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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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 스트라이크>.]
위니는 손바닥을 펼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마법은 엘프에게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젠장.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뭘 기대해요?’
상체 절반의 주도권을 빼앗긴 론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오른쪽 눈동자는 여전히 하늘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네 마나통 말이야. 나름 기대를 해 봤건만 역시나··· 메테오를 쓰기에는 턱 없이도 적네.]
‘언제는 쓰레기급 숙주라면서, 왜 갑자기 그런 기대를 걸어요?’
위니는 ‘충분히 기대해볼 만 했다’ 라는 말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론멕과의 도보 여행을 통해 위니가 알아낸 론멕의 재능이었다.
= = = = =
때는 두 달 전, 그들이 도보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이었다.
[<서큘러스 인탱글>.]
“으아악! 커헉!”
위니가 주문을 외우자, 빨간머리 모험가를 향해 달려든 두 명의 괴한은 속절없이 나무뿌리에 얽혀들어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휴. 이래서는 안 돼요.”
완벽하게 제압당한 괴한들을 앞에 둔 채, 마법진을 손에 얹은 론멕이 말했다.
“적어도 제가 싸워보기라도 해야 경험을 쌓던가 말던가 하죠. 이렇게 마법으로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면 제가 할 게 없잖아요.”
투덜대는 그녀의 오른쪽 눈동자는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론멕의 몸에서 빠져나온 하늘빛 엘프의 형상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네가 싸우다 위험해질 때나 도와달라고? 그건···]
“더 위험한 생각이죠. 나도 알아요.”
론멕은 그녀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타협점이 분명 있을 텐데. 위니 당신의 힘을 빌리면서도, 제가 경험을 쌓고 강해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뿌리 속박 마법에 제압당한 채 허공에 떠오른 두 괴한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론멕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풋내기 모험가가 아닌, 연신 혼잣말을 내뱉는 미친 마법사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글쎄. 그럼 이런 건 어때? <헤이스트>.]
위니가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튕기자, 어느 새 론멕의 발치에는 녹색의 구름이 서려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험가에게는 여전히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기억 나? 세드나에서 도망칠 때 썼던 속도 향상 마법.]
론멕은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튼 내 생각은 이래. 이렇게 신체의 기능을 증가시키는 부류의 마법을 ‘버프’ 라고 부르는데, 이런 버프나 보호막 주문을 네게 왕창 걸어두는 거지.]
론멕은 제자리 걸음을 뛰기 시작했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몸에 적응하던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위니에게 말했다.
“이것 말고도 다른 게 또 있어요?”
[많긴 한데, 네가 견딜 수 있을까 싶네. 버프는 나중에 더 고려해보도록 하고···]
위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마법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직접 싸우겠단 거니까, 보호막도 있어야겠지. <컨턴전시 베리어>.]
하늘색의 엘프가 주문을 외우자, 론멕의 몸 주변에서 하늘빛의 구체가 일렁이더니 이내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 광경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론멕에게, 위니가 말했다.
[네게 투사체가 날아오거나, 물리적인 근접 공격이 가해지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보호막 주문이야. 레이븐에서 네 목숨을 살린 마법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색의 엘프는 여유롭게 그녀의 손가락을 튕기며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바로 이거야. <블링크>!]
그러자 순간, 론멕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어느 새 허공에 자리잡은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으헉! 으아아악!”
론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흙바닥에 떨어진 채 구르고 있었다. 온 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그녀를 바라보며, 위니가 말했다.
[킥킥··· 점멸 마법. 네가 싸우다가 위험해지겠다 싶으면, 내가 점멸 마법으로 널 빼내 줄게. 이해가 되니?]
빨간머리 모험가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네. 확실히요. 사실 꽤나 괜찮은 방법 같네요. 이거라면 저도···”
[원 없이 싸워볼 수 있겠지?]
론멕과 위니는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적의 타협안을 찾아낸 위니는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리무브 인탱글>. 좋아. 보호막에 버프, 그리고 도주기까지 있으니···]
그녀가 덩굴 속박 마법을 해제하자, 뿌리에 제압당해 있던 괴한들은 힘없이 공중에서 떨어져 흙바닥에 거세게 몸을 뉘였다.
“아이쿠!”
“어구!”
그들이 풀려난 것을 확인한 론멕은 그녀의 허리춤에 꽂힌 성국제 단검을 뽑아들었다.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단단히 쥔 그녀는 위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한들에게 달려들었다.
[원 없이 싸워 봐.]
얼마 지나지 않아 괴한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품을 하며 론멕의 학살극을 지켜보던 위니는 이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치켜세우며 중얼거렸다.
[잠깐, 내가 지금 마법을 몇 번을 썼더라?]
그녀는 다급하게 손가락을 세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인탱글··· 헤이스트···베리어··· 블링크··· 인탱글 해제 까지···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썼는데, 마나통이 그걸 버텼다고?]
위니는 어느 새 마지막 남은 괴한의 몸 위에 올라탄 론멕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재는 성장 마나량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 = =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론멕이 강해질수록 도주기로서의 점멸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더욱 공격적으로 점멸을 활용하기 시작한 론멕과 위니는 두 달 동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블링크’ 주문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론멕의 성장 마나라는 재능과 맞물려 엄청난 마나통 성장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위니가 초고위 고대 마법인 ‘메테오 스트라이크’ 를 시험삼아 외워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심 기대했는데··· ]
용병단의 앞에서, 론멕의 몸에 깃든 위니는 한 숨을 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럼 이거나 보여주지 뭐. <디스인티그레이트>.]
그러자 이번에는 마법의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돼지를 겨눈 론멕의 오른쪽 손바닥에는 어느새 하늘빛의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오오···!”
“저것 봐. 마법사라니까?”
기대감에 부푼 엑시온 용병단원들은 론멕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늘빛의 오망성이 회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표정을 잃은 채 공포에 얼어붙었다. 나무에 걸린 돼지가 바스라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역상인을 비롯한 용병단원은 경악하여 몸을 주춤거렸다. 그중 입을 살짝 벌린 채 신음하던 넬포는 이내 황급히 무역상인에게 다가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 단장. 마법이란 게 어째···”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꽁지머리 노인의 옆에서, 삐죽머리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통 불덩이나 얼음덩이 같은 걸 던지는 거 아니오? 그런데 저건···”
그런 그의 옆에서, 매키니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 나지막히 신음했다.
“저 끔찍한 건··· 대체 뭐야···?”
말끔히 손질된 돼지는 어느 새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돼지가 소리 없이 분해되는 것을 알아챈 자들은 론멕과 그녀를 바라보던 용병단원들 뿐이었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돼지를 배경삼아, 뒤를 돌아본 론멕은 이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마법이라고 쓰긴 썼는데··· 이걸로 충분한 지 모르겠네요.”
“이런 미친···”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무역상인은 이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탄사를 내뱉고는 말했다.
“충분하오. 충분하고 말고.”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넋을 잃은 토마의 어깨를 밀쳐내며 론멕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험가의 앞에 선 무역상인은 벌벌 떨리는 손을 내밀고는 말을 이었다.
“내 이런 마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 하였소. 심지어는 무영창이라니···”
주체할 수 없이 흥분한 꽁지머리 노인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론멕. 대마법사에게 내 무례를 범했구려. 부디 우리 용병단에 힘을 보태 주시오. 부탁이오.”
겁에 질린 건지, 신이 난 건지 알 수 없는 그의 반응에 당황한 론멕은 어찌할 줄을 모르며 그저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위니는 만족스럽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게··· 나의 마법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 볼 수 있지.]
그 말에 론멕은 눈동자를 굴리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언제는 용병단 같은 건 믿지 말라면서요.’
나풀거리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위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물론 믿을 수야 없지. 하지만 내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이상···]
하늘색 엘프의 형상은 이내 자수정 목걸이 속으로 몸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너를 가볍게 대하진 못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그 말을 들은 론멕은 미소를 지으며 무역상인을 올려다보았다.
여유가 넘치는 꽁지머리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무역상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론멕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태도의 변화에서 무엇인가 만족스러움을 느낀 론멕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무례라니요. 오히려 저 같은 떠돌이를 받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 빨간머리 모험가는 이내 고개를 돌려 용병단원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래서, 신입 환영 파티는 언제 시작하죠?”
그런 그녀의 옆에서, 무역상인은 한 숨을 쉬며 론멕의 말에 대답했다.
“론멕. 그대가 파티에 쓸 돼지를 소멸 시키셨잖소.”
= = = = =
같은 시각, 성국의 최서단에 위치한 등불의 도시 세드나에서는 누군가의 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세드나의 하늘에는 짙은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오래 된 첨탑의 테라스에서는 금발의 이단 심판관이 난간 위에 팔을 걸친 채 깔깔 웃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이내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위니. 역시 당신은 헛똑똑이일 뿐이에요.>
눈물을 닦아낸 이단 심판관의 몸집은 어느새 땅딸막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헐렁이는 이단 심판관의 옷을 걸친 금발의 소녀는 이내 커다란 책을 품에 안으며 말을 이었다.
<론멕이 점점 강해지던가요? 그녀의 성장 마나량이 심상치가 않던가요? 고작 기초 단검술 교본을 본 것 만으로도 단검을 능숙하게 다루던가요?>
힘겹게 책을 펼친 페트나는 이내 아련한 눈길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며 입을 열었다.
<불쌍한 위니···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에요.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책을 흝던 금발의 소녀의 몸은 어느새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황홀함에 휩싸인 그녀는 이내 다시금 책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의 주인공은 언제나... 단 하나... 그건··· 그건 바로···>
소녀의 이글거리는 황금빛 눈동자는 어느 새 하늘을 향한 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책을 어찌나 꽉 조였는지, 두터운 책의 표지는 어느새 찌그러진 채 그 운명을 달리했다.
<...>
실로 광인에 가까운 발작에 말을 채 잇지 못한 소녀의 갸녀린 손길 아래로, 찌그러진 책의 표지에 새겨진 글자들은 비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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