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착수(2)
조사착수(2)
모그룩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가 엎드려 있던 땅은 깨끗하고 바짝 말라 있었다.
"누가 보내서 왔어?"
"···."
"거참,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는 말이지. 중원이나 이곳이나 결국 말할걸 왜 이리 피곤하게 하는지 말이야."
-턱
사내의 머리에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소울 슬립
이것에 걸리는 상대는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자신이 했던, 아니면 감추고 싶은 마음의 벽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모그룩이 질문을 먼저 한 이유다.
질문을 받은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그것은 가장 먼저 소울 슬립에 걸리게 되는 원리다. 술자가 굳이 이리저리 기억을 뒤질 필요도 없이 거는 순간 바로 걸려 나오게 되니까.
'어라? 이놈 봐라?'
사내는 인커전 흉내를 내고 있지만 기억을 더듬은 바로 놈은 암살자에 가까웠다. 이곳도 상인끼리 암투가 심하다. 그러니 적대 세력의 기운을 꺾어 놓기 위해 상대 주요 요인 암살은 흔한 일이다.
'피 냄새를 많이 맡았던 놈이니 살려 둘 가치가 없네.'
소울 슬립을 더 사용하면 뇌가 타 버릴 것이다. 그전에 최대한 기억을 쥐어 짜내야 한다.
'어럽쇼! 리브하르트!'
필포드의 척살대 중 한 명인 워드 에임이 가지고 있던 지도에 새겨져 있었다.
리브하르트는 솔라리스에서 유명한 귀족 가문의 하나이다.
리브하르트 지역은 개인 사병을 거느린 지방 영주가 다스리는 곳으로 문두스 플라노스 북쪽으로 가까운 지역이다. 그곳 영주가 리브하르트고 워드 에임이 가고자 했던 곳이기도 하다.
모그룩도 문두스를 거쳐 북쪽으로 리브하르트를 방문할 생각이었다.
팔 씨름꾼 호일런의 술집에서 도일이 말한 정보와 일루엠 길드 사무실에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보면 현 리브하르트 가문의 영주 드폴 리브하르트는 이곳 문두스 플라노스로 들어왔다. 그것이 작년 늦봄 정도쯤이다.
즉 지역 영주 가문의 가족이 대거 이동한 것이다.
도일이 신나게 떠든 내용과도 일치했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이를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일이 어디서 이런 고급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루엠 길드가 이들의 이사짐 운반 의뢰를 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사내는 원래 리브하르트 가의 사람이었다. 순간 사내의 입과 코, 귀, 눈에서 시뻘건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울 슬립. 이 네크로맨서의 기술은 너무나 사악했다.
-툭
사내의 고개는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어이쿠. 너무 몰입했나?"
모그룩은 손을 털며 일어섰다.
"음, 이런 살수한테 큰 기대를 할 순 없겠지. 어디를 찔러야 재미있는 소식이 나올까?"
그는 쓰러진 사내의 시체를 사령으로 되살렸다. 그런 다음 바로 서먼 디스펠을 걸자 시체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어이구. 이런 기술은 정말 사용하고 싶진 않지만 진짜 유용하긴 하네."
사실 네크로맨서 스킬 자체가 중원에서는 사기로 이루어진 사악한 요법이라 천마인 혁련광도 걸리는 족족 잡아 죽여 버리는 가장 악랄한 놈들이었다.
떳떳한 무공 대결로 승패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살려 둘 가치가 아예 없다고 생각했던 그다.
주신 제국에 와서도 직접 사람을 해하는 네크로맨서의 스킬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괜히 벌집을 건드렸다가 숨어 버리면 허사야.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는 즐겨야지."
모그룩이 여관으로 돌아온 다음 날 어디서 왔는지 새로운 미행자가 둘이 붙었다. 애초에 숨어 있지 않은 이상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모그룩은 그런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찾아오는 자 언제든 환영한다.
모그룩은 거리를 구경하다 광산으로 올랐다. 낮에는 광부 외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텃세가 심하기도 하고 하지만 모그룩은 모처럼 광산 도시에 왔는데 광산을 구경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섭섭하다면서 은화를 한 주먹 뿌리자 광부들은 귀족 모시듯이 그를 안내했다.
"저곳도 보고 싶은데요?"
"아, 그게 저곳은 안 됩니다. 션사인에서 폐광 조치하고 출입 금지구역으로 만든 곳이라."
모그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왜요?"
"그게, 쩝. 원래 인사사고가 나면 그러는 거니···."
"아하. 사고. 쩝. 그러면 안 되는데. 쯔쯔쯔."
이곳 광산은 모두 숫자로 관리한다. 폐광의 입구에는 326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치는 파악했고 어두워지면 와 봐야겠네. 이거 구린내가 너무 나잖아.'
도력이 깊어 지면서 자연이 내뿜는 기운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곳 광산은 복잡하고 숫자도 제각각이어서 이렇게 이곳 토박이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숫자를 알아도 위치 찾기가 힘들다.
저녁 햇살이 비출 때 팔 씨름꾼 호일런의 술집으로 돌아왔다. 팔 씨름꾼이라는 간판 그대로 호일런은 문두스에서 팔씨름을 당할 재간이 없는 자였다. 원래 광부 출신인데 사고로 굴이 무너져 왼쪽 다리를 다친 이후 광업을 그만두고 이곳에 술집을 오픈했다.
다행히 그의 마누라가 문두스 최고 요리사였던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광부 수입보다 갑절은 더 벌고 있다. 그에게 간혹 팔씨름 도전해 오는 자들이 있다. 물론 한 번 대결해 줄 때마다 내기 돈을 거는 것은 기본 룰이다.
"자네 진짜 하러는 가?"
막 한판을 따낸 호일런은 눈앞에 선 모그룩의 위아래를 훑었다.
구경꾼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모두가 모그룩에 시선을 모았다. 주점은 꽤 넓은데 그 가운데 이렇게 팔씨름 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누구든 내기 금만 탁자에 올려놓으면 호일런이 대결해 준다.
아마 누군가 셈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오백 판 이상 전승이라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는 듯하다.
모그룩은 아무 말 없이 탁자 위에 금화 세 닢을 올려놓는다. 이 정도면 오늘 저녁 만석을 두 번 돌리고도 남을 금액이다.
금화를 바라보는 호일런의 눈빛이 불타오른다.
"저 친구 제정신이 아니구먼."
"으하하. 호일런 보라고 횡재했다는 눈빛이 아닌가?"
"술 취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데 왜 저런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거지?"
"어라, 저번에 그 모그룩이란 친구 아닌가?"
도일은 모그룩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할거요? 말 거요?"
"금화 세 닢인데 안 할 이유가 없잖소. 하하. 자. 와서 자세 잡으시오."
"허? 정말 할 셈인가?"
"크크, 저 친구 팔뚝 굵기를 보게 호일런이 세배 아니 네 배는 더 되어 보이지 않는가?"
"손목 부러지지 않게 호일런이 힘 좀 누그러뜨려야 하겠어."
호일런이 문두스에서 왜 가장 팔씨름이 강한지 그의 선술집 간판에 대 놓고 팔 씨름꾼이라고 내건 이유는 선천적으로 완력을 타고난 장사였기 때문이다.
광산의 사고고 다친 왼쪽 무릎 때문에 절뚝이긴 하지만 그의 완력을 꺾어 누른 자는 아직 없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이번 대결의 결과는 너무나 뻔했기에 아예 대결을 외면하는 자도 있었다.
시작 신호와 함께 저 사내는 볼품 없이 나뒹굴고 그가 거만하게 자랑하던 금화 세 닢은 호일런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시작"
누군가 한잔 걸친 이가 그렇게 고함을 쳤다. 늘 그렇듯이 그것이 이곳의 룰이다. 약간만 방심하는 순간 어김없이 호일런의 무자비한 힘이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 온다.
누가 시작을 외칠지 모르고 언제 외칠지 모르기 때문에 손을 맞잡는 그 순간부터 바짝 긴장해야 한다.
정적. 갑자기 정적이 휘돈다.
"뭐?"
"···. 하는 거 맞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팔씨름 탁자로 모인다.
호일런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는 상대를 넘기려 안간힘을 다해 밀어붙인다.
"힘주는 거 맞습니까? 아~함."
모그룩은 하품했다.
모두가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순간 판단 내리지 못했다.
호일런이 힘을 주고 있지 않은 건가?
그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핏발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을 보면 그가 힘을 쓰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 보였다.
지지하는 말뚝을 잡은 왼팔에도 힘줄이 튀어나왔다. 그가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모그룩의 팔은 아예 움직임조차 없다. 이제 호일런은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어금니까지 힘껏 깨물고 리듬까지 타며 하나, 둘, 셋에 모든 힘을 오른팔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게 뭔가? 상대는 아예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팔씨름이란 게 힘으로 밀면 반대로 상대도 힘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서로 힘의 우위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경계를 웃돌고 있었다. 아예 반발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거대한 산 하나와 팔씨름하는 기분. 호흡까지 멈추며 온 힘을 다 쏟아부은 호일런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한 판 이었소."
-휙, 퍽!
"어?"
호일런은 자기 팔이 반대편으로 꺾여 넘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힘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팔 힘이 풀리며 저절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져, 졌다."
"호일런이 졌다."
"누구냐?"
"외지인?"
"잠깐만!"
호일런은 아직 얼떨떨한 상태였고 다행히 팔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모그룩은 탁자 위에 놓인 금화 세 닢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승부는 난 것 같소만."
내기 금을 달라는 소리다.
"잠깐만이라고 했소."
근처 테이블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더니 모그룩을 향해 걸어왔다.
그는 첫눈에 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남으로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턱수염까지 깨끗이 관리한 표시가 나는 사내였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입은 옷도 평범하지 않은 것이 귀족이거나 부유한 상인과 관계된 자 같았다.
그런 자가 나서면 주변에서 그를 알아보고 입방아를 찧을 테지만 구경꾼도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해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내는 허리에 찬 롱소드의 손잡이를 잠깐 매만지다 모그룩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 사람이 아니군."
"아칸 사람이외다."
"그럴 줄 알았소. 여러분, 이 사람은 각성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시합은 무효요."
"각성자인가?"
"어쩐지···."
"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아니 각성자가 무슨 일로 문두스에?"
사람들의 얼굴에 대번에 걱정과 두려움의 티가 올라붙었다.
지금 각성자는 골치 아픈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초창기 틀이 잡히지 않았을 때 탈영한 오군단의 각성자는 심각한 생태 교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낼 수 없는, 거의 반신의 힘을 소유한 각성자는 오크나 마족과 함께 또 다른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귀족 가문의 심부름이나 하고 금화 몇 푼을 얻느니 아예 당당하게 들어가 금고를 때려 부수고 원하는 만큼 금덩이를 들고나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각성자의 횡포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지방 귀족 집안들이다. 개인 사병을 동원해도 각성자 앞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쓰러지니 각성자는 자신이 각성자라 크게 떠벌이면 사병들은 애초에 두려워하며 대결조차 하지 않고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충성으로 귀족을 섬기는 기사라고 하지만 제 목숨 소중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각성자에 덤비는 행위는 무모한 것이며 그 결과는 항상 같다. 오직 죽음뿐이다.
리브하르트 가문의 가족 전원이 문두스로 이사한 것도 각성자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까.
"각성자라면 안 된다는 룰은 없는 것 같은데?"
"기본 상식이 아니오? 각성자가 어찌 일반인과 힘겨루기를 한다는 말이오."
갑자기 술집의 상황이 초상을 맞이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대는 누구요? 내가 두렵지 않소?"
"난 션사인 글로리 조합의 사람이오. 리브하르트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는 은근히 자신이 귀족 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각성자임을 인정한 상태다. 그가 돌변하면 이곳에 있는 사람은 삽시간에 불귀객이 된다. 경비들이 몰려와도 그를 잡을 수는 없을 거다. 지금 그 누구도 그의 기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이거, 귀한 손님이신걸 몰라뵈었군요. 좋습니다. 오늘 저녁 술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팔씨름 내기에 졌으니 하하."
호일런의 호위에도 사람들은 함부로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슬금슬금 뒷문으로 움직이는 자도 있었다. 각성자는 그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 있었다.
"난 아칸 일루엠 길드 관리자 모그룩이요. 출신이 어딘지는 관심 없소. 이름을 물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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