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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408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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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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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
12쪽

커티스 툼스톤

DUMMY

엑시온 용병단의 본부는 나름대로의 규모를 갖춘 석조 건물이었다. 체스판처럼 나열된, 도심의 블록중 하나를 당당히 차지한 용병단 건물의 뒷문에는 작은 규모의 잔디밭이 깔려 있었다.


본부에 상주하는 용병단원은 대체로 이 잔디밭을 드나드는 일이 없었다. 임무를 수행하느라 한 시도 쉴 틈이 없었던 그들이 잔디밭에 한 데 모인 것은 이례적인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잔디밭 위에서, 연보라색 머리의 여인은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그런 그녀의 앞에는 서로를 마주본 채 식은땀을 흘리는 넬포와 론멕이 서 있었다. 거리를 둔 채 대치하는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결연해 보였다.


매키니는 한 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금발의 거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제 인정해 매키니. 어젯밤의 나는 적어도 저렇게 꼴사납지는 않았어.”


“그···리고···”


토마를 향해 고개를 돌린 넬포는 나무 단검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나는 적어도 신사적이지. 신입, 내 말이 틀리냐?”


그 말을 들은 론멕은 고개를 숙여 손을 바라보았다. 삐죽머리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손에는 뭉특한 나무 단검이 들려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던 모험가의 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매키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보 같아.”


론멕의 옆에 떠오른 하늘빛 엘프의 형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여자애 말이 맞아. 븅신같기 짝이 없는 놈이야.]


‘위니. 말이 너무 심하세요.’


빨간머리 모험가는 나무 단검을 고쳐잡으며 입밖으로 말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그 말을 들은 삐죽머리 남자는 나무 단검을 여유롭게 던져올리며 말했다.


“규칙은 간단해. 단검이 몸에 닿으면, 그 사람은 지는 거지.”


“마법을 써도 되나요?”


넬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든 써 봐. 최선을 다 해 보라고.”


깔보는 듯 한 그의 말투에, 론멕은 못마땅하다는 듯 넬포를 노려보았다. 입을 있는대로 삐죽이던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왜 당신이랑 싸워야 하는 지 모르겠네요. 이겨봤자 보상도 없고, 이런 결투를 제가 왜 해야 하나요?”


“보상이 없기는?”


단검으로 론멕을 겨눈 삐죽머리 남자가 말했다.


“대도, 넬포 브레이브본을 이겼다는 명예를 거머쥘 기회 아니냐?”


“···”


“···알겠어 인마. 만약 네가 이긴다면···”


넬포는 엄지로 그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브레이브본의 단검술 비기를 가르쳐주도록 하지. 어때?”


론멕은 그 말에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던 매키니가 입을 열었다.


“저렇게 보이지만··· 넬포는 그래도 강한 도적이니, 믿어서 손해볼 일은 없을 거야.”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는 토마를 잠자코 지켜보던 론멕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가 지면 어떻게 되나요?”


“만약에 네가 진다면···”


삐죽머리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내 제자로 입문해라.”


그 말을 들은 론멕은 눈동자를 굴렸다.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긴 그녀의 옆에서, 위니는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이 돌대가리야. 어쨌든 결과는 똑같단 말이잖아.]


‘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론멕은 나무 단검을 고쳐잡으며 위니에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겨야겠어요.’


[동감이야. 저런 머저리에게 졌다가는 너 오늘 잠 못잔다.]


마음 속으로 대화를 나누던 모험가와 엘프의 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매키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침을 꿀꺽 삼킨 론멕은 넬포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연보라색 머리의 여인은 그녀의 롱소드를 잔디밭에 박아넣으며 말을 이었다.


“시··· 작!”


매키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니는 무시무시하게 큰 마법진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헬 파이ㅇ]


‘아휴 참. 단검으로 찔러야 하잖아요!’


[죽이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


‘···그냥 하던 대로만 하죠.’


고개를 세차게 털어낸 론멕의 앞에는 여전히 넬포가 서 있었다.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 잔디밭 위에 우뚝 선 삐죽머리 남자는 그저 론멕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모험가의 오른 쪽 눈이 하늘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무 단검과 작은 마법진을 움켜쥔 그녀의 귓가에는 어느새 엘프의 마법 주문이 들려오고 있었다.


[<블링크>!]




= = = = =




같은 시각, 황량한 디에즈 초원에는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생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원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았는데, 이는 디아즈 성으로 향하는 길이 초원 도처에 닦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흙길, 그리고 그 옆에 자리잡은 선술집들은 기나긴 초원에서의 휴게소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기나긴 여정에 지친 상인과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선술집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가득했다.


디아즈 초원의 서부에 위치한, 한 외딴 선술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가 막 떠오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선술집에는 손님이 가득 차 있었다.


취객들의 주사와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허름한 선술집의 구석에서, 기름진 검은 장발의 남자는 연신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 난 모험가란 족속들은 딱 질색이야.”


술잔을 내려놓은 그의 몸에는 촘촘한 사슬 갑옷이 둘러져 있었다. 검은 장발의 남자는 이내 술잔의 주둥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하는 건 그저 낭만을 부르짖으며 이곳 저곳을 싸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하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런 그의 앞에는 허름한 옷을 걸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몸을 바르르 떨던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모험가 양반. 나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권하고 있는 거야.”


장발의 남자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어디 가서 몸을 팔던, 모험을 한답시고 구르다 뒈져 버리던 좆도 신경 안 써. 그래도 말이지··· 그래도 말이지···”


깍지를 낀 장발의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자, 여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사슬 갑옷을 입은 남자는 말을 이었다.


“정보 전달. 그래. 내게 이야기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드레이크와 베레즈의 죽음··· 그것은···”


“그래. 그래. 나도 알겠어. 그런데···”


한 숨을 쉰 장발의 남자가 말했다.


“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해 봐. 그들을 누가 죽였다고?”


“모험가··· 마법을 쓰는 모험가···”


허름한 옷의 여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그녀의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붉은 단발에··· 검은 후드··· 마법을 부리는 모험가···”


“삐쩍 마른 계집이라면서.”


촘촘한 사슬 갑옷이 절그럭 소리를 내었다. 고개를 젖혀 의자에 등을 기댄 장발의 남자는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드레이크가 둔해 빠진 도적이긴 해도, 계집애한테 죽을 실력은 아니란 말이지. 베레즈는··· 모르겠다. 그 년이야 워낙에 멍청하니까. 그런데···”


“···”


“아무리 마법사여도 그렇지, 여자애 하나가 그 둘을 죽였다는 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그냥 마법사가 아니었습니다···”


허름한 옷의 여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엘프의 마법··· 그건 분명 엘프의 마법이었습니다···”


“이제는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장발의 남자는 술잔을 들이키고는 말했다.


“모험가 양반. 나는 독서에 흥미는 없지만, 그래도 읽어봄직한 것들은 몇 번 봐 둔단 말이야. 케케묵은 역사책도 그 중 하나지.”


“···”


한 숨을 쉰 장발의 남자는 이내 술잔을 거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엘프란 족속들은 다 뒤졌어. 그것도 500년 전에 말이야. 나는 말이지, 역사책을 보기 전까진 그런 종족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


“그럼 한번 네 말을 정리해 볼까. 멸종한 엘프의 마법을 쓰는 삐쩍 마른 여자애 하나가, 드레이크와 베레즈를 죽이고는 제 갈 길을 갔다고?”


허름한 옷의 여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장발의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그 마법사 계집애가 성국 사람이라 그래라.”


“···”


“그래. 이건 너무 갔군. 하여튼 간에···”


“···”


“그 계집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나?”


그 말에 허름한 옷의 여인은 말했다.


“···제게 길을 물었습니다··· 디아즈 성··· 엑시온 용병단으로 향하는 길을···”


“그래. 이제야 들어줄 만한 대답이 나왔군.”


만족스럽다는 듯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장발의 남자는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엑시온··· 엑시온이라··· 마침 잘 됐어.”


사슬 갑옷을 입은 남자는 여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돌변한 그의 태도의 당황한 여인의 귀에는 장발의 남자의 정중한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뭐. 고맙소 모험가 양반. 당신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녀 준 덕분에, 꽤나 쓸모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소.”


“···”


“진심으로 감사 드리는 바요.”


“···다 이야기 했으니··· 이제 보내 주세요···”


“···”


“제발··· 제발···”


“그럼. 보내드려야지.”


순간, 테이블 밑에서 모닝스타를 집어든 장발의 남자는 있는 힘껏 여인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허름한 옷의 여인은 탁자 위로 고개를 숙였다. 일말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발의 남자는, 이내 사정없이 시체의 머리를 내리찍으며 말을 이었다.


-으직 -으직 -으직 -으직 -으직


“내! 친히! 저 세상으로! 보내! 드리는! 바요!”


붉은 액체와 뇟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끔찍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선술집에 가득 찬 손님들은 그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치켜올릴 뿐이었다.


요란스러운 선술집 안에서, 장발의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모두들 들었나! 그 계집이 엑시온으로 갔댄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술집 안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슬 갑옷을 입은 채 갖가지 병장기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검은 묘비가 그려진 견갑을 걸친 괴한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기괴한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우악스러운 목소리로 환호하던 그들 중 하나가 장발의 남자에게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커티스 님.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마법사를 상대하게 되는 겁니까?”


걱정이 만연한 졸개에게, 커티스는 피로 얼룩진 모닝스타를 어깨에 들쳐메며 말했다.


“뭐. 그런 셈이지.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장발의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판레스터 디 오거. 오우거를 불러라. 그 자식을 어디다 써 먹을지 항상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군.”


말을 마친 커티스는 이내 등을 돌려 선술집의 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망토에는 졸개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검은 묘비가 그려져 있었다.


선술집을 가득 메운 사슬 갑옷의 괴한들은 그의 등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해진 선술집에는 머리가 처참하게 박살난 모험가와 술집 주인의 시체를 제외한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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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ND OF PAGE 2> +16 20.07.07 801 64 5쪽
56 대장장이의 유산 +12 20.07.06 667 59 17쪽
55 노숙 +18 20.07.04 699 60 14쪽
54 진실을 마주보며 +15 20.07.02 755 65 17쪽
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4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50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1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2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2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8 79 13쪽
»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6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2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5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6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1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7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100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9 78 13쪽
30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1 87 12쪽
29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30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5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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