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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트업(Setup) - 수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AAKHS
작품등록일 :
2017.07.07 03:11
최근연재일 :
2017.09.20 09:4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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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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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트업(Setup) - 2편-프롤로그(하)-32

DUMMY


“감독님···!”


에니체드는 바닥에 주저앉은 리베리를 부축하여 안아올렸다. 입가를 떨고 있는 에니체드의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감독님···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해서···!”

“으으으···어으···”


방금 전의 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입었는지 리베리는 쉽게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감독님. 곧 바깥으로 나가겠습니다!”


자세를 고쳐 리베리를 등에 업고 에니체드는 서둘러 광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좀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리베리가 중상을 입은 채 들려나오는 모습에 놀란 광산 노동자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감독관님! 이게 무슨···!!”

“죄송합니다. 나오려는 와중 갑자기 통로가···”


여전히 리베리를 업은 채 에니체드가 말하는 도중, 주변에 모여든 인파를 헤치고 한 소년이 그의 앞으로 뛰어왔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부친과 함께 집게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그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나이는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부친을 닮아서인지 다소 창백해보일 정도의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의, 평소라면 또래 소녀들의 호감을 살 만한 얼굴은 당혹감에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으으으···”


이미 피로 물들어버린 작업복을 보며 패닉에 빠진 소년에게, 돌연 에니체드가 종용하기 시작했다.


“얘야, 감독관님의 이야기로는 너희 집에 상처를 낫게 할 회복약이 있다고 들었다. 안내해 줄 수 있겠니?”

“예? 그런 게 있었다고요? 하지만···”


소년은 망설이기 시작했다. 평소같으면 단호히 거절하였을지도 모르나 상황의 위중함과 에니체드의 이야기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에니체드는 다시 한번 소년을 독촉했다.


“어차피 의원에게 보여 봤자고, 보일 수도 없잖아! 빨리 안내해!”


그것은 요청이나 부탁이라던가가 아닌, 거의 협박에 가까운 위협적인 억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년이나 주변 인물들에게는 그런 것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말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부 있었으나 그저 상황이 다급하다보니 그런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그 순간, 데스틴의 등 뒤에 업혀있던 리베리가 크게 몸을 흔들었다. 부상으로 인해서인지, 그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와중이었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아···안···어···서···!”


리베리의 모습을 본 소년은 갈등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이쪽이에요!”

“좋아. 알았다!”


소년의 달리는 속도는 10대 소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마치 맹금류의 질주에 버금갈만한 속도였다. 에니체드 역시 그 이상가는 빠른 속도로 소년의 뒤를 따라잡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도기관장을 비롯한 광산 근무자들은 그들을 제지하거나 따라갈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놀라움에 저마다 한마디씩 하였다.


“뭐, 뭐지? 저 엄청난 속도는.”

“에니체드 녀석. 외지인이라고는 들었지만···그도 감독관님처럼 모험가 출신이었던 건가?”

“아니 그것보다, 저 감독관님 아들조차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았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날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이들로부터 세 사람의 모습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제는 광산과 마을을 지나 산을 오르기 위한 숲 속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소년과 에니체드는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숲 속을 달렸을까, 소년의 앞에는 까마득해 보이는 비탈길과 절벽이 위치하였으나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절벽 끝을 향해 달려갔다.


“길이여, 열려라!”


절벽 끝에 거의 도달할때쯤, 소년이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앞으로 내밀며 외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는 절벽 건너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군. 이렇게 숨어있었던 건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 이유가 있었군.”


보이지 않던 다리가 나타나는 모습에 에니체드는 작게 감탄사를 내었다. 한창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꽤나 길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듯, 등뒤에서 또다시 한차례 리베리가 요동치듯 움직였다.


“그···아···안···도마···가···”


부상으로 인해 어딘가 마비된 듯 그의 입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잠꼬대를 하며 중얼거리는 듯한 리베리의 모습에 에니체드는 슬쩍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조급하지 않아도 이제 금방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모조리···크큭···!”

“으으···아아···안···”


좀더 속력을 내기 위해서인지 에니체드는 업고 있던 리베리를 한 차례 들어올려 고쳐업었다. 리베리의 허벅지 아래를 받쳐든 그의 양 손에 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저긴가?”


절벽을 건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나무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의로 잘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위장까지 곁들여 나무들 사이에 지어진 집이었다.


“어머니!”


집에 도착한 리베리의 아들은 곧바로 거칠게 문을 열어제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그들 부자와 마찬가지로 다소 창백한 피부색의 미인 여성과 4~5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무슨 일이니? 그렇게 거칠게 들어오고.”

“어머니! 아버지가···!”


곧이어 리베리를 업은 에니체드가 안에 들어왔다. 뜨개질을 하고 하고 있던 그녀는 한참 짜고 있던 옷과 바늘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황급히 다가왔다.


“여보!”

“아빠!”

“아···아되···다가오지···!!”

-푸욱


간신히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 리베리가 자신을 업고 있는 에니체드를 뿌리치려는 순간, 살결을 궤뚫는 소리와 함께 여성보다 한발 앞서 달려온 여자아이의 가슴에서 피보라가 일었다. 등 뒤로 뿜어진 여자아이의 피를 뒤집어 쓴 소년은 일순간 일어난 일에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하였다.


“그새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나. 하지만 이미 늦었어. 여기에 도착해버린 이상 말이지.”

“아···아···빠···!”


소녀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에니체드는 연이어 여성을 공격하였다.


-푸학

“···흐윽!”

“어머니!”


소년의 놀란 외침과 함께 여성도 바닥에 쓰러졌다. 여성의 경우는 그나마 치명상은 면한 듯 관통당한 가슴을 움켜쥐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여자아이의 경우는 방금 전의 일격으로 즉사한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얘···얘야!”


리베리의 작은 절규와 함께 여자아이의 육체가 회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이윽고 잠시 후에는 작은 잿더미만이 남게 되었다.


“여···여보···”

“미아···하오. 진작···저 자으···정체르 눈치채허야···”


아직은 움직임과 발음이 부자연스러움에도 리베리는 필사적으로 여성에게 다가가 여성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군. 다시 만나 반갑다, 퓨레드나의 참모 리베리.”


비아냥대는 그의 오른팔은 마치 검과 같은 형상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에니체드는 여전히 핏방울이 떨어지는 팔을 들어 리베리를 향해 겨누었다.


“역, 역시 너는 ‘쿠루아’···독의 데스틴!”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니, 영광이군. 못 보던 사이에 애새끼들까지 생긴 걸 보면 꽤나 즐겁게 살고 있었나 본데?”


그렇게 말하며 에니체드-데스틴은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자 그의 얼굴 형태가 바뀌었다. 특색 없이 둥글둥글했던 방금 전까지의 이목구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날카로운 인상의 얼굴은 증오와 광기에 물들어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아. 네놈들을 일가족 째로 몰살시킬 수 있다니 말야. 크큭큭큭!”


생기가 없이 탈색된 듯한 느낌의 회색 머리칼을 쓸어넘긴 데스틴은 이를 드러내며 광소하였다. 한참 웃음소리를 내던 중, 그는 문득 의문이 생겼는지 리베리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네녀석이 이런 촌구석에서 광이나 캐고 있는지 모르겠군. 델리우는 어디갔지? 그래, 네놈들이 그렇게나 충성을 다해 모시던 맹주 녀석 말이다.”

“모, 모른다. 나는 더 이상 퓨레드나의 신하가 아냐!”

“웃기지도 않는군. 거짓말 하지 마.”

“정말이다! 게다가 주군께선 전쟁 중 봉인되셨···!”


데스틴이 계속해서 리베리를 추궁하려는 차에, 소년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이 괴물!”


소년은 붉은 기운을 머금은 채 길어진 손톱을 들어올려 데스틴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데스틴은 태연히 왼손을 들어올려 소년의 손목을 붙잡았다.


“괴물이라···너희가 할 말은 아니지. 하긴 나 역시 괴물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비틀린 조소와 함께 데스틴은 검의 형상인 오른팔을 들어 소년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일부러 괴롭히기 위한 것인 듯, 많은 상처가 나고 있음에도 대부분 가벼운 상처들이었다. 소년은 상처를 입어가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데스틴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소년을 농락하며 조금씩 상처의 숫자를 늘려갔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슬슬 두 번째를 죽여볼까? 잘 가라, 꼬마.”


소년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생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되었을 쯤, 질렸다는 듯 한 번에 소년의 심장을 궤뚫을 기세로 오른팔을 뒤로 당기던 데스틴은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붙잡았음을 느꼈다.


“성미가 급하군. 안 그래도 전부 죽여줄테니 순서를 기다리라고.”


데스틴을 붙잡은 것은 리베리였다. 여전히 원하는 대로 운신하기는 힘든 듯 보였으나 그는 필사적으로 데스틴을 저지하고 있었다.


“어서 도망쳐라! 오래 버틸 수는 없어!”

“아버지!”

“미안하다. 진작에 이 자의 정체를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리베리의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더니 이내 몸 전체가 검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부풀어올랐다. 그의 종족-뱀파이어의 마지막 수단인 이형으로의 변신이었다.


“어째서냐, 데스틴! 우리의 전쟁은 이미 끝났다. 나와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싸움을 원하지 않아. 그저 이 작은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기만 원했을 뿐인데!”


이형으로 변하는 영향으로 인해 목소리가 일그러지는 가운데, 리베리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하여 데스틴의 몸을 옭아죄었다. 하지만 소년은 리베리가 원하는대로 바로 도망가지 않은 채 그와 데스틴을 번갈아보며 혼란에 빠진 채 서 있었다.


“이미 끝났다고? 평화롭게 살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랄하고 있네.”


데스틴의 어조가 분노에 물들었다. 그는 자신을 옭아죄는 리베리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래, 전쟁은 끝났지. 그래서, 죽은 이들이 살아돌아오기라도 했다는거냐?”


데스틴의 힘이 리베리를 앞서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씩 자신을 붙잡은 리베리의 팔다리를 떨쳐내려 하고 있었다.


“말해봐! 그래서 엘리멘탈 드래곤이, 지르-쟌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는 거냐!? 네놈들 때문에 죽게 된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냐고!”


리베리를 떨쳐낸 데스틴은 이윽고 반대로 그의 팔을 잡아채어 던져버렸다. 집안에 있던 잡기들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음과 함께 온통 칠흑같은 검은 색의 형체로 변한 리베리가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크악!”

“네놈들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덕분에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 내가 당했던 그 감정, 그 이상으로 돌려줄 수 있으니까.”

“크으으···!”

“그러니까 이형으로 변한 네녀석이 완전히 자아를 잃기 전에 끝내주지.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고 절망해라.”


리베리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데스틴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소년의 앞에 있었다. 그는 다시금 오른팔을 뒤로 당겨 소년을 궤뚫으려 하였지만 또다른 인물에 의해 그것을 방해받았다.


-쿠당탕


좀전에 데스틴에 의해 가슴을 궤뚫렸던 여성-리베리의 부인이었다. 그녀 역시 각오를 한 듯 이형으로 변한 모습으로 데스틴을 밀쳐내며 함께 바닥을 굴렀다.


“무엇 하고 있니? 어서 달아나렴!”

“어머니!”


아직 어린 소년은 자신의 부모가 이형으로 변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번 다시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할 수 있었다.


“어서! 너라도 살아야 한다!”

“빨리 가!”

“아버지, 어머니···!”


결국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돌려 숲 속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온 몸에 상처를 입긴 하였으나 치명상은 입지 않았던 상태여서인지 상당한 속도를 내며 소년은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쓸데없는 짓을···”


혀를 차며 데스틴은 소년을 추격하여 하였으나 리베리와 여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보내지 않는다!”

“지킨다! 우리 아이!”


이미 본격적으로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는지 둘의 말투가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더욱 빠르게 힘이 강해지고 있는 듯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기운이 더욱 짙어지며 몸집이 커지고 있었다.


“일부러 상태를 가속시키고 있군. 성가시게···”


혀를 차며 데스틴은 오른팔에 이어 왼팔도 검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뭐, 상관없어. 직접 끝장을 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저 꼬마는 이미 틀렸으니까.”


데스틴은 검으로 변한 양 팔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 꼬맹이에게 단순히 상처만 입혔다고 생각했었나? 설마 내 ‘기능’에 대해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


검으로 변한 그의 양 팔의 색깔이 엷은 보랏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리베리의 안광이 크게 확대되었다.


“데, 데스티이인!!”

“먼저 가서 마중할 준비나 해라! 네놈들의 자식도 곧 따라갈테니!”


광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데스틴은 자세를 낮추며 두 명의 뱀파이어에게 달려들었다.





“하아···하아···”


몇 시간이나 쉴새없이 숲 속을 달렸을까.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에는 막 해가 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아버지···어머니···”


공포와 슬픔에 잠겨 달리던 소년은 그제서야 멈춰섰다. 데스틴에게 입은 상처로 인한 것인지, 잠시 후 소년의 전신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흐윽···크헉···”


처음에는 몸이 따끔거리는 수준의 통증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그냥 ‘고통’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정도가 되어갔다. 마치 사나운 맹수들이 뜨겁게 달궈진 어금니로 전신을 물어뜯는 듯한 격렬한 통증으로.


“크흑···아버지···어머니···”


반복해서 부모를 부르며 소년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뒤틀었다. 소년의 머릿속을 메운 슬픔의 감정에 살고 싶다는 갈망이 더해졌다.


“아버지···어머니···으으으!”


소년은 직감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격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밝은 달빛 아래, 한밤 중의 정적 속에서 간간히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올수록 소년의 고통도 더해갔다.


“어이, 거기 누구 계슈?”


고통 속에서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었을까. 정적을 깨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잘못 먹고 배탈이라도 난 거요? 왜 그렇게 맨땅에서 허우적대고 계쇼?”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한 남자였다. 두꺼운 사각턱에 어울리지 않게 갈색 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길게 기른 다부진 체격의 그는 모험가나 용병인 듯 보였다. 경장을 하고 옆에는 보통의 장검에 비해 검날의 폭이 넓은-보드 소드라고 불리는 검을 차고 있었다.


“너···너···너···”


이미 소년은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고통, 슬픔, 공포 등이 어우러져 소년은 살고 싶다는 의지의 끈을 놓아버렸다.


“너도, 너도 그놈과 한패거리냐아아!?”

“엥?”


소년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양 손에 붉은 기운이 서린 손톱을 생성해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죽게 될 목숨, 조금이라도 부모의 한을 풀겠다는 마지막 사명감이 생겨났다.


“네놈들 때문에, 네놈들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가족이···!”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손톱이 생겨난 팔을 휘둘렀다. 이성을 저 편으로 날려둔 채 분노에 몸을 맏겨서인지, 조금은 고통이 줄어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이보쇼. 이게 무슨 짓이야!?”


갑자기 자신을 공격해오는 소년의 모습에, 남자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금 전까지 남자가 서 있던 위치 바로 뒤편에 있던 거목에 여러 개의 날카롭게 베인 자국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숨에 십수 미터를 물러나는 그의 대응은 오히려 소년을 자극하게 되었다.


“역시 나를 죽이러 쫓아온 거로구나! 가족의 원수!”

“그게 무슨 소리요!? 정신 나갔수?”


밝은 달빛 아래 드리워진 소년의 그림자가 남자를 향해 길게 뻗어갔다. 이윽고 그림자는 지면 위로 일어서는 듯 보이더니 마치 채찍처럼 그를 향해 휘둘러졌다. 하지만 상대는 잽싸게 몸을 뒤로 빼내었고, 그림자는 애꿎은 바위를 때렸다.


“이, 이건···! 네놈, 인간이 아니구나!”

“원수놈, 죽어!”


이후로도 소년은 정신없이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상대를 맞추지는 못하였다. 한참 동안 소년의 공격을 피하던 남자는 결국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는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이 공격방식, 이게 말로만 듣던 뱀파이어란 놈인가 보군. 그쪽이 이렇게 나온다면!”


그의 검에 푸른색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세간에서 ‘소드 마스터’라고 부르는 경지에 도달한 자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검기’라는 기술이었다.




작가의말

이번 화에서 굳이 의의를 하나 두자면

1편에 깔아놨던 작은 밑밥 하나를 회수하였습니다. 정도겠군요.


이번 편의 메인 빌런(?) 역인 데스틴의 가명인 ‘에니체드’는 간단하게 만들어졌습니다.

Destine을 역으로 썼습니다.

Enitsed...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추천과 선작, 관심어린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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