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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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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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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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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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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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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32화




좁은 복도를 가로지르며 드문드문 모여 있는 스켈레톤 경비병 무리들을 잡다보니, 얼마 후 슬기와 광개토는 꽤 넓은 홀에 도달했다. 천장에 달린 수 십개의 샹들리에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사물의 윤곽을 대충이나마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슬기와 광개토는 3층 정도의 높이를 가진 홀의 2층 출입구에 서 있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1층에서 한창 사냥 중인 두 개의 플레이어 그룹이 보였다. 홀의 북동 모서리에 한 그룹, 남서 모서리에 한 그룹이 자리하고 있는데 잠시 살펴본 결과, 중앙을 기점으로 서로 영역을 나누어 플레이하는 중인 듯 했다.

“이 사람들 여기서 사냥 중인가 봅니다?”

광개토가 보기에 그들은 자리를 잡고서 사냥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홀의 벽쪽으로 문짝이 떨어져 나간 관 십여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데, 거기서 스켈레톤이나 좀비, 구울 등이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서 무작위로 나오고 있었다.

남서 그룹의 여섯 개 관 중 네 개의 관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좀 많네요, 네 마립니다!”

탱커로 보이는 방패 낀 전사 두명이 외치며 자세를 잡으려는데,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염구 쿨타임 돌아왔어요.”

그 목소리에 탱커 듀오가 신속한 발걸음으로 물러서고, 막 관에서 튀어나오는 스켈레톤과 좀비, 구울들 위로 볼링공만한 화염덩어리가 날아갔다.


쿠앙~~


화염구가 바닥에 닿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실내가 환히 밝아졌다. 따뜻한 열기가 2층에 있던 슬기와 광개토에게까지 미쳤다.

“와, 저게 마법사입니까!?”

게임 시작하고서 1주일이 지나서야 처음 본 마법사의 플레이 장면에 광개토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겉보기만큼 센 마법은 아냐.”

슬기의 말대로, 화염구에 소멸된 녀석은 없었다. 언데드들은 다만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으로 비틀대고만 있었다.

이어서 총사가 장총으로 좀비 녀석의 팔을 날리고, 방패를 든 전사 두 명이 적들의 앞에서 시선을 끌었다. 언데드 무리 중에서 가장 몸놀림이 빠른 구울이 탱커들의 측면으로 빠르게 돌아서 마법사를 공격하려 하자, 마법사 옆에 서 있던 간편한 복장을 한 남자가 잽싸게 구울에게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구울은 마치 마비에 걸리기라도 한 듯 팔을 치켜든 자세 그대로 고정되었다.

“우와~ 저건..점혈 아닙니까?”

낯익은 듯한 그 모습에 겜알못 광개토가 감탄하자, 슬기가 대충 설명해주었다.

“아마 저 사람은 초능력자, 능력은 정지 능력일거야. 멈추고 싶은 대상에게 저렇게 손을 대고 있어야만 능력을 유지할 수 있지. 그렇지만 레벨 차이가 많이 나면 안 통한다는 점이 함정. 그리고 능력을 쓰는 동안 자신도 아무 행동을 취할 수 없으니 반푼이.”

슬기의 설명에 광개토는 실망하고 말았다.

“초능력자라서 되게 멋있게 생각했는데, 별로지 싶습니다.”

광개토의 소감에 슬기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 슬슬 손발이 맞아가네요. 멋졌어요. 한조씨.”

국민 여동생을 닮은 미인 마법사의 칭찬에 초능력자, 한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참에 일주일 더 연장할까요?”

탱커 역할을 맡은 파티장이 웃으며 제안을 했지만 힐러 역할을 맡은 성기사가 반대했다.

“천마군이 며칠내에 여기까지 진출한다고 한 소문 못 들으셨어요?”

“아, 그렇죠. 신이 나서 잠깐 깜박했네요.”

파티장이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의견을 철회하자, 기존 파티원 대신 땜빵으로 들어온 한조가 이참에 말이라도 붙여 볼 심산으로 국민여동생을 닮은 여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저도 들었어요. 천마군이 온다는데, 조만간에 피해야겠죠? 몰모트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넌지시 건네는 초능력자의 말에 미인 마법사가 귀여운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어머, 그것도 그렇지만, 혹시 못 들으셨어요? 천마군이 점령한 언데드 던전에서는 훨씬 상급 언데드가 나온데요!”

“아, 진짜요?”

처음 듣는 얘기에 초능력자는 깜짝 놀랐다.

“뭐라더라. 천마가 사마의 종주라면서, 언데드도 사마에 포함된다나 뭐래나~ 암튼, 그래서 천마군이 점령하면 스켈레톤이나 좀비, 구울이 나오던 던전에서 레이쓰나 뱀파이어 같은 것들이 튀어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고서 여 마법사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점령 보다는 해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언데드의 해방~.”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도 있겠지.”

옆에 선 젊은 총사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는 광렙하는거고!”

무쇠 도리깨를 든 전사가 신난다는 듯 도리깨를 흔들어 보였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자 그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파티장 전사가 외쳤다.

“자, 이번에는 세 놈입니다. 준비하세요.”

관 세 개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건너편 복도로 가볼까?”

슬기의 말에 아래쪽 두 그룹을 멍하니 쳐다보던 광개토가 고개를 들었다.

‘저런 팀플레이가 하고 싶었었는데.’

이왕이면 예쁜 여자랑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이어서 떠오르려고 했지만, 광개토는 그런 생각들을 급히 무의식 깊은 곳으로 가라앉히려 했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자꾸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노라면 은연중에 겉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랬다간 무시무시한 슬기 아가씨에게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러지 말입니다.”

광개토의 어색한 말투에 슬기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근데, 개토 넌 왜 다나까로만 말을 맺니? 직업 군인이야?”

“아, 아닙니다. 그냥... 그러고 싶습니다.”

차마 눈이 나빠 가지 못한 군대가 한이 되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광개토는 얼렁뚱땅 둘러대었다.

근데 한편으론 참 이상한 게, 눈을 수술해서라도 군대를 가겠냐는 부모의 말에는 그렇게 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했는데, 또 면제받은 이후는 왠지 눈 수술이 하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수술하고 싶다고 하기에는 오해를 살 것 같아서 참는 중이었다.

광개토도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은 홀의 2층 가장자리로 연결된 난간식 통로를 통해 건너편 복도로 살금살금 이동했다.




‘주인님, 주인님... 이 종년은 거기로 갈 수가 없답니다. 부디 여기로 와주세요...’

30분째 들려오는 간질거리는 귓속말에도 천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서는 슬기와 광개토의 행보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야말로 종년인지 뭔지 하는 것은 천마에게 개무시를 당하는 중이었다.




슬기와 광개토는 길다랗거나 꾸불꾸불한 몇 개의 복도를 지나고, 몇몇 기척이 느껴지는 방들을 탐험하며 무수한 언데드 몬스터들을 잡아 내었다. 그러면서 자리를 잡고 사냥하는 플레이어 무리 또한 네댓 팀 더 확인했다.

성채의 곳곳에 부서지거나 멀쩡한 관들이 있었는데, 살펴본 결과, 멀쩡한 관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푸른 빛을 띄며 새로운 언데드를 토해내었다. 그리고 토해낸 언데드가 죽기 전에 다시 토해 내는 경우는 없었다. 만약 무한 리젠이 되었더라면 끔찍했을 것이다.

한편 부서진 관들은 기능을 상실한 듯했다. 적어도 슬기와 광개토가 살펴본 바론 부서진 관 중에서 언데드를 토해내는 관은 없었다. 멀쩡한 관을 하나 부숴 봤더니, 그 또한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았다.

“아, 이것들을 다 부숴 버리면 언데드의 저주로부터 이 성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광개토의 얼굴을 한참 한심하게 쳐다보던 슬기가 말했다.

“이 사냥하기 좋은 곳을 부수긴 왜 부숴?”

그녀의 기색을 읽은 광개토가 황급히 동감의 뜻을 표했다.

“아, 아가씨 말이 맞습니다.”

“아가씨라는 말은 집어쳐. 안그래도 아저씨가 그렇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느끼해 죽겠는데.”

요즘 들어 슬기는 천마에게 괜히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돌보미도 아닌 것이 꼬박 꼬박 아가씨라고 불러주니 불편했다. 게다가 툭하면, 아가씨라는 표현이 뒤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붙여가지고.

“네? 사부님은 아가씨 네 년... 뭐 그렇게 부르시던데.”

그래, 그렇게!!

“이 년한테 네 놈이 한번 죽어볼테냐?”

꽉 다문 슬기의 늠름한 턱선과 졸라 아파보이는 불꽃 주먹을 보며 광개토는 침을 꿀꺽 삼키다가 황급히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관에 불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냉큼 리젠되는 몹을 향해 광개토는 몸을 날렸다.


광개토가 폭발적인 광랩으로 어느새 10랩 가량 더 올렸을 무렵, 일행은 일찍이 보지 못한 특별한 문을 하나 발견했다. 널찍한 홀 끝에 위치한 멋있게 장식된 문이었다.

이전 홀들과는 달리 여기는 자리 사냥을 하는 플레이어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홀에 관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듯 했다.

그 멋들어진 장식의 문은 여타 철로 감싸인 문들과 달리 금으로 장식된 나무 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손잡이가 없고, 문 한가운데에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더 큰 검은 구슬이 박혀 있었다.

“우와, 이거 딱 봐도 보스 방 아닙니까?”

광개토의 말에 슬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손잡이가 안보입니다. 그냥 밀면 되는 건가?”

광개토가 슬며시 힘을 주어 밀어 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겨야 되는 거 같은데 손잡이도 없이 어떻게 당깁니까?”

광개토의 말에 슬기가 주변의 벽과 장식들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아마도 뭔가 조건 같은 게 있을 거야. 어떤 던전들은 보스방 출입 조건이 있거든.”

문에 다가간 슬기가 슬며시 구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검은 구슬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우 차가운 검은색 유리 구슬이었다.

“어머, 차가워!”

“어머, 깜짝이지...말입니다!”

생각 이상의 냉기에 살짝 놀란 슬기가 손을 움츠리자, 그 어울리지 않는 여성스런 동작에 광개토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마치 뿔 잘린 코뿔소가 놀라는 것 같았다.(실로 혐오스럽고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개토야, 이거 만져봐. 완전 차가워!”

슬기가 구슬을 가리키자, 광개토도 구슬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한 광개토가 슬기를 보며 말했다.

“뜨겁습니다만?”

“어머, 개토야!?”

깜작 놀란 슬기의 시선을 따라간 광개토는 자신이 잡고 있는 구슬이 붉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으헉?!”

거기에 더해 광개토는 손이 구슬에서 떨어지지 않는 현상에 심장이 떨어질 듯이 놀랐다. 그리고 뭔가 기운이 슬글슬금 손을 통해 구슬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듯 했다.

“오셨군요. 주인님.”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와 슬기와 광개토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에게 전해 듣던 처녀 귀신의 목소리가 이럴까, 구슬에서 손이 안 떨어지는 바람에 놀라 자빠지지 못한 광개토가 빽하고 괴성을 지르며 남은 한손을 마구 허공에 휘저어댔다.

“으악!! 귀신은 물렀거랏!”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은 잘만 깨부수더니만, 귀신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말이 바뀌었다.

주인님~ 여기로 오세요, 하던 그 목소리의 대사가 바뀐 것이다.

‘오셨군요, 주인님~ 드디어 우리의 속박을 풀어주시려고...’

천마는 귀를 후비적후비적 거렸다.

귓밥이 없는데도 마치 이렇게 해야 더 개무시를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이 바뀌고 자시고 간에 처음부터 관심이 없던 천마는 어디서 개가 짖냐며 여전히 개무시중이었다.

‘주인님의 기운을 받아 이제 이 미천한 종의 무리도 거듭나도록 하겠.. 아니, 주인님?’

간들간들하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주인님의 기운이 왜 이렇게 약하신 건가요? 조금만 더 기운을 전달해주세요. 이걸로는 이 종년조차 각성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천마는 종년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의 말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때마침 들려오는 광개토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어..어? 이거 이상합니다. 제 기운이 마치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아가씨, 어떡합니까, 이거 어쩌죠?!”

이어서 천마의 귓속으로 슬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씨발, 얼른 사부 불러!”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 말에 천마도 동의했다.

“얼른 불러라. 제자야.”

여기서 말해봐야 성채 깊숙한 곳에 있을 제자는 듣지도 못할텐데, 천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제자가 불러 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광개토는 계속 이상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슬기는 또 그런 광개토에게 사부를 불러라고만 하고 정작 그녀 자신은 천마를 부르지 않았다.

불러줘야 갈 텐데...

그렇게.. 계속 그는 기다렸다. 둘 중 아무나 자신을 불러주기를.


안타깝게도 천마는 융통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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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19.11.24 54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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