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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396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9 00:00
조회
1,129
추천
85
글자
11쪽

다가오는 그림자

DUMMY

기울어진 새벽의 달이 이제는 조금 한산해진 레이븐의 술집을 비추고 있었다.


“그어억”


에드는 탁자가 울릴 정도의 큰 트림을 한 뒤에야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위니는 손으로 그녀의 코 밑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휴! 넌 연장자에 대한 예의란 걸 모르니?”


“예의라니?”


나른한 표정을 지은 사냥꾼은 그의 등을 의자에 천천히 기대며 말했다.


“나는 석궁을 뽑지 않았소. 적어도 강자에 대한 예의는 차린 셈이지. 그나저나···”


에드는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그의 빨간 코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대체 몇 살이길래 이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어? 꽃다운 스무살인 걸.”


“···속이 울렁이는군.”


위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생각보다 훨씬 옛날 사람이란 것만 알아두렴.”


“적어도 어느 시대 사람인지만 말해보시오.”


“···글쎄다? 이렇게 말하면 감이 좀 오려나?”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그녀의 하늘빛 눈동자로 창 밖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토툽스 사람이었어.”


“켈룩! 케헥!”


그 말을 들은 에드는 사래가 들린 듯, 연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술방울을 튀겨대던 그는 이내 그의 수염을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크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서 오백 살이 넘으셨다 이거요?”


위니는 그녀의 빨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더라. 나도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생명을 빼앗는 혈마법사들조차 그렇게 오래 살았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소.”


그 말을 들은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심드렁하게 술잔을 집어들었다.


“뭐.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이야기가 갑자기 샌 것 같은데··· 어쨌든.”


맥주 몇 모금을 홀짝인 위니는 이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에드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


“무엇을 말이오?”


“에르딘에 내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위니는 그녀의 인중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소매로 훔치며 말을 이었다.


“에르딘은 핍박받는 마법사들이 한 데 모여 만든 도시. 마법의 왕국···”


그 말에 에드는 피식 웃으며 빈정댔다.


“그리고 음침한 자들의 소굴과도 같은 곳이지.”


“···닥치고 더 들어볼래? 오랜 시간을 탄압받아온 만큼 우리 마법사들은 강력한 유대를 갖고 있다고. 그런 우리에게 내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다름없어.”


사냥꾼은 탁자 위에 손을 올려 깍지를 낀 채 말했다.


“뭐. 적어도 까마득한 옛날 사람이라는 건 알겠구려.”


“그게 무슨 말이야?”


에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니에게 말했다.


“꽤나 옛날 이야기를 하시니까 말이오. ‘마법사의 유대’ 인지 뭔지 나는 들어본 적 조차 없소.”


위니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가 에드의 눈을 향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빨간머리 모험가는 그녀의 고개를 사냥꾼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더. 자세하게 말해 봐.”


그녀의 반응에 에드는 당황하여 몸을 움찔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도 자세하게는 모르오. 그저 용병 시절, 나의 마법사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일 뿐이지.”


에드는 여전히 위니의 기세에 기가 죽은 채 천천히 맥주잔을 그의 입가로 가져다댔다.


“그들이 말하길, 에르딘에서 정복 전쟁을 주장하는 강경론파들이 득세를 했다 하오. 그래서 온건파와 강경파 마법사들끼리 내전을 벌이고 있다 하더군.”


“뭐···?”


그 말을 들은 위니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마법사들이 전쟁을 위해 나섰다고?”


“그렇다고 들었소.”


“개소리···”


빨간머리 모험가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지러움에 시달리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쾅 소리가 새벽의 선술집에 울려퍼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얼굴이 그녀의 머리칼만큼이나 빨개진 위니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개소리야!!”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선술집의 취객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위니와 에드가 앉은 테이블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소음의 근원지에서, 위니는 탁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개 헛소리라고! 우리 마법사들이 뭣 때문에 그동안 핍박을 받아 왔는데? 마법이 전쟁에 사용되면, 남는 건 잿더미 뿐이라는 걸 이 세계의 모두가 알고 있어!”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를 갈며 식식대기 시작했다. 그런 위니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성국이 왜 그 지랄을 해가며 우리들을 잡아 죽였는데?! 왜 사람들이 마법사만 보면 식은땀을 흘리면서 설설 기는데?!”


점점 커지는 소녀의 격앙된 목소리가 선술집 안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마법사는 강력하다는 걸. 누군가를 죽임에도 모자라 갈가리 찢어 흩뿌려놓을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에드는 온 몸이 얼어붙은 채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위니의 반응에 놀라 토끼눈이 된 그는 그저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사냥꾼의 귀에는 여전히 위니의, 이제는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히나 마법사들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에르딘을 세운 거고, 평화를 위해 그렇게나 애 쓴 건데··· 그런 에르딘이 정복 전쟁을 한다고?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사냥꾼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 나도 들은 이야기일 뿐이오! 그러니 진정하고 내 말을 더 들어 보시오.”


그 말을 들은 위니는 여전히 식식대고 있었다. 에드는 한 숨을 쉬고는 빨간머리 모험가에게 말했다.


“친구들이 내게 말해주었던 것이 하나 더 있소. 강경파 마법사들의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오.”


“말 해.”


사냥꾼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위니에게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10년 전이오. 듣자하면, 에르딘의 강경파를 ‘최강의 마법사’ 라고 불리우는 젊은 마법사 하나가 이끌고 있다 하오.”


위니의 식식거림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가슴을 진정시켰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차분히 의자에 앉은 위니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했다.


“최강의 마법사?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에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위니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말 그대로요. 최강의 마법사가 에르딘의 강경파를 이끌고 있소. 그는 뭐시기의...? 설... 설... 그래! 설립자의 마법을 연구해 왔다더군."


그 말을 들은 위니는,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휴···”


샬롯은 소매로 땀을 훔치며 기지개를 폈다. 환자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그녀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녀의 일과를 마무리한 참이었다.


“아픈 사람이 더 없어서 다행이야.”


검은 머리의 의사는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말끔하게 포장된 약초들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저씨랑 론멕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어디 다치치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약초 뭉치를 서랍 속에 집어넣던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뭉친 목 근육을 풀던 샬롯의 푸른 눈동자에 무엇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참···”


책상이 맞닿은 벽에는 마름질 된 여우의 가죽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에드가 사냥한 붉은 여우의 가죽을 바라보던 샬롯은 이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뭐라고 자꾸 가져오시는지···”


샬롯은 여우의 가죽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의 윤기나는 붉은 색 털을 하나하나 눈으로 흝던 그녀는 이내 눈을 지긋이 감고 옛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에드와 샬롯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엑시온 용병단에서의 거친 용병 생활을 하던 에드 스팅샷은, 어느 날 옆구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 레이븐 마을에 당도했다.


피를 한가득 흘리며 레이븐의 입구에 들어선 그는 한 명의 소녀를 마주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소녀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었다.


그 소녀는 다름아닌 어린 시절의 샬롯이었다. 어린 의술 견습생과 용병의 만남은 둘에게 있어 행운임이 틀림없었다.


용병은 다칠 일이 많았고, 의술 견습생은 사람을 치료하는 데 있어 숙련도를 쌓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기묘한 관계는 그들에게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을 가져다주었다.


샬롯이 어엿한 의사가 된 후에도, 용병이 은퇴하여 안식년을 맞이했을 때도 그들의 유대는 변함이 없었다.


붉은 여우의 가죽을 감상하던 샬롯은 그만 피식 웃고야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잘 준비를 하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십니까!”


그런 샬롯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거센 노크 소리였다.


의사의 집에서 울려퍼지는 새벽의 노크 소리는 언제나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했다. 그 소리를 들은 샬롯은 부리나케 그녀의 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시죠?”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 샬롯이 말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회색 후드를 걸친 한 노인이 색색대면서 샬롯의 말에 대답했다.


“헉··· 헉··· 오밤중에 죄송합니다만, 제 아들놈이 자갈길 위에 쓰러져 있습니다. 제가 가진 돈을 다 드릴 테니, 제 아들놈을 한번만 봐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노인의 말을 들은 샬롯의 눈동자가 결의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의사의 의무. 그리고 그녀의 혈관에는 짙은 의사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일단 진정하세요 아버님.”


풀어헤친 머리를 질끈 묶은 샬롯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돈은 필요 없으니 아드님이 계신 곳까지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화색이 되어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샬롯은 여우 가죽 밑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것의 서랍을 열어 약초 꾸러미를 챙기며 말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셔도 늦지 않아요. 아드님의 상태를 확인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아···”


정신없이 약초 꾸러미를 뒤지던 샬롯의 등 뒤에서, 노인의 감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그리고···”


“뭘요. 이게 제 의무인 걸···



허억!!“


샬롯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동공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새하얀 그녀의 목덜미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 하나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피는 단검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샬롯은 눈을 뒤집은 채 붉은 여우 가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의사의 목에 꽂힌 단검을 손에 쥔 회색 후드의 노인은 이내 샬롯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당신의 희생은 등불의 그림자가 기억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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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ND OF PAGE 2> +16 20.07.07 801 64 5쪽
56 대장장이의 유산 +12 20.07.06 667 59 17쪽
55 노숙 +18 20.07.04 698 60 14쪽
54 진실을 마주보며 +15 20.07.02 755 65 17쪽
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4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49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1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2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1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8 79 13쪽
42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5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2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4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5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1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6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099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8 78 13쪽
30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0 87 12쪽
»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30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4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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