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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413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7.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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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추천
59
글자
17쪽

대장장이의 유산

DUMMY

“아···”


위니는 그녀의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검붉은 불길은 대장장이의 상반신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삐쩍 마른 고목처럼, 화로에 엎어진 그의 육신은 기괴하게 비틀린 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생명의 움직임이라 볼 수 없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몸부림치는 인커스의 두 다리는 사선으로 세워져 화로의 안을 향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화로는 그것의 입을 쩍 벌린 채 대장장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인커스의 살점을 태우는 불길은 점점 거세지며 그것의 크기를 불려갔다.


하늘빛 눈의 모험가는 그저 말 없이 대장장이가 타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론멕의 만류가 없었다면, 분명 좀 더 일찍 일어났을 광경임이 틀림없으리라.


넋을 놓은 위니의 텅 빈 하늘색 눈동자에는 검붉은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그녀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그것의 주인을 잃은 채 흙바닥에 떨어진 대장장이의 발목이었다.


“이런 제기랄! 콘 오브 콜드(Cone of cold)!”


위니는 다급히 손바닥을 펼치며 빙결 주문을 외웠다. 순식간에 그려진 마법진의 정 중앙에서는 치익 소리와 함께 그저 희미한 김이 피어오를 뿐이었다.


열기로 가득찬 대장간에는 일말의 수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퍼뜩 그녀의 실수를 눈치챈 위니는, 이내 손바닥에 힘을 실으며 또다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버플로우(Overflow)!!”


하늘빛 오망성이 회전하며 그것의 크기를 키웠다. 거대해진 마법진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줄기의 두터운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력한 수압으로 발사된 물줄기는 순식간에 화로에 닿았다. 그러나 그 기세가 무색하게, 검붉은 불길은 꺼지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마치 폭발하듯 치솟은 화염은 잠시 멈칫하더니, 새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대장간의 천장을 검게 그슬리기 시작했다.


물에도 꺼지지 않는 검붉은 불길. 마법에 통달한 엘프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혈마법의··· 화염···?”


나지막히 신음한 위니는 이내 두 팔뚝을 교차시키며 더욱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겹오망성이 그녀의 앞에 떠올랐고, 고위 마법을 캐스팅하는 엘프의 머릿속에는 수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저 불길은 혈마법의 것이다. 그렇다면 대장장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론멕의 마나통은 어느새 또다시 불어나 더욱 상위 단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인상과는 다르게, 론멕의 몸은 어쩌면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 최적의 몸일지 모른다. 그리고, 론멕이 이곳에 당도하자마자 대장장이는 자살했다. 이 모든 생각의 종착점은 단 하나.


[마법이··· 불행을···]


마법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온 몸에 힘을 실은 채, 잡념을 떨쳐내고 집중하기 시작한 위니의 등에는 하늘색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완성된 겹오망성을 앞에 둔 위니는, 이내 두 팔을 내지르며 주문을 외웠다.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


그러자 순간, 검붉은 불길이 마법사의 몸을 향했다. 화염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그것으로부터 새어나온 붉은 기운이 겹오망성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위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안간힘을 쓰며 마법을 유지시키는 하늘빛 눈의 모험가의 두 다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 = = = = =




그렇게 그녀가 붉은 기운을 한참동안 빨아들이고 나서야, 불길은 완벽히 진압되었다.


검게 그슬린 화로에는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았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위니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화로의 앞을 향했다.


대장장이의 발은 가죽 샌들에 신긴 채 흙바닥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위니는 고개를 들어 화로의 안을 바라보았다.


화로의 안에 놓인 해골은 검은 재 속에 파뭍혀 있었다. 그것의 주인이 숨을 멈췄을 때의 자세를 고스란히 간직한 뼛무더기에 오른팔이란 보이지 않았다.


“···”


위니는 그저 말 없이 뼛무더기를 바라보았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마법사에게 인커스가 남긴 해골은 일말의 감흥조차 주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생각은 오직 하나.


[불행···]


또 다른 불행이 론멕의 곁에, 어쩌면 그녀의 곁에 찾아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평생을 마법에 바친 위니에게, 이러한 사실은 그저 미신에 불과했다.


그녀는 미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신은, 그것의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 끊임없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조잡한 거짓말처럼.


“···이런 씨발!!!”


하늘빛 눈의 모험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인커스의 발을 걷어찼다. 발목이 검게 그슬린 채 바스라진 대장장이의 살덩이는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모루에 부딫혔다.


“혈마법사에게 딱 어울리는 최후였어. 안 그래?!”


엘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위니는 그녀의 빨간 머리칼을 휘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대장장이의 발목과 마찬가지로 검게 그슬린 대장간의 목조 천장이 비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천장을 바라본 위니는, 이내 부리나케 주변을 살폈다. 마법사의 히스테릭한 눈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간의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나무 상자를 향했다.


상자를 낚아챈 위니는 그것을 열었다. 상자의 안을 뒤적이던 그녀는 돌돌 말린 작은 양피지 조각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양피지는 푸른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리본의 끄트머리를 잡아챈 위니는 봉인을 풀어 양피지를 펼쳐들었다.


마법사의 하늘빛 눈동자가 종이에 빼곡이 쓰여진 글씨를 흝었다. 인커스가 남긴 편지를 읽은 위니는 이내 헛웃음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내 참···”


엘프는 인커스가 남긴 편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이나 양피지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것을 돌돌 말며 나지막히 말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미친 놈들 뿐이로군.”


위니는 파란 리본을 집어들어 돌돌 말린 양피지를 정성스레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를 완벽하게 매듭지은 마법사는 그것을 상자 속에 넣어 뚜껑을 닫았다.


얌전히 상자를 내려놓은 후, 위니는 검게 그슬린 탁자 위에 두 손을 얹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을 빨간 머리칼이 삼켰다.


“···고작 이런 것에···”


하늘빛 눈의 모험가는, 손톱으로 탁자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고작 이런 것에 혈마법을 사용하고··· 그렇게 미련하게 죽어버리면···”


그녀의 작은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는 어느새 손톱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고, 주먹을 움켜진 위니는 주체할 수 없이 떨며 말을 이었다.


“이··· 이 위니 터미너스는 대체 뭐가 된단 말이냐···”


눈을 질끈 감으며 혼잣말을 내뱉은 위니는, 이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붉은 머리칼이 바싹 마른 대장간의 공기를 갈랐고, 그것만큼이나 건조한 눈매를 치켜세운 마법사는 모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모루의 맡에는 주인을 잃은 발목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그것을 바라본 위니는, 인커스의 발을 들어올리며 나지막히 말했다.


“어리석은 대장장이여. 네 유산은 꼭 전해주도록 하마.”


굳은 표정의 위니는 말을 마치고는, 이내 짧은 마법 주문을 외웠다.


“디스인티그레이트(Disintegrate).”


마법진이 그려진 손바닥 위에서, 인커스의 마지막 육신이 가루가 되어 대장간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뿌연 살점의 파편을 들이마시며 상자를 집어든 위니는 대장간의 정문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죽음과 불행을 알리기 위해, 발을 내딛는 마법사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 = = = =




디아즈 초원의 짧은 그림자들은 그것의 크기를 더욱 줄여가며 오후가 찾아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가장 높이 뜬 태양의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마주하며 눈을 감은 용병들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감돌았다. 그런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작은 상자를 손에 쥔 빨간머리 모험가의 눈동자는 어느새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잠에서 깬 론멕의 곁에는 나풀거리는 하늘빛 엘프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용병들과 마찬가지로, 지긋이 눈을 감은 위니가 입을 열었다.


[맹세해.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론멕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믿어요. 그러니까 더 설명 안하셔도 돼요.’


말을 마친 론멕은 상자의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무덤의 모습이 비쳤다. 급조된 작은 흙무더기의 앞에는 이곳 저곳에 상처가 가득한 모루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의 허름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모루는 단 한 곳도 녹이 슬어있지 않았다. 묘비를 대신한 강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론멕의 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역상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 이녀석도 짐작하고 있었을 거다.”


꽁지머리 노인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생명력 착취를 사용하지 않고, 혈마법을 계속해서 사용해 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오히려 우리가 있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군.”


그 말을 들은 넬포와 토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매키니는 얼굴을 감싸쥔 채 입을 열었다.


“무기고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이 많은 걸 대체 언제, 어떻게 만드셨을까 생각하니···”


말을 흐린 매키니는 그녀의 허리춤에 꽂힌 롱소드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인커스의 무덤 앞에서, 용병들은 고개를 숙인 채 묵념하기 시작했다.


론멕과 위니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망자에 대한 예를 갖췄다. 상자를 움켜쥔 모험가의 옆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넬포가 말했다.


“···한번 열어봐 신입. 인커스님이 네게 남기신 거잖아.”


그 말을 들은 론멕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넬포를 돌아보았다. 용병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마친 론멕은 그녀의 손에 들린 상자를 열었다.


투박한 나무 상자에는 작은 단검이 놓여져 있었다. 마치 색을 입힌 듯, 검신과 손잡이 모두가 검은 단검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검은 단검을 움켜쥔 론멕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그것의 무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흑색 단검을 들어올린 그녀의 눈동자에는 또다른 무엇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단검의 밑에는 돌돌 말려 파란 리본으로 묶인 양피지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을 꺼내든 론멕에게, 위니가 말했다.


[읽어 봐.]


그 말에, 론멕은 리본의 끝을 물어 잡아당겼다. 양피지를 펼쳐든 그녀의 눈 앞에 수 없이 많은 글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친ㅇ ㅐ 하는 용 ㅂ ㅕㅇ 드ㄹ에)


(이런 젠장할. 다시 쓰겠소. 양피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을 탓하시오. 일평생 편지를 쓸 일이 있을줄은 내 몰랐소.)


(친애하는 용병들, 그리고 론멕 데이드림에게.)


(우선 나의 죽음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았으면 하오. 나이도 나이일 뿐만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가진 나에게 대장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의 소망이자, 큰 기쁨일 테니 말이오.)


(혈마법으로 불을 피우고, 혈마법으로 팔을 만들어 신의 섭리를 거스른 나에게 스스로가 내린 벌일지도 모르겠소. 나는 결코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 저승에서 만난 신이 나를 탓한다면, 장담컨대 나는 망치로 그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생각이오.)


(나와 친구가 되어준 그대들의 앞날에 모루의 축복이 깃들기를 빌겠소. 이는 원래 루블란의 드워프들만이 쓸 수 있는 인사이긴 하나, 죽음을 앞둔 상황에 무엇이 중요하겠소.)


(엑시온이여. 나의 무기를 거머쥔 그대들에게 승리만이 있기를 바라겠소. 이하는 론멕 데이드림에게 쓰는 말이오.)


(론멕.)


(나는 그대를 결코 좋게 보지 않았소. 그대는 나를 죽이려 들었으니 말이지.)


(혈마법을 대놓고 써댄 나도 할 말은 없소만, 큰 힘에 심취하여 마법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대의 모습은 툼스톤과 다름이 없어 보였소. 이런 나의 생각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오.)


(강한 확신이 들었소. 그대가 결코 나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거대한 마법진을 그린 그대를 보며 확신했소.)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혈마법 앞에서, 예상대로 그대는 거짓말을 하더군.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말이오.)


(이미 그대에게 말했듯, 나는 거짓말쟁이에게 무기를 만들어주지 않소. 체념하려는 찰나, 그대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말하기 시작했소.)


(이유없는 살인을 하기 싫다고? 그러면 하지 마시오. 모험을 하고 싶다고? 그럼 그리 하시오! 영웅이 되고 싶다면 영웅의 길을 걷고, 특별한 무기를 갖고 싶다면, 그러고 싶다고 말을 하시오!)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그대에게, 대장장이인 나는 기꺼이 그에 걸맞는 무기를 만들어 줄 것이오. 이름을 날리는 모험가가 나의 무기를 사용해 준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진실은 이렇게나 간단한 것이오. 진실과 거짓 속을 헤메이는 그대에게, 이 나의 충고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


(단검은 루블란산 흑철로 만들었소. 정말 희귀한 재료라 아껴두고 있던 것이었지만, 죽음을 앞둔 나에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소?)


(마침 마법사인 그대에게 걸맞는 재료라 할 수 있겠소. 이 흑철은 마법과의 친화도가 뛰어나기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훨씬 더 강력해진다오. 자세한 증강의 양상은 직접 마나를 흘려넣어 알아보기를 바라오.)


(마나를 흘려넣지 않는다면 특별히 날카로운 단검은 아니나, 그것을 만드는 데 남은 나의 생명력을 모조리 쏟아부은 혈마법을 사용하였소. 단검에 걸린 혈마법의 저주로 인해, 검날에 피가 묻는다면 그만큼의 생명력을 그대에게 전해 줄 것이오.)


(요컨대 간단하오. 날카로움을 원한다면 마나를 불어넣고,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그냥 사용하시오.)


(그대의 모험에 나의 무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 단검의 이름은 ‘트루스 밸류(truth value)‘ 라 붙였기는 했지만, 그대가 원하는 이름이 있다면 새 이름을 지어주어도 좋소.)


(단검의 이름처럼, 그대가 진실에 가치를 두었으면 하는 바이오. 이 인커스의 마지막 작품을, 부디 잘 사용해 주기를 바라오.)


(온 몸에 힘이 없소. 이제 마지막이 다가옴을 느끼오.)


(이만 줄이겠소.)


(-대장장이 인커스)



(P.s. 로만. 금화 200닢을 착수금이랍시고 당당히 내어놓는 그대의 뻔뻔함에 그저 놀랄 뿐이네. 그 동안 내게 빚진 술값만 해도 그 두배가 족히 넘음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벗이여.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네. 신성한 모루에 맹세코, 부디 무시무시하게 큰 엿을 먹었으면 하는 바이네.)




론멕은 말 없이 양피지를 바라보았다.


눈을 지긋이 감은 그녀는, 이내 그것을 돌돌 말아 가방에 집어넣었다. 상자를 모루 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모험가의 손에는 검은 단검이 쥐여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토마가 입을 열었다.


“무어라 써져 있었소?”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론멕은 그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짤막한 묵념을 마친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려 미소짓고는 말했다.


“단장님.”


그녀의 부름에, 무역상인이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왜 부르시오?”

“인커스님께 밀린 술값 있으셨어요?”


허리춤에 손을 얹은 꽁지머리 노인은 그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대장장이의 무덤 앞에서, 용병들은 마침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인커스가 남긴 무구들은 그들의 몸에서 절그럭댔고, 친구를 잃은 그들의 눈 앞에는 새로운 동료가 서 있었다.


론멕 데이드림. 엑시온의 666번째 용병은 검은 단검을 그녀의 눈 앞에 들어올리며 말했다.


“가요. 툼스톤을 잡으러. 그리고...”


나지막히 입을 연 그녀의 오른쪽 눈동자는 어느새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흑색 단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그것의 검신을 따라 하늘빛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날카로운 단검을 손에 쥔 론멕은, 대장장이의 유산을 쥔 손에 힘을 실으며 말을 이었다.


“모험을 하러.”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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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ND OF PAGE 2> +16 20.07.07 801 64 5쪽
» 대장장이의 유산 +12 20.07.06 668 59 17쪽
55 노숙 +18 20.07.04 699 60 14쪽
54 진실을 마주보며 +15 20.07.02 755 65 17쪽
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5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50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1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3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2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8 79 13쪽
42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6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2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5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6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2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7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100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9 78 13쪽
30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1 87 12쪽
29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30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5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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