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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트업(Setup) - 수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AAKHS
작품등록일 :
2017.07.07 03:11
최근연재일 :
2017.09.20 09:4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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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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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44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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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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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셋트업(Setup) - 1편-12

DUMMY



“아니 그러니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었지. 아버지에게 시녀들이 입는 옷을 입히고 구속구를 채운 뒤, 몸 이곳저곳을 희롱하면서 즐기는 놀이를 했던 적이 있었다고. 너 같은 쓰레기에게 설마 그런 짓을 당할 줄이야···”

“저기, 오해거든요. 그런 거 전혀 안했는···”

“거짓말 마라! 인간들은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남발하고 아무 데나 자신들의 성욕을 푸는 변절자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나마 그간 마주친 인간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네놈 따위에게 이런 치욕을 당할 줄은···!!”

“아니, 그러니까 오해라고···”


잠깐. 방금 누구한테 뭘 입힌다고···? 난데없이 그런 의문점이 떠오르려던 찰나 금발 소녀의 온 몸으로부터 검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네놈을 적당히 손 봐주고 우리의 무구를 되찾은 뒤 가능한 조용히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래서는 성에 차지 않아. 지금 당장 네놈을 처치해 주마.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게 처형당한 시체로 만들어 주겠어!”

“잠깐. 잠깐만 내 이야기를···”

“변명은 필요 없어!”

-콰직

-땡그랑

-채앵


금발 소녀의 양 손을 구속하던 수갑이 깨지면서 불쾌한 소리를 내었고 이내 동강이 난 수갑은 바닥에 나뒹구는 것으로 그녀가 에우로파를 어떻게 하고 싶은 지를 대변하는 듯 하였다. 순식간에 수갑을 부순 그녀의 힘, 그리고 온 몸에서 끓어넘치는 듯한 살기에 주변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각자의 무기를 빼들었다. 정수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그녀의 살기와 더불어 기사들의 반응은 분위기를 더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아 제길 이거 어쩌지? 난 그저 평화적으로 대화를 할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에우로파의 왼손은 슬그머니 소매 안쪽으로 오무려지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말야. 클리셰라고 하던가?’

“이야아아압!”


노호성에 가까운 기합소리와 함께 그녀의 정권이 정확하게 에우로파의 안면 정중앙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에우로파가 왼손으로 빼들고 있던 카드로부터 빛이 발산되었다.


“효과 강화.”

-쩌엉


고막을 거칠게 흔드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났다. 에우로파와 금발 소녀 사이에 위치한 마법의 장벽이 소녀의 주먹과 부딪치며 난 소리였다.


“다짜고자 싸움을 걸어서 이런 곳에 끌고 온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부탁이니 잠시 머리 좀 식히고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없을까?”


그렇게 말하며 에우로파는 손짓으로 베쿰과 주변의 기사들을 제지하였다. 이렇게만 본다면 에우로파의 모습은 꽤나 태연자약했고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본 기사들은 그의 담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불어 방 내부에 설치된 마법 장치들의 위력에도.


‘위험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사실 에우로파의 로브 아래 가려진 두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심지어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앉는 것도 잊을 만큼 일시적으로 그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뭐야 대체. 이 터무니없는 힘은?! 한 방에 깨질 결계는 아니라지만 내가 강화하지 않았으면 손상될 뻔 했다고!’


소드마스터 급 전사들의 일격도 끄떡없이 버티는 결계의 방벽이다. 그런데 그걸 손상시킬 뻔할 정도의 위력이라. 정면으로 맞았다가는···


“뭐어? 아직도 입이 움직이나보군. 도망치지 말고 거기 서 있어. 지금 바로 이 결계를 부수고 너도 함께 박살내 줄 테니까!”


그녀의 몸에서 뿜어나오던 검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에우로파는 지금 당장 전이 마법으로 달아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공격이 전력이 아니었다고?’


뱀파이어란 녀석들은 다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강력한 건가? 아 제길 살려줘 제발. 에우로파는 마지막 평정심과 희망을 쥐어짜며 말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부디 지금의 이 오해를 대화로 풀면 안되겠는가?”

“웃기지 마!! 다짜고자 시비를 걸고, 우릴 기절시켜서 이런 곳에 납치하고, 거기에 희롱까지 한 주제에 이제 와서 뭐가 오해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오해라고!”


도망쳐야 할 지, 다시 한 번 결계를 강화시킬 지, 아니면 방에 설치된 제압용 마법을 발동시켜야 할 지. 아무래도 대화로 풀기에는 틀려먹은 듯 하다고 생각한 에우로파는 우선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에 대해 강구하기 시작했다.


‘아 좀. 제발 누가 도와줬으면···’


절실한 그의 마음 속 외침을 들어주기라도 한 듯, 에우로파에게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언니, 잠깐만.”


동생인 듯 보이는 에메랄드 색 머리칼의 소녀가 그녀를 제지하였다. 금발 소녀마냥 수갑을 풀거나 하지는 않고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방 안에 크게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저쪽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일단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나시, 이 자들은···”

“진정해 언니. 어차피 이 자들의 능력으로는 우리를 어찌 할 수 없어. 적어도 이야기라도 들어준 뒤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거 참 대단한 자신감이군. 슬쩍 불쾌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지만 어제의 전투, 그리고 방금 전 금발 소녀가 보여준 힘을 통해 결코 그곳이 허언이 아니라는 증명을 본 상태인만큼 에우로파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언니.”

“응?”

“치마. 벗겨졌어.”

“···?”


사실 금발 소녀의, 단추가 풀린 채였던 치마가 벗겨진 건 조금 전이 아니었다. 그녀가 에우로파에게 주먹을 날리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순간 이미 그녀의 치마는 벗겨진 채였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에메랄드 색 머리 소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못했을 뿐.

금발 소녀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지적해 준 그녀의 동생과 앞에 서 있는 에우로파와 주변 인물들, 이윽고 자신이 박차고 나선 자리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치마. 마지막으로 이제야 허전함이 느껴지는 자신의 하반신의 순서로 시선이 이동하더니


“꺄, 꺄아아악!”


아까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소녀는 팬티 한 장만 걸친 자신의 하체를 양 손으로 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와서 그렇게 부끄러워 해봤자 말이지. 이미 볼 건 다 봤는데···”

“뭐라고?”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암요!”


역시 잔뼈가 굵은 용병이어서인지. 가장 먼저 평정심을 회복한 베쿰이 본능에 가까운 딴죽을 걸어보려 했으나, 곧바로 자신을 향해 치켜뜨는 금발 소녀의 매서운 눈빛에 그는 시선을 피하며 양 손을 들어올렸다.





간신히 금발 소녀를 진정시킨 뒤, 타이밍 좋게도 시녀들이 다과상 준비를 갖추고 방에 들어왔다. 시녀들이 테이블을 준비하는 동안 에우로파는 그녀들을 막 잡아왔을 때 자신의 지시를 수행하였던 시녀와 여기사를 불러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즉, 우리가 어떤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지 몰라서 우리가 입고 있던 옷까지 전부 가져갔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거기에는 전부 여자들만 동원되었다. 나름 너희의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에우로파의 옆에 서 있는 여기사와 시녀들의 증언을 들은 두 소녀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겁이 너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예의범절이 부족한 건지. 이곳의 가신이면서도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못하다니. 실망스럽구나.”


어째 은근슬쩍 자신들 측의 일방적 잘못으로 몰아가는 듯한 금발 소녀의 발언이었지만 에우로파는 굳이 그것에 사족을 달지는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는데.”


이건 에우로파 본인조차 몰랐던 일이었는데, 당시 기절해있던 두 소녀의 옷을 갈아입히던 시녀들은 언제 그녀들이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자신들을 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대로 옷을 입히지도 않은 채 여기사들에게 자신들을 내보내 달라고 애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여기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시녀들이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완료하지 않았음을 인지하였음에도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녀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결계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그런데 왜 하필 메이드복이었지? 이것이야말로 너의 취향 문제인가?”


여전히 걸치고 있는. 하지만 이제는 단정하게 차려 입은 메이드복을 스스로 가리키며 금발 소녀가 질문했다.


“아니, 내 취향은 좀더 수수한 건데···흠흠, 아무튼. 지금 이 성에는 손님용 의복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지. 특히 자네처럼 어린 소녀용 의복은 더욱. 그러다보니 부득이하게 메이드복이 된것 뿐이다. 취향이라던가의 문제는 아냐.”

“누, 누가 어리다는 거야?!”


슬쩍 금발 소녀의 굴곡없는 가슴을 보며 말하는 에우로파의 태도에 그녀는 두 손으로 상체를 가리며 발끈하였다. 그렇게 대화하는 도중 에우로파와 소녀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의 세팅이 완료되었다. 작은 바구니와 접시에 각각 쿠키와 케이크가 올려졌고 각자의 앞에는 찻잔과 주전자가 내어졌다.

이번에는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다한 시녀들과 증언을 위해 함께 왔던 여기사에게 수고했다는 손짓을 하여 그들을 물린 뒤 에우로파는 찻잔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메이드복이 불만일 줄은 몰랐군. 나는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이건 그대들이 무얼 입어도 잘 어울릴만큼 예뻐서일까.”


사실 별 의도는 없었다. 그저 이런 식으로라도 아첨을 해 주면 조금이라도 화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형식적인 멘트를 했을 뿐이었는데, 에우로파의 이 한마디는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쓰, 쓸데없는 소리를. 그그그, 그런 뻔한 아첨따위···내가 좋아할 성 싶으냐?”

‘충분히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인 소녀의 모습에 에우로파는 무의식중에 ‘귀엽다’라고 생각하였다. 어제는 그렇게 싸우고, 방금 전만 해도 자기를 죽일 듯 달려들던 소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고보니, 아직 서로 자기소개가 아직이었죠? 저는···나시 라고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이쪽은 제 언니, 나트라고 하구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애써 차를 마시는 척 하며 여전히 발개진 얼굴을 찻잔으로 가리려 노력하는 금발 소녀를 대신하여 에메랄드 색 머리의 소녀가 자신들을 소개하였다. 감정조절에 서툰 듯한 언니 측과 달리 이쪽은 제법 표정관리를 할 줄 아는 듯 보였다.


‘불러주면 된다니. 일종의 아명인가?’

“에우로파 세류아 남작이다. 에우로파라고 불러주게.”

“그래서 에우로파 씨, 언제가 되어야 저희 무구와 옷을 돌려주실 건가요?”


거침없는데다 직설적이군. 겉으로는 나긋나긋해 보이는 분위기의 에메랄드빛 머리칼의-나시라고 하는 이 소녀는 제법 상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바로 돌려주는 것은 힘들 것 같군. 조금 시간을 내어 기다려 줄 수 없겠는가?”

“어째서?”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이었지만 은연중에 반말처럼 변한 말투도 그렇고. 어느새 공격적으로 변한 그녀의 분위기에 에우로파는 일순 등줄기가 오싹해짐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고수한 채 표정과 억양에 신경쓰며 대답했다.


“어제 그대들과 내 용병들이 벌인 싸움으로 그대들이 뱀파이어라는 게 밝혀져 버렸지. 게다가 지금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뱀파이어와 연관이 있다는 게 알려진 현재 상황에서 그대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우리 측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서 말야···사건이 모두 해결되면 그때 그대들의 소지품을 이상 없이 돌려주지. 물론 더 이상 이곳에 강제로 체류시킬 생각도 없고.”

“저희와 그들은 아무 관련이 없어요. 아니,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답니다.”

“그래. 그리고 너희들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신경써줘야 할 이유는 없을텐데?”


원래의 표정을 회복한 금발 소녀-나트도 동생의 발언에 거들고 나섰다.


“너희들의 사정이 어찌되던 그건 우리가 신경쓸 일은 아니야. 게다가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이런 곳에서 오래 머물 만큼 한가하지도 않아.”


아무래도 시작부터 호감을 가질 수 있을 형태의 만남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언니인 나트 쪽은 여전히 호전적인 모습이었다.


“혹시 괜찮다면 그쪽의 목적이 무언지 알 수 있을까? 어제의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겸해서 이쪽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지.”

“흥. 너 따위에게 도움받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거든?”


꽤나 자존심이 센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방적으로 고집을 피우는 어린아이같은 언행을 보이는 나트의 모습에 에우로파는 슬쩍 짜증이 났다. 도저히 어른스러운 대화가 통하질 않았다.


“이래뵈도 프로튼 왕국의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다. 더불어 제법 규모 있는 상회도 가지고 있지. 혹시 제오카 상회라고 들어 봤는가?”

“아앙? 그런 이상한 이름의 구멍가게같은 상회 따위, 잘 모르겠는걸?”


너 같은 녀석 짜증난다는 양, 의도적으로 시비를 거는 표정을 짓는 나트의 모습이었지만 에우로파는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 소녀들. 설마 했지만 예상보다도 더욱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동생 쪽은 어떻게든 그것을 감추려는 듯 했으나 언니 쪽이 이래서야.


‘게다가 짜증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지금의 모습에 에우로파는 상당한 갭을 느꼈다. 그는 이 철없는 소녀를 놀려보는 것도 겸하여 조금 더 몰아붙여보기로 했다.


“그럼, 자네가 잘 아는 유명한 상회 이름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이름을 댈 어떤 상회보다도 우리 상회의 규모가 클 거라고 난 확신한다만.”

“···그, 그런거 알까보냐? 애당초 내가 너희 인간들이 뭘 하는지 알 필요는 없잖아!”


금방 당황하는 나트의 틈을 놓치지 않고 에우로파는 찔러들어갔다.


“아니, 알 필요가 있지. 내 상회는 제법 많은 서비스를 취급, 제공하고 있거든. 도시간 이동, 원하는 물건의 수배나 입수, 사람 수색이나 정보 수집까지. 아무래도 그대들은 이쪽 인간 사회에 용무가 있어 보이는데. 그 점에서 우리 상회는 그대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최선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장담하네.”


갑작스레 폭력으로 해결하겠다고 판을 아예 엎어버리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제 대화의 주도권은 이쪽에서 잡았다고 에로파는 판단하였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눈치챘는지 나시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어찌할 줄 몰라하는 언니를 제지하며 끼어들었다.


“그래서, 저희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죠?”

“아무래도 동생 쪽은 이해가 빠르군. 솔직히 말해서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든 이야기 같고.”


이야기를 하며 두 자매를 번갈아 보던 에우로파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둘, 특히 언니 쪽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우로파는 찻잔을 들어올렸다.


“적어도 이번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이곳에서 조용히 있어 주었으면 하는 것. 그 정도로 해두고 싶은데. 물론 그 이후에는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도록 하지.”

“생각보다 단순하군요.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저희는 이번 일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냥 저희를 보내 주실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던 것으로 해 드릴 수 있을 텐데요.”


은연중에 위협적인 발언을 하는 나시의 기세에 일순 위축되었지만 이 정도로 질 수는 없지. 여기서는 무력보다 언변의 싸움이다. 에우로파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대답하였다.


“나도 그 말을 믿어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 게다가 상황이라는 게 서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만약 이번 사태의 범인인···그러니까 그대들의 동족이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그리고 만약 이쪽에서 수배령이라도 내리게 되면 이후 인간 사회에서의 자네들의 활동도 많이 불편해질텐데.”

“저희를 완전히 신용할 수 없다···는 말을 꽤나 돌려서 하시는군요.”


이야기 말미에 자신이 했던 이상의 위협을 해 오는 에우로파의 답변에 나시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몰아붙여봐야 득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에우로파는 가볍게 사과하는 것으로 그녀들을 다독였다.


“···미안하지만 이해바라네. 그리고 말인데.”

“뭔가 더 하실 말이라도?”

“그게···”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에우로파는 깍지를 꼈다 풀고 두 주먹을 쥐었다 다시 깍지를 끼는 것을 몇 차례나 반복하였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며 잠시 우물쭈물하던 에우로파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트를 향해 질문했다.


“좀 엉뚱한 질문 같지만···우리 말인데. 혹시 예전에도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

“···아앙?”


도저히 이 타이밍에 할 만한 질문이 아니라는 점이라던가, 애당초 화제 자체가 뜬금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에우로파 입장에서는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트는 아예 벙찐 표정이 되었고, 나시 측도 포커페이스 같던 표정이 일순 무너졌다. 결계 바깥쪽에 있던 베쿰과 에우로파의 제자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남작의 제자. 저건 도대체 무슨 뜬금포냐?”

“모르겠습니다. 스승님이 드디어 미치신건지···”


다 들린다 이 망할 놈들아. 아 역시 괜히 말했다. 후회감이 물밀듯 밀려오며 어떻게든 수습하자는 생각에 에우로파는 헛기침을 하며 최대한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아, 아무래도 불필요한 이야기를 했군. 어쨌든, 이쪽의 요구···아니, 조건을 수락한 걸로 생각해도 좋을까?”

“···잠시 생각한 뒤 답변을 드리죠.”

“그런가. 그럼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지. 적어도 식사 시간 이전까지는 답을 주었으면 좋겠군.”


에우로파가 손짓하자 일시적으로 방 안의 결계벽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트와 나시는 딱히 아무 행동도 하려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일단은 믿어 봐도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에우로파는 다시금 결계를 작동시킨 뒤 그녀들이 있는 방을 나섰다.


“혹시 모르니 감시를 소홀히 하지는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완전히 믿기엔 아직 부족하다. 문 밖에 서 있던 기사에게 나지막하게 지시하였다.




작가의말

역시 라노벨에는 미소녀가 있어야겠죠...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입니다만)

좀더 빨리 등장시켰어야 했는데.


장르 설정을 별로 신경 안썼는데, 대분류와 부수분류가 반대이면 아예 카테고리가 달라지는것 같더군요...수정하였으니 혹시나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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