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셀레온의 식신노트
마도사관 바네스 - 외전
셀 레온의 식신 노트
졸라에서의 사건이 일단락되고,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것도 어언 한 달 닥터 프레스티지가 사용했던 라이트 스피어가 꿰뚫었던 복부도 수술과 치료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셀 레온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 맛없는 병원 밥을 언제까지 먹어야 된다고?’
‘길리언 준장님 말씀이 곧 퇴원 할 수 있다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선배님.’
셀 레온을 달래기는 했지만, 아직 퇴원허가를 받지 못했기도 했고, 프로젝트 엘리스 사건이 군 상층부에 알려지면서 졸라에서 일어난 사건의 대상자인 나는 몸을 가눌 수 있는 순간부터 군 조사관들과 여러 인터뷰를 나눠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병실 밖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바네스.’
셀 레온이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네. 선배님.’
‘너,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모르겠습니다.’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그렇겠죠?’
‘천만에! 불치병에 걸렸을 때?’
나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듣기 시작했다.
‘천만에! 독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그럼 그 사람은 언제 죽는데요?’
셀 레온은 아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진하게 깔고 말했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을 때 죽는다.’
‘선배님은 참 아는 것이 많으신 거 같아요.’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내가 원래 좀 똑똑하긴 하지.’
셀 레온은 으쓱대면서 말했다.
‘그래서 드시고 싶으신 것도 참 많으신 거 같아요.’
‘바네스 군.’
‘네, 선배님.’
‘너는 인간의 3대 욕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셀 레온의 질문에 나는 책에 나와 있던 대로 답했다.
‘식욕 성욕 수면욕입니다.’
‘너는 세가지 다 할 수 있지.’
뜬금없는 질문에 잠깐 다른 생각을 했지만, 빠르게 답했다.
‘네, 일단 고자가 아니니까 다 할 수 있죠.’
‘나는 어떨 것 같으냐.’
‘음…. 식욕 수면욕은 가능하신 거 아니십니까.’
‘사람이 하나의 감각이 차단되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지듯이 내가 성욕을 충족할 수 없는 만큼 나의 식욕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설명했으면 어서 먹을 것을 사오도록 지시해라!’
셀 레온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무실 막내가 누구보고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하겠는가. 결국, 나는 병상 옆 탁자에 놓여있는 단말기를 들어 메시지를 날렸다.
‘셀레, PX에서 먹을 것 좀 사다줘.’
주말이기도 했고, 셀레 역시 사무실에 복귀해서 업무를 배워나가고 있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아마 숙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셀레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뭐. 누워있으니까 달달한게 먹고 싶냐?’
‘부탁합니다.’
나는 빠르게 답장을 적어 보냈다.
‘흥. 아프지를 말던가.’
그렇게 답장이 오고 몇 분 뒤 셀레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가지고 갈게.’
어떻게든 셀 레온의 진노를 달래기 위한 일용할 양식들을 받아낸 나는, 조용히 옆에 있던 보고서를 집고 읽고 있었다. 하지만 셀 레온은 심심한 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태어나서 제일 맛있게 먹어본 것이 무엇이냐.’
셀 레온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생각해보니 8년 동안 사관학교에 거의 갇혀 살다시피 하고서 살아와서 그런지, 뭔가를 엄청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는 거 같아요.’
‘나는 너와 계약을 하고 먹었던 음식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너는 기억을 못할 것 같지만 지금부터 내가 천천히 음식들에 대한 평가를 해보겠다.’
그는 꽤나 진지하게 컨셉을 잡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음…. 사관학교 음식은 대부분 별로였군. 특히 설익은 감자를 으깨서 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지. 그런 걸 먹이는 건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학대라고 생각한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올드 어스의 지역 중 영국이라는 나라가 있지. 그 나라 음식이 아주 유명해’
‘맛있나요?’
나는 영혼 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
셀 레온은 단번에 아니라는 듯 말하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나도 올드 어스에 살면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밥을 먹은 기억은, 영국에 있는 맨체스터 우주기지에서 이주로켓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렸던 사흘 뿐 이지만, 끔찍했지.’
그는 잠시 추억에 젖은 듯 조용히 있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그런 음식도 있지만, 사관학교 음식들은 대체로 많은 인원들이 먹고 미각에 대해 둔감한 어린 학생들이 먹기 때문에 대체로 맛이 없더군. 식당에서 다른 생도가 말했던 걸 들은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 음식을 먹느니 훈련 나가서 전투식량을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말할 정도였지.’
셀 레온은 그렇게 말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깨어나서 먹었던 식사 중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것은 그 길리언 놈이랑 같이 복귀하면서 먹었던 우동. 그게 제일 맛있었군. 특별히 부대 밖에서 먹은 것이라 더 맛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군대 음식이 싫으십니까.’
‘너도 거의 30년 동안 군대음식만 먹고 살아봐라. 수많은 음식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다시 셀 레온에게 물었다
‘어떻게요?’
‘부대 안에서 먹는 음식과 부대 밖에서 먹는 음식.’
그 정도로 그는 군대 음식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 사령부는 사령관이 매일 여기서 식사를 하니까 식사가 좀 잘 나오는 편이지. 전쟁터 가서 모래알 씹히는 밥만 두어 달씩 먹고 살아봐라. 사람이 버틸 수 있나.’
‘그래서 그렇게 먹을 것에 집착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순간 내가 꺼내서는 안될 말을 꺼낸 것 같은 기분에 등골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바네스 군.’
셀 레온이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네, 네, 선배님.’
‘이 선배님은 음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선배님이 저번에 밖에 나가서 BBQ를 사주겠다는 바네스 군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을 것 같지만 기다리고 있고, 비록 저번에 말했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잊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음식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에요. 알겠죠?’
속사포처럼 내뱉는 셀 레온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퇴원하면 저번에 먹겠다고 약속한 한국식 BBQ를 먹으로 가도록 하자.’
‘네?’
‘협상은 하지 않겠다.’
셀 레온은 그렇게 말하더니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했다.
셀 레온과의 폭풍 같은 대화가 끝나고 나는 셀레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애꿎은 보고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음...
원래 계획했던 셀 레온의 이미지는 이런게 아니였는데 딱히 개그코드를 집어넣을만한 구멍을 못찾다보니 우리 연방의 옛 전쟁 영웅께서 식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드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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