이 물었다.
“까만 천사? 그게 뭐야?”
검은 머리의 란스 소령이 말했다.
“동맹 마도사인데 까만 배틀수트만 입고 다니는 이상한 애들 있어. 지금까지 목격된 건 3명인데, 여자가 둘, 그리고 덩치 큰 남자가 하나. 전투적성도 A급인 애들도 상대하다가 전사한 애들도 있고, 몇 번 당하고 나니까 그 이후로는 교전 수칙이 내려와서 A급 최소 2명이상이 아니면 교전 불가. 아예 지침으로 내려왔지.”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혹시 남자 목소리가 꽤 재수 없지 않았나요?”
란스 소령이 답했다.
“전쟁터에서 폭탄 떨어지고 있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겠니. 나도 실제로 상대했던 것은 한 번 뿐이라. 그리고 나는 금발 여자애랑 붙었어.”
그러자 뒤에 있던 셀레스티가 말했다.
“너는 처음 오는 사람한테 그런 거나 묻니?”
그러자 최 소령님이 말했다.
“바네스 동기라는 친구가 저 친구구나? 아까 훈장 받던.”
나는 셀레스티에게 최대한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반갑다. 친구야.”
그 후 몇 분 동안 간단하게 소개를 마친 다음에 기존 직원들은 기존 직원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두고 나는 셀레스티의 손을 잡아끌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후. 네가 방금 사무실에 폭탄 떨어뜨리는 줄 알았다.”
“왜.”
나는 주변을 요리조리 살펴본 다음 셀레스티에게 작게 말했다.
“절대, 네셔 대령님 앞에서 연애질 하는 모습이 잡히면 안 돼.”
나는 두 번 말했다.
“절대 안 돼.”
“왜?”
나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홉수에 빠진 노처녀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기 싫으면 안하는 게 네 정신건강에 심각하게 이로울지 몰라.”
그러자 셀레스티가 사납게 말했다.
“너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여자 친구에게 할 말이 그거밖에 없냐?”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그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니.”
“말해봐.”
그녀는 마치 나를 심문하듯 말했다.
“고마워.”
“왜 고마운데.”
“약속 지켰잖아.”
그녀는 잊어버린 것처럼 말했다.
“무슨 약속?”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말했잖아.”
그러자 그녀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는 듯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러면 전쟁터 나가는데 ‘죽어서 시체로 돌아오겠다.’ 라고 말하겠냐?”
나는 작게 말했다.
“아니, 안 그러겠지.”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감정이 살짝 올라왔는지, 작게 울먹이면서 말했다.
“너는 절대. 전장에 가지마.”
“가지 말라고 안 갈수는 없잖아.”
그녀는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면서 말했다.
“내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물 흘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적을 막아야 하는데. 그게 막아내고 무의식적으로 총을 쏘고 적성을 사용하고, 적이 맞아서 쓰러지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남아야 되는데, 오히려 내가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어버려. 그런 건 적게 겪을수록 좋은 거야.”
나는 그런 셀레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가까이서 바라본 셀레는 정말 많이 변해있었고, 그녀의 얼굴에 상처는 없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피곤해보였으며. 눈 밑의 축 처진 다크 서클과 푸석푸석 윤기를 잃어버린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에 조금씩 보이는 여드름 비슷한 것들까지,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그것보다도 더 큰 상처가 자라나 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 여기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빨리 잊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오랜만에 보는 여자 친구한테 신체 접촉도 하나도 없냐?”
그녀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령관 집무실이 있는 2층 자판기는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편 이었다.
‘이 멍청아. 이런 분위기에서는 확실하게 하나 보여줘야지!’
셀 레온의 말을 충고삼아, 왼손으로 셀레의 오른 손목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긴 다음에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안아주면서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진짜, 고마워. 그리고 정말 다행이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뭐가 다행인데.”
나는 그녀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래도 네 가슴이 아직 열심히 뛰고 있잖아. 비록 겉은 조금 피로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안 그런가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부딪치면서 말했다.
“이건 선물이야. 복귀선물.”
셀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 여자 좀 만났나보다?”
나는 갑자기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깜짝 놀라 물었다.
“왜? 바빠서 여자는커녕 남자도 못 만났는데.”
“여자 다루는 게 아주 능숙해졌는데.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았냐?”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201호 선배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뻔 했지만,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감찰관님, 여기 계셨습니까?”
옆을 보니 담당관이 나와 셀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는 듯 말했다.
“감찰관님, 네셔 대령님이 죽기 싫으시면 지금 당장 새로 오신 수사관님을 부장님 방으로 모시고 오라고 합니다.”
나는 레노아 중사의 말을 듣자마자 셀레와 사무실로 들어갔고, 셀레를 부장님 실 문 앞에 데려다 주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셀 레온이 물었다.
‘너는 저 여자애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상처를 잊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아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걸릴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셀레가 그걸 반드시 잊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그 여자애의 상처를 직접 살펴봐야겠지만, 네가 그녀의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되어준다면. 그 시간이 줄어들 것은 확실하겠지.’
‘그렇겠죠.’
나는 희망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종전협정이 그녀의 영원한 종전협정이 되기를 기원할 뿐 이었다.
5화 종전협정 – 끝 -
- 작가의말
아까 오전에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정말로 본의아니게 5화를 마무리 지으려다가 글을 끊고 나갔다왔습니다.
그래서 일 마치고 와서 마무리지었습니다 =_=
저번에도 언급했었지만, 능력이 등장하는 소설이라고 능력을 마구 써야하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다음 연재분 부터는
6화. ’강령술과 강령술의 격돌‘ 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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