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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co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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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elco
작품등록일 :
2009.01.29 13:24
최근연재일 :
2009.01.29 13:24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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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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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글자수 :
546,278

작성
09.01.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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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여신 가이아 - 걸어 가는 길

DUMMY

준성이 등장하고 싸움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다. 준성은 마치 미쳐버린 것처럼 칼을 휘두르며 어둠의 순례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당장 꺼지지 못해! 계속 덤비면 죽여 버린다!”


의미 없는 외침이라고 해야 할까. 준성의 외침은 칼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폭발음만 들리는 이곳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준성에게 있어선 진심이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더 이상 싸움이 확산되면 스페리 남매에게까지 피해가 끼칠 것이다. 안전할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옮겨놓긴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준성의 외침 이후, 갑작스런 준성의 등장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느낀 건지 어둠의 순례자들은 쉽게 물러났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둠의 순례자들이 물러나고 나자 이온과 피리야, 그리고 흑천호가 한 무리를 형성하고, 또 준성 혼자서 한 무리를 형성해 자연스럽게 대립구조를 띤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들 뭐야?”


이온과 준성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그 덕분에 민망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서로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지 짧은 침묵이 흘러갔고, 가볍게 흐르는 한랭전선. 아니, 정체 전선이 빠르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준성은 자세는 풀었지만, 경계의 눈빛은 유지한 채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벨로드인가?”

“…그럼,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지? 싸우는 것으로 봐선 행수나 할 사람은 아닌데.”


한 순간 싸움에 미친개처럼 날뛴 준성이었기에 이온과 그 일행들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대화는 무리였다. 어둠 속 너머로 어떤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들은 건 흑천호였다.


“응? 젠장. 치안대다. 도망쳐야 할 것 같군요.”


흑천호의 한마디 말은 정체전선을 뭉개기에 충분했다. 이온과 피리야 흑천호는 재빨리 무기를 거둬들이고 서로 눈짓한 후 어둠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상태로 잡혀봐야 이로울 게 없는 준성 역시 재빨리 스페리 남매에게 뛰어가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치안부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 준성까지. 이곳에선 싸움의 흔적만 남았을 뿐, 더 이상의 피의자는 없었다.


----------


준성과 이온이 다시 만난 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건이 있은 직후 불과 몇 시간 뒤, 준성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경직이 풀어진 두 남매를 위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 구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저녁을 같은 곳에서 먹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듯 이온과 피리야 역시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준성을 시작으로 다시 빠르게 펼쳐졌던 정체 전선은 피리야의 중재로 일단 한랭전선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 뒤로 준성은 스페리 남매에게 음식을 사다주고 이들이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중간에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 돌아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방을 나왔다. 어두운 거리를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이온과 그 일행이 묵고 있는 여관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벨로드이고, 당신의 목적은 가이아 여신의 신전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준성이 이온에게 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온이 말이 꼬일때마다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피리야라는 여자 때문에 조금은 정신이 없었다는 것 외엔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었다. 남은 건 준성이었다.


“난 나에 대해 모든 걸 다 말했으니 이젠 당신 차례요. 당신은 어떻게 우리들 중에 벨로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그렇군. 당신의 정체가 뭐요? 아까도 말했지만, 해운의 행수나 할 정도의 칼솜씨가 아니던데.”

“…난, 순례자 소속이었던 박준성… 이 세계에서 받은 이름은 벨로드 에르테르프. 이게 나요.”


라고 말하며 준성은 얼굴을 가리는 검은 천이 달린 갓을 벗어버렸다.


“설마, 샤렐 엘피네스?”

“난 지구라는 다른 세계에서 왔소.”


준성과 피리야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피리야의 눈동자는 커져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이온과 흑천호 역시 매우 놀란 눈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준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다른 세 명을 쳐다볼 뿐이었다.


“…당신이 그 벨로드인가?”


이온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자신이 호법자 앤 볼타비아와의 대련에서 지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앤이 찾아와 했던 말이 또 다른 벨로드의 존재였었다. 그때 들었던 말이…


“당신이 그 한국인이라던 그 벨로드란 말입니까?”

“…날 아십니까?”


안다고 하면 알고 있지만, 그 뒤로 잊어버렸을 만큼 그 뒤로 한국에서 넘어온 벨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직접 만나는 것도 처음이니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한국에서 넘어온 또 다른 벨로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준성은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뜩 생각난 건지 피리야를 쳐다보았다.


“아까, 무슨 엘피네스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오?”

“에? 아, 뭐라 그랬지.”

“샤렐 엘피네스.”

“아, 맞다. 샤렐 엘피네스.”


피리야 역시 앤 볼타비아에게 그 말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던 탓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지워져버렸고, 옆에서 이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피리야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샤렐 엘피네스는 우리처럼 창세 전쟁 이후에 탄생한 혼혈종이 아닌 창세전쟁 이전에 살았다고 하는 순수한 인간 종을 의미해요. 전 세계의 신들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인간종이라고도 하죠.”


준성은 피리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다 피식하고 웃었다. 처음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서로 왕래가 있어왔다고, 그러나 카로마니아라는 이 세계에 도착해서 느낀 감정은 왕래라기보다는 그저 우연하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 친밀한 왕래가 아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사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탓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부정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신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인간종이라고 한다. 결국 자신과 같은 외모를 가진 인간종이 살아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 된다.


“신기하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 우리들이 신의 모습이라니.”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외모이기에 가질 수 없는 자유라는 삶. 그 삶을 살다가 죽어갈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뒤에 그래도 당신들의 외모는 신과 닮아있는 외모입니다. 라는 걸 가장 큰 의미로 삼아라. 라는 걸로만 들렸다. 살아감에 대한 선택권조차 쥐지 못한 채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한 채 이곳에서 죽어간 수많은 지구인들에게 크나큰 위안이 될 말이었다. 준성은 그렇게 피리야의 말을 비꼬았다.

결국 싸늘해진 분위기는 이온이 피리야를 끌고 나가고 흑천호가 준성을 달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겨우 화가 누그러진 피리야와 준성이 화해 아닌 화해를 하는 것으로 그 상황은 끝이 났다. 그리고 준성이 그 방을 나서기 전, 이온에게 한 가지 제의를 받게 되었다.


“…거절 하겠소.”


그 제의라는 건 자신과 함께 가이아의 신전을 찾아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두 명의 벨로드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단어일 것이고, 혹시 가이아 여신의 신전을 찾게 되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성에겐 가이아 여신의 신전을 찾는 것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흥미가 없는 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죠. 며칠간은 이곳에 머물 생각이니 생각 좀 해보시오.”

“생각할 것 없이 난 당신들의 생각에 동참할 생각이 없소.”


준성은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왔다.

가이아 여신의 신전 따위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딴 신전 찾아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결국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보단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봤자 이곳에서의 삶과 그리 별반 다를 게 없는 생활이 될 뿐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안식처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쉴 곳은 그 아이들뿐이야.”


준성은 어두운 밤거리를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랬다. 준성에게 유일하게 남은 안식처는 스페리 남매뿐이었다. 저녁에 벌어진 시가전에서도 스페리 남매가 없었다면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누구보다 먼저 그 자리를 피해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믿었던 찬혁마저도 헤어질 때 좋지 못한 모습으로 헤어져버리고, 결국 이 세상은 혼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난 지금은 누가 죽던, 누가 다치던, 그게 나, 그리고 스페리 남매가 아니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준성은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


이온은 준성이 차갑게 거절하고 나가자 끝까지 재수 없다며 욕하는 피리야를 달랜 뒤, 스스로도 그리 썩 좋지 않은 기분을 달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준성이 같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가이아 여신의 신전 찾기에 어떤 단점이나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제의를 그렇게 단칼에 거절하고 나가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피리야가 화를 내고 있으니 자신까지 덩달아 화를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또 다른 벨로드 에르테르프…”


그저 왠지 모르겠지만, 그가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잡설 1.

소설에 대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잡설 2.

그냥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이온이 준성에 대해 이전에 이야기를 들었다는 장면은 3화인 벨로드 에르테르프의 초반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앤 볼타비아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앤에게서 듣는 말 중 하나였죠.


==========


제 머리 아프게 굴려서 만든 설정들입니다.


제 자식을 당신의 자식이라 하는 분이 없었으면 합니다.




갱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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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벨로드 에르테르프 - 길에 서다 +4 08.12.27 305 2 11쪽
86 벨로드 에르테르프 - 길에 서다 +4 08.12.26 5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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