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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399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9 20:00
조회
1,100
추천
87
글자
12쪽

검은 고양이

DUMMY

“우우웅···”


위니는 사냥꾼의 등에 엎힌 채 신음하고 있었다. 눈을 지긋이 감은 빨간머리 모험가의 얼굴은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빨개져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야···”


“그래그래. 나도 알겠소.”


에드는 위니를 등에 업은 채 레이븐의 자갈길을 걷고 있었다. 술에 만취한 위니가 못마땅하다는 듯, 사냥꾼은 눈동자를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딘은··· 평화를 위한 초석··· 마법사의 낙원···”


“알겠다니깐 그러네. 대체 왜 그리 많이 퍼마신 거요?”


“···너는···몰라···”


혀가 꼬부러진 모험가는 이내 열심히 무엇인가를 웅얼대기 시작했다.


“나는··· 에르딘의...”


-투두둑



자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새벽의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위니의 목소리는 자갈길 위를 걷는 사냥꾼의 발소리에 뭍혀버리고 말았다. 묵묵하게 그녀를 업은 채 발걸음을 옮기던 사냥꾼에게, 위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말한 용병단··· 꽤나 도움이 되겠어···”


사냥꾼은 위니를 다시 한번 들쳐업으며 말했다.


“엑시온 용병단 말씀이시오?”


“그래··· 그거···”


빨간머리 모험가는 사냥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을 이었다.


“이 여자애를 최대한 돕는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지. 이제는 외울 지경이오.”


에드는 한 숨을 쉬며 그저 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환한 달빛에 반짝이는 자갈이 그의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사냥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인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하아악!’


새벽의 구름만큼이나 검은 고양이가 사냥꾼의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냥꾼은 이내 나지막이 말했다.


“좋지 않은 징조로군.”


“···뭐어···?”


“보이시오? 검은 고양이오.”


그 말을 들은 위니는 힘겹게 눈꺼풀을 치켜올렸다.


검은 고양이의 노란 눈동자와 위니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고양이를 말 없이 바라보던 위니는 사냥꾼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말했다.


“···그냥 고양이구만··· 별 거라고···”


“그냥 고양이가 아니오. 검은 고양이지.”


“···그러니까··· 그게 뭐 어쨌다고···”


사냥꾼은 한 숨을 쉬었다. 그 소리에 고양이는 질겁하여 수풀 틈으로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가 자갈길 위에서 사라지자, 사냥꾼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예로부터 검은 고양이는 불행을 몰고 온다 하였소.”


“···헛소리···”


위니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미신이야··· 미신일 뿐이라고··· 그거 알아···?”


“무엇을 말이오?”


사냥꾼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위니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너흰 전부 머저리들이라는 거··· 그런 미신을 대체 왜 믿는 건데···?”


“신비를 다루는 마법사인 그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


그 말에 빨간머리 모험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뭐? 신비? 지랄 하네···”


“···”


사냥꾼은 질렸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위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흰··· 마법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지··· 이치와 논리로 이루어진··· 정말 간단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빨간머리 모험가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마법은 신비롭다면서 미신을 믿는다니··· 멍청이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구려.”


“···모르면··· 직접 보렴···”


말을 마친 위니는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의 손가락에서는 하늘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허공에 오망성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는, 이내 그것을 완성시키고는 꼬부라진 혀로 주문을 외웠다.


“<리무브 포이즌>”


그러자 마법진이 회전하며 그녀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빨간머리 모험가의 몸에서 일렁이는 녹색의 기운은 이내 한 데 모여 마법진 속으로 사라졌다.


“봤어?”


생기를 되찾은 위니가 멀쩡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런 그녀를 업은 사냥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엇을 말씀이시오?”


“취기 해독 마법. 엄청나지?”


“그··· 나는 그대를 업고 있잖소. 여기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려.”


그 말을 들은 빨간머리 모험가는 사냥꾼의 등 뒤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며 말했다.


“못 봤다니 너무 아쉬운걸. 이 내가 직접 개량한 해독 마법을 말이야.”


사냥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제는 멀쩡하게 걷기 시작한 위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쓰지 그러셨소.”


“···나도 즐길 땐 즐겨야지. 그리고···”


위니는 그녀의 목에 매달린 자수정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나하게 취한 몸을 돌려주는 건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든.”


“주인? 그건 또 무슨 소리오?”


“네가 아까 아침에 만난 그 아이. 난 피곤해서 이제 좀 쉬어야겠어.”


말을 마친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눈을 감으며 힘없이 자갈길 위로 쓰러졌다.


마치 줄이 끊긴 인형처럼 몸을 뉘인 그녀를 본 사냥꾼은 부리나케 그녀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엇··· 이보쇼? 이보쇼!!”


당황한 에드는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주체없이 흔들리는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천천히 그녀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검은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론멕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흔드는 사냥꾼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봐! 정신 차리시오! 갑자기 이게 무슨···”



흔들리는 그녀의 고개를 주체하지 못한 채, 론멕은 다급히 사냥꾼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아구! 아구! 깼으니까 그만해요!”


론멕은 자갈길 위에 손을 짚으며 몸을 추스르고는, 이내 그녀의 앞에서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은 사냥꾼을 바라보며 말했다.


“에드 아저씨···?”


경이롭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사냥꾼은 론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는 또 내게 존댓말을 하시는 거요?”


“네?”


자갈밭 위에 선 채 그녀의 모험가복을 툭툭 털어내던 론멕이 말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맙소사···”


사냥꾼은 연신 헛기침을 한 후, 그의 입가를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론멕. 그대 말이오. 혹시 또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거나 하진 않소?”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긁적이던 론멕은 이내 배시시 웃으며 사냥꾼에게 말했다.


“아··· 위니 말씀이시군요.”


“위니···?”


사냥꾼은 미심쩍다는 듯 도끼눈을 뜬 채 론멕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검은 눈동자의 모험가는 이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게 있어요. 그런 엘프가···”



=



달빛이 비치는 레이븐 마을의 정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믿기지가 않는군.”


사냥꾼은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석궁을 고쳐매며 말했다.


“목걸이에 갇힌 엘프 마법사가 그대의 몸에 들러붙었다 이 말씀이시오?”


“정확해요.”


자갈길을 내려다보며 걷는 론멕의 목에는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수정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이내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에르딘으로 가고 있어요.”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소. 그··· 위니라는 작자한테서 말이지.”


사냥꾼은 가지런히 나열된 밭의 울타리를 흘긋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에르딘으로 가는 이유를 이젠 좀 알 것 같군.”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위니가 말하길,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오기 위해서는 에르딘이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더라구요.”



에드는 말 없이 앞을 바라본 채 그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론멕은 그런 그의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발에 채이는 자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귀를 아득히 메우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의 틈새로, 사냥꾼과 모험가의 발소리가 레이븐 마을에 울려퍼졌다. 어느 새 마을의 정문에 다다른 그들의 침묵을 깬 것은 검은 더벅머리의 사냥꾼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그런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오. 평원에는 정체모를 괴물들이, 그리고 길가에는 음흉한 도적들이 도사리고 있소.”


“나는 두렵지 않아요.”


론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나는 말이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에 성당에 버려졌어요.”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레이븐의 평원을 응시하던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한 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구요. 그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알기나 해요? 괴물이건 도적이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해요. 난 그런 게 보고싶어서 미칠 지경이니까.”


그 말을 들은 에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죽기 딱 좋은 말을 하시는구려.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두 번 본게 아니오.”


석궁은 사냥꾼의 허리춤에 매달린 채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에드는 론멕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용기가 아니오. 만용일 뿐이지. 긴 여정을 떠나기 전에 그대의 힘부터 기르시오.”


더벅머리 사냥꾼은 론멕의 검은 눈동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담컨대 그대는 비명횡사할 것이오.”


그 말에 론멕은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내 몸에 붙은 위니라는 마법사는 정말 강력한 마법사니까요.”


“허허. 그래서 그 위니라는 작자가 그대를 지켜준다고 약속이라도 한 거요?”


빨간머리 모험가는 그녀의 자수정 목걸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네. 위니가 말했어요.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나를 최대한 도울 생각이라고.”


그 말을 들은 사냥꾼은 이내 고개를 젖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에드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던 론멕의 귀에는 사냥꾼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엘프 마법사가 그대를 끝까지 도울 것 같소? 아까 이야기를 나눠봤소만, 그 위니란 작자는 오백에 가까운 세월을 지내왔다 하더군.”


사냥꾼과 모험가는 어느 새 샬롯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에드는 의사의 집 문을 살짝 노크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집념이 예사롭지가 않단 거요.”


노크의 답변을 기다리는 사냥꾼을 앞에 둔 채, 론멕은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그 마법사를 너무 믿지 마시오. 사람이란 건 말이지, 그대의 생각보다 훨씬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말이오.”


에드는 고개를 돌려 론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용병 생활을 하면서 수 없이 많은 배신을 봐 왔소. 모두가 목적이 있었고, 모두가 죽음을 불러왔지.”


더벅머리 사냥꾼은 다시금 문을 노크하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용병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소. 디아즈 성으로 가면 용병단의 본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런 젠장할. 샬롯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참다 못한 사냥꾼은 문을 거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론멕은 그녀의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분명 자고 있지 않을까요?”


“그대가 샬롯을 몰라서 하는 소리오. 이상하군··· 워낙에 밤 잠이 없는 친구인데···”


쾅쾅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의 말을 들은 론멕은 귀를 막으며 말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우리가 얼마나 친한 지는 알기나 하고 빈정대는 거요?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내 노크 소리를 들으면 한 걸음에 달려오는게 샬롯···”



사냥꾼이 두드리던 문이 이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무 문의 틈새로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사냥꾼은 황급히 문을 열어제끼며 말했다.


“샬롯? 왜 문이 열려있··· 샬롯?”


에드는 황급히 의사의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론멕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론멕은 얼어붙고 말았다.



검붉은 핏자국으로 범벅이 된 샬롯이 기괴하게 목을 꺾은 채 에드와 론멕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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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4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49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1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2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1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8 79 13쪽
42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5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2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5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5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1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6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100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8 78 13쪽
»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1 87 12쪽
29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30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4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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