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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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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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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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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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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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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1화




굿프리먼 일행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플레이어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 낯을 좀 가리시나 봅니다.”

굿프리먼이 웃으며 던지는 농담에 그의 일행들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이는 경계하는게 마땅하지만, 지나치게 날을 세울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광개토는 보았다. 오랜 시간 핍박과 괴롭힘을 견뎌왔던 광개토에게 굿프리먼의 웃음기 없는 저 눈빛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를 잔인하게 짓밟던 일진들의 웃음이 바로 저러했다.

여 성기사, 제이제이가 굿프리먼을 재촉했다.

“여기서 친목질 할 거 아니면 얼른 마을로 들어가요.”

이전부터 제이제이와 함께 해왔던 총사와 초능력자가 그녀의 말에 동조하여 천천히 마을로 걸어가려 했다.

이들의 반응은 시온을 플레이하는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시온은 규범지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도시나 마을을 벗어난 곳은 일종의 무법지대로 간주되어 분쟁과 싸움이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 파티 간의 대화나 의견 조율은 대부분이 규범지역 안에서 이루어졌다. 누구도 치안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굿프리먼을 위시한 정령사와 사제 입장에서는 마을의 변고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럼, 소개를 했으니 이제 아까 질문에 대답해주시오. 마을에서 나오시는 길이시오?”

담담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협이 느껴지는 굿프리먼의 말을 들으며 광개토가 슬며시 슬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 사람, 왠지 위험한 사람 같아요.”

그 말에 슬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광개토를 바라봤다.

“개토야, 지금 니 옆에 있는 니 사부 아저씨가 세상 제일 위험하고, 무시무시하고, 잔인하고 포악한 괴물이거든. 멍청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슬기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기에, 앞에 선 사람들의 움직임이 딱 멈춰 버렸다.

특히 굿프리먼과 정도령, 양인이 달라진 눈빛으로 멍청하게 서 있는 천마를 쳐다보았다.

조금 큰 키에 다소 마른 체구. 까만 머리카락과 깔맞춤 한 듯한 까만 옷차림. 그 와중에 회색빛 망토는 그의 패션 감각이 기대 이하라는 것을 알려 준다. 더불어 손가락 하나하나에 끼워진 여러 개의 반지들까지.

그의 옷차림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자세였다.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선 그의 모습은 무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좋게 말하면 탈속적인 분위기, 초연해 보인다라고 하겠고, 안 좋게 말하자면 그냥 멍청해보였다.

‘저 남자가 그렇게나 무서운 괴물이라고?’

세 사람의 시선을 느꼈는지 천마의 고개가 천천히 그들 쪽으로 돌려졌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헤어스타일에 눈이 보이지 않자 세 사람은 살짝 답답함을 느꼈다.

“아, 그렇습니까!!”

광개토의 머릿속에 어젯밤 수많은 경비대원들을 학살했던 사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실로 보자면 경찰들을 학살한 셈이다!! 그래, 우리 사부가 제일 못된 사람이었지!!’

우리 편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자, 저 쪽 편의 괴한 정도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자 광개토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 사람이 가만히 천마를 쳐다보고 있자, 천마가 입을 열었다.

“흐흐흐..이곳에 있던 산적이라면 본좌가..”

“아!!! 우리도 방금 도착했거든요!!”

예상치 못한 천마의 돌발발언에 슬기가 급히 목소리를 키웠다. 이어서 천마에게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한 슬기는 못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하하, 그쪽 분들은 이 마을에 하루 묵으러 오셨다고요? 우리도 마침 여기 마을이 보여서 들어갈까 생각 중이었어요.”

“에?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광개토가 슬기의 말을 정정하려는데, 슬기는 목소리를 더욱 키워 광개토의 말도 씹어버렸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멋진 마을이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군요!”

“하하하, 그렇군요. 저도 오늘 초행길인데, 이런 멋진 마을이 있다니 종종 들려야겠습니다.”

굿프리먼도 웃으며 화답했지만, 광개토가 보기에는 여전히 웃지 않는 눈매였다.

“할 얘기가 있다면 마을에 들어가서 하는 게 어떻소?”

저 멀리 벌써 몇 십 미터 이상 앞서서 성기사, 초능력자와 함께 걸어가던 총사가 걸걸한 목소리로 크게 외쳐왔다.

“저희 일행이 부르는군요. 당장 가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굿프리먼이 꾸벅 목례를 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나머지 둘도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그를 따라갔다. 그들은 금세 자기네 파티원들을 따라잡아 함께 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그들이 멀어지길 기다려 광개토가 다시 말했다.

“저 사람들 좀 이상한데요?”

“그래, 이 멍청아!! 이상하지, 이상한데 꼭 그렇게 저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들 이상해요~ 이렇게 말해야겠니?”

그렇게 광개토를 질타한 슬기가 천마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저 사람들 좀 이상하지?”

“뭐가 말이냐?”

천마의 평소와 다름없는, 정말로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말투에 슬기는 괜히 물었다 싶었다.

슬기는 광개토의 어깨를 한 차례 툭 쳤다.

“어쩌면 선업점수 한 번에 다 채울 수도 있겠는데?”

슬기가 보기에 전사와 정령사, 사제는 뭔가 구린데가 있어 보였다. 사기꾼이든지 아니든지, 적어도 이곳 마을의 산적들과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을에서 나왔든 뭘 하든 무슨 상관이겠으며 왜 그걸 확인하려고 애썼겠는가, 분명히 마을이 산적들의 산채임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악명 높은 범죄자는 선업점수를 많이 준다고 했겠다?’

“그럼 우리도 다시 들어가 볼까?”

못생긴 얼굴 가득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슬기가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


“이보시오~!! 누구 없소!?”

마을 입구에 들어설 무렵 앞선 파티들의 외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곧 길 한가운데 멍하니 선 여섯 명이 보였다. 모두들 사람 한 명 없는 마을 풍경에 꽤 긴장한 모습이었다. 특히 전사와 정령사, 사제의 얼빠진 모습이 가관이었다.

“전사님, 님이 말씀하시던 마을의 모습이 아닌 거 같은데요?”

초능력자라고 소개되었던 노란머리가 전사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여기서 하룻밤 쉬고 출발하면 된다더니, 이것 숫제 유령마을 아니오?”

총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전사는 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서 당황해 하고 있었다.

“일단 숙박시설부터 찾아봐요.”

가만히 있던 사제가 고운 목소리로 말하자, 다들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였다.

전사가 앞장서더니 곧 일행을 여관으로 안내해갔다.


일행들이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더니 슬기가 혀를 찼다.

“초행같은 소리 하고 있네. 처음 왔다면서 여관을 단번에 찾네.”

그 말에 광개토가 한 소리했다.

“저기에 떡 하니 여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뭐, 인마?”

여관 간판이 대문짝만해서 초행이라도 단번에 찾아볼 수 있을 법하게 생기긴 했지만, 슬기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아냐, 분명히 간판을 보기도 전에 발부터 그쪽으로 향했어.”

슬기는 억지를 부렸다. 사실만을 전달해야 했던 옛날에는 절대 부릴 수 없는 억지였지만, 이제 슬기는 기자가 아니었다.

슬기가 앞장서자, 나머지 둘이 따라왔다.

슬기가 걸어가며 광개토와 천마에게 당부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에는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마.”

“특히, 아저씨는 함부로 손 쓰지 마.”

“알겠다.”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욕했다고 하면서 또 사람 죽이고 하면 나 진짜 자살한다?”

“알겠다. 그럼 저놈들이 진짜 욕하면...”

“진짜로 욕 들었어도 죽이지 말고!”

천마의 뒷말에 슬기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알겠다, 아가씨야. 그런데 신호가 무엇이냐?”

그 말에 슬기가 둘을 돌아보더니 코를 찡긋해 보였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인데, 콧잔등에 잔주름마저 잔뜩 잡히자 마치 흉신악살과도 같은 형상이 되었다. 갑작스레 안구테러를 당한 광개토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누가 봐도 공격신호인줄 알 것 같습니다.”

“알겠다. 네가 인상 쓰면 본좌가 죽이마.”

광개토와 달리 천마는 슬기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니.. 자꾸 두말하게 하네. 죽이지는 말고, 그냥 제압만 해. 그러니까, 어제 나한테 한 것처럼 그 뭐냐, 혈도를 막.. 그래 점혈! 점혈을 하라고.”

“점혈이 무엇이냐?”

뭐? 하는 표정이 슬기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니, 이 아저씨는 한 번씩 보면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거 같아?”

어이없어하던 슬기는 천마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어! 아저씨, 혹시 방금 농담한 거야?”

“본좌는 농담이 무엇인지 모르느니라.”

다시 본 천마의 얼굴은 평소의 냉담한 모습 그대로였다.

잠시 천마의 얼굴을 살피던 슬기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여관으로 들어서자 홀에 앉아 있던 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전사와 정령사가 보이지 않았다.

“아, 당신네들도 여기로 왔군.”

장총을 의자에 기대어 세운 총사가 손을 들며 환영인사를 보내왔다.

잠자코 들어온 슬기 일행은 이미 자리한 파티에서 한 테이블 건너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좀 이상하네요. 왜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는지..?”

슬기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연기하자, 상대 일행 중 노란머리 초능력자가 대꾸했다.

“배에서 꼬르륵 하는데, 이러다가 밥도 못 먹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아가씨야, 본좌도 요리가 먹고 싶구나.”

밥 얘기에 천마도 입을 열었다.

벌떡 일어난 슬기가 주방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물었다.

“그쪽에 두 분은 어디로 가셨나요?”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계단으로 전사와 정령사가 올라왔다.

“정말로 아무도 없군요. 하지만 술은 있습니다!”

둘의 손에는 커다란 나무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통에서는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맥주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오!! 우리 파티장이 모처럼 멋져 보이는군, 그래!!”

총사가 가뜩이나 걸걸한 목소리로 더 걸걸하게 환호하더니 얼른 벽 한켠에 있는 선반에서 컵을 챙겨오더니,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도 와서 같이 먹지, 그래?”

그의 손짓에 슬기도 슬그머니 그 테이블로 다가갔다. 한잔 가득 따라지는 맥주의 찰랑거림은 괜시리 목안의 갈증을 더욱 부추겼다.

어느새 광개토도 곁으로 다가와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맥주!! 시온에도 맥주가 있습니까? 이거 맛은 어떻습니까? 바깥이랑 똑같습니까?”

“자, 한잔 받아봐.”

장년의 외모를 가진 총사라 반말에도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아 슬기와 광개토는 편하게 맥주잔을 하나씩 받았다.

“어이, 거기 까만 청년도 한잔 받지?”

하지만 천마는 팔짱을 끼고서 앉은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 한잔 해.”

슬기가 말하자 그제야 천마가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리고 슬기는 한잔 크게 맥주를 들이켰다.

꿀꺽꿀꺽~

단숨에 한잔을 들이 킨 슬기가 맥주잔에서 입을 떼며 한숨을 토해냈다.

“크아~”

오랜만에 맛보는 알싸한 맥주의 내음이 코끝을 찔러대자 기분 좋은 미통이 느껴져 슬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리고 그 순간 여관 안에 일진 광풍이 불었다.

퍼퍼퍼퍽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마의 모습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찰나 간에 상대 일행들 사이를 오갔고, 모두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춰 버렸다.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몇몇은 그대로 옷에다가 맥주를 줄줄 쏟아버리는 모양새 그대로 굳어버렸다.

‘헐, 지금 이게 무슨?’

뜻밖의 상황에 슬기는 깜짝 놀라버렸다.

쿨럭, 놀란 광개토는 맥주잔에다가 재채기를 해버렸다.

“자, 아가씨야, 네 말대로 점혈했다.”

천마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슬기를 쳐다보았다.

그저 톡 쏘는 맥주향에 인상을 썼을 뿐인 슬기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몸은 점혈당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점혈당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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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19.11.24 54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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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19.11.23 54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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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19.11.21 589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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