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투 상황입니다
지금은 전투 상황입니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여 마리의 거대한 사령이 동시에 움직이자 숲의 거목이 갈대처럼 휘어졌다가 터져다.
스켈레톤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사령이고 사기로 움직이는 몬스터에 가까운 존재들이기에 뼈다귀지만 그 완력이 대단하여 두 아름 정도 되는 거목도 주먹질 한 방에 박살이 났다.
"어떻게 할까요?"
"부교주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거대한 밀물이 밀어닥치듯이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위력을 상상 이상이었다.
거버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조금은 걱정이 묻어 있는 표정이다.
확실히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위력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거버트 사형 집중해요. 저기! 저기!"
마교 안에서 명칭은 중원식으로 통일했다. 테드버드는 장로에서 부교주로 승격했으니 그의 호칭은 스승에서 부교주로 되었다.
테드버드 첫 번째 제자가 거버트였고 그 아래로 여섯의 직계 제자가 있다.
방금 말을 건넨 것은 둘째 세실이다. 거버트는 충직하고 우직하지만 세실은 영특하고 눈치 빠른 성격이다. 거버트가 몰려 나가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을 때 세실은 테드버드의 쪽으로 시선을 고정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수신호를 보내는 테드버드를 즉시 알아봤다.
"사형 제가 가 보죠."
셋째 브라이언이 제자 열 명을 데리고 테드버드 쪽으로 다가갔다.
세실이 거버트에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 않습니까? 놈들 보세요. 거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느려요. 가로막는 나무도 많고 숲을 빠져나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우리가 임무를 처리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브라이언은 테드버드 쪽으로 날아내렸다.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는 바람 소리와 같아 아래 무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테드버드가 손가락으로 놈들을 가리켰다.
"저기 놈 중 자주색 복장을 한 네크로맨서 그놈이 지휘자급이야. 지켜보니 저놈만 잡으면 될 것 같고 나머진 살려둘 필요조차 없겠어. 넌 가서 거버트에 저놈들을 공격하라고 해. 브라이언이 기사 다섯을 맡고 나머지 네크로맨서는 너희들 다섯이 맡아. 자주색 놈은 내가 직접 잡을 테니 건드리지 말고."
브라이언과 함께 온 열 명 중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해 다시 거버트 쪽으로 돌아갔다. 목표는 다섯 기사와 다섯 네크로맨서인데 문제는 그들을 호위하려는 목적인지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열 마리나 남겨 놓았다.
거버트에 돌아온 제자는 테드버드의 전언을 전했다.
"그렇다면야! 애들아, 저놈들의 위력을 직접 체험해 볼 기회다. 손에 사정 둘 필요 없으니 전력을 다해라."
마침 테드버드 쪽에서 수신호가 올랐다.
거버트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단숨에 쓸어 버리자. 생채기 입는 녀석은 오늘 저녁밥 없는 줄 알아라."
세실은 빙긋 웃으며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그 뒤로 마교 제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따랐다.
돌연한 사태에 깜짝 놀란 기사와 네크로맨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 세 명이 뛰쳐나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흥분해 외쳤다.
"가랏! 저놈들을 죽여라."
한 명의 입에서 저주의 주문이 쏟아지자 열 마리의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거버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봐. 너희들도 도와···. 커억!"
그는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리고 그것은 화끈한 통증을 불러왔다. 숨이 막히고 혈관이 부푸는 느낌을 받았는데 갑자기 세상이 빙그르르 돌더니 바닥이 벌떡 일어나 자기 뺨을 냅다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눈도 귀도 더는 볼수도 없고 들리지도 않았다. 세상이 갑자기 너무나 조용해졌다.
마교 제가 한 명이 주문을 외던 네크로맨서의 심장을 찔러 관통했고 검을 빼는 동시에 목을 쳐 날려 버린 것이다. 설명은 길어도 정말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기사들도 갑자기 뛰어내린 기사에 당황해 검을 뽑으려 손을 검 손잡이로 움직였는데 이미 끝나 버렸다. 다섯 기사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네크로맨서 셋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져 버렸고 그때 테드버드는 막 점혈로 자주색 로브를 입은 네크로맨서를 뒷덜미를 낚아챘다.
갑자기 사람들은 멍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버려서 서로 당황한 것이다. 기사 다섯은 각성자다. 그 다섯 중 단 한명도 검집에서 검을 뽑은 이가 없었다.
브라이언과 그의 제자들은 기사들이 각성자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전력을 다해 기사를 공격한 것인데 아예 검조차 뽑지 못하고 죄다 단칼에 목이 떨어져 버렸으니.
각성자의 반응속도는 일반인의 열 배에 해당한다. 그런 그들이 검집에서 검조차 뽑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브라이언도 살짝 당황했고 나머지 제자들도 벌어진 상황에 움찔했다.
"벌써 끝난 거야? 뭘 멍하니 있어 저놈들 잡아···."
브라이언이 그렇게 외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거버트는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세실도 스켈레톤의 모가지 뼈를 단칼에 쳐 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테드버드의 눈에 굴러떨어지는 거대한 머리통이 확실히 보였다.
제이드와 에디도 스켈레톤의 정강이뼈를 단칼에 잘라냈고 뒤따라오던 제자들이 쓰러지는 스켈레톤의 머리를 박살 내 버렸고 여섯째 시온이 떨어지며 갈비뼈를 잘라내자 와르르 소리를 내며 잘린 뼈가 떨어져 내렸고 일곱 째 막내도 질세라 스켈레톤의 양팔을 잘라 내고 있었다.
너머지 마교 제자들은 검 한번 대지 못한 상태였다. 가장 선두에 있던 제자들이 단칼에 다 쓰러뜨려 버리니 뒤에서 호기롭게 고함치며 달려들던 제자들은 일순 정적에 휩싸여 버렸다.
도착해 보니 이미 싹 정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거 참."
"아니 손맛도 제대로 못 느꼈는데요?"
"이거 가짜 아냐? 진짜가 이렇게 허약할 수가 있어?"
"솔직히 마족보다 한 수 아랜 것 같은데?"
"야, 손바닥에 감촉도 안 왔어. 그냥 통나무 하나 자른 느낌인데?"
"애들 진짜 죽은 거 맞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일곱이서 열 마리를 작살내 버리면 나머지는 구경이나 하란 소리잖아. 사형 이럴 거면 뭐 하러 다 같이 돌격하자고 고함치고 그래요?"
"그게 그러니까 이놈들이 맷집은 좋아 보여서 말이지. 그래서 그랬던 건데. 미안하다고."
"이야. 딱 한 번 진짜 딱 한 번 휘둘렀네요. 저기 멋쩍게 서 있는 제자들 봐요."
막내는 어깨를 으쓱하며 쓰러진 스켈레톤의 뼈다귀를 걷어찼다.
테드버드는 다시 무게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제이드 넌 이놈을 맡아라. 무슨 말인지 알지? 원하는 것 나올 때까지 쥐어짜네."
테드버드는 네크로맨서를 나뭇가지 던지듯이 제이드에게 집어 던졌다.
낚아챈 제이드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테드버드가 왜 넷째 제이드에게 네크로맨서를 맡겼는지 다른 제자들은 굳이 묻지 않았다.
넷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기사도 정신은 잘 이해하고 따르지만, 성격 자체가 잔인한데다가 특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고 시시비비를 철저하게 따지며 대의를 위해서 적 고문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는 다혈질이었다.
"자, 나머지는 스켈레톤의 뒤를 쫓는다. 단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공격은 불허한다."
"부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나머지 인원은 재빨리 스켈레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제이드 여기 소환진을 완벽히 부수고 뒷정리까지 맡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갈아엎어 버리겠습니다."
"시온 너는 제자 열을 뽑아 숲 전체를 조사해 보도록 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여섯 째 시온은 일곱 제자 중에서 가장 경공에 조예가 깊고 마교 가입 전 상등급 인커전 출신이라 정찰에 특화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테드버드는 그에 능력을 더 갈고닦도록 했다.
"나머진 놈들을 추적하자고."
***
제이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대지에 서 있는데 아래로부터 느껴지는 무거운 진동이 확실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부관 진형을 뒤로 물려라! 전 부대 입구에서 떨어지도록 명령해."
숲에서 싸우는 것보다 평원에서의 전투가 이점이 크다. 기마대의 이점을 살릴 수도 있고, 그리고 자신의 부대는 침투조가 쉽게 움직이도록 적의 이목을 끄는 역할만 수행하면 됐던 거였다.
걸음이 느린 궁수도 전부 각성자였기에 달리는 속도는 일반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부대가 다 빠지고 나니 입구에서 숲속으로 번진 불길이 바람 방향에 의해 잡혀가고 있었다. 애초에 숲을 전부 태울 의미가 없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곧 제이미의 안도한 표정은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자이언트 스켈레톤 무리가 일제히 불타는 숲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셀 수도 없는 숫자다.
"철수해. 평원을 가로질러라."
제이미는 여차하면 북쪽 성벽을 방어벽 삼아 대치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성벽은 높고 튼튼했고 무너진 곳도 보수했으므로 자이언트의 공격을 얼마 동안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평원에서 힘겨루기를 할수도 있겠지만 한데 어울려 버리면 아군의 피해는 반드시 일어난다. 일대일 싸움은 몰라도 거대한 스켈레톤의 사거리에 여러 명이 들어 있으면 반드시 한둘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거인과 싸울 때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 기본 전술이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메테오를 사용하려면 아직 시간이! 보십시오.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되었습니다. 북 성문까지 후퇴하는 것이 병력을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전군 철수! 철수의 북을 울려라. 호오란 백작! 후오란 백작!"
"부르셨습니까?"
"자네 기마대가 선두 몇 마리의 발을 붙잡아 두게. 철수할 시간을 벌어 달라는 걸세."
"문제없습니다. 2군단 기마 단장은 말머리를 돌려라! 적의 진형을 헤집는다."
"후오란 사상자가 나서는 안 된다. 무리한 기동은 하지 마라."
"물론입니다. 아군이 완전히 철수 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드리겠습니다."
2군단장 후오란의 기마대는 선두에 서서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뭉쳐서 달려오니 그걸 본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옳거니 역시 놈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적을 공격하려 한다. 모두 준비하고 나를 따르라."
후오란이 선두에 서서 말을 채찍질하며 달려 나갔다. 확실히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본능에 따른 움직임을 보였다. 원래는 소환자의 명령을 받아 전략적 행동을 구사할 순 있지만 소환자가 없는 상태이니 오로지 생명 말살 그 하나의 본능을 따르고 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적을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세밀히 살폈던 덕분에 찾아낸 약점이었다.
한편 언덕 위에서 대기 중인 마교의 제가 구백 명은 꼼작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있는다면 자이언트 스켈레톤과 곧 부닥칠 것이다.
후오란의 기마대는 정면 공격을 하지 않고 스켈레톤 사이를 비집고 뛰었다. 그 때문에 기마대를 공격하기 위해 선두에 섰던 스켈레톤이 멈추며 뒤돌아섰고 뒤쪽에서 밀고 나오던 스켈레톤이 앞이 막혀 정체되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라! 놈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후오란이 고함치는 순간 그의 어깨 위로 거대한 검이 떨어져 내렸다.
"큭!"
명령을 내리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하필 다른 기마대가 피한 스켈레톤의 검이 그에게로 떨어진 것이다.
바닥에 내팽개치듯이 던져져 뒹굴었다.
다행히 검은 자신이 아닌 말을 반토막 냈다. 약간만 더 뒤로 치우쳤다면 말과 자신도 함께 토막이 났을 것이다.
다리에 마나를 올리고 달렸다. 확실히 각성자답게 달리는 속도는 말에 버금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제이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필 말에서 떨어진 자가 후오란일 줄이야. 솔직히 군단장이 돌격대 선두에 서는 일은 없다.
어느 부대가 장군이 가장 선두에 서는가? 장군은 전투병이 아니라 지휘자다. 하지만 그걸 깨부순 것은 제이미 본인이었다. 오늘도 총사령관인 자신이 가장 선두에 서서 돌격하여 스켈레톤의 쓰러뜨리지 않았던가?
병사의 사기진작에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주지만 만약 잘못되면 군은 지휘자를 잃게 되는 최악의 수로 이어질 수 있다.
"쳇."
제이미는 말고삐를 틀어 후오란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후퇴하던 병력은 잠시 멈췄고 또 부관 한 명이 제이미의 행동을 보고 기름 항아리에 불씨를 던져 넣었다.
"총사령관님이 돌격하신다. 뒤를 따르자!"
"돌격하라!"
"오군단의 힘을 보여줘라!"
갑자기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면 각 군단의 기마대가 가장 먼저 말머리를 돌리고 제이미를 쫓기 시작했다.
"이런 한심한 부대가 다 있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마법사 반헤일런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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