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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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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623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22 07:00
조회
598
추천
8
글자
12쪽

35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35화




“야이.. 병신..아...”

슬기는 힘빠진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앞에선 천마를 한번 보고서, 허리띠의 작은 주머니에서 회복 포션을 꺼냈다. 그녀는 포션을 두어 모금 마신 후 나머지는 가슴 한가운데 난 상처에 발랐다.

그렇게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어보미네이션의 갈고리가 다시 한번 슬기에게 날아왔다. 첫 타가 너무나 강력하여 아직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슬기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깜짝 놀랄 겨를도 없이 슬기의 시야 가득 천마의 등짝과 잿빛 망토가 들어왔다. 천마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안 죽게 해주마.”


터엉~


마치 시속 200킬로미터로 돌진해오는 트럭과 같은 압박감으로 날아오던 두 번째 갈고리 공격이 가벼운 천마의 손짓에 목표를 잃고 아무렇게나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그리고 괴물이 쇠사슬을 당겨 다시 갈고리를 회수하려는데, 천마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언제나 그렇듯 뭘 가지러 가는 게 참 귀찮은 천마였다. 둥실 떠오른 갈고리가 어보미네이션이 당기든 말든 아랑곳 않고, 천마에게로 날아와 알아서 그의 발밑에 깔렸다. 그 거대한 쇠갈고리를 그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천마의 발이 누르고 있을 뿐인데도 쇠갈고리는 그 상태 그대로 고정되어버렸다.

“크헝~~!!”

어보미네이션이 괴성을 지르며 당겨보았지만, 갈고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족히 3미터는 될듯 키가 오히려 땅딸해 보일정도로 단단한 근육질 체구를 가진 괴물과 호리호리한 일반인이 쇠사슬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었다.

그때 천장까지 닿아있던 그림자가 광개토 쪽으로 쭈욱 내려왔다. 그저 허리만 굽혔을 뿐인데, 순식간에 광개토를 덮쳐가는 모양새였다. 형체는 없이 그림자만 있는 듯한 그 광경은 매우 기괴했다.

그 순간, 한발 앞서 실리엔이 가볍게 점프하며 그림자의 공세를 맞이했다. 소녀의 손에서 길게 뻗어 나온 칼날과도 같은 손톱이 그림자의 날카로운 손과 강렬하게 맞부딪혀 갔다.


팅~


강렬한 충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한없이 가벼운 소리와 함께 소녀의 몸뚱아리가 저만치 튕겨나가 버렸다.

“아앗! 주인님이 주신 기운이 너무 적어서 힘에 부치네요.”

튕겨나면서도 또박또박 변명을 하는 실리엔의 모습은 밉상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쨌든 그 와중에 미약한 제지를 물리친 거대한 그림자 괴물의 공격이 광개토를 거의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안 때릴게, 여기 와봐.”

천마가 나지막하게 읊조린 순간이었다. 보스방 문 앞에서 광개토의 코앞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던 그림자가 돌연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천마의 코 앞으로 옮겨져 왔다. 천마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급변한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는 그림자의 멱살(?)을 꽉 움켜쥐었다.

“흘? 컥!”

마치 목을 통해 호흡을 하는 냥, 멱살 잡힌 그림자 녀석이 숨막히는 소리를 토해냈다.

안 때린다 해놓고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조져버리는 스킬, ‘천마의 집요한 손아귀’가 몹을 대상으로 발현된 첫 순간이었다.


천마는 먼저 발에 깔린 무쇠갈고리를 걷어찼다.

걷어차인 갈고리는 눈부신 속도로 날아가 어보미네이션의 작고 흉측한 대가리에 정통으로 꽂혀버렸다.

“크어, 크르륵”

으그그경이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머리에 정통으로 박힌 갈고리를 양손으로 붙잡고는 빼내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천마가 손가락을 들어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하며 나지막히 말했다.

“가져가려할 땐 언제고, 이제는 반납하려고 하느냐..”

말을 하던 천마는 문득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만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단순 변심에 의한 반품은 거부하느니라.”

천마의 무심하고도 가볍지만, 그러나 단호한 손짓에 따라 무쇠갈고리는 뽑히기는커녕 점점 괴물의 머리 속으로 더 파고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림자는 천마의 손에 목줄기를 잡힌 채 고통스러워 하고 점점 파고드는 갈고리 탓에 어보미네이션이 죽어가자, 소녀가 쪼르르 달려와 사정했다.

“으그그 경과 후를르 경은 모두 이 소녀의 심복이에요. 부디 살려주세요..”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실리엔의 어마무시하게 예쁘고 귀여운 얼굴을 보며 천마가 냉소했다.

“응? 뭐라고?”

천마가 되묻는 순간, 갑작스레 빨라진 쇠갈고리의 움직임에 그만 시체덩이 괴물의 몸이 세로로 두조각이 나버렸다.

“흐흐흐, 어디서 감히 본좌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이냐? 제자의 기운을 빨아먹은 모기년 주제에. 아가리 다물고 있어라, 그 조그만 머리로 족구하기 전에.”

모기소녀는 천마의 서슬퍼런 눈빛과 한기가 흐르는 냉소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어서 천마의 시선이 그림자를 향하자, 그림자의 거대하던 몸체가 급격하게 쪼그라들며 천마의 손아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천마의 손아귀는 마치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탐욕스레 먹어치우는 블랙홀 같았다. 그림자는 사력을 다해 그 흡입력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히이이이이이이익~!!”

결코 사람이 낼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잔뜩 압축된 그림자에게서 뿜어져 나왔고, 결국 천마의 주먹만하게 쪼그라들었던 그림자는 펑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아...”

실리엔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며 슬픈 탄식을 내뱉었다.

몸이 회복된 슬기가 천마 옆에 섰다.

“아저씨, 안.다.치.고.안.죽.게.만. 해달라니까, 왜 아저씨가 다 죽이고 그래?”슬기의 이를 악물고서 내뱉은 항의에 천마가 대답했다.

“이 놈들은 너희들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니라. 너희들처럼 허약한 것들은 오징어 먹물 녀석에게 맞는 순간 사망이다. 너희들이 비록 본질은 요괴라고 한들, 일부러 죽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그 말에 어깨를 움찔한 슬기가 실리엔을 돌아보았다.

“그럼 저것들을 수하로 두고 있는 저 소녀는 더 위험하겠네?”

“원한다면 죽여주고.”

천마의 무심한 어투에 화들짝 놀란 광개토가 얼른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아닙니다. 사부님. 이 소녀는 안 죽여도 될 것 같습니다.”

천마의 차가운 눈초리에 소녀도 벌벌 떨었다.

“오..오랜 세월동안 주인님을 기다려온 이 소녀에게 어찌 이리.. 무섭게 대하세요?”

하지만 천마는 소녀의 진실 된 모습을 간파했다. 그저 주입된 기운이 형편없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 뿐, 소녀는 원래 이런 존재가 아니었다!

천마의 가벼운 손짓에 저만치 떨어져 있던 실리엔이 어느새 천마의 코 앞으로 순간이동해왔다. 그리고 천마의 손아귀가 느긋하게 소녀의 목을 잡아가는데, 소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사부님!!”

갑작스런 일련의 상황에 광개토가 고함을 질렀다. 광개토는 사부가 혹시나 힘 조절을 못해서 실리엔의 목을 부러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실제로 사부는 손만 댔다 하면 다 죽여버리는 마이더스의 손이었으니까! 원래 마이더스의 손은 손 대는 건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을 가졌었는데, 사부는 손 대는 건 모두 죽여버리는 죽음의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천마에게 목을 잡힌 소녀가 체념한 듯 손과 발을 늘어뜨린 채, 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으윽, 어찌하여 원래 주인님으로 예정된 당신께서 이 소녀를 깨워주시지 않고, 저 반푼이 새끼가 소녀를 깨우게끔 내버려 두셨나요?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하다 못해 당신의 제자가 저를 깨워주시기만 했더라도..”

“저 반푼이 새끼가 본좌의 하나뿐인 제자다.”

천마가 오른 손으로 소녀의 목을 쥐고, 왼 손으로 귓구멍을 파며 대꾸했다.

“네넷? 어머! 저 공자가 유일한 제자시라고요? 그럴리가요. 일곱 제자분은 어쩌시고요?”

실리엔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게 소리를 쳤다.

천마가 주장한 ‘유일 제자설’에 광개토는 반푼이 새끼에서 공자로 순식간에 격상되었다.

“일곱 제자? 설마...”

천마는 진실로 놀랐다.

“제자를 일곱이나 키워..?...본좌가 그런 귀찮은 일을?”

안 그래도 멍청해 보이기 십상인 천마의 얼굴이 놀라 벌어진 입으로 더 그래 보였다.

“아저씨한테 제자가 더 있었어? 역시! 아저씬 과거가 있는 남자였어..”

실리엔의 말을 들은 슬기가 놀란 어투로 말을 시작해 이상하게 마무리 지었다.

잠자코 있던 광개토도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여덟 번째 제자인건가요?”

‘무지개도 일곱 개의 빛깔, 일주일도 일곱개의 날. 여덟 번째라는 것은 구색 맞추기도 아니고, 이건 뭐...’

광개토는 자신이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실리엔이 주도한 뜻밖의 폭로전에 놀라, 이 모든 것이 NPC의 발언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이윽고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실리엔을 노려보았다.

“못생긴 년은 거짓말만 한다더니, 네 년이 딱 그 짝이구나.”

어?하며 광개토와 슬기가 멈칫했다.

“사부님, 왜 자꾸 우리 실리엔을 못생겼다고 하십니까?”

광개토가 실리엔을 한껏 싸고 돌았다.

“이년은 호시탐탐 너를 도모할 생각을 하고 있다만, 너는 이년을 끼고 도는 것이냐?”“..도모가 뭡니까?”

이번에는 광개토가 천마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천마가 즉각 대답했다.

“모른다... 도모가 무엇이냐?”

슬기와 광개토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자기도 모르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니, 참 아저씨 답다는 생각을 하며 슬기가 정리했다.

“이 년이 틈만 나면 널 죽이려고 한다고.”

그 말에 깜짝 놀란 광개토가 실리엔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아니죠? 나보고 주인이라면서요?”

입술을 지그시 깨문 실리엔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 광개토를 쳐다보며 말했다.

“젠장맞을 반푼이 공자 때문에 이 소녀의 꼴이 말이 아니군요.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반푼이 주인님을 죽일 생각은 없어요. 죽여서 뭐하겠어요. 맛도 없게 생겼구만. 저를 이런 꼬맹이의 모습으로 남게 만든 주인님을 계속 원망이야 하겠지만, 죽일 생각은 없어요.”

실리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마가 멱살을 놓았고, 실리엔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이다.”

팔짱을 끼며 천마가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천마는 직감적으로 이 소녀가 진실을 말했음을 깨달았다.

“다행입니다!! 그럼 우리 실리엔도 우리와 같이 갈 수 있는 겁니까?”

광개토의 말을 듣던 슬기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그, 우리 라는 말은 좀 쓰지 말지?”

슬기가 토 쏠리는 표정을 지으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에다가 요 쪼꼬만게 아까 보니까 나한테 반말을 찍찍 해대던데, 그것까지 고치면 고려를 좀 해보도록 하지.”

광개토가 냉큼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런 것 쯤이야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실리엔? 아가씨한테 존댓말로 말해줄 수 있죠?”

천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한결 공손해진 실리엔이 맑디맑은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는 귀여운 어조로 대꾸했다.

“주인님, 저 못생긴 나이든 여자에게 존댓말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주인님이 명령하신다면 최.대.한. 노력하겠어요.”

“야, 죽여.”

대노한 슬기가 분기탱천하여 길길이 날뛰었지만, 결국 실리엔은 천마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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