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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392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7.02 02:47
조회
754
추천
65
글자
17쪽

진실을 마주보며

DUMMY

대장간의 화로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디아즈의 초원과 마찬가지로, 불이 꺼진 인커스의 대장간에는 어둠이 찾아들었다. 고삐에 묶인 채 꾸벅꾸벅 졸던 무역상인의 말은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그것의 큼지막한 눈을 서서히 치켜올렸다.


대장간의 구석에 위치한 조잡한 나무 문에서는 옅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용병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골방에 마주앉은 인커스와 론멕은 일렁이는 촛불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낡은 나무 탁자에 하나 남은 팔을 괸 외팔이 대장장이는, 그의 턱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안 마실 거요?”


그 말을 들은 론멕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앞에 놓인 작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섬세하게 가공된 유리 찻잔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투박한 대장간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론멕은, 이내 그것을 감싸쥐며 말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인커스는 찻주전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댄 론멕의 앞에서, 주전자를 기울여 그의 몫의 차를 따라내던 대장장이가 말했다.


“많이 긴장하셨구려. 아까의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거요?”

“그 모습이라뇨?”

“분노에 휩싸인 그대의 모습 말이오. 분명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소?”


그 말에, 찻잔을 내려놓은 론멕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자수정 목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슴 위에 얌전히 자리잡은 수정에서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위니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인커스에게 말했다.


“우선 첫째로, 저는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둘째로, 아까의 그건 제 모습이 아니었을 거에요.”


자수정을 옷깃 속에 집어넣은 론멕이 말을 이었다.


“나는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대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당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긴장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차를 한 모금 들이킨 인커스는 그의 수염을 문지르고는 말했다.


“그대는 정말 영문모를 사람이로군. 아까는 나를 죽이려 들더니, 이제 와서 한 입으로 두 말 하기요?”

“···”

“나는 그대와 같은 인간을 아주 잘 알고 있소.”


인커스는 가죽 앞치마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을 이었다.


“속마음을 감추는 데 능하고, 남을 속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지 않소?”


대장장이의 손에는 어느새 작은 바늘이 들려 있었다. 촛불에 반짝이는 바늘을 바라보던 론멕은 이내 인커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지금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또 뭐겠소?”


그 말에, 론멕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일렁이는 촛불에 음영이 진 모험가의 얼굴은 그녀의 가슴 속에 파뭍힌 자수정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의 론멕은, 깍지낀 손을 탁자 위에 얹으며 말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아까 그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

“아. 사정이 있었다라. 거짓을 일삼는 자가 늘상 하는 말이 아니겠소?”


외팔이 대장장이는 바늘을 촛불에 가져다대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란 건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리고 그것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실이라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사정이 있어서···”


말을 채 잇지 못한 론멕의 앞에서, 인커스는 하나 남은 손을 능숙하게 움직여 빨갛게 달궈진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다. 핏방울이 배어나오는 손가락을 들어보인 대장장이는 그의 앞에 앉은 모험가에게 말했다.


“마법사여. 일평생을 강철을 두들기며 살아온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가 있소. 그게 뭔지 아시오?”


피가 흘러내리는 대장장이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론멕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잃은 모험가에게, 인커스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대장장이의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소. 백 번을 두들기면 백 번 만큼의 성능을 보이고, 천 번을 두들기면 그만큼의 가치를 갖게 된다오.”

“···”


인커스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무엇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된 작은 혈마법의 마법진은, 촛불을 받아 그것의 불길한 광채를 내뿜었다.


피로 그려진 오망성을, 론멕은 그저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대장장이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팔을 잃은 대장장이인 나는 다시 무기를 만들 방법을 찾기 위해 온 대륙을 돌아다녔소. 그러다 데블린 왕국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 곳에서 혈마법을 배우게 되었소.”

“데블린 왕국이라 하면···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 말인가요?”


마침내 입을 연 론멕에게, 인커스가 말했다.


“그렇소. 마법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데블린의 사람들은 강함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법들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인다오. 사악한 혈마법사들이 그곳에서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유가 다 있는 셈이지.”


외팔이 대장장이는 탁자 위에 그려진 핏빛 마법진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뭐, 어찌 되었던 간에··· 이 혈마법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소. 팔을 새로 만들어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의 주술로 타오르는 불은 강철을 순식간에 녹여버리기에, 오히려 팔을 잃기 전보다도 더 나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소.”

“흥미롭네요.”


론멕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인커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대장장이는 한 숨을 쉬며 말했다.


“흥미롭기만 하면 참 좋았을 텐데... 이 혈마법은 쓰면 쓸수록 시전자의 생명을 갉아먹는다오. 어찌 보면 강철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하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론멕의 말에, 외팔이 대장장이가 말했다.


“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혈마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소. 도움을 받고, 사용한 만큼 나는 점점 내 생명의 빛이 꺼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오. 그리고 그것이···”


인커스는 탁자 위에서 손을 떼었다. 피로 그려진 오망성은 어느새 그의 손바닥에 머물러 있었고, 검붉은 광채를 발하는 마법진을 론멕에게 들이민 대장장이가 말을 이었다.


“검증이 필요한 이유라오.”

“엇···”


순간, 검붉은 기운이 론멕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험가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나 검집은 텅 비어 있었다. 당황하여 허리춤을 더듬는 론멕에게, 굳은 표정의 인커스는 여전히 마법진을 들이민 채 그녀에게 말했다.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니 진정하시오. 그저 간단한 혈마법 중 하나일 뿐이니.”


론멕은 검붉은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손을 휘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혈마법의 아우라는 여전히 그녀의 몸에 머물러 있었다.


겁에 질린 론멕은 인커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게 무슨 짓을 한 거죠?”


그 말에, 외팔이 대장장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대에게 무슨 짓을 한 게 아니오. 요컨대 이 주술은,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이지.”

“진실을··· 판별해···?”

“그렇소.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으시길 바라오.”


촛불이 일렁이는 골방에서, 모험가와 대장장이는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론멕을 향해 팔을 뻗은 인커스는 마법진이 그려진 손에 힘을 실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나의 생명을 불태워 무기를 만든다오. 그리고 그런 만큼, 나는 아무에게나 나의 무기를 내어줄 생각이 없소.”

“···”

“론멕 데이드림··· 이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론멕의 말에, 대장장이의 손바닥에 그려진 오망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붉은 광채로 가득 찬 골방에서, 인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로군. 마법진이 빛나고 있으니 말이오.”

“···맙소사.”


인커스의 말에 당황한 론멕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슬며시 미소지은 대장장이가 말했다.


“론멕 데이드림. 그대는 나의 무기로 무엇을 어쩔 셈이오?”


아리송한 대장장이의 질문에 론멕은 잠시 침묵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인커스를 노려보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기로 할 게 뭐가 있겠어요?”


검붉게 빛나는 골방의 안에서, 빨간머리 모험가는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죽여야지요. 나의 길을 방해하는, 그리고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그 모두를 죽여 버려야지요.”


론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법진은 그 광채를 잃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방에는 희미하게 일렁이는 촛불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빛나지 않았다.


인커스는 손바닥을 돌려 빛을 잃은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이나 그것을 바라본 그는, 이내 고개를 들어 론멕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말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그대는 거짓말쟁이오.”

“그게 무슨···”

“이 마법진은, 진실이 아닌 말에는 빛나지 않는다오.”


그 말에, 론멕은 말을 잃고 말았다.


입을 꾹 다문 빨간머리 모험가는 그저 멍하니 인커스의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기사단의 나팔 소리가 그녀의 귓속에 울려퍼졌고, 숨을 멈춘 의사의 눈동자를 돌아다니던 파리는 쉴 새 없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론멕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정하는 혈마법의 마법진에 분노하기 시작한 론멕은, 이내 이를 꽉 깨물고는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인커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분명 말했잖소. 그대와는 다르게, 혈마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론멕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대장장이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내 참. 용병단 신입이라는 자가, 사람 죽이는 데 무기를 쓰지 않을 거면 대체 그것을 어디에 쓴단 말이오? 혹시 엑시온에 취사병으로 가입하기라도 한 거요?”


인커스의 비웃음에, 론멕은 탁자를 거세게 내려치며 말했다.


“···헛소리···”


몸을 움찔인 대장장이의 앞에서, 빨간머리 모험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나는··· 다 죽여 버릴 거에요···”


돌변한 여인의 분위기에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인커스는, 이내 그녀에게로 손바닥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오. 거짓말쟁이 마법사여.”

“···당신이···”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 론멕이 말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물론 나는 그대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혈마법은 그게 아닌가 보군.”

“···닥쳐요.”


욕지거리를 내뱉은 모험가는 탁자에 손을 얹은 채 인커스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나는 불행을 몰고 다녀요. 제가 어디를 가던, 저를 죽이려는 사람이 이 대륙에 한가득일 거라구요.”

“···”

“나는 살아 남을 거에요. 나를 죽이려는 놈들을 싸그리 죽여 버리고, 그들의 무덤에 침을 뱉고 내 갈 길을 갈 거에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것 뿐이라구요!”


여전히, 마법진은 빛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 론멕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핏빛 오망성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여유롭게 미소지은 인커스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오.”

“대체 왜!!”


론멕은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당신이 무슨 성국의 이단 심판관도 아니고, 디아즈의 경비병도 아닌데, 내가 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겠냐구요!!”

“나에게가 아니오.”


손바닥을 펼쳐든 인커스는 턱으로 론멕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그대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구려.”

“아니야!!!”


고개를 치켜든 론멕이 소리쳤다.


“나는 강해져야 해요! 강해져서 전부 다 죽여버릴 거라고요!! 검증? 이런 헛짓거리, 당신의 무기를 쓰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강해질 수단이 얼마나 많은데!!”


마법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식식거리며 그것을 노려보는 론멕에게, 대장장이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속인다면, 그대에게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을 것이오. 나의 무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

“한번 돌이켜보시오. 그대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오. 나는 거짓말쟁이에게 무기를 만들어줄 생각이 없소.”

“닥쳐···”


고개를 숙인 론멕의 시선은 탁자를 향해 있었다. 대장간의 골방에서, 빨간머리 모험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그녀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들, 그녀에 의해 죽은 사람들, 그녀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모험가의 머리에 스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론멕의 생각은 그녀의 고향인 성 제이드 성당에서 멈추었다. 마치 폭풍의 눈처럼 고요해진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얼굴은 단 하나 뿐이었다.


원장 수녀가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던 론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앞을 바라보았다.


모험가의 손에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낡아빠진 가죽으로 제본된 책이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비쳤다.


(용사 다리온의 모험)

(페트나 베리미온 씀)

(-론멕꺼-)


말 없이 책의 표지를 바라보던 론멕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회상을 멈춘 그녀의 눈 앞에는 여전히 희미하게 일렁이는 촛불과 이곳 저곳이 부르튼 대장간의 낡은 탁자. 그리고···


환하게 빛을 발하는, 핏빛 마법진이 있었다.


“···으···으···.”


탁자가 얼룩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모험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나는 싫어요···”


대장장이의 손바닥에 그려진 핏빛 오망성이 더욱 거세게 빛나기 시작했다. 검붉은 빛이 골방을 가득 메웠고, 환하게 빛나는 탁자 위에서 고개를 숙인 론멕이 말했다.


“···나는··· 모험을 하고 싶어요···”

“···”


강렬한 빛에 눈을 찌푸린 인커스는 말 없이 론멕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앞에서, 모험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낭만적인 모험을 하는··· 모험가가 되고 싶어요··· 으으··· 으으으···.”


론멕은 주체없이 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내가 원한 모험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나는 그냥 모험을··· 모험을 하고 싶어요···”


검붉은 광채 속에서, 론멕은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얼굴을 감싸쥐며 흐느끼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험 소설에서··· 모험가는 하나씩 무기가 있잖아요··· 나는··· 그냥 멋진 무기가 갖고 싶어요···”


그 말에 미소지은 인커스는 그의 하나남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혈마법을 해제한 그는 가죽 앞치마에 손바닥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오.”


론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귀에는 대장장이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증은 끝났소. 내 그대에게 최고의 단검을 만들어 드리리다.”




= = = = =




같은 시각, 성국의 세드나 반도에 위치한 한 첨탑에는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비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규가 되었다. 새벽의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절규는 그저 멈춘 시간 속을 멤돌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산발이 된 금발의 소녀는 책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 떨어진 종이조각의 사이에서, 소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대체 왜··· 대체 왜!!! 모든 게 완벽했는데!!!>


소녀의 눈동자는 이글거리다 못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를 번득이는 그녀의 주변에서, 찢겨나간 책장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론멕...>


첨탑의 테라스에 주저앉은 채 책을 찢던 페트나는 이내 차가운 돌 바닥에 등을 뉘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달을 가린 채 움직이지 않는 구름들을 바라보던 음유시인은, 그녀의 갸녀린 팔뚝으로 눈을 가리고는 말했다.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대체 왜···>


금발의 소녀는 눈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애절한 울음소리가 무색하듯,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 방울의 눈물조차 맺히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눈물 없는 울음을 터트린 음유시인은 이내 돌변하여 몸을 일으켰다.


소녀는 찢어진 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돌 바닥 위에 나뒹굴던 책을 향해 손을 펼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은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음유시인은 책을 집어들었다. 그녀의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책을 힘겹게 들어올린 소녀의 얼굴에 표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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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ND OF PAGE 2> +16 20.07.07 801 64 5쪽
56 대장장이의 유산 +12 20.07.06 667 59 17쪽
55 노숙 +18 20.07.04 698 60 14쪽
» 진실을 마주보며 +15 20.07.02 755 65 17쪽
53 낭만에 굶주린 자들 +24 20.06.30 731 67 14쪽
52 판레스터 디 오거 +20 20.06.19 874 67 16쪽
51 외팔이 대장장이 +17 20.06.18 850 64 13쪽
50 거짓과 마법사 +22 20.06.17 849 64 13쪽
49 대탈출 +19 20.06.16 830 62 13쪽
48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23 20.06.15 832 66 14쪽
47 동료 +23 20.06.14 870 69 14쪽
46 그래도 시계는 돈다 +23 20.06.13 910 61 13쪽
45 선전 포고 +21 20.06.12 1,022 70 15쪽
44 휘몰아치는 모험의 시작 +19 20.06.11 941 73 14쪽
43 결투 +23 20.06.10 1,007 79 13쪽
42 커티스 툼스톤 +18 20.06.09 1,035 74 12쪽
41 음유시인과 모험가의 꿈 +34 20.06.08 1,051 91 12쪽
40 목적과 협상 +32 20.06.07 1,090 93 12쪽
39 한밤중의 습격 +20 20.06.06 1,098 98 13쪽
38 666번째 용병 +20 20.06.05 1,134 89 13쪽
37 주인공의 재능 +34 20.06.04 1,168 91 12쪽
36 능력을 보이다 +28 20.06.03 1,085 86 14쪽
35 엑시온 용병단 +24 20.06.02 1,101 101 14쪽
34 두 달이 지나고 +37 20.06.01 1,156 80 14쪽
33 <END OF PAGE 1> +21 20.05.31 1,099 80 7쪽
32 무덤 다섯 개 +14 20.05.31 1,038 85 14쪽
31 신의 뜻대로 +31 20.05.30 1,068 78 13쪽
30 검은 고양이 +10 20.05.29 1,100 87 12쪽
29 다가오는 그림자 +23 20.05.29 1,129 85 11쪽
28 부당한 거래 +17 20.05.28 1,144 8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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