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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트업(Setup) - 수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AAKHS
작품등록일 :
2017.07.07 03:11
최근연재일 :
2017.09.20 09:45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6,875
추천수 :
64
글자수 :
447,005

작성
17.07.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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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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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셋트업(Setup) - 1편-7

DUMMY

세인스 시의 외곽이 간신히 보일까 말까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 과거에는 제법 번듯한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제는 잔해는커녕 빈 터와 몇몇 부서진 석재들만이 지나간 시간을 반영하듯 위치하고 있었다.


“···으으···우윽···!”


그곳의 지하는 지상과 비교하면 그나마 그 형태가 남아있는 편이었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넓은 규모의 공동이 위치하고 있었고, 곳곳에 이끼와 거미줄로 뒤덮인 석상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크읔···흐아악!”


그곳의 중앙에서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맹수가 온 몸을 물어뜯는듯한 고통에 그는 연신 비명소리에 가까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보고 있던 거한이 질문하였다. 하지만 자신으로썬 주군의 고통을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는 것을 아는 그로써는 그저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마음 속으로 안타까워 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흐엌···크으으읔···!!”


델리우의 입가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거한 역시 자신이 고통받는 듯한 착각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주군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억울함과 무력감에 분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주군!”


공동 한켠에서 어둠을 비집고 다른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금 전까지 에우로파에게 전언을 하던 그 인물이었다. 황급히 다가와서인지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지며 선이 가는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꾸미기에 따라서는 미인이라기보다 미남으로 착각할 수 있을 중성적 외모의 여성이었다.


“주군···!”

“크···점점 더 주기가···짧아진다···”


얼마력 더 고통에 몸부림을 쳤을까. 그제서야 고통이 잠잠해진 듯 사내는 평정심을 되찾으며 매무새를 바로잡았다.


“···빨리, 한시라도 더 빨리 레레루르브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 이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주군, 심려치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어느새 사내는 마치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홀 중앙에 위치한 옥좌에 앉았다.


“남은 것은 셋.”


이제 곧···조바심과 기대감에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말입니다 스승님. 군대가 필요할 정도의 엄청난 놈들이라고요!”


에우로파는 양 손으로 거칠게 수정구를 붙잡았다. 만약 수정구 안에 미치고 있는 인물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면 그의 로브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네 고충은 알겠다, 에우로파야. 하지만 말이다···”

“그니까 지금 그런 거 신경쓸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에우로파의 성격으로, 만약 상대가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이 아니었다면 수정구를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욕설이란 욕설은 모조리 쏟아부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아스가 그의 ‘절제된’ 행동을 좋게 보아준 것은 아니지만.


“에우로파야. 조금은 이성을 가지고 생각해라.”

“그러니까 지금도 충분히···”

“언제까지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굴 테냐!”

“···!”


결국 참다못한 히아스가 그를 향해 윽박질렀다. 수정구로 통신 중이었기에 망정이지, 눈앞에 있었다가는 일단 몇대 두들겨 팰 듯한 기세에 뒤늦게야 자신이 지나쳤음을 인식한 에우로파는 뒤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제가 그만 흥분해서···”

“네 나이가 대체 몇 살이냐? 이제 곧 서른이나 될 녀석이 왜 이렇게 방정맞은게냐.”

“예···”


‘그러니까 그 서른이라는 말좀 그만 하시라니까요! 민감할 때라고요!’라는 말은 속으로만 삭일 뿐이었다.


“게다가 너도 이제는 남작 작위를 수여받은 어엿한 귀족이다. 더 이상 일개 마법사로 끝나는 게 아니잖느냐. 조금은 귀족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행동해라.”

“예···”

“그 일개 마법사도 그냥 마법사가 아니고 왕실 마법사, 심지어 내 뒤를 잇는 차석 마법사 아니냐?! 그래서 어디 내 뒤를 이어 히아스라는 이름을 이어받는 자가 될 수 있겠느냐!”

“죄송합니다···”

“잘 들어라 에우로파야. 귀족이란, 그리고 마법사란 말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자신이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백성을 이끄는 자로써, 그리고 마법이라는 미지의 거대한 힘을 다루는 자로써 항상···”

“예···”

“아직 내 말 끝나지 않았다!”

“예에···”


히아스의 설교는 1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에우로파의 입에서는 ‘예’와 ‘죄송합니다’가 연신 반복되었고 그의 어깨는 점차 밑으로 쳐지고 있었다.


“아무튼, 알겠느냐? 벌써 30씩이나 되어가는 녀석이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어서야···”

“예에···”


그러니까 아직은 20대···이미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뭐라고 할 힘도 나지 않았다. 이정도로 이 노인이 완고하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에우로파는 더 이상 도움을 바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하였다.


“그럼···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스승님.”


지쳐서 전혀 기운이 없는 에우로파의 목소리에 히아스는 제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제자의 반성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흠···우선은 말이다. 용병을 고용해라.”

“용병···말입니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에우로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스승도 소싯적에는 너처럼 많은 여행을 했지. 그 덕분에 여러 실력 좋은 사람들을 알고 있단다.”

“하지만 스승님, 용병이라는 족속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좀 쓸만하다싶은 녀석들은 대부분 그 국가 공신인 척 하는 부랑아 놈들···‘용병단 파’와 한패거리잖아요? 물론 ‘기사파’녀석들보다야 낫겠지만 그녀석들에게 빚을 져서야 뒤끝이 깨끗하지 못할 겁니다.”


우는 소리로 항변하는 에우로파의 말에 히아스는 혀를 찼다.


“쯔쯔쯔, 그러니까 넌 아직 더 공부가 필요한게다. 또한 인맥을 넓힐 필요도 있고.”

“···?”

“앞서 이야기했고 너도 우려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만약 마도병단이나 기사단을 파견한다고···아니 파견을 국왕 전하께 진언한다고 치자. 과연 그것이 국왕 전하의 의지만으로 가능하겠느냐?”

“그거야···”

“그 전에,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네가 하는 말을 믿고 ‘그래 알았다. 그거 큰일이군. 군대를 파견해야겠구나’라고 해줄 거라 생각하는게냐?”

“그건···”


에우로파는 말문이 막힌 채 어물거리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그렇구나. 에우로파는 고개를 숙였다.


“무엇보다 왕국의 정규군씩이나 되는 집단이 갑자기 움직인다고 생각해봐라. ‘뱀파이어를 퇴치하기 위해서다’고 설명한다고 과연 주변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줄까?”

“아마···힘들 것 같습니다···”

“하물며 최근 소브런 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여러 가지로 불안한 시기다. 들리는 소문에는 그들의 비밀 특수 공작원들이 이미 왕국 내에 활동을 개시했다는 소문까지 들려오는 와중에 수도의 전력을 이동시킬 수 있겠느냐? 그것도 소브런과의 국경 근처인 세인스에?”

“물론···불가능합니다···”

“아마 나도 네가 하는 얘기니까 믿어주는 것이지, 다른 이가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게다.”


풀이 죽은 에우로파를 위로하려는 듯 히아스는 방금 전까지의 엄한 표정을 거두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방금 전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정식으로 정규군을 파견할 수는 없지만 기사나 마법사들 중 몇 명이 개인적인 용무나 수행을 목적으로 잠시 외출을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그러다 마침 위기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어느 사람에게 용병으로 고용될 수도 있는 것이고.”

“스승님, 그러면···!”


에우로파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감정 조절을 못하고 표정이 급변하는 에우로파의 모습에 히아스는 내심 혀를 차면서도 피식 웃었다.


“훗. 물론 그런 식으로라고 해도 잘 해야 열 명 남짓이다. 하지만 최대한 실력 있는 자들로 알아보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용병이나 모험가들에게도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지. 그러면 어느 정도 인원이 갖춰 질 게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이동하도록 조치할 테니 연락하는 시간을 포함해도 빠르면 사나흘 정도에 도착할 게다. 나도 가서 직접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쪽에 일이 산재해 있다보니 그건 좀 힘들겟구나.”


방금 전까지의 서운한 감정들은 어디로 갔는지. 에우로파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직접 오실 것 까진 없습니다.”

“그리고…조심하거라. 아무래도 이번 일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구나.”


불안감을 느낀 것일까. 히아스는 에우로파에게 한 가지 지원을 더 추가하였다.


“그래, 혹시 모르니 ‘어전기’를 보내도록 하지.”

“어전기…‘에미넨트’를 말씀이십니까?!”


에미넨트.

‘마장기’라고 부르는, 장착‧탑승형 마도병기 중에서도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의 안녕을 위협한 ‘파괴신’과 맞서 싸운 ‘영웅전쟁’이라 불리는 사건 당시, 초대 히아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병기는 단신으로 다수의 고룡과 대등 이상으로 맞서 싸울 정도였으며. 이후 벌어진 ‘대륙전쟁’이라는 국가간 전쟁에서는 왕국의 선봉에서 수많은 강적들을 쓰러트린, 왕국의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본체까지 보냈다간 큰일이 날 테니, 코어만 몰래 보낼 생각이다. 어차피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니 그것이 반출된 것을 확인할 사람은 없을게다. 일단 반출하고 나면 뒷수습이야 적당히 하면 되는거고.”

“코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에미넨트의 적수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항상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너무 과신하지는 말거라.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느낌이 썩 좋지 않으니.”


재차 당부하는 히아스에게 에우로파는 가슴을 두드려보이며 자신차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의 도움까지 받는 만큼 결코 실망스러운 결과는 내지 않을 겁니다!”

“…알겠다. 기대하고 있으마.”


잠시 후 교신이 종료되었다. 이제는 아무런 영상도 비추어지지 않는 투명한 수정구를 바라보며 에우로파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미넨트라···이쯤되면 오히려 과다전력 아닌가? 진짜 전쟁도 아니고.”


어떤 의미로는 마도병단이나 기사단보다도 커다란 전력을 보내준다는 히아스의 말에, 이제는 제법 심리적 여유를 가진 것인지. 에우로파의 고민은 ‘위기 타파’에서 ‘손익 계산’으로 바뀌었다.


“용병이라···”


에우로파는 스승이 했던 말을 상기해 보았다. 그리고 그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산을 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병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지…게다가 비용은 또 비용대로…”


용병이란 존재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용 대비 효율성도 좋지 않다.


“치잇.”


하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무엇보다 히아스가 이야기한 ‘타국의 시선’을 고려할 때, 그가 보내줄 조력자들이 너무 눈에 띄는 것을 가려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만에 하나의 사태가 벌어질 때를 대비한 보험 목적에서도 어느 정도의 인원수는 필수였다. 분명 그들 중에 죽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가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인물들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결론지은 에우로파는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밖에 누구 없나? 이 망할 제자놈들, 아무나 빨리 들어와!”


꽤나 크게 소리를 질러서일까. 에우로파의 외침에 곧바로 네 명의 제자가 박차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곧바로 시녀들이 들어와 에우로파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에우로파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문 밖에서 기다리는 그의 제자들은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수근거렸다.


“갑자기 왜 스승님이 소리를 지르신 거지?”

“큰스승님께 야단이라도 맞은 거 아냐?”


다 들린다 멍청한 놈들. 가끔은 좀 엿들으면서 상황을 이해하란 말이다. 에우로파는 제자들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겠어?”

“글쎄요.”


하품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운을 띄우는 여성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움직임에 좌우 길이가 다른 적갈색의 단발머리가 찰랑였다.


“이제 어떻게 될까? 지켜낼까, 아니면 빼앗길까?”

“글쎄요.”


옆에 앉아있던 검보라빛 머리칼의 남자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성은 짜증난다는 듯 목소리 톤을 올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아 정말이지! 페스크, 그 ‘글쎄요’는 이제 질렸어, 질렸다고! 좀더 재미있는 대답을 해줄 수는 없어?”

“글쎄요···”

“으이구! 말을 말아야지.”


진저리가 나는 듯 여성은 남성-페스크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바라본 방향에는 누가 봐도 ‘정말 덩치 크다!’고 할만한 인물이 앉아있었다.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는 무표정한 인상에 대머리이기까지 하다보니 쉬이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였지만 여성은 이미 익숙한 듯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파루, 그쪽 생각은 어때?”

“······”


여성의 질문에 덩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갸우뚱하였고 이내 좌우로 가로저었다.


“판단, 불가. 정보, 부족.”

“아아, 정말이지 이래서 도구 따위···!”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이렇게 재미없는 남자들만 있는거야?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르나, 심심한가보군.”


세 남녀의 대화를 듣고있던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선이나 눈매 등에서 날카로운 선이 있어 호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턱수염을 길러서인지 그것이 어느정도 상쇄되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그 수염으로 인해 실제에 비해 나이가 들어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응. 엄청 심심해.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평소같으면 그다지 이야기하고싶지 않은 상대일텐데. 레르나라고 불린 여성은 다소 내키지 않은 분위기속에서도 턱수염 사내에게 물어보았다.


“조금만 참아라. 이제 금방이니까.”

“아~아. 결국 참으라는 얘기잖아.”

“게다가 우린 놀러 온 게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황제 폐하의 영광을 위함임을 잊지 말라고.”

"치잇."


정말이지. 옆에 남자가 셋이나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재미없는 상대 뿐일까. 레르나는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스틱으로 찻잔에 담겨있는 차를 휘저었다.


“안 되겠어. 잠깐 둘러보고 올게.”


남아있던 차를 한번에 마신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행동에서 반사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페스크가 그녀를 만류하려 했다.


“레르나!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왜 그렇게 무서워 해? 그냥 잠깐 둘러보고만 올 뿐이라구? 황제 폐하의 영광을 위해서 말야.”


그럴 리가 있나. 게다가 방금 전의 발언은 자칫하면 불경스러운 태도로 해석될 여지조차 있었다.


“루드, 뭐라고 좀 해주세요.”


혼자서 그녀를 말리기에는 힘에 부치다고 생각했는지, 페스크는 갈색 머리의 턱수염 사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그-루드는 한가롭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대답했다.


“상관없지 않나? 그냥 산책일 뿐이라면.”

“루드!”


나무라듯 페스크가 그의 이름을 외쳤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루드는 짧게 레르나에게 한마디만 덧붙였다.


“단,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말 것.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이, 예이.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걱정 마시라고요.”


혀를 내밀며 대답한 그녀는 도심의 인파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듯 페스크가 한마디했다.


“루드, 정말 괜찮을까요?”

“너는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다, 꼬마. 이제 조금은 어른스러워질 때가 되지 않았나.”

“저는 꼬마가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어른이라고요!”

“그런 반응이 아직 네가 꼬마라는 증거다.”

“······”


한편, 루드와 페스크의 시야에서 멀어진 채 계속해서 도심을 활보하던 레르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봐, 아가씨. 혹시 혼자인가?”

“아무래도 우리처럼 모험가 같은데, 혼자서 다니면 위험하다고.”


제법 괜찮은 갑옷과 무기를 갖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심성은 그들의 장비만큼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지 그들의 눈빛은 욕망에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뭐하다면 우리가 동료가 되어줄 수 있는데 말야. 이래 보여도, 우리도 꽤 수준 있는 모험가라고.”


사실은 동료로서보다 다른 무언가에 기대를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었으나, 레르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이봐, 무시하지 말라고. 일단 대화를 좀 해 보자니까?”

“아무래도 못 미더운가본데, 좀더 진중한 이야기를 해 보고나서 결정하는 건 어때?”

“그래, 서로를 아는 데에는 대화만큼 좋은 게 없지. 마침 좋은 장소도 있고 말야. 흐흐.”


어느새 그들은 레르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레르나의 갈 길을 막고는 강제로 어느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듯 하였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하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그녀는 불쾌한 감정을 담아 그들에게 쏘아붙였다.


“허접한 조무래기들이. 그렇게 좋은 게 하고 싶으면 너희들끼리나 가서 해.”


싸늘하게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표정이 급변하였다. 그들은 돌연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던 것을 멈추며 자신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다. 우리들끼리 좋은 것, 해야지.”

“그래. 우리끼리 하면 되는 거야.”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그 말과 함께 남자들은 돌연 자신들의 벨트 버클을 풀더니, 이윽고 갑주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남자들끼리 대체 무슨 짓을!”

“대낮에 큰길에서 이게 왠 미친놈들이야!?”


이윽고 주변 사람들의 비명 섞인 외침들이 등 뒤로 들려왔으나, 레르나는 무시한 채 계속해서 갈 길을 갔다. 그녀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괜히 돌아다녀보기로 했나? 별 이상한 것들이나 꼬이고···”


그러던 중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다.


“음?”


여관 겸 주점인 듯한 커다란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곳 안에서는 무슨 일이 났는지 상당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저건···”


방금 전까지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졌던 미간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는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주점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역시 재미있는 게 없진 않았잖아!”


다시금 그녀의 입가에 짖궂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소개글의 문구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에우로파에게 사기급 능력치나 스킬은 없지만 사기템은 있었군요...

현재 시점에선 배송중이지만.


...아무튼 거짓말은 안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글을 쓰면서 자주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역시 묘사에 해당 인물의 이름을 넣는 타이밍입니다. ‘빨간머리 여자’에서 ‘앤’으로 명칭하는 식의 부분 말이죠.

여간해서는 작중에서 직접 이름을 언급하게 한 뒤 그 이후부터 이름으로 지정하는 방법을 주로 쓰고는 있습니다.


글 쓰는건 참 어렵네요...


8화는 3시에 업로드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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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20 파란펜촉
    작성일
    17.08.18 18:03
    No. 1

    우리끼리 한다며 옷 벗은 사람들... ㄷㄷ 레르나 하고 한 판 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ㅋ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AAKHS
    작성일
    17.08.18 18:34
    No. 2

    해당 장면은 아무래도 '레르나의 주특기는 직접전투보단 다른 분야이다'를 나타내기 위한 쪽에 가깝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어느 쪽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season4
    작성일
    17.08.21 00:58
    No. 3

    작가의 말...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큼큼... 좋은 것을 우리끼리 한다니.. 빵 터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AAKHS
    작성일
    17.08.21 05:48
    No. 4

    아무래도 글로만 표현하다보니 말이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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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셋트업(Setup) - 1편-19 +2 17.07.16 81 1 11쪽
19 셋트업(Setup) - 1편-18 +2 17.07.15 87 1 21쪽
18 셋트업(Setup) - 1편-17 +2 17.07.14 126 1 13쪽
17 셋트업(Setup) - 1편-16 +2 17.07.13 78 1 13쪽
16 셋트업(Setup) - 1편-15 +2 17.07.13 124 1 17쪽
15 셋트업(Setup) - 1편-14 +2 17.07.12 103 1 12쪽
14 셋트업(Setup) - 1편-13 +2 17.07.12 100 1 13쪽
13 셋트업(Setup) - 1편-12 +2 17.07.11 94 1 19쪽
12 셋트업(Setup) - 1편-11 +2 17.07.11 157 1 14쪽
11 셋트업(Setup) - 1편-10 +2 17.07.10 103 1 12쪽
10 셋트업(Setup) - 1편-9 +3 17.07.10 88 1 11쪽
9 셋트업(Setup) - 1편-8 +2 17.07.09 93 1 19쪽
» 셋트업(Setup) - 1편-7 +4 17.07.09 68 1 19쪽
7 셋트업(Setup) - 1편-6 +4 17.07.08 138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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