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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410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7 20:28
조회
1,246
추천
88
글자
11쪽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DUMMY

“끄응···”


울타리에 머리를 박은 론멕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신음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나풀거리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위니가 그녀의 콧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어때? 저런 작은 나무 정도는 한 방 거리지. 암. 그렇구 말구.]


하늘색 엘프의 형상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를 등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론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위니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지금 칭찬이라도 해 달란 거에요?’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그녀의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짓 다시는 하지 마세요. 귀가 터질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러나 위니는 그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쭐함에 취한 위니를 바라보던 론멕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가 놓친 석궁을 찾기 위해 자갈밭 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닥을 더듬던 론멕의 검은 눈동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갈밭에 힘없이 널브러진 가방을 발견한 론멕은 문득 그녀의 가방을 누군가가 뒤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갈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투박한 손으로 가방을 파헤치던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는 이내 고개를 들어올려 론멕에게 말했다.


“··· ···. ···“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론멕은 쉴 새 없이 입을 뻐끔거리는 사냥꾼을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네? 뭐라구요?”


“··· ···. ···”


“안 들려요!”


순간, 론멕은 그녀의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연이은 폭발음에 혹사당한 그녀의 고막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것의 의무를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귓속을 가득 메우다 못해 머리를 울리는 듯 한 이명을 느낀 론멕은 그녀의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구한 거요?”


“네?”


“참 내. 이거 어디서 구한 거냐니까!”


붉은 용이 그려진 나무패를 손에 쥔 사냥꾼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론멕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멍하니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론멕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사냥꾼에게 말했다.


“아아. 이거 어디서 구했냐고요?”


마침내 청각을 되찾은 론멕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어떤 마부에게서 받았어요. 테플로로 밀입국을 하는 걸 도와주신 분인데, 언젠간 도움이 될 거라면서 제게 주시더라고요. 분명 이걸 어디에 보여주라고 하셨는데. 어디였더라···”


론멕은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무슨 용병단이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엑··· 엑···”


“엑시온 용병단.”


어물거리던 그녀의 말을 자르며, 사냥꾼이 말했다.


“이것은 엑시온 용병단의 증표요. 이걸 누구에게서 받았다고 하셨소?”


사냥꾼의 더 없이 진지한 태도에 론멕은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말씀드렸잖아요. 마부였다고. 자기를 무역상인이라 그러시던데요?”


그 말을 들은 에드는 나무패를 쥔 손을 슬며시 내렸다. 입을 꾹 닫은 채 침묵하기 시작한 에드를 멍하니 바라보며, 론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아저씨?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사냥꾼은 그저 론멕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동안이나 그녀를 응시하던 에드는 이내 붉은 용이 그려진 나무패를 론멕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문제랄 건 없소. 잘 가지고 계시구려.”


론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은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듯 그의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궁을 발견한 에드는 울타리 너머로 손을 뻗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무역상인이라. 그 괴팍한 자식이 또 병이 도졌나 보구만.”


“네?”


석궁을 집어든 사냥꾼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별 거 아니오. 론멕. 그대에게 해줄 이야기가 조금 있을 뿐이지. 우선 그 전에···”


에드는 석궁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시키고는 이내 울타리에 놓인 삽을 집어들어 그것을 론멕에게 들이밀었다. 얼떨결에 삽을 손에 든 론멕의 앞에서, 사냥꾼은 그의 엄지손가락으로 폭발의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난장판은 좀 치우는 게 어떻소?”




= = = = =




벽돌의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미약한 햇빛이 차가운 나선형 돌 계단을 비추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마득한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는 그저 기분나쁜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거칠게 세공된 돌덩이로 세워진 굴곡진 벽에는 그 흔한 이끼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나선 계단의 벽면은 이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발밑을 조심하시지요.”


발 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선 계단에 울려퍼졌다.


“등불의 성자인 세드나의 도시에 이렇게나 어두운 곳이 있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묵직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횃불을 손에 든 채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는 누군가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니까요.”


치렁치렁한 금발의 여인이 기사의 등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다들 세드나의 등불이 발하는 빛만을 이야기하시더군요. 정작 그것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사뿐사뿐 발을 내딛는 그녀의 손에는 작은 열쇠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금발의 여인은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성자의 신성한 빛이 이 나라를 비추더라도, 그림자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그런 어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당신과 같은 간수에게 내려진 신의 사명 아니겠어요?”


그 말을 들은 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역시 재판관님이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재판관과 기사는 어느새 계단의 끝에 다다랐다. 계단의 벽면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벽돌로 에워싸인 통로에는 군데군데 녹이 슨 검은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익숙한 듯 통로를 걷던 갑옷을 입은 기사는 이내 돌 벽에 횃불을 걸어놓으며 말했다.


“성국은 환하게 빛나는 중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간수인 제가 할 일이 생겼다는 게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물론이죠. 만반의 준비를 하셔야겠네요.”


금발의 재판관은 여전히 미소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림자는 커지고 있으니.”


허리춤에서 두툼한 나무막대를 꺼내든 간수는 이내 그것을 벽에 걸린 횃불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재판관님께서도 그 소문을 들으셨나 보군요.”


간수의 손에 들린 나무막대에 불이 옮겨붙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금발의 재판관은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소문이라 함은··· 마법을 쓰는 수녀 말씀이신가요? 물론 들어보긴 했죠.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마녀는···”


또다른 횃불을 손에 든 간수는 이내 발걸음을 옮겨 재판관의 옆을 지나쳤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재판관의 가녀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언젠간 이곳, 세드나의 지하감옥에서 신의 벌을 받을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미 그림자 기사단이 수색을 나섰으니, 그녀가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지요."


말을 마친 간수는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심문이 끝나시면 언제든 올라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금발의 재판관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둠을 지키는 간수와 그 감옥에 등불의 은총이 깃들기를.”




= = = = =




녹슨 철문이 열리며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힘겹게 감옥의 문을 열어낸 금발의 여인은 횃불을 손에 든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죄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주황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양 손이 단단히 결박된 채 감옥 안에 무릎꿇어 있었다. 철문과 마찬가지로 녹이 슨 검은 구속구는 좁디좁은 감옥의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재판관은 고개를 숙여 죄수에게 말했다.


“제르니모?”


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재판관은 한 숨을 쉬며 횃불을 그의 가슴팍에 가져다댔다.


“컥··· 크허억!”


제르니모는 이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란한 쇠사슬 소리가 좁디좁은 감옥을 가득 메웠다.


“제르니모? 일어나셨어요?”


금발의 여인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횃불을 거두어들이고는 그것을 감옥의 벽에 걸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조련사는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다··· 다 말씀 드렸지 않았습니까! 제 아버지가 했던 일들을 말입니다! 수녀의 마법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피폐한 몰골의 제르니모는 미친 듯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재판관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입니다! 저는 그녀가 마법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마법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


순간, 금발의 여성은 고개를 젖히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련사는 얼어붙은 채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참 동안을 웃은 재판관은 이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꿈에도 모를 일이에요. 수녀가 마법이라니. 말도 안 돼! 정말 재밌지 않아요?”


환하게 미소지은 재판관의 앞에서, 제르니모는 그녀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재판관의 갸녀린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귓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말이죠. 당신이 떨었던 허풍이에요. 그 론멕의 앞에서 드래곤이니 뭐니 허풍을 떨다니, 당신 꼴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요?”


그 말을 들은 조련사는 그의 귀를 의심했다.


“그걸··· 어떻게···”


“쉿! 닥치고 더 들어봐요!”


금발의 여성은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말을 이었다.


“론멕이 ‘용사 다리온의 모험’ 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 이야기를 가지고 허풍을 떨 수가 있었죠? 그 애가 다리온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혹시 아세요?”


“···”


이제는 넋을 놓은 제르니모의 눈동자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재판관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재미있었고, 또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당신 또한 모험을, 허풍이란 이름의 이야기를 지어낸 것 아니겠어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재판관의 몸은 어느새 땅딸막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헐렁이는 이단 재판관의 옷을 걸친 금발의 소녀는 큼지막한 책을 품에 안아들며 말을 이었다.


“조련사인 당신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죠?”


말을 마친 소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황금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녀는 이내 무엇인가를 꺼내들고는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페트나 베리미온. 음유시인이에요.”


“···”


“나와 거래를 해요. 제르니모.”


그런 그녀의 손에는 연한 녹색의 도마뱀이 들려 있었다.


제르니모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점점 흐려저 가는 조련사의 시야에는, 도마뱀의 등에 날개가 돋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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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진실을 마주보며 +15 20.07.02 755 65 17쪽
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5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50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1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2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2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8 79 13쪽
42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6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2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5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6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1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7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100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9 78 13쪽
30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1 87 12쪽
29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30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5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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